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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 시집, <지워진 길>, 푸른사상, 2023년 7월 6일.
국경의 시학
―단동(丹東)을 중심으로
맹문재
1.
임윤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중국의 단동을 중심으로 남북교류 상황을 집중적으로 그린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단동이라는 또 하나의 국경에서 남한 사람들, 북한 사람들, 중국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남북분단으로 인한 안타까움은 물론 그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시인에게 단동은 지도상에 나오는 하나의 국경이라는 의미를 넘어 역사적인 장소가 된다.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중국 변경의 도시이다. 손에 잡힐 듯한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고, 거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북한 사람들의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철도와 도로를 통해 양국의 차량과 기차가 자유롭게 오고 가는 풍경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현재 단동에는 조선족을 비롯해 남한인 3천여 명, 북한인 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단동은 ‘홍색동방지성(红色东方之城)’의 준말로, 혈맹으로 붉게 물든 동쪽의 도시라는 뜻처럼 북한과 중국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동은 양국 간 최대의 교역 거점으로 교역 물품의 80%가 이곳에서 거래되고 있다. 2015년 8월 선양(沈阳)과 단동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일반 기차로 4시간 걸리던 거리가 1시간대로 단축되어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이후 다수의 기업이 단동에 진출했고, 북한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남한으로 수출되었다. 그렇지만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판단한 이명박 정부는 대북 투자 금지, 대북 지원 사업 보류, 국민의 방북 불허 등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을 중단하는 5․24조치를 단행했다. 개성공단도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로 간주되는 로켓을 발사하자, 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폐쇄 조치를 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정치적 조치 이후에도 단동에서의 남북교류는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는 면이 늘어남으로 인해 합법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비합법, 비공식, 편법 등의 방식이 얽히고설키면서 진행되어 왔다. 국내에서 남북교류가 단절된 것과 상관없이 삼국 간의 경제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국가 간의 경계는 전쟁이나 협상을 통해 결정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목책이나 철조망을 치기도 하고 장벽을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설치 이후에도 경계는 관리되고 통제된다. 따라서 경계는 어떻게 결정되었는가보다 어떻게 관리되고 통제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 통제의 유연성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세가 험준해 양국의 국경 통제는 어렵고 모호하다. 중국 국적을 지닌 북한 사람인 화교의 존재도 국경의 모호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임윤 시인이 단동을 중심으로 한 국경 인식은 주목된다.
2.
쿵쿵거리는 엔진의 진동수 뒤척이며 헤아리다
난바다 출렁거렸을 난파선 생각하다가
항로 없이 어둔 바다 헤쳐 간 황해도 작은 어촌의 고깃배를 떠올린다
희부연 새벽, 꿈에 나타난 무지개는 혼자만의 비밀
천연색 꿈이라니, 발해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홍채, 선홍빛 물결은 덤일까?
회색 왜가리 날개 같은 단동
유민들이 건넜을 붉은 빛의 요녕 끝자락
밤을 꼬박 샌 여객선은 항으로 미끄러지고 푸릇한 새벽이 선창에 붙어 인사를 보낸다
인천항에서 승선한 덩치 큰 보따리들, 철조망의 굴레에 바다에서 절반의 생을 살아가는 장사꾼들
비단섬의 볼모로 잡힌 굴뚝에 휘감긴 회오리바람, 물거품 물고 몰려드는 난바다의 파도, 폭풍 지난 뒤의 평온이 더 두려운 겨울, 이순이 된 지금도 귀가 뚫리지 않는다
거무죽죽한 입술의 둔치를 지나치면, 계절의 윤회 속에 잔뼈 굵은 자작나무, 잿빛 우울한 날 강변에 찍힌 발자국이 서글프다
무작정 대륙으로 흩어진 채 잃어버린 국적
오가지 못할, 발자국 하나
발자국 둘, 발자국 여럿
무성한 계절 속에서 목숨 걸고 서성대는 사람들
―「바닷길 족적」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유민들이 건넜을 붉은 빛의 요녕 끝자락”에 있는 “회색 왜가리 날개 같은 단동”을 항해하면서 “쿵쿵거리는 엔진의 진동수 뒤척이며 헤아”려본다. 그만큼 단동을 향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큰 것이다. 그러면서 “난바다 출렁거렸을 난파선 생각하다가/항로 없이 어둔 바다 헤쳐 간 황해도 작은 어촌의 고깃배를 떠올린다”. 배를 타고 나아가는 항해는 태풍을 만나거나 뜻밖의 사고를 당할 수 있기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화자는 항해의 목적지인 단동에 도착하고 싶은 열망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꿈에 나타난 무지개”를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할 정도로 희망을 갖는다. “천연색 꿈이라니, 발해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홍채, 선홍빛 물결은 덤”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화자가 단동으로 항해하는 목적은 “밤을 꼬박 샌 여객선은 항으로 미끄러지고 푸릇한 새벽이 선창에 붙어 인사를 보”내는 상황에 이르자 “인천항에서 승선한 덩치 큰 보따리들, 철조망의 굴레에 바다에서 절반의 생을 살아가는 장사꾼들”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 활동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98년 이후 인천에서 주 3회 오가는 정기노선이 운행되고 있을 정도로 단동은 한국, 북한, 중국의 무역 중심지가 되고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전후부터 한국어를 공유하는 한국 사람,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등 만여 명이 무역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인천에서 보낸 물건이 다음날이면 북한에 도착할 정도이다. 이렇듯 단동에서의 남북교류는 휴전선을 넘나드는 일 못지않게 주목되고, 북한 사회가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려준다.
하지만 단동에서의 남북교류는 전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다. 조국이 아니라 제3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합법성이 보장되지 않아 안전하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동으로 항해하는 심정은 “비단섬의 볼모로 잡힌 굴뚝에 휘감긴 회오리바람, 물거품 물고 몰려드는 난바다의 파도, 폭풍 지난 뒤의 평온이 더 두려운 겨울, 이순이 된 지금도 귀가 뚫리지 않는다”고 토로하듯이 신나거나 즐겁지만은 않다. “거무죽죽한 입술의 둔치를 지나치면, 계절의 윤회 속에 잔뼈 굵은 자작나무, 잿빛 우울한 날 강변에 찍힌 발자국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화자는 단동에서 “무작정 대륙으로 흩어진 채 잃어버린 국적”을 떠올리며 “오가지 못할, 발자국 하나./발자국 둘, 발자국 여럿”을 바라본다. “무성한 계절 속에서 목숨 걸고 서성대는 사람들”, 위험을 느끼며 교류하는 남북동포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동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남북분단과 교류 중단으로 인한 장벽이 쳐진 상황에 맞서 새로운 길을 뚫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세관에 정박한 버스의 얼룩진 창문과/복무원 눈초리 피해/보따리 하나 더 들고 승차하려는”(「장령세관」)는 북한 사람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귓불 화끈거리는 봄의 입술
삭정이 흔들며 서성대다
철책 너머로 사라지는 강바람
콘크리트 현수교에 흐르는 정적을 쓸어
비단섬 하류로 몰아치는 황사 먼지
갯벌에 발목 잡힌 폐선 한 척
하구로 닿은 바닷길 한없이 더듬어 가는가
손 내민 훈풍에도 인기척 없다
눈부셔, 실눈이 부시다
수면의 빛을 깨뜨려 국경 넘나드는 갯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어디인가
철조망 너머 깨진 빛 조각이 흘러간 곳인가
부시다, 부셔 내린다
건너편 강가에서 들려오던 빨랫방망이 소리
목메도록 불러도 대답 않던
어적도 아주머니는 보이질 않고
봄은 다시 강물 위에서 눈부시다
끊어진 길 배경으로 섬은 정물화가 되었다
물결 위 쏟아지는 물감들
신의주 관광에 이백 달러라는 호객꾼
강 건너면 국보법에 종북이 될 터
씁쓸한 웃음만 날린다
경고인 듯 가슴에 인공기 배지 단 처녀들
아득히 숨죽여 바라보는 건너편
들쭉술에 쌉쌀한 대동강 맥주
먹먹한 가슴으로 살얼음 시린 평양냉면을 먹는다
잡목이 앙상하게 날리는 모래언덕
단동에서 평양 오가는 조선족 보따리장수
이레쯤 돌아온다는 소식만 남겼다
조선 한국 민속 거리
숨죽이던 탈북자들은 어디서 섬이 되었나
가슴 뚫린 벽돌집 유리창
케케묵은 먼지만 봄볕에 얼굴을 내민다
바싹 마른 손가락 비벼대는 옥수숫대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살가운 바람
유초도, 위화도, 다지도
둑방 길이 허공에 꿈틀거린다
물결 따라 흐르는 아이들 웃음
연암이 건너왔을 강변엔 물비늘 반짝인다
박작성 위에 세워진 호산장성
고구려 병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성루 건너편 초소에도 아지랑이 피고
눈부셔 마냥 바라보는 여울 살
길은 끊이지 않고 출렁대기에
부신 길 부여잡고 더 북쪽으로 떠나야겠다
―「압록강에는 섬이 많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귓불 화끈거리는 봄의 입술/삭정이 흔들며 서성대”고, “철책 너머로 사라지는 강바람/콘크리트 현수교에 흐르는 정적을 쓸어/비단섬 하류로 몰아치는 황사 먼지”가 짙은 날 압록강을 바라본다. “갯벌에 발목 잡힌 폐선 한 척/하구로 닿은 바닷길 한없이 더듬어가”고 있는데, “손 내민 훈풍에도 인기척 없”음을 느낀다. “수면의 빛을 깨뜨려 국경 넘나드는 갯배”를 떠받치고 있는 압록강은 “눈부셔, 실눈이 부”신데, “건너편 강가에서 들려오던 빨랫방망이 소리/목메도록 불러도 대답 않던/어적도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봄은 다시 강물 위에서 눈부”신 상황이기에 대조적인 모습들이다.
봄 날씨가 풀리듯이 단동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물결 위 쏟아지는 물감들”처럼 “신의주 관광에 이백 달러라는 호객꾼”의 등장이 그 한 모습이다. 화자는 호객꾼의 제안에 선뜻 응하고 싶지만, “강 건너면 국보법에 종북이 될 터”이기에 “씁쓸한 웃음만 날린다”. 그 대신 “경고인 듯 가슴에 인공기 배지 단 처녀들/아득히 숨죽여 바라보는 건너편”에서 “들쭉술에 쌉쌀한 대동강 맥주”와 “먹먹한 가슴으로 살얼음 시린 평양냉면을 먹는다”.
화자가 북한에서 만든 맥주를 마시고 냉면을 먹고 있는 단동에는 “평양 오가는 조선족 보따리장수”들이 “이레쯤 돌아온다는 소식”을 남겨두었지만, 기약할 수 없다. “잡목이 앙상하게 날리는 모래언덕”이 있는 단동에 “조선 한국 민속 거리”가 있지만, 자유가 완전하게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동에는 숨죽이고 있는 섬 같은 “탈북자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 “가슴 뚫린 벽돌집 유리창/케케묵은 먼지만 봄볕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그 상황이다.
화자는 “유초도, 위화도, 다지도”의 “둑방 길이 허공에 꿈틀거”리는 것에 눈길을 준다. 아울러 “물결 따라 흐르는 아이들 웃음” 소리를 듣고, “연암이 건너왔을 강변엔 물비늘 반짝”이는 것을 바라본다. “박작성 위에 세워진 호산장성”을 발견하고 “고구려 병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아쉬움도 가진다. 그러면서 “성루 건너편 초소에도 아지랑이 피”는 것과 “눈부셔 마냥 바라보는 여울 살/길은 끊이지 않고 출렁대”는 것을 바라보며 “부신 길 부여잡고 더 북쪽으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3.
아이가 엄마 손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 끝에 묻어난 계절이 안간힘 쓸 때
강물로 뛰어든 정강이가 시릴 즈음
단단한 각질 벗겨내는 물결처럼
잡목이 삼켜버린 길 위에 포개진 발자국은 침묵한다
강의 어깨를 물고
끝 간 데 없이 출렁거리는 국경
모래밭에 찍힌 화살표 물새 발자국이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던 편자의 깊이 같다
봉두난발 백성들 머리카락인가
반질거리던 길을 에워싼 잡초를 헤집는 바람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끊어진 철교
수풍댐 가르는 보트의 굉음
집안에서 만포 구리광산으로 연결된 교각
중강진의 악산과 사행천에 자리한 너와집들
혜산의 얼굴을 차단한 세관의 철문
남백두에서 발원한 강물을 건너던 길
보천, 삼지연, 송강하, 이도백하 그리고 천지
대홍단 감자 보따리장수와
화룡을 오가던 무산의 얼굴
용정과 회령을 건너던 독립투사들
두만강 뱃사공은 파업 중인가
남양으로 건너야 할 기찻길 장악한 중국 국경수비대
훈춘 302호 지방도로 철망 뚫고
아오지, 나진, 선봉으로 향하는 덤프트럭
동해가 손에 잡힐 듯한 녹둔도
금방이라도 연해주를 향한 증기기차가 건널 것만 같은
독립을 위해
식솔들 먹여 살리기 위해
메케한 석탄 연기 속, 졸음에 겨운 눈꺼풀 부릅뜨고
가슴속에 댓 개씩 응어리진 한 품고 건넜을
방천에서 바라본 두만강 철교
정오의 태양은 정적으로 떠다니고
왁자하게 강을 건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철망 사이 바라보는 건너편
인기척은 없고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미루나무 그늘에 위장한 초소들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에 숨소리조차 숨죽이는
아이가 엄마 손 놓쳐버린 계절
비명으로 흩어져 떠내려간 노을처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발자국들
장마철에 떠내려온 비닐봉지가
철조망 송곳니에 걸려
갈 곳 먹먹한 가슴들이 파르르 떤다
시야에서 사라진 엄마의 손
두려움 떨치려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겠다
꼬질꼬질한 손가락 사이 까만 눈동자
오늘 밤은 어느 방향으로 비틀거릴까
압록과 두만이 펼쳐 놓은
창백한 푸른 점 먼지처럼 서글픈 반도의 둘레길
―「지워진 길」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아이가 엄마 손 놓치지 않으려/손가락 끝에 묻어난 계절이 안간힘 쓸 때”, “강물로 뛰어든 정강이가 시릴 즈음”에, 숙소의 창을 통해 “강의 어깨를 물고/끝 간 데 없이 출렁거리는 국경”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단단한 각질 벗겨내는 물결처럼/잡목이 삼켜버린 길 위에 포개진 발자국”을 발견한다. “모래밭에 찍힌 화살표 물새 발자국”은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던 편자의 깊이” 같다. 아울러 그 모습에서 “봉두난발 백성들 머리카락”을 연상한다.
화자는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끊어진 철교”를 바라보고, “수풍댐 가르는 보트의 굉음”도 듣는다. “만포 구리광산으로 연결된 교각”이며, “중강진의 악산과 사행천에 자리한 너와집들”이며, “혜산의 얼굴을 차단한 세관의 철문”도 바라본다. 아울러 “남백두에서 발원한 강물을 건너던 길”과 “보천, 삼지연, 송강하, 이도백하 그리고 천지”는 물론 “대홍단 감자 보따리장수와/화룡을 오가던 무산의 얼굴”들을 떠올린다. “용정과 회령을 건너던 독립투사들”도 떠올린다.
그런데 “두만강 뱃사공은 파업 중인”지 움직이지 않는다. “남양으로 건너야 할 기찻길 장악한 중국 국경수비대”는 물론 “훈춘 302호 지방도로 철망 뚫고/아오지, 나진, 선봉으로 향하는 덤프트럭”도 보이지 않는다. “동해가 손에 잡힐 듯한 녹둔도”며, “금방이라도 연해주를 향한 증기기차가 건널 것만 같은” “두만강 철교”도 조용하다. “정오의 태양은 정적으로 떠다니고/왁자하게 강을 건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철망 사이 바라보는 건너편/인기척은 없고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미루나무 그늘에 위장한 초소들/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에 숨소리조차 숨죽이는” 상황이 일시적인 모습인지, 아니면 대북제재 이후 일상화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교류가 중단된 것은 분명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발자국들”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보고 있다. “장마철에 떠내려온 비닐봉지가/철조망 송곳니에 걸려/갈 곳 먹먹한 가슴들이 파르르” 떠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압록과 두만이 펼쳐 놓은/창백한 푸른 점 먼지처럼 서글픈 반도의 둘레길”을 바라보며, “두려움 떨치려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초록은 짧은 시간의 얼굴
텅 비었던 겨울
건넛마을로 안부 전하는 인사말
초록 조각들이 허공에 외친다
“다들 잘 지내시죠?”
울울창창한 수채화가 간직해 두었던
메아리를 조금씩 풀어 놓는다
수백 리 걸친 국경
바짓가랑이 걷고 통나무배 타고 건넌 얼굴들
초록 필름, 초록 인화지
강화유리처럼 순간 산산 조각날 것 같은
아스라한 빛은 삼지연에서 왔는가 무산에서 왔던가
남쪽 바다 쪽빛 해변에서 떨어져 나온 물감이
능선 타고 번져 저리 훌훌 피어나는가
수평으로 뻗은 낙엽송 가지에서
초록 물감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푸석하던 계절이 연초록 종종걸음친다
예고 없는 융단 습격, 이파리 끝에 뭉쳐진 물방울
“잘 견디고 있습니다”
얼굴 없는 대답이 메아리친다
새빨간 거짓말일지나 그래도 믿기로 한다
―「강변을 습격하다」 전문
“초록 조각들이” “텅 비었던 겨울/건넛마을로 안부 전하는 인사말”로 “다들 잘 지내시죠?”라고 외친다. “울울창창한 수채화가 간직해 두었던/메아리를 조금씩 풀어 놓는” 것이다. “수백 리 걸친 국경/바짓가랑이 걷고 통나무배 타고 건넌 얼굴들/초록 필름, 초록 인화지/강화유리처럼 순간 산산 조각날 것 같은/아스라한 빛”을 띤다. 화자는 그 초록빛이 “삼지연에서 왔는가 무산에서 왔던가” 묻는다. “남쪽 바다 쪽빛 해변에서 떨어져 나온 물감이/능선 타고 번져 저리 훌훌 피어나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수평으로 뻗은 낙엽송 가지에서/초록 물감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푸석하던 계절이 연초록 종종걸음”치면서 응답이 들려온다. “잘 견디고 있습니다”라고, “얼굴 없는 대답이 메아리”치는 것이다. 화자는 그 대답이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믿기로 한다”. 화자의 희망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화자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아파하며 극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4.
어둠이 슬금슬금 골목길 잠식할 즈음
바람도 곁눈질 두리번거린다
조선 민속 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은 평양식당
평양 오가며 장사한다는
오십 줄의 아주마이
이방인이 따라주는 압록강 맥주가 쌉쌀하다
서로의 눈치 살피다가
“우리가 남이가”
건배사의 말뜻 알려주자 경계를 푼다
미닫이 밖에 밀려드는 바람의 굉음
골목은 얼어붙어 인기척 없다
봄이 오면 보따리 메고 평양으로 간다며
“쭉 내자우”
잔 비우자는 평양식 건배 제의를 한다
맨살 찢을 듯 불어대는 냉소의 바람 견디며
헛꿈이라도 꾸고 싶은
베를린장벽처럼 철조망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개꿈일까
불통의 눈초리에 눌려
침묵하는 일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을까
“우리가 남이가, 쭉 내자우”
―「쭉 내자우」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어둠이 슬금슬금 골목길 잠식할 즈음/바람도 곁눈질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조선 민속 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은 평양식당”에서 조심스럽게 북한 사람들과 교류한다. “평양 오가며 장사한다는/오십 줄의 아주마이/이방인이 따라주는 압록강 맥주”를 마시는 것이 그 모습이다. 서로는 “눈치 살피다가/“우리가 남이가”/건배사의 말뜻 알려주자 경계를 푼다”. “미닫이 밖에 밀려드는 바람의 굉음/골목은 얼어붙어 인기척 없”지만, “봄이 오면 보따리 메고 평양으로 간다며/“쭉 내자우”/잔 비우자는 평양식 건배 제의”에 기꺼이 응하는 것이다.
화자는 건배를 하면서 “맨살 찢을 듯 불어대는 냉소의 바람 견디며/헛꿈이라도 꾸고 싶”다. “베를린장벽처럼 철조망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현재에는 개꿈이라는 것을 화자는 잘 알고 있지만, “불통의 눈초리에 눌려/침묵하는 일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건배에 북한 아주머니의 건배를 얹어 “우리가 남이가, 쭉 내자우”라고 외치는 것이다.
한반도 내에서는 남북의 만남과 단절이 반복되었지만, 단동에서는 1992년 한중수교 전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단절된 적이 없다. 일회적이기보다는 연속적으로 만나온 것이다. 단동의 학교 교실, 중국어 학원, 호텔, 민박, 아파트, 식당, 술집, 찻집, 사우나, 노래방, 그리고 상점과 회사에서 서로 만나왔다. 남북을 연결하는 경제 활동을 해온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북한 사람은 한국 소주를, 남한 사람은 대동강 맥주를 마시곤 했다.
따라서 휴전선만 바라보는 남북교류를 기대하기보다는 단동에서 이루어지는 남북교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동에서는 남북교류의 부침과 상관없이 경협이 이루어져 왔다. 남한 사람들이 주문한 옷을 단동에서 북한 사람들이 만들고, 그것이 중국 제품으로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것이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 악화와 반복되는 수해 및 가뭄으로 배급 체계가 붕괴하고 생필품 및 의약품이 부족해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가구나 잡화를 파는 것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자 국경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명 도강증이라고 불리는 국경통행증으로 양쪽을 자유롭게 오고 가고 있다.
단동에서는 한국, 북한, 중국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삶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삶의 터전과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길림성의 연변 지역이 무역 중심지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단동으로 이동하였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량, 생활품, 의약품 등을 남한에서, 평양에서 만든 가공품을 남한으로 보내는 데 최단거리라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남북한 동포들은 귀국 후 문제가 될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단동에서 경제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한국 사람들은 단동에서 이루어지는 남북교류를 잘 모르고 있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임윤 시인이 단동을 중심으로 심화시킨 국경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그곳에서의 체험을 통해 남북분단에 따른 남북교류의 한계는 물론 그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결국 남북동포들의 경제적 교류를 토대로 분단 극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孟文在 |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