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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즙 신도비인가? 심집 신도비인가?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심즙선생 신도비는 문화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좌에서 세 번째가 아닌 좌에서 두 번째 신도비입니다.(아직 확정 아님) |
2010년 12월, 나홀로의 58차 능원묘 답사에서 다녀 온 심즙선생 묘. 이 곳은 심즙선생 묘역이 문화재가 아니고, 심즙선생 신도비가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답사 중에 회원님 한 분이 "문화재 안내판 앞의 신도비가 아니라 좌측에 있는 신도비 내용 중에 송시열 선생이 찬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요? 일단 신조비 사진을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사진을 찍어서 답사 후에 확인해 볼 요량이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사진으로 신도비를 판독해 보니 문화재 안내판 앞의 신도비가 신즙선생 신도비가 아니라 좌측의 신도비(좌에서 2번째) 가 십즙선생 신도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위 신도비의 비문을 몇 차례 확인하였습니다.
좌에서 두 번째 신도비가 심즙선생 신도비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확신을 한 이후에 문화재청에 확인을 해 볼 요량이었습니다. 직접 본청에 올리기는 그래서 인천 서구청 문화재 담당부터 인천시청 문화재 담당/문화재 전문위원까지 근 5개월에 걸쳐서 20여 차례 전화로 문의를 하였으나...
특히, 문화재 전문위원 조차 성의가 없는 것인지, 자격이 없는 것인지, 신도비문 한 번 만 확인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몇 달을 걸쳐서 현장에 대학교수와 현장에 가 본다, 뭐 한다 하면서 몇 달 뒤에 돌아 온 답변은 원론적이 말만...
근거를 제시하라고 했더니 "그냥 맞다"고만 합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근거 자료를 요청하여 다음 날 받은 근거 자료는 문화재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근거 자료라고 보냈습니다. 문화재 전문위원이면 한 번 현장에 가서 비문 한 번만 확인해 보면 될 것을...
추가로 현장에 정말 다녀 왔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이 없을 경우에 광나루가 주장하는 근거를 본청(문화재청)에 직접 문의하고, 인터넷에 공개한다고 하였으며, 며칠 동안 응답이 없어서 문화재청에 직접 문의를 하였으며, 나홀로에 공개합니다.
신도비가 잘못 소개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의 이름의 심즙(沈楫)이 아니라 심집(沈諿)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신도비 관련 근거 자료를 확인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던 중에 청송심씨 대종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종회 관계자와도 전화로 확인하였습니다.
한 번 두고 볼 겁니다. 본청에서는 어떻게 처리를 할지... 문화재청에 문의한 하단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문화재청에 질의한 내용 전문 |
십즙선생 신도비(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문의 드립니다.
1. 심즙선생 신도비 안내판 앞에 있는 신도비가 십즙선생 신도비가 맞는지?
- 본인은 묘지 답사 동호인들과 2010년 12월 인천 소재 묘지 답사 중에 신즙선생 묘역에 갔다가 심즙선생 묘역 입구에 4기의 신도비가 있고 좌에서 3번째 신도비 앞에 문화재 안내판이 있고, 문화재청에 올라와 있는 사진과 동일하였습니다. 그런데...
- 심즙선생 신도비는 문화재청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홍봉조(洪鳳祚)가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새겼다."고 되어 있으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신도비에서는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좌측 2번째 신도비의 전면 우측 하단의 내용을 보면 송시열이 짓고, 홍봉조가 아닌김진상(金鎭商)이 새겼으며, 유척기가 썼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2. 신도비가 잘못 지정된 것이 아닌가 궁금해서 문의를 한 결과
- 제일 먼저 인천구청 문화재 담당에게 위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세부 사항은 모른다면 시청 문화재 담당 전화번호를 알려 줌.
- 인천시청 문화재 담당과 통화하였으나 역시, 세부 사항은 모른다며, 심즙선생 묘역 관리하시는 분의 번화번호를 알려 줌. 박사님이라서 자세히 알고 있을 거라면서...
- 심즙선생 묘역을 관리하시는 분께 전화를 드려서 위 상황을 말씀드렸으나 심드렁하게 문화재청에서 지정했으면 맞는 것이지 뭘 따지는냐는 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 다시 인천시청 문화재 담당에게 전화하여 위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인천시청 문화재 전문위원님께 문의하시라고 전화번호를 알려 줌.
- 전화 통하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본인의 전화번호를 남기고 연락을 달라고 했음에도 전화가 없어서 1주일마다 한 번씩 전화를 했음. 이때까지가 한 3개월 걸림.
- 우여곡절 끝에 인천시청 문화재 전문위원님과 통화가 되어 위 상황을 모두 말씀드리고 문화재 안내판 좌측에 신도비가 맞는지 확인 요청을 하였으며, 현재 지정된 신도비가 맞다면 근거 자료를 주시기를 요청함.
- 1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였으나 이런 저런 일로, 한 달 쯤 후에 어떤 교수님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확인해 보고 연락 주신다더니 감감 무소식. 매주 전화를 드림.
- 문화재 전문위원님과 통화를 한지 두 달째쯤... 전화를 주셔서 현재 신도비가 맞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근거를 말씀해 보시라니 그냥 맞답니다.
- 전문위원이시고 현장에 나가셔서 비문을 확인해 오셨을텐데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신도비의 비문을 제시하시라고 하고 근거 자료를 메일로 요청함.
- 이틀 뒤에 온 메일의 근거 자료는 비문 내용이 아니라 문화재 안내판 내용 그대로 였습니다.
- 다시 메일을 드려서 정말 현장에 직접 나가서 확인을 하셨는지? 사진을 찍어 오셨다면 비문을 읽어 보셨는지 등과 제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지 못해서 본 청에 재 문의를 한다고 말씀 드림.
3. 심즙 선생의 정확한 이름이 심즙(沈楫)인지... 심집(沈諿)인지... 도 추가로 문의 드립니다.
- 하도 답답해서 청송심씨 대종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심즙선생 신도비는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아닌 제가 주장하는 신도비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구요.
- 위 질문과 같이 청송심씨 대종회에서는 선생의 이름이 심즙(沈楫)이 아니라 심집(沈諿)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무 목에 즙(楫)이 아니고 말씀 언 변에 집(諿)이 맞다면 문화재명도 바꾸어야 할 겁니다. 청송심씨 대종회 관계자 분과도 위 내용을 말씀드리고 확인함.
* 개인적으로도 바쁜데 5개월 가까이 전화도 많이 했습니다. 조속한 확인 요청드립니다. * 또 본청에서도 몇 개월이 걸리고 또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 결과를 통보해 주시기 바라며, 현재 신도비가 맞다면 납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또 다시 통보가 없으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 문의자 : 이광국(연락처를 남기려고 했더니 휴대폰 번호/이메일 차단되네요...)
* 첨부 사진 1. 청송심씨 대종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신도비 사진 2. 심즙선생 묘역내 4기의 신도비 모습 3.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신도비(문화재 안내판 앞의 신도비, 좌에서 3번째)와 비문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4. 제가 궁금한 신도비(신도비군 좌에서 2번째)와 비문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 사진을 한 장만 올릴 수 있어서 zip 파일로 첨부합니다.
* 저는 비문을 읽을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단지, 문화재청 안내판에 송시열선생 찬이라고 쓰여 있어서 그 것만 확인했을 뿐이니 원래 신도비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근거 사진 |
▲ 효간공 휘 집 신도비(청송심씨 대종회 홈페이지 사진) |
▲ 좌측에서 2번째 신도비 모습. 좌측 사진과 똑 같습니다. |
▲ 좌측에서 2번째 신도비 하단 비문 사진(송시열 찬... 등) |
▲ 문화재청 사진(받침돌에 검은 물 흐름이 있습니다.) |
묘역 아래 세워진 4기의 신도비 중에서 좌에서 3번째 신도비 앞에 문화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누구나 당연히 이 신도비가 심즙선생 신도비로 생각할 것으로 생각되며, 문화재청 문화재 안내 사진에도 이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녀 온 사람들의 자료를 보아도 좌에서 3번째 신도비를 심즙선생 신도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
▲ 맨 왼쪽 신도비 |
▲ 왼쪽에서 두 번째 위치한 신도비(심즙선생 신도비) |
답사 당시, 답사자 중에서 누군가 송시열 선생이 찬(撰)한 신도비가 좌에서 3번째가 아닌 2번째라고 해서 현장에서도 확인하고 답사 후에 찍어 온 사진을 자세히 보니 좌에서 2번째가 심즙선생 신도비가 맞으며, 인천시 문화재 소개에서 홍봉조(洪鳳祚)가 썼다고 했는데, 신도비에는 김진상(金鎭商) 書로 새겨져 있습니다. |
▲ 왼쪽에서 세 번째 위치한 신도비(안내판 앞) |
▲ 맨 오른쪽 신도비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심즙(沈楫, 1569~1644)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순(子順), 호는 남애(南崖),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에 급제, 승무원(承文院) 등의 각 청환직(淸宦職)에 보직되었으나 한때 사직하였다. |
▲ 좌우로는 문인석들이 서 있으며, 묘역은 경사가 심한 편... |
▲ 좌측에서 바라 본 1단의 묘역 전경 |
1601년(선조 34) 검열(檢閱)이 되고, 수원부판관(水原府判官)에 올라 무고를 받은 성혼(成渾)을 변호한 일을 비롯하여 광해군 초에도 직언을 서슴지 않아 좌천 ·면직이 거듭되는 등 관로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
▲ 좌측에서 바라 본 2단의 묘역 전경 |
▲ 좌측에서 바라 본 3단의 묘역 전경 |
그 뒤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어 도승지, 예조 ·형조 참판을 지내고 1629년(인조 7) 형조판서가 되었다. |
▲ 좌측에서 바라 본 최상단에 위치한 묘역 전경. 좌에서 두 번째 봉분이 심즙선생 묘입니다. |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신으로 가장하고 청진(淸陣)에 가서 화의를 교섭했으나 탄로, 이로 인해 이듬해 파직되었다가 1638년 용서되었다. |
▲ 뒷편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
▲ 심즙선생 묘역 전경 |
특히, 이괄의 난 때는 인조가 공주로 이어(왕이 처소를 옮김)할 때 호종(왕을 모시고 따라감)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다. 심즙의 묘는 본래 시흥에 있었으나 근래에 지금 자리로 이장하였으며, 신도비도 그 때 함께 옮겼다. |
▲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위 사진 우측 봉분이 심즙선생 묘입니다.) |
▲ 심즙선생 묘역 앞에서 내려다 본 모습 |
▲ 하단의 묘역 앞에서 바라 본 신도비 뒷 모습 |
신도비는 사각받침돌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몸돌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높이 1.9m, 너비 0.85m, 폭 0.53m의 크기이며 비문은 송시열(宋詩烈)이 짓고, 홍봉조(洪鳳祚)가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새겼다. |
심즙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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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상단의 좌에서 두 번째 봉분이 심즙선생 묘입니다. 소재지 : 인천 서구 공촌동 산8 |
지도 좌측 화살표 위치에 심즙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계양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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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나루님의 열정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