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화사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다시 발견된 인간성과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악기가 바이올린이다. 그런 만큼 바이올린이 16세기 초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물론 바이올린 족이 출현하기 이전에도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연주되던 비올(viol)족의 현악기들이 있었지만, 르네상스 시대 신흥계급으로 등장한 상업자본가들이 해방시킨 오페라와 기악합주음악들은 궁중이 아닌 넓어진 극장에서의 연주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빈약했으며, 무엇보다 종교와 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새로운 인간성의 표현을 희구한 당시 음악적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음량과 소리를 낼수 있는 새로운 악기의 출현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여기에, 종전의 비올에 비해 그 형태와 구조가 전체적으로 개선된 모습의음량도 커지고 음색이 윤택하며 보다 모든 음역을 통해 균질적인 음질을 특징으로 하는 ‘서양 악기의 왕’ 바이올린이 등장한 것이다. 많은 다른 고대 악기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린의 탄생에 관한 수세기간의 전설과 원전자료들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악기의 창안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초기의 바이올린들은 제작자의 이름을 표기한 라벨이 악기 안에 부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자 자신에 의해서뿐만 니라 후대에 내려오면서 개조되고 변형되어 왔으리라고 짐작된다. 이러한 상황에다가 고악기에 대해 셀 수 없이 행해진 그럴듯한 복제와 위조들는 우리의 혼란을 가중시켜 오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이란 속(屬)명은 이미 15세기의 저술과 문헌들에 나타나있다. 꾸준한 역사가들의 노력은 바이올린의 창시자의 자리에 가스파로 다 살로(Gasparo da Sal )나 케를리노(Kerlino), 뒤포프루가(Duiffopruggar) 등을 올려놓기도 했다. 또 다른 현대 학자들은 바이올린의 탄생이 브레시아 학파의 장인들에 힘입은 것이라고 하는데, 조안 마리아 다 브레시아(Zoan Maria da Bressa 혹은 Dalla Corna)와 펠리니노 다 몬티 키아리(Pelignino da Montichiari), 제로니모 비르쉬(Jeronimo Virchi),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 비록 크레모나 출신이긴 하지만 그 역시 젊은 시절 브레시아에서 몇 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등을 거론해 오고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최초의 바이올린 제작자들 가운데 우리는 가스파로 다 살로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하에서 크레모나를 비롯해, 다양한 장인들이 명멸했던 이탈리아의 주요 명기 탄생지와 장인들을 각 학파를 중심으로 일별해 봄으로써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까지 바이올린의 제작사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학파의 순서는 시간적 배열을 따른다.
1. 브레시아 학파_La Scuola Bresciana |
2. 크레모나 학파_La Scuola Cremonese |
3. 밀라노 학파_La Scuola Milanese |
4. 베네치아 학파_La Scuola Veneziana |
5. 토리노 학파_La Scuola Torine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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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는 무한한 표현 역량을 지녔다. 그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를 닮았고 외형은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킨다. 바이올린은 음향학적으로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데 연주 시에는 비범한 표현력을 자랑한다. 인간의 목소리가 그 모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음색과 소리 조각술은 감정적인 어필을 극대화하곤 한다. 그것이 낳는 찬란한 음형들과 함께 연주자의 의지나 기교에 따라 감정적 효과는 극대화된다.
바이올린의 모양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인체를 연상시키는 몸체에는 4개의 현이 달렸고 아름다운 색감은 고풍스런 매력의 극치다. 그림으로 보는 고대의 현악기들도 기본틀은 마찬가지다. 그것들의 원형은 바로 활이다. 아치 모양의 활은 줄이 달려있고 그 사이에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공명통이 달려 있다. 이것이 오늘날 현악기들의 초보적인 형태인 것이다. 인류는 예부터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 활을 썼지만, 한편으론 활에 달린 줄을 문지르거나 튕기면서 감성의 표현을 꾀했다. 그리고는 줄의 길이나 장력을 조절해 음색과 음높이를 조절하고자 했다. 이것을 누가 최초로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의 진화과정은 인류의 예술적 마음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자와 회화 기록들은 고대 인도에 라바나스트론(ravanastron)이란 현악기가 있었고,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에는 라밥(rabab)이란 현악기가 있었음을 전한다. 레벡(rebec)이란 악기는 중세 때에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남유럽에 전해졌다. 이것들은 먼 옛날의 현악기이긴 하나 후에 바이올린으로 진화되는 조상들이 된다. 중세 유럽에는 비엘(vielle)과 로트(rote)라는 두 개의 현악기가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고대 악기인 지타(zither)의 단순한 연장처럼 여겨진다. 기악이 성악보다 열등한 분야로 여겨졌던 중세에 현악기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것들은 줄의 길이를 줄여가면서 다양한 소리들을 낼 수 있었는데, 울림통과 지판을 가지고 있었다. 10세기와 11세기에 로트는 중앙 유럽에서 폭넓게 사용됐지만 12세기에 들어와서는 비엘로 대치된다. 현악기의 줄 수는 한 개나 두 개에서 곧바로 세 개나 네 개로 늘어났다. 11세기가 시작될 즈음, 5개의 줄을 가진 비엘이 등장했고, 이것이 16세기까지 남는다. 줄을 뜯으면서 연주하는 습성은 계속해서 멀어지게 되고, 테일피스와 브릿지가 첨가되는데 이런 것들은 찰현악기들에 적당한 장치들이다. 줄을 단 중세의 악기 비엘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비올(viol)로 대치된다. 이것은 두 개의 사운드홀을 가지고 있는 형태였다. 1500년대가 시작되기 전에 세 개의 다른 악기족들이 나타난다.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연주자의 무릎 위나 사이에 위치하는 비올), 리라 다 브라치오(lira da braccio, 활로 연주되는 현악기였다), 그리고 비올라 다 브라치오(viola da braccio, 어깨에 대고 연주하는 현악기였다). 이들 중 바이올린으로 진화된 것이 비올라 다 브라치오다.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비엘의 줄 수를 세 개나 네 개로 줄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펙박스를 택하고 각 줄들은 5도 차이로 조율했다. 그래서 어깨에 대고 작은 팔과 네 개의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아담한 현악기가 만들어졌다. 그 후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바이올린의 모양새는 더욱 정교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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