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님과 廣開土太王님의 가정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최소한 치희가 무휼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정기님의 동맹과 동명의 상관성을 보면서 또 고구려, 백제, 부여
등의 '범 부여계 국가들'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파악했던 점은 '이들
나라들'이 김부식의 유교 사관 중심의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의외로 '몽골적 요소'를 많이 드러낸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이들 나라들은 어학적으로도 '몽골어와 대비될'만한 언어들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만 '풍습'에서조차 '몽골 방식'을 많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아니 '몽골 방식의 원조'라고 해야 차라리 정확한 이야기가
될까요?).
특히 유화의 경우 미혼모로서 한 나라의 국모가 된다던가, 버드나무가
샤만의 나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몽골과의 어떠한 연관은 짚어볼
만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몽골에서는 모계 혈통이 상당히 중시됩니다. 후대의 야그입니다만
몽골에서는 칭기즈 카한의 아버지인 예수게이 바토르보다 어머니인
허얼룬이 훨씬 더 존경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물론 활동기간이
허얼룬이 더 긴 덕도 적지 않지만서도.).
한데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으나 김 용만 선생님의 저서에 나온 대로
'미혼모를 신으로 모신' 고구려의 경우도, '두 나라의 건국을 주도한'
소서노의 경우도 그렇고 모계의 활동이 상당히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박한 삼국사기조차도 최소한 '유화와 소서노'에 관한 한
지면을 적잖이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음을 보면 유리왕의 경우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그 자신이 그러한 문제로도 시달렸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한족(漢族)인 치희가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은
아무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막말로 '뼉다구(血統)' 특히 모계의 경우는 '정통성'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인 만큼 치희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을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