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낮에는 약간 더운 전형적인 가을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차가 산방산을 끼고돌아 사계리로 접어들자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무가 조금 꼈으나 맑은 날씨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송악산이 자리한 산이수동에 도착하였다.
햇살이 길을 잘못 알려준 은하수일행을 제외하고 모두 와 있었다. 은하수는 전화로 햇살에게 길을 물었을 때 무조건 “맞다. 맞다.” 하는 통에 사계리 잠수함 매표소에서 기다리다가 뒤늦게 마라도 선착장을 찾은 것이다. 오늘은 지난주와 같이 14명이다. 참석자도 남산부부가 안팎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 모두 같다. 송악산은 잘 알려진 관광지라 다른 오름과는 달리 관광객이 많다. 때마침 전라도 광양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오름과 해안을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일본군 진지동굴을 구경하기 위해서 바닷가로 내려갔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인 절벽에 지층의 흔적이 뚜렷하다. 검은색이 도는 사암과 역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에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즐비하다. 10여개는 족히 더 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 개씩 이어지게 파 놓았으며 속으로 길게 파 놓은 굴도 있었다. 이 진지동굴 하나하나에 수많은 제주도민의 피와 땀과 한이 서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진지동굴이 제주도 전체에 수백개가 된다니 놀랄 일이다. 이런 전쟁 유적들을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관광자원화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절벽 위를 기어올라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바다 쪽으로는 절벽을 이루고 있어 안전방책이 쳐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바다물빛이 그렇게 맑고 고울 수가 없다. 제법 깊은 곳까지 바닥에 있는 작은 돌까지 선명하다. 운공은 이런 곳에 고기가 없을 것 같단다. 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는 속담 이야기다.
남쪽 끝에 있는 전망대까지는 1km가 넘는 거리다. 이 곳에 오니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가 바로 코앞에 가깝게 보인다. 5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절벽 밑에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진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은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오름의 울음소리처럼 들려 송악산을 절울이(파도가 우는 오름)라고 한단다. 절울이, 참 좋은 이름이다.
우리는 앞장을 따라 송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쪽 제1굼부리 쪽으로 오르는데 우리는 등대가 있는 남쪽 코스를 택했다. 오름이 대부분 송이로 이루어졌고 해풍 때문에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여 아무 곳이나 오를 수 있는 오름이다.
정상에는 우리보다 먼저 말 두 마리가 선점하여 사위를 경계하고 있다. 기가 꺾인 우리는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독새기와 복분자로 에너지를 충전하기로 했다. 앉으니 이것저것 먹거리가 풍성하다. 벌써 거나하고 배가 부르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도꼬마리가 지천으로 깔린 작은 능선을 올랐다. 살찐 말이 느릿느릿 풀을 뜯으며 우리에게 눈길을 준다. 그 뒤로 펼쳐지는 형제섬과 산방산의 조화가 기막히다.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정상이 있는 주봉을 오르며 바라본 제2굼부리와 바다, 섬 그리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조화다. 거기다 살찐 말들까지. 주봉에 연한 굼부리는 그 깊이가 70m는 족히 될것 같고 거의 수직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깔때기 모양이다. 거대한 가마솥이라고 할까.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이라 척박하고 해풍에 견디지 못하여 느릅나무들이 바닥에 바짝 붙어 있다. 그 사이사이에 해풍에 강한 갯쑥부쟁이가 보라색 꽃을 피웠다. 경사가 급해서 송이가 주룩주룩 미끄러진다. 군데군데 붉은 속살을 드러낸 오름이 안쓰럽다. 사람에 의한 훼손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방목하는 소나 말 그리고 염소에 의한 훼손이 심각한 것 같다. 일정 기간 방목을 막아 오름을 보호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상에는 산이수동 청년회장과 초대 대정면장이 세웠다는 송악산 한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섬과 바다 그리고 오름, 해녀들과 고기잡이배들을 노래한 듯하다. 정말 여기서 보는 주변 경관은 장관이다. 한라산을 비롯한 수많은 오름들과 드넓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이 극명한 조화를 이루는 곳. 이곳이 송악산 정상이다.
오름을 내려온 우리는 전망대 못 미쳐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은 아래까지 설치되어있으나 파도 등으로 훼손되어 바다까지는 내려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우리는 중간에 자연적으로 생긴 석굴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때마침 오늘 운공 손녀가 뮤지컬 배우 선발에 뽑힌 기사가 신문에 나는 바람에 운공이 한턱 쏘기로 했다. 우리의 2세 3세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부녀회에서 하는 횟집에서 준비해 준 안주를 손수 들고 석굴에 도착한 우리는 기분이 최고다. 앞에는 넓고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형제섬이 우리를 보고 손짓한다. 유리잔에 술을 한 잔 가득 부어 “7땅까지 good~짝!” 이어서 선달님의 웃음학 강의가 시작되고,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이어도사나~”를 소리높이 부른다.
물로야 뱅뱅~ 돌아진 섬에~ 죽으나 사나~ 물질을 허영~으싸으싸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으싸으싸
오늘은 오름 산행이라기보다 어디 소풍을 가거나 피크닉을 즐긴 기분이다. 추석 때문에 다음 주 산행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2006. 9. 28)
첫댓글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사방 풍치에 모두를 붕뜨게 하는 곳 또 어딨을까? 물로야 뱅뱅~ 얼쑤 ! 운공 손녀가 발레단입성 축하공연이 엉덕아래서, 전복,문어 모둠 안주가 일품, 운공, 잘 먹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