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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바닷물고기
“먹어보신 것 중 가장 맛있는 바닷고기는 무엇입니까?”
보통 사람에게 질문하면 아마 다금바리, 복어, 참돔, 농어, 우럭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횟집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급 어종이 대략 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낚시꾼에게 물어보면 꽤 색다르고 생소한 이름이 거론됩니다. 이를테면 긴꼬리벵에돔, 돌돔, 붉바리, 볼락, 열기, 벤자리, 쏨뱅이, 어렝놀래기, 꼴뚜기, 삼세기…등등
이런 물고기는 횟집에서 보기 힘듭니다. 양식이 안 되고 어획량도 적기 때문입니다.
병어, 열기, 꼴뚜기, 갈치 등 몇몇 물고기는 회맛이 일품인데도 잡자마자 숨을 거두어 활어로 유통시킬 수 없습니다. 참돔, 농어, 넙치(광어), 우럭은 자연산이라면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어종이지만 양식이 많아 고유의 맛을 보기 힘듭니다. 돌돔과 볼락 역시 횟집에서 파는 것은 99% 양식이라고 봐야 합니다.
최고급 횟감으로 종종 다금바리를 꼽습니다. 그러나 제주 특산물 다금바리는 멸종되다시피 해 제주도를 통틀어 한 달에 몇 마리 안 잡힙니다. 그런 고기가 육지의 횟집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주산 다금바리’라지만 일본에서 수입된 양식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양식이 식탁을 점령한 만큼 진품 바닷고기 맛은 어부나 바다낚시꾼만 아는 게 되었습니다.
직접 낚아 올린 물고기만 먹는, 그래서 회맛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정통한 낚시전문가에게 ‘최고의 미어(味魚)’를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봅니다. 알아두면 언젠가는 그 맛을 음미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모르죠. 행복한 낙지세상에 자주 오시다보면 좀 더 빨리 드실 기회가 생기실 지도.
돌돔은 얼룩말 같은 흑백의 세로줄 무늬를 가졌습니다. 제주 관탈도(冠脫島)와 추자도가 주산지로 6월부터 9월까지 잘 잡힙니다. 제주의 횟집에서 먹을 경우 1㎏(약 40㎝)에 20만원 정도입니다. 1.8㎏(약 45㎝)짜리면 4~5명이 먹기에 좋습니다.
육지에서는 거문도(여수시 삼산면) 여서도(완도군 청산면) 가거도(신안군 흑산면) 등 절해고도에서만 잡혀 한층 귀하고 비쌉니다. 일반 횟집의 수족관에 든 20~30㎝ 돌돔은 대개 양식입니다.
돌돔은 전복 소라 오분작 성게 등 값비싼 패류를 부숴먹는 육식어류이기에, 40㎝급으로 자랐다면 그동안 먹어치운 해물만 수천만 원 어치 이상일 겁니다. 바이스처럼 단단한 4개의 접합치(통이빨)가 강한 턱뼈에 고정되어 딱딱한 소라의 껍데기까지 이빨로 부수는 돌돔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만 먹고 사니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홍색이 감도는 흰 살이 담백하고 쫄깃하며 잡맛이 없어 기품이 있습니다.
돌돔은 내장부터 껍질까지 버릴 게 없습니다. 특히 돌돔 쓸개는 ‘바다의 웅담’이어서 소주잔에 담가 좌중의 주빈이나 연장자에게 바쳐지곤 합니다.
간과 창자는 흐르는 물에 씻어서 소금에 찍어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껍질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가 얼 음물에 식혀서 썰어냅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돌돔 껍질데침(유비끼)이 그것입니다.
작은 돌돔은 소금을 뿌려 구워 먹습니다. 하절기에 제 맛을 내며 겨울과 봄에는 기름기가 빠져 맛이 덜하다.
돌돔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급 어종입니다. 여름에는 돌돔이, 겨울에는 긴꼬리벵에돔의 맛이 더 우세합니다.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난류어종인데 독도에도 다량 서식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도 횟집에는 거의 없어(가격은 돌돔과 같은 수준) 돈이 있어도 사먹기 힘든 물고기죠. 양식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12~3월에 가장 맛이 있는데 관탈도 추자도 등 북제주군보다 가파도 마라도 지귀도 등 남제주군에서 잡힌 것을 더 상품으로 칩니다. 연홍색 살점에 무지갯빛이 흐르고 기름기가 많아 회칼에 자주 물을 묻혀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 불포화지방입니다.
흑갈색 고운 비늘에 날렵한 제비꼬리가 아름답습니다. 김 파래 등 해초를 주식으로 하나 육식도 겸하는 잡식성 어류로 스피드와 지구력이 대단해 낚시인에게 강렬한 손맛을 선사합니다. 그 파워는 두꺼운 근육의 세로결에서 나오는데 그 탄탄한 무늬 결이 씹는 맛을 더해줍니다. 35㎝가 넘어야 제 맛이 나며 45㎝까지 자라는데 클수록 맛이 있습니다. (30㎝ 이하 잔챙이는 간장조림, 고추장조림 용)
긴꼬리벵에돔과 흡사한 벵에돔은 제주도뿐 아니라 남해 근해까지 폭넓게 서식합니다. 30㎝ 이하의 작은 것은 풋내가 나지만 40㎝가 넘어서면 냄새가 사라지고 지방층이 두꺼워져 깊은 맛이 뱁니다. 특히 겨울철 40~50㎝ 벵에돔의 ‘껍질구이회’는 긴꼬리벵에돔을 능가합니다.
뼈에서 갓 떼어낸 포를 뒤집어 껍질 부분만 살짝 굽니다. 두꺼운 껍질이 익으면서 연해지고 껍질 밑의 지방층이 살 속으로 녹아들어 옅고 짙은맛을 동시에 냅니다. 껍질째 썰어 담으면 회와 유비끼를 동시에 즐기는 셈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끓는 물을 부어서 껍질을 익히는데 이것은 군고구마와 삶은 고구마의 차이와 같습니다.
고추냉이(와사비)를 젓가락으로 떠서 적당히 바른 다음 간장에 찍어 먹으면 더욱 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돌짬에 깃들어 사는 볼락과의 물고기는 다 맛이 있습니다. 볼락, 열기(불볼락), 우럭(조피볼락), 쏨뱅이, 꺽저구(개볼락) 등의 맛은 난형난제. 굳이 순위를 가린다면 ‘회는 열기, 구이는 볼락, 매운탕은 쏨뱅이’입니다. 열기는 100~150m 심해에 사는 한류성 물고기로 12월부터 4월까지 30~50m 수심의 암초대나 어초에 어군을 형성하는데 이때 조업이 이뤄집니다. 그물로는 잡기 힘들고 ‘외줄낚시’라고 하여 큰 봉돌을 매단 낚싯줄을 수직으로 내려서 한 번에 3~5마리씩 낚아냅니다. 20~28㎝가 주종입니다. 뱃전에 올라오는 순간 수압의 차로 부레가 부풀어 즉사하며 그래서 낚시꾼이 아니고선 회로 먹기가 불가능합니다. 담백하면서도 적당히 기름져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볼락은 경상남도의 도어(道魚)로 지정될 만큼 남쪽에선 인기가 높으나 서울 사람은 잘 모릅니다. 서해에서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깊은 원해보다 얕은 연근해에서 나는 게 더 맛있고 작을수록 맛있는, 독특한 물고기입니다. 4~5월에 많이 잡히지만 자연산은 산지에서 전량 소비된다고 봐야 합니다. 대도시 횟집에 있는 것은 대개 양식입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10~12㎝는 젓갈을 담는 씨알이라는 뜻에서 ‘젓볼락’이라 부릅니다. 뼈회(세꼬시)도 아닌 통회로 먹습니다. 칼이 아닌 가위로 머리, 등지느러미, 배지느러미와 내장을 오려낸 다음 양쪽 껍질을 쫙쫙 벗겨 초고추장이나 된장을 찍은 다음 우적우적 베어 먹는 것이 제격입니다. 볼락의 맛은 뼛속에 있습니다. 살과 뼈가 어우러지는 향긋한 맛은 중독성까지 띤다고 합니다.
손바닥만한 ‘중볼락’은 뼈회를 치 거나 소금구이를 합니다. 비늘도 내장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굽는데 살보다 내장이 맛있습니다. 한 뼘이 넘는 ‘왕볼락’은 맛이 떨어집니다만 뼈가 억세어 포를 뜨거나 구이, 매운탕 감으로는 훌륭합니다.
청정해역 난바다 깊은 암초에 사는 쏨뱅이는 ‘매운탕의 황제’입니다. 회 맛과 구이 맛은 평이하나 국을 끓일 경우 숙취 해소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자연산 복어나 삼세기(삼숙이)가 쏨뱅이에 필적합니다.
‘제주에 가면 3바리를 맛 봐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었죠. 다금바리 비바리 붉바리를 일러 그랬습니다.
최대 1m까지 자라는 다금바리에 비해 붉바리는 작지만 맛은 한 등급 위입니다. 그런데 ‘다금바리가 더 유명해진 건 크기 때문’이라고 제주사람들은 말합니다. 붉바리는 35~50㎝가 주종. 다금바리 만큼 귀합니다. 어쩌다 한 마리 잡히면 제주도 현지의 미식가가 바로 낚아챕니다. 1년 내내 돌돔낚시를 하는 제주낚시인도 한 해에 3~4마리 낚을 정도입니다.
흰살 생선으로 살이 담백하며 씹는 맛이 은근합니다. 잡내 없기로 으뜸인 돌돔보다 맛이 깨끗하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단맛이 납니다. 붉바리는 7~8월에 많이 잡히고 맛도 그때가 최상입니다.
벤자리는 6월부터 9월까지, 제주도와 추자도, 여서도, 홍도(통영)에서만 낚이는 여름 귀빈입니다. 45㎝급이면 ‘돗벤자리’, 30㎝ 이하는 ‘아롱이’라 부릅니다. 회, 구이, 국 어떤 요리를 해도 멋진 맛을 자아냅니다.
7~8월에는 흔하게 잡혀 제주도의 횟집에서 이따금 활어를 먹을 수 있 습니다. 값은 돌돔보다 약간 싼 편. 그러나 성질이 급하여 쉽게 죽고 죽으면 금세 살이 물러지기 때문에 회를 먹으려면 죽은 지 30분 내에 포를 떠야 합니다. 벤자리 회를 먹어본 사람은 구수하고 달콤한 그 맛을 오래도록 잊지 못합니다. 아롱이는 소금구이를 합니다.
세꼬시는 칼 사용법의 하나
3월은 봄. 가을이 전어라면 봄은 도다리의 계절입니다. 미식가들에겐 세꼬시가 일품이죠. 일반적으로 도다리 하면 세꼬시를 떠올리고 세꼬시 하면 도다리를 생각합니다. 마치 도다리 새끼를 썰어놓은 것이 세꼬시인양 말입니다. 그건 잘못된 지식입니다.
세꼬시란 말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칼법(刀法) 용어의 하나입니다. 연한 작은 생선을 뼈와 함께 「이도쯔쿠리」로 자르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도다리 뿐이 아니라 청어, 전어, 병어, 쥐치 등이 모두 훌륭한 세꼬시 재료입니다.
일본의 회 뜨는 법(칼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스쯔쿠리」가 생선회 자르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칼을 눕혀서 얇게 포를 뜨는 것을 말합니다. 얇은 회는 입안에 넣었을 때 편하게 녹는 맛이 있습니다. 복 사시미 같은 것은 필히 이 방법을 써야 합니다. ▲세꼬시 칼법이라고 하는 「이도쯔쿠리」는 칼을 똑바로 세워 길고 얇게 써는 방법을 말합니다. 한치나 오징어 등을 써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많이 사용하는 칼법은 「히끼쯔쿠리」입니다. 「히끼」는 끌어당긴다는 말이죠. 비스듬히 세운 칼의 뒤쪽이 먼저 비스듬히 들어가 당기며 자른 후, 칼을 빼지 않고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이외에 다랑어 같이 살이 두꺼운 생선을 써는 「카도츠쿠리(角作り)」 ▲흰살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다시마에 싸서 써는 「곤부지메츠쿠리(昆布じめ造り)」 ▲준비된 생선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건진 다음 얼음물에 넣어 식혀 물기를 잘 닦은 다음 사용하는 「유비키츠쿠리(湯引き造り)」▲생선을 썰어 얼음물에 씻어 지방을 뺀 「아리이(先い)」등이 있습니다. 가히 사시미 문화라고 할만하겠지요.
사시미(さしみ, 刺し身)
바닷물고기는 애초에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구이, 조림, 튀김, 찜, 말림, 회 등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
는데 그 중 제일 손이 덜 가면서 자 연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요리가 사시미입니다.
아시다시피 사시미는 생선회를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대체적으로 일본의 관서지방에서는 ‘츠쿠리미(作り身)’, 관동지방에서는 ‘사시미(さしみ)’라고 합니다. 중세에는 생선살을 식초에 담갔다가 먹었습니다. 관서 지방에서 사시미를 오츠쿠리(お作り)라고 하는 것은 오츠쿠리미(お作り身)로 부터 온 것이고, 그 이후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사시미라고 불렀습니다.
사시미의 '사스(刺す)'는 찌르다, 꽂다 는 뜻이며, '미(身)'는 몸, 즉 물고기나 생선, 짐승의 살을 의미합니다. 사시미란 글자 그대로 신선한 어패류 등의 고기를 살아있는 채 칼로 찌르고 얇게 잘라 독특한 맛을 그대로 살려서 요리한 것을 말합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에서는 유난히 생선 먹는 방법이 발달하여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생선 요리를 발전시켰습니다. 또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썰어 '사시미 문화'를 형성하게 까지 된 것입니다.
덩달아 사시미용 칼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겠지요.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요리사라면 보통 식칼과 생선을 다루는 데 사용하는 사시미 전용 칼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칼들을 구비하여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합니다. 예컨대 복어회 전용 칼, 장어 뼈만 자르는 칼, 뱀장어 배를 가르는 칼 등 다양한 칼이 있습니다. 일반 가정의 부엌에도 적어도 3개의 사시미 칼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사시미를, 우리나라에서는 '회'라고 합니다. 정확한 의 미에서 보자면 사시미와 회는 엄연히 다른 문화입니다. 우리의 회(膾)는 육류나 어류를 생으로 또는 살짝 데쳐서 썬 다음 양념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생선회, 육회와 같이 날로 만든 생회(生膾)와
어채와 같이 익혀서 만든 숙회(熟膾) 가 그것입니다. 숙회에는 강회, 두릅회, 송이회 등등처럼, 채소로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생선회는 생선의 가시와 껍질을 발라내고 흰 살만 먹기 좋게 썰어서 만드는데, 주로 도미, 민어, 잉어, 광어, 농어, 우럭, 복어 등이 대상입니다. 바다고기는 물론, 깨끗한 물에서 자란 민물고기도 생선회로 즐깁니다. (다만 바다고기에 비해 민물고기는 디스토마를 조심해야 합니다.) 육회는 소의 살코기 부위나 간, 천엽, 양 따위를 가늘게 채 썰어 갖은 양념을 한 다음 겨자 장에 찍어 먹습니다.
두릅회는 봄철의 어린 두릅을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말하고, 송이회는 가을철 송이버섯을 얇게 썰어서 참기름 간장에 찍어먹는데, 입안 가득히 퍼지는 소나무의 향이 일품이어서 미식가의 사랑이 넘칩니다.
그러면 우리의 회와 일본의 사시미(츠쿠리)가 어떻게 다른 지를 확연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의 사시미는 간장으로만 맛의 변화를 주어 생선 자체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생선회는 양념으로 맛을 내는 편입니다. 생선회에 초고추장, 마늘, 풋고추, 야채 등을 곁들이는 것은 우리의 식성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흰살 생선을 일반적으로 선호합니다만 일본에서는 마구로(참치)와 같은 붉은 생선을 보다 좋은 사시미의 재료라며 선호합니다.
한국사람 중에 회를 잘 먹는 사람은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결론은, 어느 게 맛있고 없고는 없습니다. 음식은 문화적 취향에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선생님~~ 김혜경입니다..이글 보니 회 먹고 싶습니다^^ 해운대에서 회 한접시..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