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촌, 이런 인연
코로나와 독감예방주사를 양어깨에 맞았더니 묵직한게 장군처럼 별하나씩을 얹은 기분이다.
오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복권 당첨이 안되었다는 것이었다. '뭔 소리냐?'며 말했더니 나더러 제정신 갖고 산다고 말했다. 당청일이 아님을 안다는 말이다. 어그저께 술한잔하며 샀던 친구였다.
저넉을 먹고 1층으로 내려갔다. 요즘들어 저녁밥 먹고나면 드러눕는 버릇이 있어 그걸 고치고자 골목을 걷거나 차에 앉아 동네 사람들의 삶의 분위기를 살피는 흥미가 붙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깥날씨가 좋았다. 골목으로 나가려는 순간 60대 남자가 어슬렁거리더니 '이쪽 건물에 사세요?'고 물었다. 이시간에 웬일까? 설마 공적인 일은 아닐테고 도대체 뭐지?
"왜 그러는데요?" 하고 내가 물으니 "다름이 아니고, 앞집(우리쪽) 사람이 쓰레기(재활용품)를 우리 빌라 앞에다 갖다 놓는걸 누가 봤다네요."
"그래요? 그게 말이 되나요? 재활용품을 분리 안했거나, 검정봉지의 쓰레기를 자기 건물앞에 두면 양심상 가책이 되어 그렇지만 분리된걸 우리쪽에 두나 그쪽편에 두나 시에서 가져가는건 마찬가진데, 정신병자 아니면 왜 그럴까요?"
"그래도 본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저도 사실은 분류않고 검정봉지를 우리 건물앞에 가져다 버리는 놈이 있어 스트레스 받았고, 대충은 아는데 고발하기도 그래서 요즘은 안그러지만 잡히면 그냥 안두려고 가끔씩 잠복근무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분리된걸 그러는건 이상하네요."
"CCTV를 까면 안될까요?
"그건 관계당국에 고발을 하거나 하는 최후 수단입니다. 사람들과의 신뢰문제도 있고, 그걸 본다해서 우리에겐 단속권이 없어요. 괜히 소란만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럼 어디가서 술한잔 하며 애가나 좀 하시지요."
우리는 이웃에 위치한 소문난 뒷고기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는 대뜸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난번 자기딸이 후진을 하다 우리차를 들이받아 상처가 났는데도 내가 괜찮다며 문제를 삼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랬었나? 동네사람끼리 접촉사고 나서 좀 다친걸 문제 삼으면 뭐하겠나? 생각했던게 이런데서 그런 이야기 나오니 그때 내가 잘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쓰레기 이야기는 사라지고 고향이 어디며 나이를 따져물었다. 나보다 여섯살 아래라 하였다. 당장 형님하잔다. 거참! 객지에선 몇살 차이쯤 친구해도 된다고 말하니까 그냥 형님이 편하단다. 그는 뒷편 빌라의 대표자란다. 부산이 고향인데 빌라에 산지 30년이 되었다나.
자식은 박사까지 만들었으나 자신의 팔자는 노가다 일이 제격이라 말한다. 남자이니 군대애기는 자동접속이고, 무용담이며 살아가는 애기로 꽃을 피웠다.
그는 나더러 10년 더살겠느냐? 물었다. 나는 '그게 내나이 평균이란디 글쎄요' 라고 하였더니, 자신은 5년만 기대를 한단댔다. 누가 미래를 알겠나? 그때가봐야 알것지...
부처님 말씀이야 어떻든 인생길 가는 길에 길동무 생겨남을 마다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내가 선이라 먼저 술한잔 사겠다고 계산하려 하였더니 적극 막아섰다. 그래! 오늘만 날이냐? 우리가 모레 죽어도 내일이 남았다.
헤어지며 마지막 손을 잡았다. '그래 우리 힘합쳐 우리사는 동네에 관심을 가져보자. 관계 당국에 건의도 해보고, 뜻맞는 사람들 모아 직접 나서기도 해야지...'
이젠에 누군가가 나더러 말했다. 내가 이 동네를 접수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다고...ㅎㅎ 우습다. 그래서 뭐할껀데. 제잘난 맛에 사는가 보다.
자리에 누으니 그제서야 술기운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평균연령이 83세면, 그건 확률 50%때 통계이니 재수 없으면 전체 20%까지 더 살걸 각오해야 한단다.
가끔 나 스스로에 농담을 해댄다. 저승갈때 49재 7관문 통과하려면 이승에 살았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면 극락가는 길 저승대왕이 귀찮고 피곤해서 통과시켜 줄런가? 하여간 정신없이 후회 남기지 말고 살다가길 모두에게 기원한다.
* ONE LINE에 재미삼아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