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하면 나의 행동반경은 내설악의 남교리와 내 가평인 용대리, 외설악의 정가평인 설악동, 학사평 그리고 남설악의 한계령과 오색, 그리고 점봉산이었다. 어느 곳을 경유하여 등반하였든 등반 후 즐겨 찾는 곳은 낙 산사 일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종주등반하는 경우가 많아 여독이 심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해수욕을 즐기며 낙산에 머물든지 아니면 남설악으로 옮겨 오색온천을 즐기며 여독을 풀다 귀경하는 것이다. 설악산만큼이나 추억이 많이 살아 있는 곳이 낙산과 오색이다 이러한 추억 영향으로 귀경 길을 해안으로 잡았다. 오전에 수영과 사우나로 소일한 후 낙산, 하조대 양양, 오색, 한계령 그리고 동홍천에서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경 길에 오른 후 미사신도시 자주 가는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은 후 여행을 끝낼 계획이다. 오전계획을 마친 후 체크 아웃을 하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여행 내내 날씨가 참 좋았다. 낙산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화마를 입어 전소된 낙산사의 그 이후 모습이 궁금하였다. 마침 입장료를 정부가 부담하여 면제되어 통행 부담이 줄어들었다. 먼저 의상대사 관련 자료실부터 들렀다.
2005년 4월 5일 식목일날 양양에서 발화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불씨가 낙산사로 날아와 모든 전각을 불태워 버렸다. 당시 모든 국민들은 가슴을 조이며 이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탄식을 하였었다. 이 전시관에는 당시 불에 타 녹아내린 범종을 비롯하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불에 탄 유물들을 전시하면서 첼로와 바이올린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니 원동보전 전각 대들보를 이용하여 강릉 악기 장인 임창호 옹께서 옻칠까지 완벽하게 마감한 후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기원하고 또한 모든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여 기증하였다고 한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알게 모르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바로 선행인 것이다.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경내를 순회하기 시작하였다. 의상대를 보고 홍련암을 돌아 나왔다.
한 무리의 일본 관광객이 부모를 휠체어에 모시고 경내 곳곳을 다니는 것을 보고 바른 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주혁이 엄마는 참 운동을 잘했다. 운동부에 입회한 적은 없으나 스스로 익혀 어느 경지까지 오른 운동이 많다. 인라인 잘 타고 스키보드도 아주 수준급으로 타고 다녔다. 자전거도 그렇고 이번 여행 중에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은근히 나에게 압박을 넣고 있었다. 딸에 사정을 들어주기로 하고 정보를 받았더니 하조대라고 한다. 하조대하면 익숙한 지역이다. 동기 동창이 서울 사업을 정리하고 금전관계로 받은 재산이 하조대에 있어 본의 아니게 내려와 수산업을 하게 되어 응원 차 여러 번 내려왔었다. 속으로 무엇이 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하며 도착해 보니 감이 왔다. 서핑 때문에 온 것이다. 하조대 옆 해변인데 이곳이 이렇게 변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커다란 거울이 있어 셀프로 자신을 찍어가며 해변을 살펴보았다.
서핑보드(Surfing board)를 타고서 파도의 경사진 면을 오르내리며 높이와 속도,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로, 고도의 평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된다. 자연 그대로의 파도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고, 위험하지만 매력 있는 레저 스포츠이다. 따른 말로는 '파도타기 '라고도 한다. 하와이, 캘리포니아, 호주, 골드코스트 등 사시사철 좋은 파도가 있는 바다가 있는 지역에서 성행하는 스포츠이나, 최근엔 슈트와 보드의 발전, 서핑 문화의 확산으로 세계 어느 해변에서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부산 지역을 여행하였을 때도 서핑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이더니, 그 이유가 있었다는 느낌이 왔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을 하는 일은 삶에 있어 굉장히 소중한 일이 된다. 균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은 반복적인 훈련으로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니 도전할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혁 군도 수영을 잘한다. 어느 대회에 나가 수상한 경험도 있자 않은가
양양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갖는 지역이다.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여건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서핑과 음악과 맥주, 커피를 비롯한 음식 그리고 해변 배경에 있는 캠핑카 촌은 낭만과 활력이 가득하였다.
잠시나마 서핑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었다. 옛말에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찾고 어진 자는 산을 찾는다는 뜻이다. 잠시 지혜를 빌려 물을 찾았으니 어진 마음으로 산을 찾기 위하여 백두대간 령을 찾았다.
진부령을 넘어 미시령을 그리고 황철봉 지나 설악산 깊은 능선에 저항령이 있다 그리고 공룡능 시작 전에 마등령이 있고 대간은 희운각, 소정, 중청, 서북주능을 타고 흐르다 한계령에 내려놓는다. 이어서 점봉산 곰배령과, 단목령, 조침령, 북암령 타고 유유히 흘러 구룡령 넘어 오대산에 이르러 진고개, 선자령, 대관령... 지리산 자락까지 이어지는 것이 백두대간이다.
칠 형제 바위가 좋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앞 능선이 단목령이 있는 곳이고 다시 우측으로 꺾이며 뒤에 서 있는 능선이 조침, 북암령이 있는 곳이다. 그즈음을 통과하려면은 반바지와 반팔은 금물이다. 진드기가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기 때문이다. 기피제를 뿌리고 손 장갑도 끼고 통과해야 한다. 백두대간 중에 유난스러운 구간이다. 그러나 점봉산만큼 극상림과 생태계가 살아 있는 산도 드물다. 곳곳에 당귀와 산 더덕 향이 짙고 만초만큼이나 들꽃이 가득한 산이 바로 점봉산이며 곳곳에 질 좋은 샘이 있는 산이다. 그런 명산 아래 있는 마을이 바로 오색이다. 오색이 약수가 좋고 주전골과 흘림골이 존재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남쪽 자락에는 곰배령이 있고 설피골이 있으며... 한계령 풀도 점봉산 쪽에 있다. 홍 포수막이 있는 샘터의 물은 지금도 눈에 선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홍천의 삼둔의 명소를 만들고 맥은 구룡령을 넘어 오대산을 세우고 남행으로 이어진다. 너무 더운 날 걷게 되어 야간에만 걷고 낮에는 쉬고 잠을 자며 노을을 보며 걷다 일출을 본 후 쉬는 방법으로 대간을 걷던 기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망대 암산 방향도 호쾌하게 다가온다. 한 때는 별을 보며 걷는 일도 많은 곳이 설악과 점봉이다. 중청에서 권 금성까지 걷다 보면
헤드렌턴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징어 잡이 배가 불야성을 이루었기 때문에 산 길도 밝았었다.
주혁 군과 함께 한계령 휴게소 베란다에 서서 산세를 조망하며 꿈을 꼭 갖고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며 선한 마음공작소를 만들고 그 뜻을 늘 실천하라는 의미의 대화를 나누어 주었다. 나의 생전에 주혁이와 꼭 설악을 넘을 것이다. 아직도 시간을 늘리며 천천히 걸어 나간다면 충분하다. 어차피 고산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구력이다. 휴식 시간을 조금 더 배정하면 된다, 그리고 짐의 무게를 경량화시키면 된다. 그리고 극지법 등반 자세를 유지하면 2-3일이면 종주도 가능하다. 이런 계획을 잡을 수 있는 것은 1일 만보 걷기를 7년 이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허약을 부르는 신체는 허벅지다 허벅지의 근육을 빼앗아 주저앉히거나 쓰러트리려는 계책이 바로 생명이 지닌 처세술이다. 인간은 직립인간이다. 직립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허물어져 가는 것이다. 깊이 성찰할 부분이다.
설악산 자락과 점봉산 자락 사이로 들어선 곳이 오색이다. 공원지역으로 남설악이라 부른다. 이곳에 유명한 골짜기가 있는데 주전골과 흘림골이다 산수가 수려한 곳이다. 엄청난 폭우로 하류의 지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상류는 여전히 아름답다. 바람이 거칠기로 유명한 한계령, 점봉산에 터널이 뚫려 내방객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찾는 사람이 제법 있는 편이다. 산을 찾는 산악인들의 주차가 많아지자 영업의 지장을 받는 운영자 측에서 일몰 후에는 주차장 출입을 봉쇄한다. 차를 세워 놓고 설악산을 넘어가기 때문에 다음날 외부차량을 받을 수 없어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한계령과 오색에 승하차가 가능하다. 많은 등산객들이 한계령과 오색을 이용하여 등반을 시작하므로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계령을 끝으로 설악권역의 여행은 접게 된다. 이제는 안전하게 운전하여 서울로 귀경하고 미사리 신도시에 있는 종종 가는 식당에 들러 여행과 관련된 소회를 나누며 저녁을 먹은 후 여행의 최종적인 맺음을 가지면 된다. 한계리, 원통, 인제, 동홍천을 지나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달리다 가평 휴게소에서 주유와 커피를 마시며 쉬다 단숨에 올림픽도로에 접근하게 되었다. 식당으로 가 로봇이 갖다 주는 음식을 나누고 집에 도착하여 늦은 봄 여행을 종료하였다.
내가 나를 보니 내가 아닌가
아직도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은
내가 너처럼 살았기 때문인가
여러 개의 내가 존재하는
미혹을 버리지 않는 한
존재성은 희미할 것이다.
쓰러지기 전, 거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