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동인(動因)이 있었다. 거리가 비교적 가깝다는 것도 참석하고 싶은 이유였다. 김천에서 대전까지 고속도로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일반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전국 각지에 분포해 살고 있는 YMCA 사람들과의 친교도 내겐 의미가 컸다. 솔직히 말해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이것이 될 것이다.
우리 김천 YMCA는 지난 42차 총회 때 전국연맹 이사장을 배출한 지역 YMCA가 되었다. 이신호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이사장의 말에 의하면 유난히 일이 많았던 42차 이사장이었다고 한다. 이번 총회 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 이사장을 선출하게 된다. 바로 전 총회에서 전국연맹 이사장을 배출한 김천 YMCA에서 배정된 대의원을 채우지 못한 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사무총장에게서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확정된 숫자부터 물어보았다. 배정된 대의원 5명 중 3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했다. 가 줘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7월 8일-9일, KT대전인재개발원에서 있었던 제43차 한국YMCA전국연맹 전국대회 및 총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오후 3시 정각에 개회 예배가 시작되었다. 설교는 김흥수 목사가 맡았다. 그는 지금 한국YMCA평화통일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목원대에서 오랫동안 교회사로 학생들을 지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역사 신학자답게 "YMCA가 새 하늘과 새 땅을 고대하는 청년들을 키우는 것으로, YMCA 2세기 첫 걸음 청년운동으로 새 길을 열자"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것은 이번 전국대회의 주제이기도 하다.
오후 4시 예정의 윤장현 시장 특별 강연은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사회 변화와 청년운동'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그의 YMCA 운동 경험과 광주광역시 시장으로서 희망 속에 구상하는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100만대 생산의 자동차 단지 광주 유치는 그곳 청년 일자리 창출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시민운동가 출신 광역시장으로 현실적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성공하는 시장이 되기를 나는 내심 바라고 기도했다.
저녁 만찬 후 방 배정을 받고 시간이 남아 지역운동 사례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모두 14개 지역 및 부문 YMCA가 부스를 설치해 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광고 시간에 "여러분의 한 표가 100 만 원을 좌우한다"며 가장 마음에 드는 부스에 한 표를 행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즉 인기투표에서 1위를 한 부스에 100 만 원의 사업 추진비가 지원된다는 것이다(총회 전 발표에서 전주YMCA가 1위로 상금을 받았다).
첫 날 만찬 이후의 시간은 다소 말랑말랑한 내용들로 진행되었다. 쉼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사람 책 콘서트'(19:00~20:30), '나눔과 친교의 밤'(20:30~21:30). YMCA 이사, 회원, 실무자와 함께 하는 '사람 책 콘서트'는 안산YMCA 이필구 사무총장의 사회로 청년 회원 정찬희와 김인숙 그리고 여수YMCA 류재수 이사와 아산YMCA 정해곤 이사장이 나와 재미있게 내용을 채워주었다.
'나눔과 친교의 밤'은 권역별로 참가 YMCA 지역과 사람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권역별 협의회 대표가 등단해서 대표로 인사하고 권역 참석자들을 자리에서 일어나 합동으로 인사하는 식이었다. 그 시간을 음률로 수놓은 두 공연 팀을 소개해야 하겠다. 어구스틱 머신(Acoustic Machine)과 '아비가일 김'이 그것이다.
반항하는 젊음이 좋았고 사랑으로 슬픔을 엮어내는 테크닉이 더 좋았다. 그것은 테크닉 이상의 뭔가를 함축하고 있었다. 노래는 음성과 악기로 하는 예술인 줄 알고 있는 나에게 몸짓도 노래의 중요한 요소임 어구스틱 머신은 알려 주었다. 나이 든 축에 속하는 내가 젊은이들의 노래에 흥겨워하기는 오랜만의 일이다. 삶을 노래하는 길거리 유랑단이란 팀의 설명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한 가교(架橋)를 떠올리게 했다.
아비가일 김, 그도 톡톡 튀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명일 텐데 왜 하필 '아비가일'일까가 궁금했다. 남쪽 유다 사람 나발의 아내였다가 남편 사후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이 아닌가. 그는 미 보스턴 버클리음대를 나온 재원이다. 독특한 가창력을 구사해 심금을 울리는 뮤지션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김요한 목사의 딸로 소개하자, 즉석에서 받아 '잘 모르실 거예요. 모르셔도 돼요'라고 했고, 할아버지가 누구시냐고 묻자 '김장환 목사님'이라고 답했다. 그녀의 이름 앞엔 '꿈을 노래하는 청년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9일 아침은 성서 연구로 출발했다. 장윤재 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그는 지금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YMCA 목적사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 교수는 오늘날의 사회적 모순, 특히 청년들이 처해 있는 문제를 성경에 대입해 가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들보다 나아지기 힘든 첫 세대가 현재의 청소년들이라고 했다. 정부를 감정적으로 반대하기는 쉽지만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장 교수는 강의에서 이런 문제점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고 있었다.
이어 5개 과제로 나누어 운동연구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청년, 청소년, 사회교육, 기후에너지, 평화통일 이상 5개 중 나는 청년운동 분과에 들어가 토론에 참여했다. 희망의 명사 '청년'이 절망하는 세대로 한없이 추락하는 현실을 아픈 마음으로 점검했다. 진단과 분석은 많았지만 뾰족한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 하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변형태(變形態)인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배금주의 경쟁주의 승자독식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경제체제의 궁극(窮極)은 공멸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승자도 죽어 결국 사라지게 되고 만다. 감히 제언한다면 강자와 약자가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소득보다는 분배를 먼저 생각하고 사회 복지 예산을 확충해서 무두 함께 살도록 협력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유럽에서 제도화하고 있는 기독교사회주의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성경 마태복음 20장 1절-16절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좋은 시사점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이번 전국대회는 총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어 있었다. 총회는 공로 및 감사표창 수여, 연맹 사무보고, 안건심의, 임원 교체식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신임 이사장 선출을 빼고는 비교적 무난하게 흘렀다. 수원YMCA에서 이사장 선출에 있어서의 절차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신임 이사장으로 군산YMCA의 황진 이사가 확정되었다. 신구 임원 교체 뒤 신임 이사장의 인사말을 듣고 바로 폐회 예배를 드렸다. 1시간 반으로 예정되었던 시간이 두 시간이 훨씬 넘게 소요되었다.
113년 전통의 한국YMCA, 역사의 구비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또 이 땅의 민중들을 위한 선한 일들을 많이 감당해 왔다. 시민운동의 이름을 빌려 한 이 움직임은 정부에서 미처 하지 못하는 영역을 발견하고 스스로 보완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정부로 하여금 보완하도록 견인해 내는 일들을 해왔다. 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특유의 인내심과 양보심을 발동해 무난히 극복해 냈다. 제43차 전국대회 및 총회에 참석하면서도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끝으로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