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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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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들은 단락 편집만 되었을뿐 ‘일점일획의 더함이나 뺌’ 없이 원문에 충실하였습니다.
목차
I. 예수는 신화적 인물인가?
챕터 1: 예수는 없다?
챕터 2: Flavius Josephus
챕터 3: Shroud of Turin
챕터 4: 바울 서신
챕터 5 복음서
챕터 6: 바울의 라이벌 아볼로
챕터 7: 미트라의 비밀
챕터 8: 조로애스터; 유일신의 정체
챕터 9: 태양신의 위대한 신화
챕터 10: Gospel of Thomas
II. 예수의 역사적 실체: 그의 진면목
챕터 11: 예수는 있다?
챕터 12: 예수실존의 실마리
챕터 13: 탐구의 역사
챕터 14: Synoptic Problem
챕터 15: Jesus Seminar
챕터 16: 톨레도 예수
챕터 17: Website Reading
III. Appendix Section: 보충 자료들
Appendix I 초기 교부들은 나사렛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Appendix II 기독교 문서 변조의 대표적 사례
Appendix III 휴거는 일어 날 것인가?
Appendix IV 인류의 꿈: 밤 하늘의 별자리 그리고 성경 이야기
Appendix V 바울과 베드로의 갈등: 영적 예수 vs. 나사렛 예수
예수는 신화적 인물인가?
1. 이상한 질문 / 탐구 여행을 떠나며.......
"예수님이 실제로 존재 했었는가?" 하는 의문은 우리에게 이상하고 낯선 질문입니다.
예수는 현대 사회의 각분야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만큼 그의 역사적 실체는 당연시 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써서 탐구하여 보면 이상하리 만치 예수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전무 하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대략 BC 6-4 년 경에 출생하여, 대략 30 년을 이 세상에서
생존 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 당한지 3 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생존 시 놀라운 기적을 베풀고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기록들은 예수에 대해 일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
다. 동 시대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예수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는 없습니다. 방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입증 \할 만한 그 어떠한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서가 발굴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곧 바로 4 복음서를 증거물로 제시할 것입니다. 물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4 복음서가 예수의 가르침을 포함 하고는 있으나,
후에 보시는 바와 같이 역사적 행적에 대한 기록물로 보기에는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주요 쟁점으로 떠 오른 예수의 역사적 실체에 관하여 한 소식을 독자들에게
올리고저 합니다. 최근의 방대한 연구 실적들은 크게 (1)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신화설)
주장 하는 류와 (2) 예수의 실체는 인정 하되 기독교 근본 주의 자들이 주장 하는 예수와는
상치된 예수를 재 구성해 내는 류로(재구성파) 구분 할 수 있겠습니다.
재구성파 안에서도 의견은 분분하여, 여러 모습의 예수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이
진짜로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실제로 기적이 일어 났는지를, 학회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
발표하여 물의(?)를 빚는 예수학회(Jesus Seminar)가 이 재구성파의 대표 격입니다.
어쩌면 "신성 모독"이 될 수도 있는 학설들이 자유로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가
무시 할 수만 없는 것은 이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며, 외곡된 기복 신앙과 무지한 성경 지식에
서 기인하는 맹 목적인 믿음 ("마라나타" 분파의 휴거 파동을 기억 하십시오!): 그것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부작용에, 최소한도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 하고저 하는 노력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 입니다.
성경이 보통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보편화 된지 이제 끽해야 200 -300년 되었습니다.
짧은 세월에 많은 이들이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분석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제 예수의 본 모습에 가까이 가고저 하는 노력들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가능 했던 것은 금세기에 이루어진 여러 고고학적 발굴들 덕분입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이 고고학적 발굴 덕분에 초기 기독교에 관하여 이제 누구 보다도 더 많은 자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예수 이후 초대 교부들,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 보다도, 현대의 우리들이 예수에 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고 까지 단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관점을 소개 하고저 합니다. 즉 1)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관점과 2) 예수의 실체는 인정하되 우리가 생각 하고 있는 예수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 하는 사람들의 관점들 입니다. 이 관점들을 제대로 소화해 내시어 보다 분별력있고 폭 넓은 신앙관을 형성 하시기를 기대 해 마지 않습니다.
본 글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 졌습니다. 따라서 인용된 구절들에 대한 Reference 를 생략 하였습니다. 대신 권말에 이 글에 실린 주요 관점들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사이트를 밝혔습니다. 더욱 깊이 탐구하고저 하는 분들을 위하여 필요한 몇 곳에 접속 사이트를 밝혀 놓았습니다.
이제 흥미로운 여행 - 예수를 찾아 나섭시다.
2. 유태 역사가 Flavius Josephus 의 증언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 가신 지 수 십년이 흘렀다. 젊은 세대들은 그를 직접 목격한 일이 없다. 하지만 애국자 로서의 그의 강렬한 이미지는 젊은 세대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앞으로 올 많은 세대를 통해서도 그는 기억 될 것이다.
백범이 실제로 존재 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 젊은 세대는 가장 먼저 그의 활동 당시의 신문이나 역사 기록을 지적 할 것이다. 그가 어떻게 일본 경찰을 죽이고, 감옥에서 고종 황제의 국문을 기다렸는지는 당시의 형무소 기록이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망구 공원 폭탄 투척의 배후로 주목되어 피신하는 과정은 당시 중국, 일본 아니 전 세계의 언론이 증언하고 있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증거는 객관적인 기록이 되겠다. 신문, 정부 기관의 문서, 중립적 역사 학자의 기록 등등이 그 예가 되겠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문이 없었으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타 문서들부터 훑어 보기로 한다.
i) 필로 (Philo of Alexandria)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BC 20 년에 태어나 AD 50 년에 타계한 것으로 유추되므로 예수님과 또 "바울"과 동 시대의 인물이다.
그가 상당히 부유한 상류층 계급의 가문에서 태어났음을 "조세푸스"의 그의 형제와 조카들에 대한 언급에서 알 수 있다. "필로"의 형제 "알렉산더"는 징세국의 고급 관리였으며, 한때 "아그립파" 왕에게 상당한 돈도 꾸어 주었다고 "조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이 "알렉산더"의 아들, 즉 "필로"의 조카 "마르쿠스"는 나중에 "아그립파"왕의 사위가 된다.
비록 이집트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필로"는 자신이 유태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저술이 유대인의 경전 "토라"에 근간을 두고 있다. 희생 번제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 했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현재 대략 40 여 저술이 보관되어 있는데, 초대 교부들의 인용을 보면 그 외에도 대략 20 여 저술이 더 있다고 사료된다.
이상한 것은, 그 당시 결코 주류를 이룰 수 없었던 미미한 종교 분파인 "떼라퓻" 또는 "에쎄네" 파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한 바 있는데, 그의 온 저서를 통하여 예수가 언급된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기록 중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있다. 그는 그 곳에서 유태인들의 흔한 이름들이었던, "예수" (Jesus) 와 "호세아" (Josea)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생존 시 예루살렘을 방문 했었다. 만약 예수가 알려진 대로 당시에 세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필로와 같은 인물이 예수를 간과 했을 리가 없었다. 바로 이 이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언급하였을 것이다.
"필로"의 저술에 접속 하여 보십시오.
ii) 저스투스 (Justus of Tiberia)
유태인 역사 학자로 AD 80 년 경에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 하였다. 그는 평론가였으며 후에 소개할 중요한 유태 역사 학자 "조세푸스"의 라이벌이었다. 그의 저술들은 분실되었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플로티우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플로티우스"의 진술: -
" 나는 "저스투스"의 저술을 읽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유대왕 연대기 (The Chronology of the Kings of Judah which succeded one another)였다. "저스투스"는 "갈릴리"의 "티베리우스" 도시 출신으로 "모세"에서 부터 시작하여 "트라잔" 황제 통치(AD98 - 117) 제 3년 까지의 역사를 기록 하고 있다. 그의 문체는 간결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출현이나, 그가 어찌 되었는지, 또 그가 행한 이적들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다. ................. "조세푸스"가 그를 묘사한 바에 의하면 "저스투스"는 희대의 난봉꾼으로 돈과 쾌락의 노예였다. .... "조세푸스"를 여러번 모함 하였으나 "조세푸스"는 오직 그를 말로서 타일르고 처벌 하지는 않았다. "조세푸스"는 그의 저술을 평가 하기를 전반적으로, 특히 독립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부분이 심히 황당하며 비 역사적이라고 단언 하였다."
iii) 노인 플리니 (Pliny the Elder)
플리니라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 노인 플리니, 청년 플리니로 구분해 불리운다. 그의 주요 저서인 "자연의 역사" (Natural History) 37권으로 되어있고 그는 여기에서, 고대의 지식과 정보를 요약해 놓고 있다
그가 다룬 분야들 중 몇 가지만 본다.
1. 천체 현상과 유성
2.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관한 지리 (Geography)
3. 인류학, 생리학
그 외 에도 육지 동물, 식물, 곤충, 조류, 포도주, 의약재, 각종 금속, 건축 자재, 보석등에 대하여 총 37 권의 책을 집필 하였다. 농장을 경영 하는 방법에 대 해서도 저술 할 정도로 그는 당시의 지식 체계를 총 망라 하고저 했다.
첫 번째 책에서 그는 동 시대의 모든 자연 현상 또는 천문학적 현상들을 수집하여 기록 하고 있다. 흥미 위주로 저술 하였으며,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도 충실히 모집 하여 기록 하고 있는데,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
즉 성경에 언급된 예수 탄생 당시에 나타난 베들레헴의 별, 예수 처형 시의 하늘이 어두워진 현상, 일식 현상?, 등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그는 "폼페이" 를 멸망 시킨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 시 사망 하였다. 화산 활동을 너무 열심히 관찰 하다가 피신 하기에 때가 늦어 버렸던 것 이었다.
"플리니"의 저술을 보실 수 있음.
그 외 수 십명의 저술가 들이 있었다. 그들의 저술은 현대의 한 도서관을 채우기에 충분한 양 이었지만, 모두 예수에 관한 언급에는 실패 하고 있다.
다음에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제시되는 예수 실존에 대한 증거들을 고찰해 보자. 이 증거들은 오랜 세월 비판 없이 범부들에게 받아 들여 진 것 들이다. 하지만 이 증거들은 기독교적 편견으로 물 들어져 있는 것같다. "조세푸스"의 진술 (Testimonium of Flavius Josephus)은 어느 정도 예외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느껴져 마지막으로 다루겠다.
i) 타시투스 (Tacitus)
로마의 역사가로서 그의 저서 "Annals"에서 "기도교인들"에 대해 언급 하고 있다. AD 64년의 로마의 대 화재 발생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 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단어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 당한 "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인물에게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다.
"타시투스"의 진술, Annals 15.44 (AD 112): -
"네로"는 본인이 로마 대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종식 시키고저 희생 양을 물색 했고 그 희생 양으로 가증할 범죄를 저지르는 "크리스쳔"이라 불리는 무리들을 택했다. 그 무리의 이름은 "그리스도" 라는 자 에게서 유래 되었는데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시 "빌라도"에게 처형 되었다. 잠시 제압은 되었으나 이 황당한 미신 분파는 다시 성행되었다. 원래 이 분파가 발생 했던 유대 지방과 온 세계의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문화가 모여 들어 성행하는 "로마" 에서도.
이 문헌이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비하다.
그의 저서의 발행 연도는 AD 112 년 경이다. 이미 예수 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 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예수 처형 당시 그는 세상에 출생조차 않했으므로 이 기록은 그의 목격 담이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로마 정부는 무수한 처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었기에 "타시투스"의 언급이 객관적 기록이나 정부 문서를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님 도 분명 하다.
그 가 "크리수투스" 외 에도 많은 이방 신들에 대 해서 마치 그 들이 실체로 존재한 양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기독교인들이 그의 진술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단편적인 발상인 것 같다.
그의 진술은 당시 시중에 유포된 예수 신화 또는 로마 경찰의 기독도 심문 과정을 토대로 씌어졌다고 보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타시투스"의 저술을 보실 수 있음.
ii)청년 플리니 (Pliny the Younger)
그는 AD 62년에 태어나 113 년에 생을 마감했다. 예수님과 대략 30 년 간격을 두고 생을 시작한 셈이다. 전기한 노인 "플리니"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 인으로 소 아시아의 "비티니아" 지역의 총독을 지냈다 (AD 111 - 113). 탁월한 문장 력과 웅변 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스스로 당시의 서신들을 모아 9 권의 책으로 편찬 하기도 하였는데, 그와, 당시의 "트라잔" 로마 황제 사이에 오고 간 공식 서한들이 10 번째 책으로 그의 사후에 발간 되었다. 그의 편지 중 그의 친구인 역사가 "타시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여기서 그는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에 대해 쓰고 있다.
이 편지들은 1 세기 당시 상황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트라잔"황제와 교신한 공식 편지 중 "크리스쳔"이 언급된 편지가 있다. 이 "트라잔"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크리스쳔들의 죄과에 대해 조언을 구 하고 있으며, 모 기독교인들이 처형을 면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Christ)를 저주 하였다며, 그 들의 처리 문제에 대해 지도를 요청 하고 있다. 그의 편지는 대략 AD 112 년 경 소아시아에서 씌어 졌다고 보인다.
"플리니"의 편지 10.96-97: - "트라잔"황제에게:
"황제 폐하, 확신이 서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 폐하에게 문의 드립니다. 한번도 "크리스챤"들을 재판 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떤 행동을 어느 선 까지 처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별로 또 성 별로 차이를 두어야 할지, 또 전향하는 자들에게 사면을 내려야 하는지, ................
......... 처벌을 경고 하였는데도 완강히 전향을 거부한 자들은 처형 명령을 내렸습니다. ........ 그들 중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로마로 압송 하도록 하였습니다.
.......무명의 투서들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크리스쳔"임을 부정한 자들은, ....... 폐하와 우리 신들의 초상화에게 향과 포도주를 바치며 경배 하였는데, 그들은 석방 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들은 모두 폐하의 초상과 우리 신들의 형상에 경배 하였고 "그리스도"를 저주 하였습니다.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특정한 날을 정해 집회를 가지며, "그리스도"를 찬양 하기를 마치 신께 찬양 드리듯이 하며, 거짓말, 도둑질, 간통.....등을 행 하지 않을 것을 서약 하며............ 본인은 정치적 집회를 금지시킨 바가 있어.........집사 직분을 가진 두 여성 노예를 고문해 보았지만, 도가 지나친 미신 숭배 외에는 별로 특기할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사를 보류한 채 각하의 가르침을 기다림니다..................이 미신 분파는 도시는 물론 시골과 농장에 까지 번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길이 있습니다. .......... 전향의 기회가 주어지면 많은 신도들이 개과 천선 하리라 예견되는 바입니다."
"트라잔" 황제의 답신:
"내가 총애하는 "플리니"여, "크리스챤"으로 비난 받는 자들을 정밀 조사 하였다니, 그대는 매우 합당하게 행동 하였다........... 누구던지 "크리스챤"임을 부정 하고 우리의 신들게 경배 드리는 자들은 참회함으로 사면을 받게 하라. 하지만 나의 통치 하에서 무명의 투서는 용납되지 않음을 명심 하라. 이러한 작태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되며 우리 새 시대의 정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 왕래된 서신들이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크리스천이라는 종파가 있었음과, 혹자가 처형을 면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저주 했다는 것 뿐이다. 그 외에 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 그의 행적은 어떠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당시 "그리스도"는 어느 특정 개인의 이름으로 씌여지지 않았다. 구세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 하며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관념적 용어로 쓰여졌다.
서신 중에 나오는 "그리스도"라는 단어 하나를 들어 예수 실존의 증거로 제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iii) 수에토니우스( Suetonius)
그의 저서 "황제들의 생애"에서, 그는 "클러디우스" 황제가, "크레스투스" (Chrestus) 라는 인물의 선동 하에 사회 질서를 문란 시킨, 로마의 유태인들을 추방한 것을 서술 하고 있다. 그의 생존 연대는 AD 75-AD 150 으로 추정 되는데 상기의 추방은 AD 49 년 경의 일 이었다. 이 추방은 사도 행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사도 행전 18:2: " "아굴라"라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 (클러디우스 황제) 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수에토니우스"의 진술: -
"크레스투스"라는 자의 선동 하에 유태인들이 지속적으로 혼란을 야기시키므로, "클러디우스"황제는 그 들을 로마에서 추방 하였다"
여기에서 "크레스투스"가 예수를 지칭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크레스투스"는 그리스 언어의 "크레스토"(Chrestos)에서 전래 된 것으로 "쓸만 한, 이용 할만 한, 좋은" 의 뜻을 갖고 있으며, 당시 노예 계층에서 유행 했던 이름이다. 반면에 "크리스투스" (Christus) 는 그리스 원어로는 "크리스토" (Christos)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를 뜻한다.
혹 철자 법이 틀리게 기록 되었다고 가정 해도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수는 AD 30 년경에 이미 처형 당했으므로 로마에 나타나 그곳의 유태인들을 선동 했을 리 만무하다. 또한 예수 처형 후 불과 20년 만에 로마에까지 그의 가르침이 전파되어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도 없다.
위의 문구는 예수와는 둘째치고, 기독교 조차 와도 아무 관계가 없는 기록으로 간주된다.
iv) 탈루스 (Thallus)
"사마리아"출신의 역사가로 "트로이" 전쟁 부터 AD 52 년 까지의 역사를 기록 했다고 전 해진다. 물론 그의 저서는 실종되었고 예수를 언급한 부분이 "아프리카누스"에 의해 전 해졌다.
AD 221 년경, 기독도인 "아프리카누스"는 예수 처형 당시 하늘이 어두워 진 것과 관련 해 다음과 같이 서술 하였다. - "탈루스"는 그의 역사 저술의 세 번째 책에서 이 암흑을, 일식 현상으로 설명 했는데 나에게는 매우 이상스러운 설명이었다."
이상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예수는 유월절에 처형 되었다고 전 해지고. 유월절 주기는 일력이아닌 월력으로 계산되는 주기이며. 유월절 주기는 항상 보름달이 뜰 때이며. 보름달이 뜬다는 것은 지구가 달과 해의 가운데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일식은 일어 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천문학에서 역으로 계산해 올라가 보아도 그 당시 일식 현상은 없었다고 사료된다. 앞에 서술했던 노인 "플리니"와 연관해서 생각 하시도록.
v) 플라비우스 조세푸스 (Flavius Josephus)
전기 한 대로 "조세푸스"라는 인물의 기록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예수가 활동 했다고 믿어지는 시기의 사회 상황에 관하여 아주 자세한 역사 기록물을 남겨 놓았다.
간략하게 그의 생애를 더듬어 가며 이야기를 전개 하고자 한다. 그의 생애는 그의 자서전도 있지만 구교의 백과사전 ( Catholic Encyclopedia)에서 발췌 했다.
그는 AD 37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명문 성직자 가문을 잇는 그의 혈통은 외가 쪽으로는 "마카비" 왕조와도 닿아 있다. 비상한 기억력, 판단력을 겸비한 그는 명문의 교육까지 받았다. 어린 나이에 이미 당대의 주류를 형성 했던 정치 종교적 집단인 "바리새"파, "사두개"파, 및 "에쎄네"파를 두루 섭렵 하였다. 입신 양명을 위해 그는 "바리새"파에 가입 하였지만 그들의 종교적 가르침이나 정치적 관점을 수용 하지는 않았다. 그의 나이 19 세 때였다.
그는 AD 64년에 로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감옥에 갇힌 한 유태인의 사면을 "네로" 황제에게 탄원하기 위함이었다. 황제의 처 "사비나"의 환심을 삼으로 그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로마 대 제국의 선진 문명을 접한 그는, 유태인의 선민 의식과 종교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이방 문화를 거부하는 유태인들의 노력을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되, AD 66 년에 유태인 대반란이 시작되었다. 독립 운동 초기에는 그도 다른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반란에 반대 하였다. 하지만 반란 세력이 득세 기미를 보이자, 다른 성직계급의 인물들과 반란군에 가담하였고, "갈릴리"지방의 총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반란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조세푸스"는 그의 정치적 외교적 그리고 군사 전략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 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주력 부대가 "안티옥"에서 "갈릴리"로 밀려 왔고, 6 주간에 걸친 사투 끝에 물과 식량이 바닥났다. 결과는 참혹한 패배였다. 많은 유태 애국자가 죽음을 맞았지만, "조세푸"스는 입구를 봉쇄한 물 저장 탱크에 숨어 화를 면했다.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로마 총 사령관, "베스파시안"의 언질을 받고 나서야 물 탱크에서 나온 그는 장군과 장군의 아들 "티투스"가, 곧 로마의 황제 격이 되리라고 예언 하며 목숨의 보존을 꾀 했다. 하지만 장군은 그를 옥에 가두었다.
AD 69 년 "베스파시안"은 실제로 황제에 오르게 되고, 그제야 "조세푸스"를 사면 하게 된다. 그후 그는 황제와 이집트까지 동행 하였고, 황제의 아들 "티투스"가 유태 반란을 징벌 할 때에 그와 동행 하였다. 따라서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짓 밟히는 사건의 목격자인 셈이다. 그는 유태인들에게 항복 할 것을 권했고, 성전이 함락 당한 후에는 "티투스"와 "로마"로 돌아와 연금도 받고 "주데아" 지방에 토지도 하사 받는다. (이 대목에 이르면 왜 많은 유태인들이 그를 변절자로 낙인 찍는지 이해가 간다.)
뒤를 잇는 "티투스" 황제, "도미티안" 황제, 모두 그를 총애했다. 덕분에 그는 저술에 전념 할 수 있었다. "트라잔" 황제 통치 하에 세상을 떴다. AD 101 년 경.
그의 저서는 그리스어로 씌어 졌고 유다이즘과 이방 문화의 중간 노선을 표방한 관계로 유태인들은 그를 원칙이 없는 자 또는 위선자로 부른다.
그의 첫 번째 저서로는 "유태인 전쟁"이 있다. 여기서 그는 AD 66-73 년에 일어난 독립 투쟁사를 기록 하고 있다. 이 기록이 아주 세밀한 것은, 본인 자신이 그 전쟁의 와중에 중요 인물로 활동 했기 때문이다. 이 책중 어디에도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두 번째로 그의 자서전이 있다. 자신의 출생 배경 부터 시작 해서 자신의 합리화와 미화를 꾀하고 있다.
세 번째의 책 "유태인 연대기" (Jewish Antiquities): 이 책이 바로 우리 관심의 초점이다. 예수에 관한 구절이, 현존하는 이 책의 모든 복사본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담"과 "이브"로 시작되어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 시대, 출애굽을 망라하며 독립 전쟁 직전 (AD 66) 까지의 유태인 역사를 서술 하고 있다. 책 뒷 부분에 문제가 되는 예수 인용구가 있는데 그 것 들을 보기로 하자.
"유태인 연대기" 20 번째 책 9장 1절 ("형제"구절로 부르기로 한다):
"유태 지방의 행정 장관 "페스투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황제는 "알비누스"를 그 후임으로 파송 한다. 그 와중에 "아그립파" 왕이 "조셉"의 대 제사장 직을 박탈하고 "아나누스"의 아들 또 다른 "아나누스"를 그 자리에 임명한다..... 그는 "사두개"파로 범법자를 다루는 데 매우 엄하였다. ............ 그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여 "산헤드린" (Sanhedrin - 바빌론 유배 이후 생겨난 제사장, 법관들의 회의로 종교적 문제, 사법, 형법을 다루는 최고 기관)을 소집 한다. "페스투스"는 죽었고 "알비누스"는 아직 노상에 있음을 기회로, 그는 즉 구세주라 칭함 받는 예수의 형제, "제임스 (야고보)"와 몇몇 다른 인물들을 산헤드린 앞에 소환한다. 그들을 정죄 하여 돌에 맞아 죽게 한다. 의식 있는 시민들이 이를 못마땅히 여겨 왕에게 탄원하고, 그중 몇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고 있는 "알비누스"에게 마중을 나가, 그에게 행정 장관의 동의 없이 소집 된 산헤드린의 불법성을 고한다. ..... "알비누스"가 대노하여 서신을 보내자, "아그립파" 왕은 "아나누스"의 대 제사장 직을 박탈하니 그가 대 제사장 직을 수행 한 지 3 개월 만이다. 그 뒤로 "댐네우스"의 아들 "예수"(다른 예수임 -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상당히 흔한 이름 이었음)가 대 제사장이 된다"
문제의 구절만 다시 본다
"즉 구세주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제임스 (.... brought before them the brother of Jesus, who was called Christ, whose name was James)"
이 짧은 구절 속에 나타나는 예수는 성경 상에 나타나는 예수를 지칭 하고 있는 것 같다. "구세주라 불리는" 구절과 "...형제 야고보" 의 구절이 그것을 입증 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또 하나의 구절을 보자. "연대기"를 통 털어 예수 인용구는 이 두 구절 뿐 이다.
"유태 연대기" 18 번째 책 3장 3절 ("증언" 구절로 부르기로 한다):
" ....... 이즈음, 놀라운 일 들을 행하며 진리를 기쁨으로 받는 이들의 선생이었던 관계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현자였던 예수가 있었다. 그는 많은 유태인과 이방인들을 끌어 모았다. 그는 구세주였다. 우리 중에 주요 인물들의 요청에 따라서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에 처형 했을 때, 그를 사랑 했던 이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미리 부활과 수 만가지 그에 관한 이적들을 예언 한 대로, 그는 제 3일에 살아 나서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크리스천이라는 집단은 오늘날 까지 존속되고 있다."
얼마나 자세한 서술인가!
영어로 다시 보고 쉬운 우리 말로 다시 풀어 읽어 보자. 영어 해독에 문제 있으신 분은 해석만 보아도 무방하다.
Antiquities 20.9.1:
"Now there was about this time Jesus, a wise man, if it be lawful to call him a man, for he was a doer of wonderful works, a teacher of such men as receive the truth with pleasure. He drew over to him both many of the Jews, and many of the Gentiles. He was the Christ: and when Pilate, at the suggestion of the principal men amongst us, had condemned him to the cross, those that loved him at the first did not forsake him, for he appeared to them alive again the third day, as the divine prophets had foretold theses and ten thousand other wonderful things concerning him; and the tribe of Christians, so named from him, are not extinct to this day"
"그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이적도 많이 행하고 훌륭한 선생이어서, 사람이라고 여길 수 가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사람으로 분류 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현인이었다. 많은 유태인과 이방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심복 하였다. 그는 구세주 였던 것이다. 우리가 빌라도 총독을 움직여 그를 십자가에 매 달았지만, 그는 3일만에 부활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 졌다. 크리스토의 이름에서 연유된 크리스천이라는 무리들이 이런 연고로 오늘 날 까지 소멸되지 않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와 얼마나 정확히 부합되는 묘사인가?
이 두 구절로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은, 중립적 객관적인 역사 학자인 조세푸스에 의해 증명된 것은 아닐까?
대답은 "글쎄요.....?"이다.
우선 이 구절들에 대한 논란의 역사적 배경을 "골드버그"의 서술로 먼저 간단히 훑어 보자.
AD 93: 유태인 연대기 로마에서 발간되다.
93년에 발간된 원본들에도 문제의 "형제"와 "증언" 구절이 들어 있었을까? 연대기는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원본들의 권말에는 "티투스" 황제가 직접 서명을 해 주었고, 발간을 윤허 하였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 원본들이 아니다. 원본들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세대에 전해 내려 온 것은 이 원본을 베껴 쓴 복사 본들이다. 그나마 가장 오래된 복사본도 10 세기경의 것으로 추산 되고 있다. 거의 1000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 얼마나 충실되게 우리에게 전달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과연 1 세기 말의 연대기와 10 세기에 만들어 진 복사본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복사기가 없었던 시절 이었음을 명심 하시라.
230-250: 기독도 저술가 "오리겐"이 처음으로 "형제" 구절을 인용하다. 또 그는 "조세푸스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 하다. "증언"구절에 대해서는 "오리겐"은 모르고 있었다. 즉 "오리겐"이 읽었던 "연대기"에는 "증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324: 추기경 "유세비우스"가 처음으로 "증언" 구절을 인용하다. 이 내용은 현존하는 복사 본들의 내용과 거의 다름이 없다.
10 세기: 아랍 역사 학자 "아가피우스"가 "증언" 구절을 인용 하다.
"아가피우스"는 아랍인 기독교인이었으며 추기경이었다.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기독교 취향이 훨씬 제거된 그의 인용 구를 쉽게 풀어서 다시 보자.
"유태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태인 "조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많은 유태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 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구세주였던 것 같다"
16 세기: 1500 여년 동안 아무도 의심 하지 않아 오다, 16 세기에 들어 와서야 "조셉 스칼리거"라는 인물이 "증언"구절의 진위를 의심 하기 시작 하였다. 너무나도 기독교 색채가 짙다는 것 이었다.
17 세기: "리차드 몬테규" 추기경이 "그는 구원자 였다"라는 구절이 훗 날 기독도가, 복사 과정에서, 덧 붙여 쓴 것이라고 주장 하다.
1737: "위스튼"이 "조세푸스"의 저술들을 번역 하다. "조세푸스"가 유태인 기독도 이었을 수 도 있다고 하다. 따라서 "증언"구절 전체가 원래 그에 의해 쓰여 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 하다.
18 세기 - 20 세기 초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구절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위조 되었다고 주장 하다.
1929: "대커리"가 위조 설을지지 하다. 그는 또 "누가 복음"과 "연대기"에 공통 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누가"와 "조세푸스"의 상면 가능성을 얘기 하다.
1931: "아이슬러"가 기독교 검열 하에 많은 부분의 삭제가 있었다며 그 나름대로 재 수정 복구된 구절을 제시 하다.
1941: "마틴"이 부분적인 위조를 지적 하고 나머지 부분은 정확 하다고 주장 하다.
1954: "폴 윈터"가 위조된 곳은 세 곳 뿐이며 나머지는 정확 하다고 주장 하다. 세 군데 위조는 "그는 구원자였다",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의 두 구절과 뒷 부분의 부활과 예언에 관한 구절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많은 공감을 샀다.
1960: "콘젤만"이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 내포된 신앙 관과 "증언"의 공통성을 발견하다. 따라서 "증언"전체가 기독도에 의해 위조 됐다고 주장 하다.
1963: "펠드만"이 거의 모든 부분이 정확 하다고 단정 하다.
1971: "파인스"가 9-10 세기 아랍 및 시리아 본을 (상기한 "아가피우스"의 구절)발견 하다. 이들 사본에는 "구원자" 운운의 구절과 "인간이라 부를 수...." 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들어 이것이 위조되지 않은 원본 기록일 수도 있다고 주장 하다.
1973-1983: "렝스토푸"가 "조세푸스"의 저술을 집대성 재 구성하여 용어 색인 체계를 만듦으로 학자들의 연구에 편리한 도구로 쓰이게 하다.
1984: "버즈올"이 "렝스토푸"의 색인 체계를 이용 하여 "증언"의 문체를 분석 하다. "조세푸스"의 문체와 너무 다르므로 "증언" 전체가 위조라고 주장 하다.
1991: "마이어"가 "폴 윈터"의 설을 지지 하다. 즉 세 군데 만 위조 됐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현재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1995: "골드버그"가 "증언"과 누가 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 (예수가 부활 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 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 하다. 따라서 "증언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의 연구를 보실 수 있다. 컴퓨터를 동원하고 통계학의 개념들을 이용 하여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물론 그의 연구 결과는 예수 신화 설과 상치된다.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원본 그대로 라면, 그 자체로 예수의 실체적 존재는 객관적인 역사 학자 조세푸스에 의해 증거 되기 때문이다. 2 편에서 조금 더 다루어지지만 최근 성경 탐구의 수준을 직접 보시고 싶은 독자의 접속을 권함.
이제 대략 논란의 역사를 보시고 독자 제위는 어떤 생각을 가지셨는지? 거의 모든 학자들이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다.
신화파에서는 전체가 다 위조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1. 먼저 께름직 한 것은 "연대기"의 복사 본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의 관리 하에 전수 되었다는 것이다.
2. 초대 교부들과 기독교 변증가들은 왜 "조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초대 기독도들은 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각 종파로 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 예수의 실존과 그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은 본인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좋은 증거물을 제시 하지 않았다.
"증언"구절은 324 년이 되어서야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처음으로 인용 되었다.
"형제"구절은 그전에 "오리겐"에 의해 230-250년 사이에 와서야 처음으로 인용 되었다.
연대기가 발간된 게 93 년경이니까 거의 140-250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에 기독교 변증가들은 연대기를 읽지 않았을까? 연대기는 초대 기독도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었고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도, 무수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읽었던 사본에는 문제의 구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백년이 넘도록, "조세푸스"의 저술을 잘알고 있던 초대 교부들은 상기의 증언 귀절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동 구절이 "조세푸스"의 저술에 있었다면 그들은 도전자들과의 논쟁에서 그것을 재빨리 인용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 구절은 그 저술에 없었다. "조세푸스"를 읽어 본 "오리겐"도 "조세푸스"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동 구절은 기독교 최초 역사가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언급 되었다. 동 구절은 그의 조작으로 사료 된다. "유세비우스"는 신앙의 명분 아래 문서 변조를 지원 하였고 "조세푸스"외의 여러 저술가들의 책들도 변조 시켰다" - 마샬 거빈 (Marshall J. Gauvin).
3. "오리겐"은 "형제"구절은 읽었는데 "증언"구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따라서 "증언" 구절은 그 후에 첨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4. "조세푸스"의 책 "유태인 전쟁"은 "안티오쿠스"의 예루살렘 점령 부터 AD 70 년의 예루살렘 함락 까지의 내용을 "유태인 연대기" 책에서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빌라도"가 군중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등 다른 부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서술 되었는데 "유태인 전쟁"에서는 유독 상기의 예수 인용구들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5. "유세비우스" 추기경이 처음으로 인용한 "증언"은 "조셉 웰레스"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의 작품 이었다고 한다. "조셉 웰레스"는 많은 연구 끝에 당시 교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서 변조의 행태를 캐어 낸 인물이다. 그는 문서 변조의 대표자로 "유세비우스" 추기경을 꼽았다.
"유세비우스" 본인의 말을 보자. -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 만으로도 충분 하다. 하지만 유태인 "조세푸스"를 여분의 증인으로 이용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Eusebius, Ev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p.124)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솔직한 고백인 셈이다. 이래서 "조셉 윌레스"는, 기독교의 문서변조를 증명하기가 "예상 밖으로 쉬웠다"고 하였다. "문서변조의 증거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교부들 자신의 서술과 구교의 교회사에 적나나 하게 들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 이부분은 Appendix II 기독교 문서 변조란을 참조)
"조셉 웰레스"의 저서 "기독교의 문서 변조" ( Forgery in Christianity) 와 "성경은 신의 말씀인가?" ( Bible, Is it God's words ?) 두 권을 추천 한다. 독실한 기독도 였던 그는 변호사로써, 법학자로써 바쁜 와중에도 성경을 깊이 공부하였고, 그의 노력은 위로 접속 하시면 자유로이 읽어 볼 수 있다.
상기의 예수 인용구가 부분 위조인가 전체 위조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래로 접속 하시면 "얼 도어티"와 "피터 커비"두 사람의 불꽃 튀는 논쟁을 보실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진지한 학구파로써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 주고 있다.
"조세푸스" 건에 관한 논쟁은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솔직히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린다. 어떤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 질 때 까지는 훌륭한 논쟁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 도 "조세푸스"에 의한 증거는 불 충분한 것 임을 지적 하고 싶다. 증거로 써의 순수성을 상실한 이상 "조세푸스"의 저술은 더 이상 액면 그대로 채택 되어서 는 않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조세푸스"의 모든 저서를 읽어 볼 수 있음.
3. Shroud of Turin
마가 복음 15:43: "그 스스로 천국의 도래를 기다리던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자가 와서 예수의 시체를 요구 하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니..."
요한복음 20: 5: 무덤에 이르러 " 구부려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니..."
혹간의 기독도들은 위의 구절을 토대로 예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가 있다고 믿어 왔다. 실제로 문제의 세마포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이 나라 저 나라에 보존되어 상당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많고 교황도 "진짜라고 생각 한다"는 "투린"의 세마포를 보겠다. 이 세마포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간략히 다룬다.
긴 세월 침묵 끝에, 프랑스의 작은 도시 "리레이"의 한 작은 성당에, 소중히 보관된 세마포가 세상에 얼굴을 들어 낸다. AD 1350 년 경의 일이었다.
후에 이탈리아의 "사보이" 왕실의 후원 아래 "투린"으로 옮겨 졌으며, 성당 측은 날을 잡아 관람을 허용 하였고, 관객이 폭주 해 어떤 순례자들은 질식 하여 죽기까지 하였다.
1898 년 현지 시 의원 "피아"가 처음으로 세마포의 사진을 찍었다. 깜깜한 현상 실에서 필름의 음영이 서서히 드러나자, 피아는 졸도 할 뻔 하였다. 오랜 세월을 통해 바래 버린 세마포 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피아"는 자신이 예수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확신 했다. "투린"의 세마포의 인기는 폭등 하였다.
1978 년 교황청은 미국, 이태리, 스위스의 20여 과학자들에게 조사를 허용 하였다. X 레이, 자외선 검사, 화학 물질 분석을 토대로 하여, 과학자들은 세마포가 인간의 육체와 맛 다았던 흔적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마포의 핏 자국이 실제 진짜 피일 수도 있다는 것 이었다.
1988 년 이번에는 세마포의 한 귀퉁이를 짤라서 스위스, 영국, 미국의 과학자에게 더 세밀한 분석을 의뢰 했다. 세 군데 연구 기관은 각각 독립적으로 조사를 실시 하였다. 그들 모두가 세마포의 기원이 1260 년에서 1390 년인 것을 밝혀 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탄소 14 함유 량은 일정 하지만, 죽는 순간 부터, 일관된 방식으로 감소 한다는 원리를 이용해 세마포의 연대를 밝힐 수 있었다. 이 연대는 세마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바로 그 시기와 일치 한다.
조사에 참가 했던 과학자들의 언급을 보자: "....이 세마포가 중세 시대 것 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잡았다." ; "누구든 이 세마포가 진짜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아직도 지구가 평평 하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 후에도 계속 논란이 많았다. 1532 년 화재시 세마포의 부분이 불에 그슬린 적이 있는데, 이 영향으로 탄소 14 연대 측정에 오차가 있다는 등등... 하지만 분석에 쓰여진 샘플은 불에 그슬린 부분도 아니었고, 그랬었다 해도 아무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정 났다. 과학자들이 시꺼멓게 타다 남은 숱 검댕이의 연대도 정확히 측정 해내는 것을 상기 하라.
이 세마포가 인간이 그린 예술품이며, 예수 실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은, 당시 추기경의 입을 빌림으로써 쉽게 알아 차릴 수있다..
1389 년 프랑스 추기경 "삐에르 디아시스"는 당시의 로마 교황에게 한 편지를 보냈고 그는 여기서 이 세마포가 "모조품"이며 " 예수의 세마포로 공식 인정한 적이 없는데 도, 세간의 설이 분분 하여 잡음이 일고.."라고 불평 하고 있으며 그의 전임자가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 교묘히 그려낸 작품"임을 주지 시켰었다고 적고 있다.
4. 바울의 침묵
이제 이야기를 성경 쪽으로 옮겨보자.
먼저, 인용되는 성경 구절이 한글 본 성경과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린다. 영어 성경을 토대로 더 쉬운 우리 말로 제 자신이 직접 번역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원래 뜻이 변질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약 성경은 4 복음서, 바울의 편지, 그 외 몇몇 편지 및 계시록으로 되어있다. 그중 4 복음서가 쓰여지기 전에 나타난 제 1 세기의 문서들을 보자. (See Appendix I). 바울의 서신들이 가장 중요한 문서들 일 것이다. 이방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한 그를 기독교의 사조로 부르는데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포한 복음을 편견 없이 들여다 보면 4 복음서와 상치되는 것 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인식 하고 있던 예수는 누구일까?
복음서들은 예수의 인간으로서의 행적을 기록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이적을 행하고, 특정한 가르침을 베푸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 가시고 부활 해서 어떻게 하셨는지, 또 친구들은 누구였고, 부모 형제들은 누구였으며, 음식도 드시고, 시장기도 느끼시고, 분노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탄식도 하신 예수를 묘사 하고 있다. 복음서의 이러한 예수를 "육체적 예수 또는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겠다. 바로 우리가 찾아 나선 그 분이다
"바울"은 예수가 승천 하신 직후 기독교로 개종 하였고, 이방 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전해 진다. 이상한 것은 바울이 이 육체적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언급도 없다. 불과 20-30 년 전에 당대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하나님의 성육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 하다. 몇 군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썼지만 이는 "육체적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의 이러한 메시아를 "영적 예수"라고 부르겠다.
왜 바울의 예수는 육체적 실체가 없는 영적 예수인가?
먼저 바울은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사도 행전에서 묘사된 그의 만남은 환상을 통한 영적 계시였다.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 에도 그가 예수의 생가나 그의 무덤, 또는 골고다 언덕을 순례 했다는 기록이 없다. 여러분이 바울이었다면 어떻게 하였겠나?
그의 가르침을 보자.
갈라디아서 1:16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아들을 보이셨고 나를 통해서 그 아들을 이방에 선포케 하셨다."
바울의 "아들"에 관한 지식은 온전히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에서 왔으며, 육체적 예수에 대해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에베소서 3:3-5: "전 세대에게는 숨겨졌던 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통해 나타내졌다."
여기서도 역시 영을 통 했다고 말한다. 많은 기독도들이 곡해하기 쉬운 것은 그리스도 하면 육체적 예수를 지칭 하는 것으로 아는 것 인데, 당시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의 "크리스토스"에서 나온 말로 특정한 인물을 칭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 하며, 관념적 존재를 칭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태인의 구원자 메시아는 육체적 존재를 지칭 하며 이스라엘을 재건할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를 묘사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독도의 편견은 "사도" 하면 예수가 친히 거느린 12 제자를 칭 하는 것으로 쉽게 단정 해 버린다. 당시 사도들이란 예수를 직접 보지도 못 했고 그들의 선생이 불과 수 십년 전 갈릴리에서 활동 하신 줄도 모르고 있던 사람들임이 차차 밝혀 진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나 유태 사회나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자칭 그리스도들도 나타나고 독립적으로 "사도"들도 나타났다. 서로가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 하였다.
바울이 내세운 "아들"의 비밀도 이들 중 하나였다. 독립적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 통달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가진 자들이 구원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 했던 것이며, 바울의 교리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자들은 사도로 불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도들에 관해 나중에 더 언급 한다. 바울과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이었던 "아볼로"와 함께 다시 부연 설명 한다.
예수의 12 제자는 어찌 되었나? 성경은 이들의 행적을 완전 무시 하고 있다. 기독도 자신들도 정경으로 채택 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 간간이 그 들의 행적과 말로가 기록 되어있다. 너무나도 신화적인 이야기라 기독도 자신들도 배척한 문서들이다.
고린도 전서 8:6 "우리에게 오직 한 분의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모든 존재가 그로 부터 오도다. 또한 한 분의 주님, 즉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그를 통 하여 모든 사물과 우리가 존재케 되느니라."
여기서 바울이 지칭 하는 "예수"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그리스도가 관념적 용어임은 이미 밝혔다. 여기서 "예수"는 육체적 나사렛 예수인가?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매우 유행 되었는데 그 뜻은 그리스도와 비슷한 "구원자, 하나님은 구원 하신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구약의 인물 "여호수아"에서 유래 되었다. 아직도 "여호수아"(Joshua)나 "예수"나 동일한 단어로 쓰여지고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유지를 받들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유태 민족의 전설적 영웅이었다. 다윗 왕과 더불어 메시아의 표본이었다. 당시 많은 유태인들이 "여호수아"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고대 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수아", 즉 "예수"는 어떤 특정의 인물을 묘사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구원자를 지칭하는 관념을 표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위 구절의 예수가 육체적인 예수를 지칭 하지 않음은 바울의 저술을 읽어 볼 수록 더욱 자명 해진다.
고린도 전서 15:3-4: "경전(구약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땅에 묻히셨고, 구약 말씀에 따라 3 일 만에 부활 하셨다."
어째서 바울은 그의 구원자의 부활을 논 하는데 그 근거를 구약 말씀에서 찾는가? 불과 십 수년 전에 살아 계셨던 나사렛 예수는 벌써 잊었는가?
고린도 전서 1:18: "믿지 않는 자들 에게는 예수가 저들을 구원 하기 위하여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스럽게 들리는가. 그러나 구원 받은 자들은 이 소식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기느니라. 즉 하나님이 말씀 하시기를 '인간이 고안 해 낸 그 어떠한 구원의 계획도 파괴해 버릴 것이요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인간의 생각도 무시 하겠노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음성을 인용 해가며 방어 하고 있다. 왜 살아 있던 하나님, 나사렛 예수를 증거 하지 않는가? 그보다 더 유용한 방어가 어디 있는가?
빌립보서 2:5-11: "너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 보인 대로 친절 하라. 그는 하나님 이었지만 하나님으로 써의 권리를 주장 하지도 않았고 집착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능한 힘과 영광을 버리시고 노예의 가면을 쓰시며 인간과 비슷하게 되셨느니라. 더욱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순종 했으며 십자가 상의 죽음 까지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런 연고로 하나님이 그를 하늘 나라로 들어 올리셨고 모든 이름 중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느니라. 예수 이름 앞에 하늘, 땅 땅 밑의 모든 무릎은 꿀릴 것이요 모든 혀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하고 자백 하리라."
여기서도 바울은 예수가 누구인지 길게 설명 하고 있는데 "빌라도"며 "골고다" 언덕이며, 부활 해서 "도마"에게 상처를 만져 보게 하신 "육체적 예수"는 무시 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들어 증거 하는 것이 어떤 인물을 소개 할 때 당연한 순리가 아닌가?
하지만 십자가상의 죽음의 대목은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십자가와 십자가 처형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기로 한다. 십자가는 예수 탄생 훨씬 전부터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에 이미 신과 인간의 중재자가 인간의 대속을 위해 영적 차원의 세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신앙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십자가에 대해서 "미트라의 비밀" 란에서 다시 언급 하겠지만, 바울의 십자가는 "골고다"에 세워졌던 그 십자가가 아니고 하늘에 있는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로마 시대 처형에 쓰여진 십자가는 열 십자(+)의 형태가 아니고 오히려 T자 또는 X자에 가까운 형태의 것으로 유추 되고 있다.
골로새서 1:15-20: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똑 같은 형상이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 하시기 전 부터 존재 하셨다. 실제로 그리스도 자신이 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 그리고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 모두를 만들어 내신 창조자 이시다. 영혼의 세계도 그 세계의 왕과 왕국도, 통치자와 권위자들도, 오직 그가 사용 하기 위하여 또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지으셨느니라.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 부터 그는 있었고 모든 것을 다룸이 그의 힘 이니라. 그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몸체 즉 그가 시작한 그의 교회의 머리니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사신 자니 만물의 첫 번째 이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존재 하기로 원 하셨기 때문이니라. 아들의 업적으로 하늘이나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그의 피로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 하게 되었음이라."
여기서도 바울은 고집스레 영적인 그리스도를 얘기 하고 있다. 또 바울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처음 사신 분으로 썼는데, 이것을 보아도 복음서의 예수는 모르고 있음이 자명하다.
예수보다 먼저 죽음에서 일어난 자 들을 바울이 왜 모를까?
복음서에는 예수가 직접 죽음에서 살린 사람들이 있다 (예; 나사로 - 마리아 자매의 남동생) 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한 떼의 성자들이 살아 나왔다고 기록 되어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나?
이쯤 에서 다시 되돌아 보자.
우리는 흔히 예수가 먼저 세상에 오시고 그 후에 바울이 그의 가르침을 전파 한 줄 알고 있다. 눈치 있는 독자들은 짐작 하셨겠지만 신화파에서는 그 거꾸로를 주장 하는 것이다.
조금 더 보자.
바울은 물론 모든 1세기 성경 기자들도 나사렛 예수를 모르고 있다
"이웃을 사랑 하라" - 예수의 말씀 중 유명한 말이다. "야고보"서, 바울서신, "요한" 일서 에서도 이 구절을 인용 하는데 아무도 이것이 예수의 말씀인 줄 모르고 있다. 바울은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 4:9)
히브리서 1:2, 2:11, 3:7, 10:5 - "오늘 날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얘기 하는데, 왜 전부 구약에서 인용 하나? 불과 몇 년 전 살아 설교 하던 나사렛 예수의 목소리는 어디 갔나?
로마서 8:26: "우리가 아직 기도 하는 법을 모른다" 바울은 예수가 가르치신 주기도 문도 몰랐나?
"인자 - 사람의 아들" 예수는 즐겨 자기 자신을 이렇게 호칭하 였다. 왜 바울의 서신에는 이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을까?
로마서 10:14-15: "......듣지 못하고 어찌 믿겠는가. 하지만 누군가 알 해주지 않으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보냄을 받지 않으면 누가 가서 기쁜 소식을 말해 주겠는가? 이 연고로 경전에 이렇게 쓰여있다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 시키는 이 기쁜 소식을 설파하는 자의 발은 어찌 아름다운지'........."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의 소명을 옛 경전에 의지 하고 있다. 분명히 예수가 땅 끝까지 가서 전 하라고 직접 명령 했었는데도...
이어서
로마서 10:16-17: "그러나 듣는 자 마다 믿는 것은 아니니, 선지자 이사야가 '주여 내가 말했을 때에 누가 믿었사옵 나이까?' 하였다. 그래도 믿음은 이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는데서 오니라."
이사야 까지 거슬러 올라 갈 필요가 있었을까? 불과 십 수년 전 예수 자신의 말도 배척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불 신자들을 얘기 할 때 "나사렛 우리 구주의 말씀 조차도 믿지 않는 자가 많았더라" 라고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어서
로마서 10:18: "그런데 유태인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가? 그렇다. 그들이 어느 곳에 있었던지 말씀은 함께 있었다"
로마서 10 장은 유태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는 글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가? 하고 물은 후 유태인중에 살아 계셨고 십자가의 부활을 보이신 예수를 증거 하는 대신, 유태인과 항상 함께 했던 하나님의 말씀, 즉 구약을 언급 하고 있다. 이 기쁜 소식이란 나사렛 예수의 것이 아닌 구약의 하나님 말씀이라는 얘기이다.
당시 까지 예수는 한 번도 이 땅에 오신 적이 없었다는 주장도 아래와 같이 가능하다.
"예수 재림" - 서신 문서에서, 세상 끝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을(Coming) 얘기 할 때, 한 번도 "다시 오심 - Second Coming" 또는 "돌아 오심 - Return" 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 않다. 즉 처음으로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내포 하고 있다. 역으로 바울의 때 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적이 없다는 얘기이다.
"기적" - 1 세기 당시 미신과 분파가 횡행 하고 많은 이적들이 주장되고 있던 풍토에서도, 서신 문헌들에는 예수가 기적을 행 했다고 기록 한 곳이 전혀 없다. 그토록 유행 했고, 4 복음서에도 숱 하게 기록된 병 고침의 기적, 귀신 쫓아 내기 등에 일체 침묵 한다.
고린도 전서 15: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다고 바울은 열심히 설파 합니다. 물론 예수가 무덤에서 살려 낸 사람들은 무시한 채.
바울의 "베드로" -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 시 "베드로"를 만났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할례 의식 등에 관 하여,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와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 한다. 하지만 아무도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친 제자였고 바울은 그렇지 못하다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왜냐고? 베드로 등도 바울과 동류의 사도였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서 9:1과 15:8을 보시라. " 베드로와 모든 다른 이가 주님을 뵈었듯이 나 또한 그렇게 만나 뵈었노라" 베드로와 모든 다른 이들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환상을 통하여, 영적 체험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인식 했던 것이다. (이부분 Appendix V 바울과 베드로의 갈등과 연계해 읽으십시오)
베드로- 교회의 반석? : 예수가 "시몬"에게 너의 이름을 "베드로"라 하라.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다고 복음서는 기록 하고 있다. 이후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 기초로 여겨지고 구교의 초대 교황으로 추대 되었다. 이것은 "베드로" 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반석을 의미 하는데서 유래 되었는데, 조금 이상한 이야기 이다. 예수는 당시 언어 아람어 (바빌론 유배 후 배워 온 페르시아 언어)로 말씀 하셨을 텐데, 또한 아무리 유식 하셨어도 일자 무식인 제자에게 지식 층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말씀 하셨다고 보기 어렵다. 아람어로 베드로는 반석과는 관계가 먼 단어이다 (아람어로는 게바임). 복음서(그리스말로 쓰여있음) 기자들의 착각이었나?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예수의 위임 선포가 정말 있었다면, 왜 1 세기의 문서들에서 그 인용이 발견되지 않는가? 사도 간의 정통성 문제를 놓고 집요하게 다툴 때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말씀이야 말로, 사도로써 베드로의 권위와 정통성 확립에 결정적 증거가 아닌가? 베드로 전서와 후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부분 Appendix II 기독교 문서 변조 참조)
1 세기 모든 문서들은 또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은 사실에 대해 침묵 한다. 십자가 얘기가 나와도 배반자 "가롯 유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히브리 서에서는, 변절자들을 경고 하는 곳에서,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은 "에서"를 예로 든다. 은 삼십 량에 구주를 팔은 "유다"가 훨씬 더 적격이 아닐까? 왜 자꾸 십 수년전의 역사적 현실은 무시한 채 구약 시대로 올라 가는가?
"성지" 1 세기 문서들은 한결 같이 예수의 유적지를 무시 했다. 한 번도 언급 않하며 성지순 례를 했다는 기록도 없다. 반면에 회교도들의 메카를 비교 해 보라!
5. 4복음서
복음서를 보기로 한다. 왜 이 책들이 역사적 기록물로는 신중히 재고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보자.
"마가 복음"이 제일 먼저 쓰여졌다. 아무리 빨리 쓰여 졌어도 AD 90년 보다 빠르지는 못 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태"와 "누가" 복음은 "마가" 복음과, 또 다른 실종된 문서(Q)를 토대로, 각각 독립적으로 쓰여졌다. (이에 관한 다른 주장들은 2 편 공관 복음 문제 란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 짐). 모든 책이 몇 번 씩인가 여러 손에 의해 덧칠을 입었다. "요한" 복음은 다섯 차례 정도 재 구성 되었다고 본다.
먼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우리 손에 들어 오기 까지 과정을 고찰 해 보자.
1. 한 사람이 최초의 문서를 작성한다. 이 작업은 영감을 통한 그의 순수 창작일 수도 있고 기존의 구전으로 전수된 이야기를 처음으로 문서화 시키는 것일 수 도 있다.
2. 이렇게 문서들이 일반에 유포되고, 시대 상황에 알맞는 문서들은 인기를 누리며 살아 남는다.
3. 후 세대들은 이 문서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첨가 하기도 하고 삭제 하기도 한다. 당시 복사기가 없었으므로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며 사본을 떴는데, 이 과정에서 필경사들의 신앙 체계가 삽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경우는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써서 기존의 문서 뒤에 붙이기도 한다. "이사야"서는 적어도 수 십 년의 기간에 걸쳐 세 사람 이상이 써 낸 것이 자명 하다. "다니엘" 서도 두 명 이상의 작가가 써 낸 작품이다.
개수작업의 양태:
보중판 첨가: 한 권의 문서 뒤에 자신의 책을 붙여서, 전체가 연결된 한 권의 책으로 보존 되게 한다. 수시로 변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새로운 메시지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 하고자 하는 노력의 열매라고 보는 것이 타당 하다. 아울러 전 세대가 몰랐던 신의 속성을 새로이 알게 되었을 때 기존의 문서에 이 새로운 소식을 첨가 시킨 것은 당연 하다. 유태인의 하나님 "야훼"는 처음에는 유태인 만의 부족 신 이었다. 나중에 만물의 보편적 유일신으로 발전된다. "이사야" 중간 부분, 첫 번째 "이사야" 기자가 아닌, 제 2의 "이사야" 부터 "야훼"의 보편성이 나타나기 시작 한다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 수정 어귀를 가미 한다는 뜻. 인터폴레이션의 예를 들어 보며 그 뜻을 알아 보자.
예언: 성경에는 많은 예언들이 있다. 장래의 일을 미리 예견 하는 것 인데 사실은 우리가 흔히 얘기 하는 그런 예언이 아닌 것 들도 있다. 예를 들어, BC 170 경의 한 사람이(A) 밀려 닥치는 외세의 침략과 사회의 혼란 스러움을 뼈저리게 느껴, 민족 단결을 고취 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고 가정 하자. 그는 시중에 존경 받는 D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킨다. 책의 저자도 D로 발표 한다. 헌데 D는 300 여년 전에 존재 했던 전설적 인물이다. 따라서 책은 300 여 년 전(BC 470)에 쓰여 진 것 으로 간주 된다. D 는 책 속에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경고 한다. 하지만 BC 470 - BC 170 의 사건들은 이미 A 에게는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D 에게는 예언 이지만 글을 쓰고 있는 A에게는 지나간 과거사 이기에, A는 정확히 서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D의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 진 것으로 믿게 되며, 덩달아 책의 권위가 올라 가고, A의 근본 취지인 민족 단결심 고취의 목적이 달성 된다.
성경의 많은 예언 구절이 사실은 상기와 같은 인터폴레이션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위의 예는 바로 "다니엘" 서를 묘사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도 이점을 인정 하고 있다. 쓰여진 문체, 언어, 문법, 및 예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것을 부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날 이러한 "예언"을 이용하여, 혹세 무민하는 자들이 많다. 지구상에 다니엘 서와 요한 계시록 두 권 만의 책으로 생겨난 분파는 어찌 그리 많은지. 이 두 예언 아닌 예언서를 마음대로 해석하여 가난한 심령들을 희롱하고 있다. ( See Appendix III: 휴거는 일어날 것인가?)
예언 얘기가 나온 김에, "요한 계시록"도 잠깐 집고 넘어 가자.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나사렛 예수와 관계가 먼 듯 한 문서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성격의 글이다. 나사렛 예수의 행적이나 역사적 실체를 가리키는 곳이 없는 것이다. 간혹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용 하지만 이는 영적 예수를 뜻 하며 바울의 예수와 비슷한 존재이다. "인자"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그 인자는 "다니엘"서의 인자이다. 내용은 거의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의 혼합판이다. 천사, 용, 임신 한 여인, 탄생 하는 어린 아이 등등의 등장 인물이나 배경으로 미루어 볼때,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배워 온 "페르시아"의 묵시 문학이 그 원본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의 사랑 보다는 심판과 재앙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저런 연유로 이 문서는 기독도 사이 에서도 논란이 많아서, 오랜 세월 성경으로 취급 받지 못 했던 적도 있었음을 명심 하시라.
"다니엘" 서와 "요한" 계시록에 대해 흥미 있으신 분에게 "버나드 뮬러"의 글을 추천 한다.
이제 인터폴레이션이 무엇인지 대략 감을 잡으셨으리라 믿는데, 이 양태 중 이해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자.
경건한 사기 (Pious Fraud): 3-6 세기 교부들이 주로 통일된 교리의 확립과 교권의 유지를 위해, 편집을 한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의 입을 빌려 베드로를 초대 교황의 자리에 올려 놓고 교황의 권위를 세운 행위(See Apendix II) 등등. 성경은 물론 기타 역사서("조세푸스"의 저술 등)에도 편리한 어귀를 첨가 했으며, "경건한 사기"가 가장 성행 하던 시절의 대표적 추기경이 바로 "조세푸스"란 에서 언급 한 "유세비우스"이다.
"분서 갱유": 교부들은 또한 불리한 문서들은 불경죄를 핑계 삼아 불 태워 버렸다. 불리한 문서들은 무엇 이었을까? 분서를 면하여, 오랜 세월 숨어 있다가 최근에 발견된 그 중 하나를 보자.
"낵하마디" 문서: 1945 년 12 월 이집트의 한 농부에 의해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 졌다. "무하마드"는 그의 형제들과 낙타를 이끌고 인근의 "자발" 산으로 향했다. 거름으로 쓸 부드러운 흙을 채취 하기 위함 이었다. "자발"산은 "낵하마디"라 불리우는 동네에 위치 했다. "자발"산에는 150 여개의 동굴들이 있는데, 대략 4,300 년 전 부터 공동 묘지로 사용 되어 왔다
열심히 곡괭이 질을 하던 그 들은 한 붉은 색의 항아리 단지를 캐어 내게 되었다. 귀신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잠시 추춤 하였다. 그러나 곧 항아리속에 보물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들은 곡괭이로 항아리를 부수었다. 항아리 안에는 귀신도 없었고 그들이 바라던 보물도 없었다.
항아리 안에는 가죽 끈으로 묶여 진 13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무하마드"는 그 책 꾸러미를 부엌 아궁이 옆에 던져 두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중 상당한 분량을 불 쏘시개로 썼음을 시인 하였다.
몇 주후 그와 그의 형제들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 들의 아버지를 살해 했던 자가 인근에 머무르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곡괭이의 날을 잘 갈아 놓을 것을 명한다. 기회를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습격한 그들은 원수의 사지를 절단하고, 복수의 표시로서, 심장을 꺼내 서로 뜯어 먹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던 중 그 지역의 역사 선생 "락힙"이 문제의 책들 중 한 권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책이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 임을 간파 하고 "카이로"의 한 친구에게 보낸다. "카이로" 암 시장에서 매매된 이 책은 곧 "이집트" 정부의 눈 길을 끌게 된다.
"이집트" 정부는 이 책들을 몰수 하여 "카이로"의 한 도서관에 보존 한다. 하지만 몇 권의 책들은 정부의 몰수를 피하여 미국으로 밀반입되어 구매자를 기다린다.
"네델란드"의 저명한 종교 역사 학자 "퀴스펠" 교수가 이 소식을 듣고 "칼 융" 재단에 이 문서를 구입 할 것을 촉구 하여 이 재단이 구입 하게 한다. 이 문서를 들여다 본 "퀴스펠"교수는 많은 부분들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 하고 그 즉시 "카이로"로 떠난다.
"카이로"의 도서관에서 나머지 문서들의 복사본을 얻는다. 호텔로 돌아 와 문서의 첫 구절만을 해독 했는데 도 "퀴스펠"은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첫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이것들이 살아 계신 예수님이 비밀리 전수 하신 것 들이며, 쌍둥이 "주다 도마"가 받아 적었느니라."
1890 년에 발견된 "그리스" 판 "도마 복음"의 첫 구절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그리스" 사본 "도마 복음"은 일 부분만 발굴 되었는데 이제 "도마 복음"의 전체가 "퀴스펠" 앞에 놓여 있는 것 이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의 공동 노력으로 모든 책들을 수거 하고 번역하 여 출간 하게 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대략 영지 주의 자들의 저술 이었다고 유추 되며 초기 기독교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Nag Hamadi문서를 보실 수 있음)
이 발견된 문서들 중 중요한 몇 가지의 책 이름을 나열 해본다.
1. 바울의 기도
2. 야고보 묵시록
3. 진리 복음
4. 요한 묵시록
5. 빌립보 복음
6. 도마 복음
7. 이집트인 복음
8. 영혼에 관한 주석
9. 쟁론가 도마의 서
10.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11. 바울 계시록
12. 아담 계시록
13. 베드로와 12 사도의 행전
14. 풀라톤의 공화국 588A - 589B
15. 베드로 계시록
16. 멜기세덱
17. 세상의 기원에 관 하여
등등 으로 50 종류 이상의 고대 문서가 발견 되었다.
이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역시 "도마 복음 (Gospel of Thomas)"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내용은 제자들이 예수에게 한 소리를 청 하면, 예수가 대답 하는 문답 식으로 되어 있다. 이 "도마"의 예수는 바울의 예수와 같이 개념적이며, 마치 선 불교의 선 문답 같다는 느낌도 든다. 동정녀 탄생 이야기도 없고 십자가 또는 부활에 관한 이야기도 결핍되어 있다. 혹자는 이 책이 읽어 버린 Q에서 파생 된 문서라고 도 주장 한다. 독자들의 판단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해 책 끝에 이 복음서를 번역 하여 보았다.
초대 교부들이 이러한 영지 주의 자들의 책들을 없애 버린 것은 통합된 교리의 확립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성경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이러한 윤색과, 분서 갱유, 또는 종교 회의를 통한 정경화 과정에서 교부들에 의해 선택 되어 진 것 들이다.
이후 근 1000 년 넘게 아무도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없다가, 영국의 "제임스" 왕이 15 세기에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을 명 하였고, 종교 개혁을 거쳐 각 나랏 말로 번역 되기에 이른다.
번역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원래 고대 히브리 언어 자체가 난해 함의 극치이다. 모음은 하나도 없고 자음들만 연속으로 붙여서 쓰며,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띄어 쓰기도 전혀 없고, 마침 표나 쉼 표등 문장 이해를 돕는 그 어떤 부호도 없다. 오 육 백개 정도의 단어로 모든 것을 표현 함으로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번역에는 상당한 고통이 뒤 따른다.
이제 4 복음서를 들여다 보자.
예수님의 가르침은 잠시 접어 두고 역사적 사실들 중 몇 개만 따라가 보자.
*천사의 기별
마태: 마리아 임신 후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다
마가: 없음
누가: 임신 전 마리아에게 천사 나타남
요한: 없음
*마리아의 임신
마태: 성령으로 잉태
마가: 없음
누가: 성령으로 잉태
요한: 없음
*예수 탄생일시:
마태: "헤롯"왕 통치시. ("헤롯"은 BC 4 년에 죽음)
마가: 없음
누가: "수리아" 총독의 호적조사시 (AD 6 년 경) "마태"와 적어도 10년의 차이 가 있다.
요한: 없음
*탄생장소:
마태: 베들레헴
마가: 없음
누가: 베들레헴
요한: 없음
*족보:
마태: "아브라함"에서 "다윗"을 거쳐 "요셉"까지 41 대. 전체 42 대 라며 한 세대를 빠뜨림. 성령으로 잉태 하였다며 "요셉"을 친 아버지로 기술 함.
마가: 없음
누가: "요셉"부터 거슬러 올라가 "다윗"까지 42 대, "다윗" 부터 "아브라함" 까지 13 대, "아브라함"에서 "아담"까지 20 대, 마지막 하나님까지 1 대.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55대. "마태"와 14 세대나 틀리고 조상의 계통도 틀림.
요한: 없음
*성장기록:
마태: 동방 박사 출현, 베들레헴 상공에 별 나타남, 이집트 피신, 아기들 대학살
마가: 없음
누가: 이집트 피신 없이, 8 일 째 할례,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 12 살 때 랍비들과 성전 문답
요한: 없음
*처음 출사현장:
마태: 요한에게 세례 받음
마가: 요한의 세례
누가: 요한의 세례
요한: 요한의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은 것은 공통 되는 것 같지 만, 좀 더 자세히 보자
*요한과 예수의 상면 당시 상황:
마태: 처음에는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그러나 후에는 ".................딴 사람을 기다릴까요?"
마가: 대화 없음. 비둘기 같은 성령 강림을 예수가 봄
누가: 처음 상면시 대화 없음, 후에 "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요한: 첫 대면 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비둘기 성령이 그 위에 머물렀으니.....그가 하나님의 아들 임을 증거 하노라" 그 이튿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조금 후에 "나는 쇠 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 하여야 하리라" 그후 요한에 관한 기록 전무.
처음 만나 한 말들 도 각각이고,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확신 했다며, 나중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의심도 하고, 비둘기 같은 성령을 요한이 봤다고도 하다가 예수가 보았다고도 하고. 이와같이, 4 복음서 안의 가르침은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4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서술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진행 해보자.
"나사렛 예수" -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났으니 "베들레헴 예수"라고 해야 하는데, 어린 시절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 하였기에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이견이 있는 대목이다. 고고학적으로 아무리 발굴 해도 예수 당시 나사레라는 지역이 없었음. 예수의 히브리 이름은 예이수(Yeishu). 크리스천의 히브리 이름은 노츠림(Notzrim). "나사렛 예수(Jesus the Nazarene)"의 히브리 이름은 "노츠리 예이수(Yeishu ha Notzri)". 보시다시피 나사렛은 지명 이름이 아니고 한 종교적 분파를 지칭 했을 확률이 높음. 히브리 전통에 생소 했던 그리스 복음 기자들의 착각 이었을까? 현재의 "나사렛"이라는 지역 이름은 예수 이후 한참 후에야 붙여진 것임.
*예수의 시신이 안치 되었던 무덤에서:
마태: 두 마리아가 무덤에 가봄 / 지진 나며 동굴 문 열림 / 천사강림 / 문지기 무서워 떨음 / 천사가 말함 / 예수와 상면함 / 발 붙잡고 경배함 / 갈릴 리로 가라하심
마가: 두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봄 / 무덤에 들어감 / 흰옷의 청년 서있음 / 이 청년이 갈릴리로 가라 지시함 / 이 청년이 제자에게 전하라 지시함
누가: 여자들이 가봄 / 무덤 안에 들어감 / 찬란한 옷의 두 사람 있음 / 베드로 도 달려가서 조사함 / 베드로는 세마포만 발견함
요한: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가봄 / 빈 무덤 발견함 / 베드로와 한 제자 달려감 / 세마포와 머리수건만 목도함 / 베드로 와 한 제자 집으로 돌아감 / 마 리아 울고 서있음 / 흰옷의 두 천사 나타남/ 예수 나타나 서 계심 / 나 를 만지지 말라 명하심
새벽에 무덤에 가본 사람들의 숫자와 정체가 분분 하고. 동굴 문 바위가 치워지는 데 지진이 나기도 하고 이미 치워져서 조용 하기도 하고. 문지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무덤 안에 한 천사, 한 청년, 두 사람, 두 천사가 각각 서 있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하고.
보고 만지기도 하고 만지지 말라 하기도 하고. 베드로도 달려가 보기도 하고 가지 않았기도 하고. 베드로 외에 또 다른 제자가 있다고도 하고.
부활 후 나타내 몸을 보이신 횟수, 보인 무리, 장소, 승천 하기 까지의 시간 등등에서 4 복음서는 모두 다르게 기술 하고 있다.
참고로 가장 오래된 마가 복음서에는 동굴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 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그 뒤에 보이시고 땅 끝까지 전 하라 하는 구절들은 나중에 첨가된 대목이다. 카톨릭 성경은 주석에서 이점을 밝히고 있다. 수정을 본 것이 두 종류가 있는 데 짧은 것, 긴 것 두 개를 다 소개 하며 고본에는 없었다고 색인 난에서 밝히고 있다. 신교의 성경에는 주로 긴 것을 쓰고 있는데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주석 난에 설명 하고 있다. 즉 "어떤 사본에는 9-20 절까지 없음" (See Appendix II)
이 첨가된 문구 중 논란이 많은 "땅 끝까지 전 하라"는 예수의 지상 명령 구절을 보자.
복음서 전반부에 나타나는 예수는 이방인에게 선교하는 것을 금지 하였음을 기억 하시라.
마태복음 10:5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태복음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노라..."
어느 구절이 예수의 진짜 말씀일까?
사도 행전에 의하면, 예수가 구름에 가리워 승천한 후, 11 제자들은 이 마지막 지상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땅 끝까지 선교 하러 나가는 대신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오히려 11 제자들은 예수의 이 마지막 지상 명령을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이 행동 했다. 베드로가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리오"의 초청을 받고 거부감을 표한 것을 보시라. 완강히 거절 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따리 환상을 통하여 이방 선교에 마지 못해 나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0 장 참조) 나머지 제자들도 초반에는 베드로의 이방 선교를 비난 한다. 올리브 산에서 동시에 예수의 지상 명령을 들은 사람들의 행동 치고는 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지상 명령이 포함된 구절들이 4 세기 경이 지나서야 나타나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대략 예수 생애의 시작과 끝 부분만 보았다. 가운데 부분은 독자께 맡기기로 한다.
4 복음서 외에도 많은 외경과 유사 문서들이 있지만, 어느 하나 육체적 예수의 신빙성 있는 역사 기록물은 없다.
사해문서 (Dead Sea Scroll)가 발견되자 기독도들 간에, 이 문서에 나타나는 "의로운 선생"(Teacher of Righteousness)이 예수의 모델이라고 주장 하는 소리도 있지만 틀린 이야기이다. 이 문서는 예수 탄생 전에 쓰여진 것으로 간주 됨으로 예수에 관한 어떤 기록물도 포함 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예수의 이름 조차 한번도 거론 치 않고 부활도 믿지 않았다. 사해문서를 접속 하실 수 있다.
6. 사도들의 정체
만약에 4 복음서가 역사적 기록 이라면, 우리는 예수 승천 후의 모든 사도들의 전도 행각이나 가르침이, 예수의 친 제자 11 명 또는 70 명에 의해 조직되고 인도 되었으리 라고 유추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타당한 유추로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없는 자 들이 어찌 전도를 하고 예수의 말씀을 전파 하겠는가?
현실은 어떠 했는가? 12 제자가 아닌 자들이, 동시 다발로, 광범위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증거 하고 있었던 것 이었다.
1 세기 서신 문서에서 "사도"란 성령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를 뜻 하고 있다. 사도는 오직 사도 로써 표현 되었지, 복음서의 12 제자를 지칭 하는 곳은 없다. "바울", "베드로", "바나바", 그 외 무명의 다른 이들, 이것이 서신들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전부이다. 서신들은 예수에 의해 선택된 12 제자를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났다는 관점은 전기 하였다. 그 후 100 여년 넘도록, 마태 복음이 쓰여 질 때까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고 쓰여진 곳은 아무데도 없다.(See Appendix II)
고린도 후서 10 - 12 에 나오는 바울의 라이벌 사도들은 누구인가? 바울 뒤로 고린도에 와서 고린도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그 들. 그 들도 그 들이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 이라고 주장 하였다. 바울은 반격 한다. 나 또한 그러 하노라고.
이 중대한 정통성 다툼의 와중 에서도 양쪽 다 나사렛 예수의 친 제자 임을 빌어 사도 직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고요? 바울도, 그의 라이벌들도 모두 나사렛 예수를 듣지도 보지도 못 했었기 때문이다. (See Appendix V)
바울은 계속 반격 한다. 다른 예수를 전파 하는 자들,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로 라이벌 사도들을 매도 한다. 거짓 사도, 가면 쓴 자들로, 사탄의 사자들로(고린도 후서 11:13).
하지만 몇 구절 못가서, 바울은 마지 못해 그들의 정통성을 인정 하고 만다. 고린도 후서11:23: "고린도"인 들이 수용 할 수 있는 기준에 의하면 그 들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사도라는 말이 나사렛 예수의 친 제자 무리를 칭하는 것이 아님은 점점 무게를 받게 된다. 독일의 신학자 Rudolf Bultmann도 12 제자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후에 만들어져 낸 것 (Invention)이라고 서술 했다.
라이벌 사도들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딱 한 사람은 예외. "아볼로"! 그는 "요한"의 세례 까지 밖에 모르고 있었음에도 사도로 인정 받았다
사도행전의 "아볼로"를 보자
사도행전 18:24 - 28: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 하는 유태인이 '에베소'에 오니 그는 달변가요 경전에 능통 하였다. 그는 주의 도를 전수 받았고 성령 충만 한 지라, '요한'의 세례 밖에는 몰랐으나, 예수에 관 하여 정확히 증거 하며 가르쳤다. 회당에서 담대히 증거 할 때, '브리시길라'와 '아길라'가 그를 불러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설명 하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자 할 때에 형제들이 그를 장려 하니.......... 그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구약을 인용 해가며 증거 하는데 공공장소에서 많은 유태인들을 강력 하게 설득 시키더라."
"세례 요한"의 세례 까지만 알고 있던 "아볼로"가 예수를 정확히 증거 한다고 서술 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는데, 이러한 "아볼로"가 어찌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는지?
혹간의 학자들은 "아볼로"가 지혜 (Wisdom)의 선생이라고 본다. "아볼로"를 따르는 무리들은 세상 끝날 의 부활을 기다릴 것 없이 이미 세례로 영생을 받았노라 주장 하였다. "아볼로"는 그리스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유태 지혜 철학자였던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한 지혜 (Sophia)철학과 그리스에서 자라난 로고스 철학(Logos)이 합쳐져서 나온 그리스도 철학의 선생으로 보는 견해인 것 이다. 사도 행전 기자도 그의 달변과 논리 정확 함을 인정 하고 있음을 보시라.
결론적으로 "바울"이나, "아볼로"나, "바울"의 다른 라이벌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의 12 제자가 아니었다. 이 모두들 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구원의 비밀을 보여 주는 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도마 복음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예수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리신 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약 신화설의 주장이 옳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당시 팽배 해있던 구세주에 대한 기다림, 그 염원을 토양으로 기존의 분파들이 서로 경쟁, 성장 하게 되고, 구약에 능통한 "바리새"인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독립적으로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영적 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을 선포한 것이 기독교의 시작인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은 견해들 중의 하나 이다.
사도 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강림, 그 이전 부터 성령은 이곳 저곳에서, "아볼로"에게, "바울"에게, 다른 무명의 사도들에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 사상이 유행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사회의 혼란상이었다. 거듭되는 전쟁과, 문화와 문화의 충돌에서 오는 가치관의 흔들림을 비집고 기존의 구원자, 중개자 사상들이 히브리 구약 성경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신화설의 한 견해이다.
이 신화설의 견해들 중 가장 쉽고 간단한 "이방 신화 영향설"을 보자.
예수 탄생 이전에 벌써 많은 구세주들이 많은 문명에 나타 났었고 나사렛 예수의 얘기는 이 메시아들의 드라마들을 집대성 한 것이다 라는 견해이다.
당시의 메시아 전통들에 대해 이제 보기로 하자.
당시 유대 지방에는 나사렛 예수 이전에 이미 예수와 흡사한 인물들이, 역사적 실체이건 신화적 인물이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신화파 학자들이 주장 하는 이들의 이름은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은, 가까이는 가나안의 "타무즈", 그리스 로마의 "헤라클레스", "아도니스", "미트라", "아폴로", "바카스", "프로메테우스", 이집트의 "이시스", 페르시아의 "미트라", 힌두의 "크리시나", 인도의 "부처" 등등 으로써, 그래도 우리에게 낯 익은 이름들이며 나머지 여러 부족들의 생소한 신들도 꾀나 된다.
이들의 생애를 종합 하면;
1) 하나님, 또는 하늘의 섭리로
2) 처녀에게 잉태되고
3) 이들의 어머니 이름은 메리이, 마야, 마리 등등 M으로 시작이 대부분 이고
4) 탄생 시 천사 혹은 현자들이 경배 하였고
5) 혹자는 기존의 왕으로 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타국, 타향으로 부모 따라 몸을 숨기고,
6) 어려서 부터 경전 학자들을 능가 하였고
7) 혹자는 목수 일을 하였고,
8) 혹자는 양 떼를 인도 하는 목자로 비유 되었고
9) 12 제자를 거느리고
10) 이웃을 사랑 하라고 가르쳤으며,
11) 세상에서 병을 고치고 ,
12) 죽은 자를 살리고,
13) 물 위를 걷기도 하고,
14) 소량의 음식으로 여럿을 먹이고
15) 나는 빛이요 길 이니라 설파 하고
16) 탄신 일은 거의가 12 월 25 일 이고
16) 나무, 바위 등에 매 달려 죽었고
18) 다시 부활 하여 하늘 나라로 오름으로
19) 만인의 죄를 대속 하였다고 한다.
위의 서술이 너무나 예수님의 생애와 일치 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예수를 제외한 모든 구세주들의 행적을 집대성한 정보일 뿐, 이 모든 점을 다 가지고 있는 구세주는 한 명도 없다. 어떤 학자는 예수와 "크리시나"의 공통점을 상기의 것 들을 포함해 300 가지 이상 열거하고 있지만,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부분적인 공통 점들이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일관 되는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1)신의 아들 이었고 2)기이한 기적들을 행했으며 3)죽었다 다시 살거나, 천국, 하늘, 열반의 세계로 나아 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화는 이 정도는 다 기록 하고 있으므로 크게 의미를 두지 마시도록.
우리의 관심은 예수와 똑 같았던 인물이 있었던 가에 있는 게 아니고, 예수라는 개념이 나올 수 있게 한 그 토양의 기원을 고려 해 보고, 신화설의 견해가 얼마나 타당한 가 알아 보는데 있다.
멀리 "부처"의 가르침 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이 들도 있다. 본인은 그리스 로마의 "미트라", 그것이 전래 된 "페르시아" 및 "가나안"의 몇 몇 신들을 돌아 보기로 한다.
7. 미트라의 비밀
한 20-30 명이 들어 설 수 있는 지하 동굴들이 "이탈리아"를 포함 해서 북쪽 으로는 "영국", 남쪽 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굴 되었다. 당시 로마 군대가 주둔 했던 곳 에서는 어김 없이 발견되는 이 동굴들에는 이상한 인물과 장면을 묘사 하는 그림과 유물들이 공통적으로 발견 되었다.
학자들은 이 동굴들이 "미트라"교의 예배 장소 임을 밝혀 내었다. 이 "미트라" 숭배의 흔적이 발견 된 지역은 다음과 같다. 영국, 이탈리아, 로마니아, 독일,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 이란, 알메니아, 시리아, 이스라엘 및 북부 아프리카.
밀교였던 관계로 그들의 경전과 여타 정보가 전무 했지만, 부분적인 정보들이 당시 역사가들의 서술이나, 기독도들의 그들에 대한 비판에서 엿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정보는 "영웅전"으로 유명한 역사가 "풀르타크"의 진술이다. BC 67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 하고 있다 "소 아시아 남 동부 해안의 '실리시아'에 미트라의 밀교 의식을 행 하는 큰 무리의 해적 떼가 있었다"
"실리시아"는 바울이 출생한 "탈수스" 도시가 위치한 지역 이었다.
가장 오래 된 유물들은 AD 1 세기 말의 것으로, 3 세기에 교세가 가장 확장 되었으며, 5 세기 초 기독교의 득세로 수그러 들었다. 신도들은 군인, 관료, 상인이 주를 이루었고 여인들은 배제 되었다.
5 세기경 기독교는 맹위를 떨쳐 많은 미트라의 지하 사원을 접수 하여 기독교 사원으로 개조 한 곳이 여기 저기 드러난다. 기독교 교회라고 생각 된 곳에서 채 지워지지 않은 예의 "미트라" 그림들이 발견된 것이다.
몇 단계의 의식을 거쳐야만 최고의 진리에 접 할 수 있었던 그 들의 가르침은 철저히 신도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수 되었기에 학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교의에 대해 학설이 분분 하였다.
"미트라" 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어로 "계약" 을 뜻한다. 지역에 따라 "마이트로스", "미어", "메어" 등 으로 불리기도 한다. 힌두교의 "마에트라"는 중국으로 건너가 장군 신이 되었다. 이 중국의 "미트라"는 현생의 인간들의 "친구"로 알려 졌으며 사후 세계에서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보호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 한국에 와서는 "미륵" 불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페르시아로 가서는 "미트라"라 불렸고 로마의 미트라는 이란의 미트라에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 했다. 로마의 저술가들도 미트라의 근원이 페르시아에 있다고 서술 하였다.
"미트라" 동굴에서 꼭 발견되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한 인물이 황소의 목을 따는 그림인데, 이 그림이 페르시아의 미트라 에서는 발견 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은 최근의 학자들은, 로마의 미트라가 이름 만 빌렸을 뿐이지 새로운 신앙 체계 임을 밝혀 내었다. 이 그림에는 꼭 1)황소, 2)개, 3)까마귀, 4)뱀과 5)전갈들이 나타나며, 여러 곳의 그림 중 6)사자와 7)물잔도 종종 포함 되어 있다. 뒤 배경으로 많은 8)별들이 그려져 있다.
"미트라"의 비밀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기독교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고 그것의 비밀은 기독교의 근원에 어떤 빛을 비추어 줄 수 있기 때문 이었다.
그림에서 황소를 제압하는 인물이 "미트라"로써 태양 신의 아들이다. "세상의 빛"으로 불리워 졌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 성 삼위 일체의 두 번째, 즉 아들의 존재로써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생일은 12 월 25 일로 경축 되었다. 만인의 죄를 대속 하기 위하여 죽었다가 3 일만에 부활 하였다. 그의 부활은 기독도의 부활절 주기와 일치 하며 12 제자를 거느렸다고 전 해진다.
"미트라" 숭배자들은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 구원, 부활등의 교리를 믿었다.
마지막 성만찬의 이야기도 매우 흡사하다.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등등 모두 미트라와 흡사 하다.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도 마찬가지 이다.
이제 최근에 발견된 미트라의 비밀을 보자.
그 당시의 종교를 알려면. 먼저 그 당시의 세계 관을 동 시대 인들의 입장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인간들은 지구가 접시와 같이 평평 했으며, 바다 끝 네 모퉁이에 기둥으로 받쳐져 있다고 생각 했다. 이 세계 관은 성경에도 그대로 반영 되어 있다. 이 땅은 우주의 중심이며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 했다. 따라서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 되었다. (천동설)
하늘에는 지구를 감싸고 도는 몇 개의 작은 투명한 천구가 있었고 그 곳에 각각 해와 달과 별들이 붙어 있어서 같이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 하였다. 맨 마지막, 그러니까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천구의 바깥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 했다.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은 항상 제 자리에 붙어 있는 듯이 보였으며, 모여 있는 별들의 형태에 따라 각각 별 자리 이름들이 주어지고 신화들이 창조 되었다. (See Apendix IV: 별자라 이야기)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인 천체는 태양 이었다. 태양의 빛과 그 에너지는 지구 상의 모든 존재들의 근원 임은 지금도 사실이다. 현대 인들은 태양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잊고 살지만 그 당시 특히 농사 짓는 자들 에게 태양의 중요성은 간과 될 수 없었다. 많은 문화가 태양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도 그들의 관점에 서기 위해 그와 같이 부르기로 한다. "미트라"도 이러한 태양 신의 아들이자 자신이 태양 신이었다.
주님 (태양)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
고대로 부터 인류는 주님을 빛과 생명의 근원으로 여겼다. 지금도 맞는 말이다. 모계 중심의 사회에서 주님은 여성이었고 각종 여신으로 숭배 되었다. 고대 인도의 위대한 어머니 "아디티"는 12 별 자리의 영혼의 어머니 였고, 일본의 "오미카메"는 하늘을 밝히는 여신 이었다. 모든 고대 민족이 위대한 어머니로서 숭배한 태양 여신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가부장적 제도가 자리를 잡자 주님은 남성으로 인식 되기 시작 한다. 히브리 언어로 태양은 "삼손"인데 메소포타미아의 태양 여신 "샴스"가 남성화 한 것이다. 삼손과 마찬 가지로 "아폴로"와 "헤라클레스"도 모두 남성 태양 신이며 그 들의 힘의 근원은 기다란 머리와 수염(햇살)에 있다. 그리스도도 점차 다른 주님(태양)과 동화 되었다.
유명한 말라기의 구절: "나의 이름을 경외 하는 자 에게 의의 태양이 솟아 치료 하는 광선을 발 하리니..."
요한 복음: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의 말 중: "암흑에 거 하는 자들을 밝히실 떠 오르는 태양이 방문 할 것이니...."등등
처음으로 기독교를 신봉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 일세도 태양 숭배자로 그가 발행한 동전에 " 무적의 태양, 나의 보호자"라고 써 넣고 있다.
고대 한국 인에게 도 산, 강, 나무 등등 의 숭배 대상 중 태양이 그 으뜸 이었고 그 흔적이 여러 설화에서, 하늘에서 내려 온 알, 또는 주님(태양)에 의해 기적 적으로 임신 하는 여인들로 표현 되고 있다.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성왕" 부분 에서: "...."해모수"가 "고려"에 오시니, 그 는 하늘을 가르며 내려 오시는 진정한 하늘의 아들 이시라...낮에는 하늘의 심장부로 부터 내려 오고.... 아침엔 인간 세상에 머무르며, 저녁에는 천상으로 돌아 가시니 ...... 무슨 힘으로 그가 그리 하실 수 있는지? .......... "금와" 왕이 "해모수"의 아내를 알아 보고, 거처를 마련 해 주더라. 태양이 그 녀의 젖 가슴에서 빛을 발하니 그녀가 "주몽"을 잉태 한 지라.... "동명"이 19 년을 다스린 후 왕관을 벗어 버리시고 하늘로 오르시더라"
"삼국유사"의 "박 혁거세" 부분 중: ".... 그 들이 언덕에 올라 남방을 보니, 번갯 불같은 후광이......그 들이 붉은 알을 발견 하여.......알을 깨어 보니 빛나는 애기가 있는지라...... 애기를 동쪽 강에 목욕 시키니 그가 빛을 발 하더라. 새와 짐승들이 기뻐 춤추며, 하늘과 땅이 떨며, 해와 달이 밝아지더라. 그 들이 아기를 "혁거세" 즉 "빛나는 자" 라 이름 짖고 "고서란" 즉 왕이라 칭 하더라. 사람들이 서로 축하 하며 이르되 '하늘의 아들이 내려 와 우리들 중에 있으니 우리가 그의 합당한 배필을 구하자' 한 고로.......... 61 년을 통치 하신 뒤 "혁거세"가 하늘로 오르시매...."
"삼국유사" "여노"와 "서"부인 중 에서: ""아달라"왕 통치 4 년에 동쪽 해안에 "여노"와 "서" 라는 부부가 살았다.............. 이 때에 태양과 달이 그 빛을 잃으니.... 왕이 하늘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니, 예견한 대로 해와 달이 다시 빛을 회복 하더라. ........ 왕이 하늘을 숭배한 곳을 "영길" 즉 태양을 영접 함 또는 "토기야" 즉 기도 드리는 밭이라 일 컷더라."
태양 숭배의 근원은 무엇일까?
태고 적부터 인간들은 주님을 관측 하였으며, 매우 정확히 주님의 행동(태양의 위치)을 예견 하고 있었다. 씨를 뿌릴 때, 추수 할 때, 겨울을 나고 봄 농사 준비 할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4 계절의 구분점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이 북 반구에서 일어났으므로 이러한 지식들은 북 반구에서 관찰 한 것을 나타 낸다.
당시의 주님은 12 월 22 일 경 가장 낮은 곳에서 떠 오르시다가 3 일 쯤 지나서 12 월 25 일 경 부터 다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 오시기 시작 한다. 주님의 탄생 (동지 후 태양의 북상)
3 월 25 일 경 부터 드디어 주님의 얼굴 빛은 암흑의 세계(밤) 보다 길게 비추시기 시작 한다. (춘분 시점) 주님의 부활.
6 월 25 일 경 가장 가까이 온 주님은 바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 가시며, 정오 무렵에는 수직으로 우리를 비추시어 가장 뜨겁고 강렬 하시며, 세워 논 막대기에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 가장 높으신 (Most High) 보좌에 앉으신 주!
그러나 하지를 전 후로 밤이 길어지기 시작 하니 서서히 추수를 준비 할 때요. 9 월 25 일 추분 이 후에는 어두움의 길이가 빛을 능가 하기 시작 한다. 주여 우리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이 4 계절 현상은 물론 지구의 회전 축이 태양을 도는 면에 대해 23.5도 정도 기울어져 일어 나는 현상 임을, 이제는 국민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구가 둥근 공인 줄 몰랐고 하물며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으리 라고 는 꿈에도 생각 못 하였다. 당시의 이러한 우주 관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지만, 에녹의 서에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Enoch, Book III, Chapter 72-82)
이 4 절기 중 춘분이 가장 중요 하였다. 씨 뿌리는 시기는 너무 일러도 안되고 늦어도 안되었다. 만물의 소생이 시작 되는 시기 였다. 죽어 있던 고목에 싹이 트며, 땅 속에 있던 동물들과 씨앗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이다, 부활의 계절인 것이다.
주님의 일 년 동안 남 북을 오락 가락 하시는 운행은 12 별 자리를 따라 움직이셨다. 12 별자리(Zodiac)는 살아 있는 존재들 이라는 뜻 이다. 지구의 적도가 있듯이 천구에도 적도가 있고 천구 적도와 주님의 운행 항로 즉 조디액이 교차하는 곳에 바로 춘분과 추분이 일어난다. 춘분과 추분의 바로 중간 지점들에 하지와 동지가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교차로 (십자가 - 정확히 X)를 통과 하사 암흑 권세를 이기며 다시 사신 주님 이시다.
지구가 23.5 도 기울어져 있는 것이 전부 였다면 "미트라"교는 생길 수 없었다. 지구는 또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속성을 알면 당시의 미트라교를 알 수 있다.
지구는 온통 딱딱한 물질로 되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지구의 많은 부분을 물이 차지 하고 있다. 땅들도 여러 종류로 되어 있어서 딱딱한 바위질도 있지만 더 연한 흙으로 이루어 진 곳도 있다. 한 마디로 밀도가 균일 하게 분포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해와 달은 지구에 막강한 인력을 행사 하고 있다. 간만의 차이를 보라. 부드러운 물이 달의 인력에 끌려 해안선의 위치가 변할 정도이다.
이 해와 달이 행사하는 인력에 대해 지구는 균일 하게 대응을 못한다. 지적 했듯이 밀도가 틀린 물질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지구의 자전 축이 미세 하게 떨리게 된다(wobble). 마치 잘 조여진 차 바퀴는 떨림이 없으나, 덜 조여진 바퀴는 구르며 좌우로 떨려 대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 떨림은 전체적으로 매우 미세 해서 북극이나 남극점을 기준으로 불과 직경 수 미터의 원을 그려 대고 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있다. BC 128 년 그리스 천체 관측가 "히파쿠스"가 역사 상 처음으로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챘다. "히파쿠스"에게도 지구는 움직일 수 없었던 것 이므로 그가 이 "떨림현상"을 발견 했다는 것은 아니다.
히파쿠스는 무엇을 발견 하였는가?
지구가, 따라서 자신이 떨어 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지구 밖의 것들이 떨어 대는 것으로 생각 했음은 당연 지사라 하겠다. 지구 밖의 것 들이 떨려 대는 현상은 천체 적도의 후진으로 관측 되었다. 즉 천구의 적도가 서서히 뒤로 후퇴 하고 있는 양 보여지는 것이다. (Precession of Equinox) 아주 서서히 후퇴 하며 12 별자리 하나를 완전히 벗어 나는데 2,160 년이 걸리며, 12 별자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25,920 년이 걸린다. 이 주기는 현재 인간이 발견한 정확히 반복 되는 주기 중 가장 커다란 것이다. 현대의 춘분은 물고기 자리에서 일어 나지만 조만간 물병자리에서 일어 나게 되어 있다. 물병 시대의 새벽(Dawn of the Age of Aquaries)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셨는지.
마찬 가지로 지금의 북극 성(Polaris)은 훗 날 우리의 북쪽에서 벗어 나게 되며, 과학자들은 이미 각 시대의 새로운 북극성들의 리스트를 작성 해 놓고 있다. 26000 년 후 에는 원래 북극성이 다시 원대 복귀 하지만.
이 천구 적도의 후진 현상은 당시 사람들 에게는 무서운 사실 이었다. 기존의 여러 작은 천구를 움직이는 힘 보다 더 큰 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마지막 천구를 서서히 움직이는 신을 "미트라"라고 불렀다.
이제 미트라의 비밀을 보자.
BC 2000 년 경 부터 예수가 처형 당 할 즈음 까지, 춘분은 "양" 자리에서 일어 났다. . 바로 전 시대, BC 2000 - BC 4000 사이에는, 춘분이 바로 문제의 "황소"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 때의 천구 적도는 "개"(Canis Minor the Dog), "뱀"(Hydra the Snake), "까마귀"(Raven), "전갈" (Scorpio the Scorpion)의 자리를 교차 하고 있다.
이 모든 동물들이 미트라 사원 벽화의 동물들과 일치 하고 있다. 또한 황소 자리 시대의 동지와 하지는 각각 사자(Leo the Lion) 자리와 물병 (Aquaries the Water Bearer) 자리에서 일어났음을 보라. 미트라 벽화에 있는 또 다른 비밀 즉 사자와 물잔 (Cup)은 이 절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위의 설명이 나오자 분분했던 학설들이 조용 해져 버렸다. 명쾌한 대답 이었기 때문이다.
"미트라"는 12 제자(별자리)를 거느리시고, 춘분의 교차 지점에서 하늘의 십자가에 매달려 만인을 대속 해 죽으시고. 3 일 만에 부활 해 황소를 희생 제물로 삼아 만인을 구속 한다. 가장 큰 마지막 천구를 움직이시니 신 중의 신이시고, 천구 밖 하나님 나라에 계시며, 오늘도 인류를 위해 다시 태어나시는 구원자 이시다.
"영 중의 영이시여, 당신의 뜻이 그러 하시다면, 저희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탄생을 주시어 저희로 거듭 나게 하옵소서.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서 호흡할 지어다" - "미트라" 기도 문 중.
이왕 하늘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보자.
BC 2000 년 경 부터 예수 시대 까지 춘분은 "양"의 자리에서 일어 났다. 어린"양"이 희생 되어야 할 세대 였던 것이다. 그 외 3 절기는 각각 "염소", "저울", "게" 자리에서 일어 났고, 이 사절기는 천구 적도의 후진이 발견되기 훨씬 전 부터 알려져 있었다.
예수님 세대 바로 전 즉 이집트 피라밋들이 세워 졌던 시대로 돌아가 보자.
춘분은 상기한 대로 황소 자리에서 일어 났다. 추분은 "전갈" 자리에서 일어 났고 동지와 하지는 전기한 대로 "사자"와 "물병" 자리에서 일어 났다.
이제 전갈 자리에 항상 같이 있는 "독수리"와, 물병 자리에서 물병을 머리에 이고 물을 쏟고 있는 사람을 각각 주시하자. 무엇이 나오는가? 피라밋 시대의 주요 절기는 각각 황소, 사람, 사자, 독수리로 대표 되었던 것이고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스핑크스는 이런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See AppendixIV).
이 이집트 인의 천체 지식이 성경에 흡수 된 흔적이 보인다. 천구 적도의 후진에 관한 지식이 없었어도 4 절기는 열심히 관찰 정립 되었으며 성경도 여기 까지 반영 하고 있다. 천구 적도의 후진 현상은 "미트라"교에서 만 반영 되었다. 최 첨단의 밀교였다고나 할까. 실제 현대까지 통용되는 서양의 "카드 점치기" (Tarrot)에는 아직도 "황소"시대의 조디액이 반영되어 있다 원래 쓸모 없는 것이지만 이런 이유로 더 더욱 쓸모 없음을 아시라.
기독교인들 중 황소, 사람, 사자, 독수리 하면 금방 알아 차리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다음은 구약 성경 "에스겔" 서를 인용 한 것이다. 혹자는 UFO가 착륙 하는 장면이라는 둥 황당한 설명이 분분 했던 구절이다. 상기의 당시 천체 지식을 염두에 두고 읽어 보자.
에스겔 1:4 부터: 내가 보니 북방으로 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사람의 형상이라.....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 송아지 발바닥 같고 ....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10절):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이하 1장 전체를 읽어 보시도록. 10장에도 "게룹"이 다시 한번 더 내려옴.
"에스겔"은 무엇을 적고 있는가? 그는 밤 하늘의 별 자리들을 인식 하며 우주의 웅장 함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옥 보석 같은 궁창에 앉으신 이는 천체 밖의 절대자를 가리킨다. 말 많은 "바퀴 안의 바퀴"는 UFO가 아닌 천구 안의 작은 천구들을 칭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예언자 "에스겔"은 UFO가 아닌 전체 우주와 그를 초월한 절대자를 느끼는 상황을 묘사 하고 있는 것이다. 천구 전체가 그에게 내려 오고 있지 않는가? 이 "에스겔"의 "게룹"은 "요한 계시록"에도 등장 한다. 네 짐승, 네 생물 등으로. 읽어 보시도록.
이제 이 "미트라"가 전래 된 "이란"으로 가 보자.
8. 유일 신 사상의 근원 ?
멀리 "수메리아" 까지 보아야 하나 좀 더 가까운 시대로 시작 하자. 너무 깊이 들어 가지 않겠다는 것이 처음 부터 약속 임을 상기 하시라.
대략 BC 1400 년 경 "이란"의 북 부에서 양 치기를 하던 "조로애스터"(그리스 식 표기, "짜라투스트라"가 원래 페르시아 발음)는 나이 40에 신의 계시를 받고 진리를 선포 하기 위해 하산 하였다.
"야훼"를 포함한 다른 부족 신들과는 달리 그 의 신, "아후라 마즈다"는 전지 전능의 자비로운 보편 적인 신 이었다. "아후라 마즈다"는 완전 무결한 존재 였기에 인간과 교통 하기 위해서는 중간자와 천사들이 필요 하였다.
반면 "야훼"는 직접 선지자와 "모세"에게 나타났고, 천사도 필요 없었음. "모세"는 "시내" 산에서 70 인의 장로들과 "야훼"의 목전에서 먹고 마시었 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인간이 죽으면 한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데, 생전에 죄가 많은 자들은 떨어져 지옥으로 가고 선한 자들은 천국으로 인도 된다고 한다. 천국의 목적은 찬양이라고 한다.
반면에 유태인들은 누구나 죽으면 "쉐올", 즉 땅 밑의 세계로 가고 만다고 믿었다. "시편"을 기억 하시라. "주여 제가 살아 있을 때에 구원 하소서. '쉐올'에서 누가 주를 찬양 하며 주께 영광 돌리오리이까?" 즉,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 살아 있을 때 구원 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처녀가 잉태 하여 "샤오샨트"라는 구세주가 올 것을 믿었다. 마지막 날에 심판의 책에 기록된 대로,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며 지상 천국에 다시 부활 할 것을 믿었다.
반면 유태인의 구세주는 강력한 통치자로서 타 민족을 제압 하고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루는 영웅을 뜻 했고 유태인들의 구약에는 종말론 적 사고 방식이 결핍 되어 있다.
"조로애스터"가 죽은 후 "조로애스터" 교는 "마기"(제사장)에 의해 많은 변질을 겪는다. "마기"들은 성부 "아후라 마즈다", 성자 "미트라"와 성령 "천사장 Spenta Mainyu"의 삼위 일체를 내 세웠다.
역사 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한글성경에는 "바사"로 표기)인들은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고 그리하는 것을 바보 스럽게 생각 했다고 기록 하고 있다.
반면에 유태인은 신의 형상을 빈번히 만들었다. 금 송아지, 구리 뱀 등 또 에스겔 8:10 을 보라.
입교 의식은 피, 오줌 또는 물로 세례 의식을 행 하였다.
반면에 유태인들은 이집트 의식인 포경 수술 -할례를 행 하였다.
태양의 에너지가 인간의 두뇌에 축적 된다고 믿었고 이것이 후광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그들은 미트라의 생일로 12 월 25 일을 기념 하였다.
보편 적인 법도는 "아샤르타로" (진짜 기도 - True Prayer)로써 이는 후에 그리스의 "말씀" (Logos - 진실의 글)의 기본이 되었다. "믿음"이 신앙의 기본 이었고 "진짜 기도"를 외우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 유태 인은 믿음 보다 선한 행실을 강조 하였다. 후에 바울과 유태 분파의 쟁론을 기억 하라. 구원이 믿음에서 오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꽹과리 인가? 바울은 "조로애스터"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BC 539 년 페르시아 왕 "사이러스" (한글성경은 "고레스"로 표기)는 "바빌론"을 정복 하고 피 정복자들에게 "조로애스터" 교를 강요 한다. 정교 일치의 왕국 이었음
BC 532년 일부 순종 하는 유태인들을 귀환 시키어 대형의 "조로애스터" 식의 사원을 짓게 한다. BC 516 년에 완공.
포로기 이후 문서들은 한결 같이 페르시아 왕들을 칭송 하였다. "사이러스"왕 14 번, "다리오" 13 번,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은 7 번 씩이나 언급 하고 있다.
막강한 "사이러스"의 통치 앞에 선 유태인의 입장을 이사야 44-45 장 에서 보라. 순종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페르시아 왕들이 유태 제사장을 임명 했으며 "마기"들이 유태 제사장으로 행세 하기도 했다. 이사야 66:21
제 2의 "이사야"는 이사야 44 장에서 "사이러스"왕을 신에 의해 임명 된 목자로 부르며, 45 장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칭 하고 있다.
학개2:23 - 하나님이 페르시아 총독 "예룹바벨"을 "그의 택하심을 입은 자"라 부르고 있다.
"에즈라", "느헤미아", "다니엘" 서를 보라. 원래 이들은 페르시아 왕국의 공식 언어인 "아람"어로 씌어진 것이다.
유태인의 신은 유일신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보라 1;26 "우리로 인간을 만들자" 3;22 " 보라 선악과를 먹었으니......저가 우리와 같아질까 하노라"
시편 82편:" ... 신들의 와중에 서서 모든 신들을 심판 하나니.......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지극히 높은 자의 자식들 임이라"
출애굽기15:11"많은 신들 중 누가 주님과 비견 되리요" 등등
유태인은 항상 다수신의 존재를 인정 했다. "이사야" 이전에는 유태인의 야훼는 모든 민족의 신이 아니었다. 더구나 히브리 12 지파가 다 야훼를 신봉 했던 것도 아니었다.
유태인의 유일신 신앙은 페르시아로 부터 수입 되었다
유일 신 신앙은 페르시아 왕 "사이러스" 통치 때, 제 2 의 이사야에 의해 소개 되었다. 이사야 45:5-7: "나는 주이니 나 이외 아무 신도 없느니라. 빛과 암흑을 창조 하였고, 평화와 사악함을 창조 하였느니라"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야 유태의 신은, "아브라함"의 "엘 샤다이"(산신), "모세"의 부족 신 "야훼"에서 벗어나, 전지 전능의 유일 신이 되었다.
페르시아 왕들은 그 들의 유일 신 신앙을 강요 하였고 유대의 신앙, 역사, 법과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BC 332 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정복 하고서 "바사"의 영향 력은 현저히 감소 되었다. 이 때 부터 AD 73 년까지 종교의 자유가 허용 되었는데, 특기 할 것은 이 기간에 "산헤드린"이 창설 되었다. 유태인 종교 회의로 종교적, 사법적, 형법 구속력을 갖는 기관 이었다. "조세푸스" 증언 난을 상기 하시라. 이 기관은 두 붕당이 관장 하였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천사, 성령을 믿지 않았고, "바리새"의 율법을 거부 하며, 오직 모세의 율법만 따랐다. 당시 유태인의 대다수가 "사두개"파 였다.
"바리새"인 (Pharisee)은 원래 "바사" 왕국의 "파스" (Fars)라는 도시 이름에서 나온 것 이다. "인도"의 "바사"인 들은 "파씨" (Parsee)라고 불리고, 현대 "이란"의 "파씨" (Farsi)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름의 근원에서 보듯이 "바사" 국의 영향에 젖은 자들로 근본 유태 주의 자들 과 충돌 하였는데, 이 들은 소수로써, "조세푸스"에 의하면 6000 명 이상 넘지 않았다고 본다. 이 들중 "바사" 인 "마기"들이 다수 포함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 의해 천사, 귀신, 심판, 영혼의 불멸성들이 당시의 "유태이즘"을 대표 하게 되었다고 조세푸스도 인정 하고 있다.
로마의 침공에서 살아 남은 것은 "바리새이즘" 뿐 이었다. "조로애스터"의 평화 주의에 입각해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도표로 종합 해 보자.
유대교엠마오 이야기 | 조로애스터행실에 힘이 있으니(mighty in deed) |
다수 신(없음) | 유일 신나사렛예수, 선지자(man prophet) |
인간같은 부족 신하나님에 대해서 | 전지 전능, 모든 인류의 신말씀과... |
사후 세계 없음그리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 영생 및 천당 개념 있음(없음) |
정치적 구원자그들이 그를 어떻게 심판에 넘겼는 지는 (how they handed him over) | 초월적 구원자우리의 (of us) |
천사, 악령 없음제사장들과 우리 지도자들에의해 (chief priests and leaders) | 천사, 악령, 성령 인정사형판결로 십자가처형에 (crucified) |
간단한 원시적 율법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임을 바랐으니 | 발전된 도덕법, 형사법 및 민법3 일이 지난 후의 일이라 |
할례 (포경)선지자들이 예언한 것들. 이러한 일들이 필히 구세주가 고난을 받음이.... | 할례 대신 세례 의식그에 관한 경전들의 언급을 설명하니 |
예수는 "바리새"인을 어찌 평가 했다고 기록 되어 있는가?
마태 복음 23:28, 23:33 - 겉만 번드르르한 자여 속은 위선과 불경으로 가득 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후손들아, 지옥의 저주를 어찌 피하겠는가?"
반면,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 파 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12 사도들은 할례 등의 문제에 관해 "바울"의 가르침을 비난 한다. "예루살렘"으로 그를 소환 한다. 사도 행전을 참조 하시라.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구세주는 오늘 날 기독교의 구세주로 정착 되었고, 이 "바울"의 그리스도란 다름 아닌 "조로애스터"의 "미트라"신앙에 다른 이름들만 갖다 붙인 것 에서 멀지 않은 것 이다. 천사, 영혼의 천국 여행, 마귀, 구원, 천당과 지옥, 종말, 최후의 심판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이란"에서 전래 되었으며 "바울"의 기독교에 온전히 반영 되었다.
그 외 많은 토속 신들이 유태 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신화파 학자들은 수도 없이 많은 지방 신, 민족 신들을 거명 하며 예수의 이야기가 그 것들로 부터 전래 되었다고 주장 한다. 신화와 신화는 서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지만, 그 들의 가설들 중에는 억지로 꿰어 맞춘 듯 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도 상당 수 이다. "크리시나", "오시리스", "아폴로" 등등 끝이 없는 이들 이방 신들에 대해서는 상기의 견해를 밝히며 생략 하고자 한다. 한국 독자 에게는 낮 설은 신화가 대부분 이라서 초점이 흐려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가나안 지방의 신 "엘", "바알", "아도니스" 와 "타무즈"를 간단히 서술 하는 것으로 대신 하고저 한다.
엘: 모든 신들과 인류의 아버지, 모든 피조 물의 창조자, 또는 황소로 알려 짐. "렐"산에 살며 술을 많이 마심. 젊은 시절 두 자매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아 자손을 본다. 사막에 피난처를 장만 하여 온 식구가 그 곳에서 8 년을 보내기도 한다.
바알: "엘"의 아들, 생식의 신, 구름을 모는 자, 번개와 천둥의 신, 땅의 주 즉 황태자, 강한 용사, 하늘과 땅의 주. "제폰" 산에 산다. 여름에 땅 속 세계에 살고 있을 때는 "라피우"로 불림. "엘"이 편애 하는 "못"과의 치열한 다툼 에서 죽임을 당 하여 지하에서 7 년을 보냄. 다시 돌아 와 "엘"의 은총을 받고 "못"을 물리치며 왕좌를 다시 찾음. 바알 교는 매년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 하였음. 간간이 무시되었었지만, "여호수아"의 사망 이후 (사사기 2:11-13), 고대 유태인 사이 에서도 성행 하였고 한 번도 말소 된 적은 없었음. 왕들과 다른 10 지파 왕실이 바알을 숭배 하였고, 범부들도 이 태양신을 곡식과 농산물의 풍작 요인으로 보고 열렬히 숭배 하였다. (예례미아 7:9) 제사 의식으로 향을 태웠고, 태운 희생 제물을 드렸고, 사람도 제물로 바친 흔적이 있다. 제사장(무당)들은 제단 위에서 바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을 추고, 독송 하고, 칼로 자신들의 몸을 베었다.
타무즈 (한글 판 성경에는 "탐무즈"로 기록 되 있음): "슈메르" 지역에서는 "다무지", "듀무지"로 불림. 양 치는 목자 신으로 농사 신 "엔킴두"를 제치고 태양 신의 아내 "이쉬타"의 총애를 받다. "가인"과 "아벨"의 얘기와 일맥 상통 하고 있다. "이쉬타"가 지하 세계 방문 시, 죽임을 당한다. 신들이 전령을 보내 다시 살리지만, 지하의 여신이 요구 하는 대로 "타무즈"는 "이쉬타" 대신 지하에 남는다. 태양신 "사마쉬"는 "타무즈"를 뱀으로 변화 시키나, 지하 악령은 그를 죽이고 , 나중에 새(Bird)로 다시 살아 났다고 전 해진다. "바알"과 마찬 가지로 생식의 신, 목자, 양 떼들의 주로 불린다. 천국의 문지기다. 만물의 죽음과 재생을 나타낸다. 매년 여름에 죽으며, 그때 세계는 비통에 휩 싸이게 된다. 지하 세계와의 투쟁 끝에 다시 살아 돌아 오면서 기쁨과 생식의 결실을 가져 준 다고 믿어 졌다. 에스겔서 8 장 14 절을 보라. 유태 여인이 "타무즈"의 죽음에 애통 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도니스: 기본적으로 "타무즈" 신앙이 그리스로 들어 가 그리스화 한 신이다. 나무가 쪼개지는 가운데 에서 탄생 하였고, 야산 멧 돼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만물의 죽음과 재생을 나타 내는 신이며, 그 이름은 유태인 ("셈"족)의 언어 아도나이에서 유래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 말로 "아도나이"는 나의 주를 뜻 한다. "아돈"은 주, 주인을 뜻한다. 유태인들 에게는 야훼의 이름을 발음 하는 자체가 신성 모독이었다. 따라서 야훼의 글자가 나오면 대신 "아도나이" 또는 "하쉠"으로 발음 하였다. "하쉠"은 "그 글자"를 뜻 한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칭할 때 "아도나이"로 불렀다.
그 외의 성경 자체에 나타나는 신들을 간략히 보자.
아스다롯 (열왕기 상 11:5, 33): "시돈" 사람들의 여신. "솔로몬" 왕이 숭배 하였음. "바알"의 아내. 부활절, "이스터" (Easter)는 이 여신의 이름 "애슈타" (Ashtoreth, Astarte, Ashtarte)에서 유래 되었다 는 설이 있음.
이시스 (예레미아 7:18 .....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 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 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여기서 하늘 황후 (Queen of Heaven)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나타낸 다고 추정 됨.
다곤 (사사기 16:23, 사무엘상 5:1-7):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 교황의 주교관(물고기 모양의 모자)은 "다곤" 숭배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이 있음.
교황의 주교관과 "다곤"신의 모양을 비교 해 보라.
"다곤"신은 천체 별 자리 중 물고기 시대 (Age of Piscis)를 대표하는 신으로 고대 문명 곳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초기 기독도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물 고기 2마리" 심볼은, 어린 양의 시대에서 물 고기 시대로 넘어 가던 당시,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고 추정 된다.
몰록 (열왕기상 11:7, 열왕기하 23:10, 예레미아 32:35): 어린 아이를 불에 태우는 제물을 요구 하였고. "솔로몬"은 외국 인 아내들을 위하여 "몰록"의 신전을 건립 하였다. "암몬" 족속은 "밀곰" 외 에도 "몰록"을 숭배 했음.
9. The Great Myth of Sun-God by Dr. Alvin Boyd Kuhn
쿤 박사(1880-1963)의 글에서 발췌 함 으로 신화 설 소개의 끝을 맺는다. 쿤 박사 글의 요지는 성서 기록은 문자 그대로 읽혀지 도록 의도 된 것이 아니고, 비유와 은유로 베일에 가려 진 진리를 들어 내고자 함에 있다는 것이다.
" 불이나 태양을 숭배 하는 미신들에 대해 듣고저 여러분은 이 자리에 왔다. 우리는 신화를 꾸민 이야기나 거짓으로 치부 한다..............
하지만 고대인들 에게는 신화는 지식을 탐구 하는 도구 였다. .....
그들은 신화가 꾸민 이야기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면으로는 꾸민 이야기 이지만, 내면에 견고한 진리의 실체를 갖고 있는 것 그것이 신화이다.......
태양 신이 세계 전역에서 숭배 되었음은 자명 하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호러스"...... 아시리아의 "타무즈", 바빌론의 "마둑", "사곤" .......페르시아의 "미트라", "아후라 마즈다" ....... 그리스의 "올피우스", "디오니서스", "아킬레스", "헤라클레스" ... "프로메테우스", 인도의 ... "크리시나", "부다", 티벳의 "보디사트바" 등등...
성경 상의 대부분 족장들, 선지자들, 제사장들 또 왕들도 태양신 적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의 성격이 전형 적인 그리스도의 성격을 반영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라는 인물이 실제 인물이건 아니건 (신학자 간에도 많은 논란이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이 기다란 태양 신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는 하나의 이름일 뿐 이다.........
이 태양 신들의 성격.....그 것 들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 일까? ...
그 것들은 생명의 발전이라는 들녘을 통과 해 가는 한 인간, 한 인간의 영혼의 역사인 것 이다. 그 것들은 인생 노정에서 구현 될 수 있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무한한 가능성의 모델들 이다..............................
그것은 유대 땅에 역사 적으로 한 번 오는 것이 아닌, 예 나 지금 이나 항시 오고 있는 신이며, 모든 "인자"(사람의 아들)들의 가슴 속에 충만과 해방을 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시간에 모든 인류에게 오셨다고 말 하지 않고 유대에 한 번 오신 적이 있다고 한다.....................
로고스, 그리스도 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었다. 그 것은 우주의 기운을 지칭 하는 것 인데, 이 철학적인 개념을 기독교는 인간 예수와 혼합 시켰다.
고대 인들 에게는 "독생자"라는 단어가 없었다. 원래 그리스어의 "모노게네스" (monogenes) 에서 잘못 번역 된 것 으로 그 뜻은 "독생자"(Only-Begotten)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 뜻은 아버지가 "홀로 내어 놓은 자식"(Alone-Begotten) 이라는 뜻 이다 ....................
과거의 기록들은 육체적 예수 보다는 영적 그리스도를 강조 하였다...... "실레시우스"는 다음의 시에서 복음 문서를 역사의 기록으로 보고자 함의 부질 없음을 노래 했다 -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수 천 번 탄생 하셨어도, 네 안에서 탄생 하시지 않았다면, 너의 영혼은 쇠 하리.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도 아무리 찾아도 없으리, 만약 네가 네 마음속에 십자가를 세우지 않는다면" - "실레시우스..........
예수라는 이름은 ........ 역사적 인물의 개인적 이름이 아니라 어떤 모델, 모형을 지칭 한다....
예수라는 이름의 기원은 태초의 한 생명이 2 분화 되어서 영과 물질로 나뉘는 과정에서 나왔다. I는 남성 또는 영을 표현 하며 O는 여성 또는 물질을 대표 한다. 여기서 IO가 나오고 ....
고대에서 모음은 상호 교환 되었으므로 IO, IA, IE, IU가 나오고...
I는 당시 모음인 J 와 교환 되어 JA, JE, JO, JU가 나오고, ....
남성과 여성이 결합 하여 아들을 나아 이름이 석자로 되어 IAO, JAH, IEO, JEU, ZUE가 나오고,
우주의 네 모퉁이에서 기인 해 네 글자 이름 IEOU,, JOVE, ZEUS, JEVE, DIOS, 등이 나오고,
일곱 글자 형태에서 JEHOVA, SABAOTH, DEBORAH, DELILAH, SOLOMON등이 나오고.............
예수 Jesus 의 마지막 S는 어디에서 왔나? 이집트의 SA, SE, SI, SU 는 아들, 왕자를 뜻 하는데.... 기본의 두 글자들 IO, IE, JO, JE 에 이집트의 SA, SE, SI, SU를 합 하면 IUSA, IUSE, ...JESU가 되고 ... JESU의 다른 형태 JOSEF 의 마지막 F가 쉰 소리로 변 하여 JESUS가 되고 그 뜻은 신이 내린 아들이 된다.....
구약 성서에 예수의 이름을 가진 20 여명의 태양신 적 인물들....... "이삭", "에서", "이새", "야곱", "예슈", "요아킴", "여호수아", "요나" 등등은 같은 이름의 변형 된 형태들 이다.....
이 외의 태양신 적 인물 들로는 "삼손(태양)", "다윗", "솔로몬", "사울", "아브라함", "모세", "기데온" 등등이 있는데, 그 들의 행동이 태양 신의 성격과 동일 하다...........
우리 안의 태양 신은 태양 빛과 에너지의 영원 함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고 차원에서 볼 때 태양신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최상의 성품은 영광 스러운 태양의 에너지 로써 구성된 썩어지지 않는 몸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째서 이런 소식을 전 하지 않는가?..... 잠깐만..........
성경에는 이러한 개념을 표현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불이다." "하나님은 태워 버리시는 불 이다." "주 하나님은 태양 이시다." "땅에 불을 주러 왔노라". "나는 물로 세례를 주나 그는 성령과 불로 줄 것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요." "너는 세상의 빛이니. 남들이 볼 수 있게 너의 빛을 비추라." "예수, 의로운 태양." "빛이 세상에 오시니." "너의 안에 빛이 있도다." 등등.....................
이 영광의 왕이 누구인가 라고 시편 기자는 묻고 있다....영광의 왕은 우리 안의 태양 영혼(Sun Soul)이다. 영광의 왕은 우리 가슴 속의 신성, 영원 불멸의 태양 신이다....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신 아버지 "홀로 지어 내어 놓으신"......
그 빛이 더욱 더 선명히 더 밝게 비추일 때......... 그러면 우리가 알리라: 우리 자신이 태양 신이며, 고대의 은유(Allegory)가 신화가 아니며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10. Gospel of Thomas(도마복음)은 별도로 구분=>양이 많아 도마복음으로 분리함
II. 예수의 역사적 실체 : 그의 진면목
11. 예수의 역사적 실체
지금 까지 예수는 신화 상의 인물이라는 관점을 소개 하였습니다.
이하에서는 예수의 역사 적 실존을 인정 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 하고저 합니다.
이 들의 연구 결과는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 한다는 점 한 가지만 공통될 뿐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각양 각색의 예수를 재 구성 해 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래 발굴된 관련 문서들의 40 % 이상이 금 세기에 이루어졌 음을 상기 하십시오. 보다 많은 자료와, 최 첨단의 정보 처리 능력을 겸비한 이들의 노력을 "교리"라는 명분 아래 간단히 무시 해 버려도 될런지요....
먼저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관한 이들의 논리를 간략히 보고 왜 예수의 역사적 존재를 부인 할 수 없는가 보겠습니다. 다음은 18 세기 부터 시작된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추구 하는 움직임에 관한 간략한 역사를 더듬어 봄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이어서 학자들의 의문을 촉발시킨 공관 3 복음 (마태, 마가, 누가)의 문제와 그와 연결된 Q 문서를 설명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 학회에서 그려 내는 예수의 모습을 간략히 보겠습니다.
부록에서는 예수에 관한 유태 전통 상의 한 문서를 소개 함으로 유태인들의 관점을 엿 보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전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최근의 관점 소개에 저의 목적이 있습니다. 탐구의 여행을 떠나실 분들을 위한 이정표 정도로 생각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논리와 이성으로 따져 보아도 예수가 신화적인 인물 일 수 없다는 이유를 보시겠습니다.
12. 예수 실존의 실마리
아무리 뒤져도 예수 실존에 관한 증거가 없었음을 밝혔다. 조세푸스의 진술에 조작이 있었음도 밝혔다. 하지만 조세푸스 건에 대해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음도 말씀 드렸다. 이제 그 부분을 보자.
먼저 조세푸스 연대기의 예수 인용귀를 다시 보자..
"그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이적도 많이 행하고 훌륭한 선생이어서, 사람이라고 여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사람으로 분류 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현인 이었다. 많은 유태 인과 이방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심복 하였다. 그는 구세주 였던 것이다. 우리가 빌라도 총독을 움직여 그를 십자가에 매 달았지만, 그는 3 일만에 부활 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 졌다. 크리스토의 이름에서 연유된 크리스천이라는 무리들이 이런 연고로 오늘 날 까지 소멸 되지 않고 있다."
이제 10 세기 경 아랍 역사 학자 "아가피우스"가 인용한 "증언" 구절을 상기 구절과 비교 해 보자. "아가피우스"는 아랍인 기독교 인 이었으며 추기경 이었다.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유태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태인 "조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 였다. 많은 유태 인과 이방 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 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구세주 였던 것 같다"
"아가피우스"의 인용귀는 1) 예수를 현자 (Wise Man)로 부르고 있다. 즉 신이 아닌 사람으로 거침 없이 호칭 한 것이다. 2) 예수의 부활도 제자들의 보고에 의한 것 이라고 적고 있다. 즉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소문에 의거 했다는 것이다. 3) 예수가 아마도 구세주 였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즉 예수가 구세주 였다고 단정 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인용 귀는 보다시피 기독도가 적어 넣었다고 하기엔 훨씬 덜 의심이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세푸스의 연대기 원본엔 예수에 관한 그 어떤 인용이 있었다는 것이 무게를 받게 된다. 물론 그 인용구는 예수가 기독도가 묘사 하는 대로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 이지만, 여하튼 예수는 실존 했었으며 조세푸스는 어떤 식으로든 예수를 언급 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골드버그의 연구를 들여다 보자.
1995 년 "골드버그"는 "조세푸스의 증언"과 누가 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예수가 부활 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 한다. 이 공통점을 분석 연구하여 "증언"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 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 한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원본 그대로 라면, 그 자체로 예수의 실체적 존재는 객관적인 역사 학자 조세푸스에 의해 증거 되는 것을 뜻 한다.
누가 복음 24: 13-27: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
이야기 중 예수의 행적과 성품을 묘사 하는 구절만 집약 하면 다음과 같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라.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 대해 그 말씀과 행실이 힘이 있으니 선지자 였더라. 그러나 제사장들과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를 재판에 넘겨 처형 한 바라.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 할 인물 이었기를 우리는 고대 하였도다. 이 일이 있은 지 3 일 만이니....(중간의 여인의 이야기 빼어 버림).... 그러자 그가 그 들에게 말했다. "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기가 그리도 힘 드냐? 메시아가 필히 고난 받으시어 영광 받으실 것을 모르느냐?" 그러고 그가 모세를 시작으로 하여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경전에 나타나는 자신에 관한 일들을 풀어 설명 해 주더라."
위 구절은 19 절 부터 27 절 까지 온전히 인용 한 것이다. 중간의 어느 여인이 빈 동굴을 발견 하는 이야기는 예수의 행적과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제거 한다.
상기 엠마오 이야기 중 중요 단어들을 문맥 상의 배열 순으로 컴퓨터에 넣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여타 1 - 2 세기 문서가 있나 찾아 본 골드버그는 깜짝 놀란다. 그의 컴퓨터에는 무지 막대한 분량의 문서들이 그리스 원어로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 중 딱 한 문서가 떠 올랐다. 하필이면 다름 아닌 조세푸스의 증언!
구절 구절을 비교 해 공통점을 보자. 한국 말은 영어나 그리스어를 번역 할 때 형용 사나 부사 구등의 순서가 바뀜을 명심 하고 읽으시기를.
물론 두 문서의 비교는 고대 그릭 원어로 이루어 졌다. 편의 상 한국 말로만 보자. 한국 말 번역에서 오는 차이는 영어로 부연 하였음.
많은 부분에서 두 문서가 똑 같은 고대 그리스의 단어를 쓰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 않는 부분들도 원칙적으로 같은 뜻의 메시지를 전달 하고 있음을 보시라.
똑 같은 단어들이 같은 배열 순으로 두 문서에 나타난 것에 놀란 골드버그는 연구를 진척 시켜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증명 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통계학의 도구를 이용하여 이 공통점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나아가서 2 세기의 누가 복음 기자가 조세푸스의 증언을 베껴 썼을 수 없음을 유추 해낸다. 결론으로 이 공통점은 조세푸스가 증언 구절을 쓸 때에 엠마오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예수에 관한 어떤 문서 또는 구전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증언 구절을 썼다고 주장 한다. 조세푸스는 다른 문서를 토대로 저술 할 때에 그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문체를 들어 내곤 하는데, 문제의 증언 구절에서도 이 점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의 말을 보자.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서 종종 말씀 또는 복음이라 불리던 이 유태인 구전을 문서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 우연이 아니인가?
그는 먼저 예수의 행적과 성품을 묘사하는 모든 구절들을 모으고 상기 두 구절과 길이가 비슷한 것 들을 다시 간추렸다. 이렇게 해서 남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고린도 전서 15:3-8, 마가 복음 10:32-34, 누가 복음 24:18-27, 사도 행전 2:22-36, 3:13-16, 5:30-32, 10:36-46, 13:23-41, 초대 교부 "저스틴"의 첫 번째 변증(First Apology)31, "이그나티우스"의 저서중 To the Trallians 9, 마지막으로 사도 신경 (Old Roman Creed)을 그의 분석에 사용 하였다. (전부 그리스 원어로 되어 있음)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의 행적과 그의 품격을 논 하고 있는 것 들이다.
이 모든 문서를 컴퓨터 처리 하여 각 문서의 조세푸스 증언과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추출 해 내고 그의 상관 관계 지수 및 오차 범위를 추출 해 내었는데 엠마오 이야기의 상관 관계 지수는 0.68을 기록 하였다. 여타 다른 문서들은 낮게는 -0.21 (사도 행전 13) 부터 가장 높은 것이 마가 복음으로 0.31 을 기록 하였다. 평균 관계지수가 0.06 임을 감안할 때, 조세푸스의 증언과 엠마오 이야기는 범상치 않은 관계에 있는 듯이 보여 지는 것이다.
또한 엠마오 이야기에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구절과 "그는 구세주 였다"라는 구절이 없는 것을 보시라. 골드버그의 발견은 조세푸스 증언에 관한 부분 위조설을 강력히 시사 하고 있다. 즉 조세푸스는 저술 원본에 예수를 인용 하였었고 그 것에 후세의 기독도가 동 두 구절을 첨가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역사적 실체는 우리의 이 골치 아픈 역 사학자 조세푸스에 의해 증거 되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의 연구는 예수 실존의 증거로써 유용한 것 이지만 이러한 연구도 행하여 진다는 것을 알린다는 취지에서 언급 하였다.
1 편에서 예수 실존의 그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했는데 골드버그의 발견 외에 무슨 증거들이 있다는 것인가?
재구성파들은 그 증거들을 다름 아닌 4 복음서 및 기타 외경에서 찾아 낸다.
4 복음서가 역사 기록물로서 는 그 가치에 논란이 많다고 했는데 그 안에 무슨 증거가 있을까?
이제 여러분들이 유능한 수사관이라고 상상 해 보자. 1999 년 1 월 1 일 김 모씨의 집에 침입 하여 김 씨를 결박 하고 금품과 현금을 갈취 했다고 믿어지는 용의자 박 모씨를 심문 한다고 가정 하자. 당시 강도는 변장을 했고 복면을 썼었으므로 그의 얼굴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범행이 밤 10 시 경에 일어 났고 범인이 남자 였다는 것 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이며,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박모의 신장과 목소리, 체형이 범인과 아주 흡사 하다는 것이다.
박모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 하면 여러분은 당연히 그의 알리바이를 요구 할 것이다. 박모는 범행 시간 대의 본인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진술 한다: " 그날 밤 9 시 경에 집을 나와 김 모의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한 아주 작은 웅덩이가로 훔친 차를 몰고 갔다. 그 곳에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조용히 앉아 달 빛을 받으며 명상을 하다가 훔친 차를 원래 장소에 돌려 놓고 밤 11 시 경 귀가 하여 잠을 청 하였다."
물론 용의자 박 모의 진술을 뒷받침 해 줄 제 3 의 목격자는 없다고 생각 하자. 즉 박 모의 진술 외에는 그날 밤 9 - 11시 사이의 박모의 역사적 행각에 대해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이다.
수사관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지적도 있는 터라 박모의 진술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객관적인 제 3의 인물이 웅덩이가에서 그를 보았던지 하면 박모의 알리바이는 쉽게 증명 될 터이지만.
하지만 여러분이 좀 더 유능한 수사관이라면 박모의 진술을 전부 거짓으로 돌리고 무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진술로부터 풍부한 정보들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 모의 집과 반대 방향에 웅덩이가 있는지, 박모가 운전을 할 줄 아는지, 차량 도난 신고는 들어 왔는지, 박모가 평소 소주를 즐겼는지, 그 날 밤 과연 그 지역에 구름이 없어서 달빛이 환 했는지, 평소 박모가 명상을 즐겼는지 등등에 대해 더 깊이 탐문 하여 볼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범행 시간 대에 박 모가 웅덩이 가에 있었느냐 하는 질문에 직접 적인 대답을 주지는 못 하지만.
불행히도 여러분은 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얻을 수 없었다. 작은 웅덩이는 전 날 있었던 지진으로 매몰 되었고 그 지역 주민 중 아무도 그 자리에 웅덩이가 있었는지 기억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박모는 심문 직후 전신 마비에 실어 증세를 보여 그의 운전 실력을 시험 해 볼 수도 없게 되었고, 더구나 박모가 알고 지낸 인물들이 한 명도 없어서 그의 인적 사항도 전혀 오리 무중이고.
자 이제 여러분은 기로에 섰다. 피해자의 불 분명한 지적만 가지고 박모를 기소 할 것이냐 증거 불 충분으로 그를 방면 할 것이냐?
이제 수사관의 입장을 벗어 나서 한번 생각 해 보자. 당신이 관찰 한 바, 박모는 평균 지능과 교육 수준을 지녔고, 정신 병자가 아님은 확실 하다고 하자. 그리할 때 몇 가지 매우 확률 높은 가설들을 추출 해 낼 수 있다.
1. 박 모는 상기 진술을 기소를 면 하기 위해서 하였다. (진술의 배경과 목적)
2. 박 모는 진술 당시에 웅덩이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웅덩이의 존재가 그의 착각으로 인 한 것이 건 아니 건. 곧 있을 현장 검증에도 불구 하고 박 모가 있다고 믿지도 않는 웅덩이 운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박 모는 최소한도 소주라는 술을 알고 있었고 마셔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4. 박 모는 최소한도 명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명상을 실행 하여 보았을 확률이 크다.
웅덩이, 소주, 명상 등등이 평소 박모의 내면 세계에 있었기에 그러한 진술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모의 진술 중 그는 다른 또 하나의 범행을 고백 하고 있다. 즉 차를 훔쳐서 타다가 다시 원 위치로 회복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이 차를 타고 호숫 가로 갔는지 김모의 집으로 갔는지 는 신경 쓰지 말자. 아무도 모르므로.
박 모는 그 날 차를 훔쳤을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상반되는 증언을 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해도 될 테인데. 이러한 이유로 상기의 이율 배반적인 진술은 제 3 의 목격자가 없이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 곤 한다. (이율 배반 적 진술)
상기와 같이 박 모의 진술을 그 진술 배경과 목적에 비추어 세심히 들여다 보면 부분적인 사실들을 유추 해 낼 수 있다.
이제 또 다른 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어느 날 밤 한 두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대략 1 - 3 년 간에 일어 난 일로써 진술자도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다. 진술자들은 한결 같이 예수라는 30 대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언행을 기록 하고 있다.
이 진술들의 주요 목적은, 누가 썼던 간에, 예수라는 인물이 신의 아들 이었고 따라서 그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이 가능 하다는 것을 설파 함에 있다. 예수가 실제로 존재 했다는 것을 증명 하고자 함이 주요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가 실제로 존재 했었는가 하는 의문은 접어 두고 이 진술들(4 복음서)을 보자. 이들의 진술 목적이 예수라는 청년이 우리의 구세주 였다 라는 것을 설파 하고자 함에 있음을 잊지 말도록.
이율 배반적인 진술에 특히 주목 해보자.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
요한은 신의 아들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를 신의 아들이라 주장 한 적이 없다. 이제 이 인간에게 신의 아들이 머리를 숙여 세례를 받는다.
이 세례 받는 장면의 진술이 전부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 해 보자. 여러분은 유능한 수사관으로 제 3 의 증거가 없는 한 진술을 인정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전부 만들어 낸 이야기라기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1. 신의 아들, 우리의 구세주가 한 인간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무슨 목적으로 꾸며 내었을까? 히브리 전통에서나 지금이나 안수 세례는 손 윗 사람이나 영적 지도자가 밑에 사람에게 행 하는 것이다. 이왕 꾸미는 이야기라면 요한이 구세주 예수 앞에 엎드리게 쓰는 것이 진술의 목적과 더욱 부합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요한이 예수보다 더 차원 높은 영적 지도자란 말인가?
2. 요한의 세례는 회개 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 웠노라"라는 요한의 메시지를 기억 하시라. 그렇다면 예수, 이 신의 아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회개 할 거리가 있나?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를 완전 무결한 신의 성육화로 묘사 하고자 했는데, 왜 이런 쓸데 없는 장면을 집어 넣었을까? 실제 사실로 일어났던 일 이기에 생략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각 복음서에는 후에 세례 요한을 격하 시키는 보충 진술이 이곳 저곳 보인다. 요한이 사람중엔 으뜸이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는 등등...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 하고 4 복음서 모두가 이 이율 배반 적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은 예수라는 사람이 요한과 만나서 실제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라고 묘사되는 그 어떠한 한 인물이 역사적으로 존재 하였다는 것을 시사 한다고 하겠다.
요한은 조세푸스의 저술에도 나타나고 있고 역사상 인물로 인정 되고 있다. 또한 그가 에쎄네 파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 이에 따라 예수는 에쎄네 파에 속한 인물 이었다는 가설도 나올 수 있고 실제로 혹간의 신학자들이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
모든 것이 가공의 이야기라면 왜 하필 예수라는 이름을 썼을까?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 에서 유래 되었고 그 뜻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라는 것은 1편에서 밝혔다. 왜 하필이면 예수인가?
복음서 기자들의 중요 진술 목적이 예수가 신의 아들 임을 선포 하는 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러기에 그 들은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을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해석 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성경 곳곳에 나타나는 "... 이러한 일들은 옛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하는 대목들이 바로 이 것이다. 아시다 시피 상당히 빈번히 나타나는 구절이다.
이 옛 선지자의 말씀 중 이사야를 보자. 이사야 서는 예수도 직접 인용 했다고 전 해지며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 되었다. 헌데 유명한 이사야의 구절은 메시아의 이름이 "임마누엘" 이라 불리 우리라 썼다.
이왕 소설을 쓸 바에는, 또한 권위 있는 옛 선지의 예언에 따라 각색 하고자 할 바에는, 아예 처음 부터 이름을 "임마누엘"로 정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당연한 행동이 아닐까? 나중에 억지로 임마누엘과 비견 시키느니 처음 부터 이름만 바꾸면 되었을 것을.
따라서 어떤 청년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예수일 수 밖에 없었고 아무리 소설을 쓴다 해도 이 실제 인물의 이름까지 고쳐 낼 수는 없었다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형제, 누이들: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 에게 나시고 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남아 계셨다는 것이 캐톨릭의 전통이다. 헌데 왠 피 붙이들이 등장 하는가? 예수의 형으로 알려진 야고보는 예수보다 두 살 위였다는 설이 있는데, 마리아는 어찌 처녀 였는지. 후에 어느 교부는 이 문제를 풀기를 예수의 형제가 이복 형제 였다고 하였다. 즉 요셉이 이혼 후 마리아와 재혼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발생 할 줄 뻔히 알면서도 예수의 식구들을 등장 시켜야만 한 것은 그 이야기가 부분적 이나마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 고침의 실패:
성경 상에 예수는 많은 병 고침의 이적을 행 하신다. 하지만 모든 이가 병이 나은 것은 아니다. 이왕지사 신의 아들의 능력을 보여 주기를 원 했다면 왜 실패한 경우의 얘기를 집어 넣었을까? 실제 예수라는 청년이 있었고 그가 실제 병을 고치고자 시도 했으며 실패도 했었다는 것이 실제로 일어 났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렇듯이 말이 않 되는 이야기 같이 보이는 중에도 부분 부분 역사적 사실의 편린을 유추 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재 구성파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탐구 함에 있어서, 성경 및 외경 이외의 것 들에서 그 증거를 찾고자 하는 짓을 바보 스럽게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적 증거의 편린들이 너무나도 풍부히 성경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윤색 되고 왜곡된 부분을 제거하여 예수의 진 면목에 좀 더 가까이 가기만 하면되지, 이방 신화나 고고학 적 유물들을 들 먹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논리적 탐구에서 숫자가 중요 할 수는 없지만 예수의 실체에 관한 탐구 분야에서 신화 파는 극소수이고 대다수가 재구성 파임을 알려 드린다. 물론 재 구성파들은 예수가 실존 인물 이라는 것 에만 동의하고 예수의 진면목에 관 하여는 다양한 의견들을 도출 해 내고 있다.
이제 예수의 진면목을 찾아 헤맸던 인류의 과정을 간략히 돌아 보자.
13. 탐구 추적의 간추린 역사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탐구하는 사람들은 18 세기 말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당시 꽃 피우던 합리 주의와 성경 보편 화의 산물로 볼 수 있다.
허만 라이마루스 (Hermann Samuel Reimarus): 그의 저술이 그의 사후에 독일에서 발간 되다. (예수와 제자들의 목적 - Aims of Jesus and His Disciple). 허만 교수는 당시 핍박을 두려워 하여 사후 출간을 원 했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 하였다.
1. 실제 예수는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2. 이 차이점은 제자들이 각자의 예수관을 기록 했기 때문이다.
3. 예수는 유태인 이였기에 그의 말은 먼저 유태인의 관점에서 보아져야 한다.
4. 예수는 유다이즘을 지키고자 했으며 새로운 종교를 시작 할 의도도 없었고 구약의 율법을 타파 할 생각도 없었다.
5. 예수는 아무 기적도 행 하지 않았다.
6. 예수는 자신을 정치적 구원자로 여겼다.
7. 예수의 천국(Kingdom of God)에 관한 개념은 당시 유태인들의 메시아 도래의 기대와 부응한다. 그 기대는 무었이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8. 예수의 처형 후 제자들은 그의 시체를 훔치고 그의 부활을 선포 하였다.
칼 바하르트 (Karl Friedrich Bahrdt) (1741-1792): 그는 예수에 관 하여 가상 전기를 썼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에쎄네 집단에서 자랐으며 그리스 선생의 지도 아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 하였다.
2. 그는 아무 기적도 행 하지 않았다.
3. 후에 에쎄네파의 중요 멤버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죽음을 거쳐야 함을 명령 받는다.
4. 누가와 니고데모가 공모하여 무덤(동굴)에서 예수를 구해 내고 누가의 약물 치료로 예수는 건강을 회복 한다.
5. 몇 몇에게 몸을 나타내 보이신 후 에쎄네파 근거지로 은퇴 하며 늙어서 돌아 가신다.
데이빗 스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ss): 1835 년 예수의 생애에 관해 책을 발간 하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행적의 일차 목격자가 아니며 그들이 쓴 내용은 전부 한 다리 이상 건너 전해 들은 것이다.
2.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 이전의 모든 이야기는 꾸며진 이야기 이다.
3. 12 제자를 모집 하시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4. 아무 이적도 행 해지지 않았다.
5. 요한 복음은 전체가 꾸며진 이야기 이다.
브루노 바우어 (Bruno Bauer) (1809-1882):
1. 마태와 누가는 마가 복음을 베꼇으며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첨가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생애에 관한 지식은 목격자가 아닌 마가 한 사람에게만 의존 하게 되므로 함부로 믿을 수는 없다.
2. 요한 복음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가 한 군데도 없다.
3. 예수 탄생 이야기는 문학적으로 꾸며 낸 이야기 이다.
4, 유태 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으며 예수도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수 기독도들 에게는 황당 하게 조차 들리는 학설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 했는데, 이러한 예수 실체의 탐구 노력을 부질 없다고 결론 내린 학자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실체는 발견 될 수 없는 것 이었다. 그 중의 대표가 우리도 잘 아는 슈바이쳐 박사 이다.
알버트 슈바이쳐 (Albert Achweitzer): 1906 년 오랜 연구 끝에 "역사적 예수의 추적 -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을 발간 하다. 요지를 본다.
1. 이 막대한 추적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2. 발견될 만한 어떠한 예수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정보가 없다.
3. 현대 신학이 그려내는 예수의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논리적, 비평적으로 탐구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를 종말 론자로 인식 하였다. 따라서 예수의 실제 언행을 밝혀 낸다고 해도 그것은 오직 당시 상황에 만 적용 되는 시한부 적 윤리였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별 도움이 않된다고 결론을 내린 박사는, 신학과 음악계의 명성과 성공을 팽개치고 아프리카로 의료 선교를 떠난다.
슈바이처 박사 이후 새로운 관점이 부상 하는데 그 요지는 기독교가 선포 하는 메시지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역사적 실체 탐구의 결과가 어떠하던 기독교의 메시지는 그와 상관없이 유효 하다는 것 이었다.
루돌프 벌트만 (Rudolph Bultmann): 1920 년 "예수와 그의 말씀 - Jesus and His Word) 발간 하다.
1. 기독교의 메시지는 결코 역사적 고증으로 확인 되지 않을 것이다.
2. 이 메시지가 신화의 형태로 보존 되었으므로 요한 복음이 가장 뛰어 난 지침서이다.
3. 예수 실체의 추적은 불 가능하고, 의미가 없고, 적합 하지 못하다.
벌트만은 예수의 생애와 인격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결론 지었고 이 결말을 매우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 했다. "기독교적 삶은 인격 향상이나, 사회 구조의 개선, 또는 세상을 더 좋게 계발 하는데 있지 않다. 기독교적 삶은 바로 세속으로 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히틀러 암살 기도로 많은 지성 인들 에게 도전을 던져 주었던 본 회퍼의 책이 1960 년 출간 되었다. (Christ the Center)
1. 복음서의 예수와 바울 서신에 나타나는 예수를 구분 하고자 하는 진보 신학자들의 노력은 역사적 으로나 교리적 으로나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2. 우리가 만약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발견 한다면 오랜 세월의 믿음이 환상 이었다는 것이 증명 될 것이다.
칼 바르트 (Karl Barth):
1. 역사적 실체의 탐구가 우리의 믿음에 하나도 보태 주는 것이 없음에 그는 본 회퍼와 전적으로 동의 하고 있다.
2. 이러한 추적들은 끽 해야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어떻게 인식 하였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줄 뿐 이다.
1970 년 대 이후 이 추적의 노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든다. 고고학, 역사학, 문서학, 사회학, 인류학 등등 모든 분야의 지식 체계를 총 망라하는 분석이 가능해 진 것이다. 또한 이시기에 상당한 고고학 적 발굴들이 결실을 맺었으며 이 풍부한 자료와 발전된 방법론으로 이 추적은 새로이 꽃을 피우고 있다.
최근의 주장들을 간략히 보자
윌슨 (A.N. Wilson) - Jesus: A Life (1992)
1. 엄격히 말해 예수의 실체를 발견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2. 1 세기경의 유태인이 자신을, 삼위 일체의 성자로 자칭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을 메시아로 자칭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3. 예수는 여인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 했으며 아마도 결혼 하였었을 것이다.
4. 유태 인이라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 하셨듯이 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유태인은 이러한 만찬 모임에 참석 조차 않 했을 것이다.
5. 예수는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6. 예수가 사회 질서를 문란 시켰다는 증거는 전무 하다.
쟌 크로산 (John Crossan) - The Life of Jesus (1994)
1. 예수는 유태 인이었다.
2. 그는 농부였다.
3. 중류 계층의 방랑 족, 히피 족 (거지 철학자?) 이었다.
콜린 크로스 (Colin Cross) - Who Was Jesus? (1970)
1. 예수는 종교적 천재였고
2. 달통한 신학자였으며
3. 지성적이며 사변적이었다.
4. 예루살렘의 처음 열 명의 추기경 들은 예수의 친족 후손들 이었다.
데스몬 스투어트 (Desmond Stewart) - The Foreigner (1981)
1. 예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하여 그 곳에서 성장 하였다.
2. 후에 갈릴리 지방에 외국인으로써 왔다.
웰스 ( G. A. Wells) - Did Jesus Exist? (1975)
1. 예수는 존재 하지 않았다. 바울의 종교를 설명 하기 위해 이집트의 오시리스 처럼 꾸며져 낸 인물이다. 혹은
2. 예수는 존재 했다. 하지만 아무런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마커스 보그 (Marcus Borg) - Jesus Seminar의 일원
1. 예수는 아마도 공산주의자 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현존 하는 악의 근원을 개인적 차원에서 보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 했기 때문이다.
지금 까지 200 여 년에 걸친 추적의 과정을 간략히 보았다. 예수가 공산 주의 자 라는 둥, 걸식 하는 방랑 족 이었다 는 둥 별로 마음에 안드는 얘기들도 수두룩히 나와 있다. 사족으로 하나 덧 붙인다면 각자 그려내는 예수의 모습이, 저자들의 시대적 요구와 각자 개인들의 취향을 벗어 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추적의 과정에서 학자들이 직면 했던 공관 3복음의 문제 (Synoptic Problem)을 보며 우리의 이해를 증진 시키자.
14. Synoptic Problem
추적의 주역들이 복음서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서, 공통적으로 몇 가지를 발견 하였다.
1. 요한 복음은 나머지 세 복음과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른 문서임을 발견 했다. 쓰인 단어나, 예수 행적의 순서 등등이 나머지 복음서들과 전혀 틀린다. 예수 탄생, 산상 수훈, 12 제자 이름, 최후의 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주 이야기 등이 요한 복음에는 없다. 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가 예루살렘을 네 번이나 방문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예수 사역의 본거지를 갈릴리가 아닌 주대아로 잡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이적과 징표를 강조 하는데 나머지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중시 하고 있다. 대다수가 요한 복음이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행적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영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 한 문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영적 복음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2. 나머지 세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단어와, 비슷한 사건 배열 순서 및 비슷한 주석을 공유 하고 있다. 따라서 세 문서를 함께 엮어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공관복음"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공관(Synoptic) 즉 함께 읽는다는 뜻으로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복음을 지칭 하는 말이다.
비슷한 단어: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이삭을 주어 먹는 제자들의 행동에 관한 논란을 다루는 구절을 보라. 마태:12:1-8, 마가:2:23-27, 누가:6:1-5. 거의 똑 같은 어휘들을 쓰고 있다. 요한 복음에는 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심문 받는 장면: 마태 21:23-27, 마가 11:27-33, 누가 20:1-8. 이 사건 역시 요한 복음에는 없음.
비슷한 사건 배열 순서:
공관 복음의 사건 배열은 아래와 같이 공통적으로 진행된다.
서문 - 갈릴리에서의 가르치심 - 예루살렘 입성 -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치심 - 십자가 처형 - 부활이 그 순서이다.
반하여 요한 복음의 순서를 본다.
서문 - 그리스도의 선포 - 비 신자들 과의 충돌 - 믿는 자들 과의 관계 - 처형과 부활 - 종언
비슷한 주석:
주석이란 복음서 기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괄호 속에 달아 놓은 것을 말 한다. 이 주석의 어휘도 매우 흡사 한 것이다. 요한 복음에는 주석이 전혀 없음. 비슷한 주석의 예를 보라. 마태 8:28-29, 마가 5:1-8, 누가 8:26-29
이러한 공통점들은 어떻게 발생한 것 일까? 서로가 서로의 것을 베낀 것 일까? 아니면 어떤 독립된 초기 문서나 구전의 전통을 토대로 쓰여진 것 일까? 예수는 아람어로 말씀 하셨는데 그리스어로 쓰여진 공관 복음들이 똑 같은 그리스 어휘들을 쓰고 있으니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님이 분명 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흡사한 곳은 너무나도 흡사한 데, 서로 간에 상치되는 부분은 역시 너무나도 상치된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치 되는 것의 예:
마가는 예수 탄생과 성장을 언급 없음. 마태와 누가에는 있지만 둘이 전혀 다른 얘기를 함.
마가에는 산상 수훈이 없음.
갈릴리에서의 행적 마태 14:22-16:12, 마가 6:45-8:26 이 누가에는 없음
마태와 누가 간의 예수 족보의 상이점.
등등 타협 될 수 없는 점들이 존재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흡사 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상치되는 것, 이것이 어떻게 가능 했는지 하는 의문이 즉 Synoptic Problem 이다.
흡사한 곳은 너무나 흡사 하기에 각각이 독립적으로 썼다고 유추 하기에는 자명한 모순이 들어 난다. 하지만 틀린 부분은 너무 틀리므로 각각이 다른 정보에 의해 썼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 모순 스러운 현상에 직면한 추적자들은 나름 대로의 해석을 내어 놓는다. 주로 세 가지 해설이 있다. 즉 공관 복음 기자들이 1)구전의 전통에 의거 하였다는 설, 2) 상호간 참조 하였다는 설, 3) 독립된 어느 초기 문서에 기초 하였다는 설 들이 그것이다.
구전 (Oral Tradition): 공관 복음 기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예수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썼다는 설. 하지만 이 가설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구전은 분명히 풍부한 정보를 품고 있었을 텐데 이 많은 주제 중 어떻게 똑 같은 주제를 골라 똑 같은 사건 배열 순으로 똑같은 그리스 어휘로 집필 할 수 있었 겠는가? 예수는 아람어를 썼음을 명심 하시라
상호 참조설: 먼저 한 기자가 집필한 후 두 번째 기자가 그것을 토대로 두 번째 복음을 집필했고 마지막 기자가 앞의 두 복음을 참조 하였다는 설. 구전 전통설의 약점을 보완 하고자 하는 설이다. 성 어거스틴은 집필의 순서를 마태 - 마가 - 누가 의 순으로 보았고 이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배열 순에 반영 되어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마가가 제일 먼저 쓰여졌다는 설이 무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순서로 쓰여졌던 간에 뒤에 쓰여진 문서가 더욱 자세하고 완전한 구절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즉 각 복음은 각각이 다른 것에는 없는 오리지널 구절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어떠한 순서의 배합에도 구전 전통 설을 영입하여야만 설명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호 참조설의 약점이다.
초기 문서설: 독립된 어느 초기 유태 문서에 기초 하였다는 설. 위의 두 가설과 마찬가지로 공관 복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해 주지 못 한다. 다른 것은 제껴 놓더라도 공관 복음 기자들의 집필 시 정보들이 문서화 되었다는 유추가 무리라는 것이다.
이제 까지 공관복음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 해결 하고자 생각하는 틀에 대해 설명드렸다.
이제 "스티븐 칼슨" (Stephen C. Carlson)의 견해를 보며 정리 한다.
공관 복음의 내용: 마가의 모든 것이 마태에 있고 마가의 2/3 가 누가에 있다. 이 공통 분모를 삼원 전통 (Triple Tradition)이라 한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에 없는 것도 쓰고 있다. 이중 마태와 누가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부분을 이원 전통 (Double Tradition)이라 한다. 이원 전통의 내용은 주로 예수의 말씀들로 되어 있다
사건 배열의 순서: 배열 순서의 일치는 상호 참조설 내지 초기 문서설이 맞는 것 임을 시사 하고 있다. 구전 전통설은 빛을 잃는다. 3원 전통과 2원 전통 간에는 배열 순서에 관해 틀린 양상이 보여 진다.
3원 전통: 3 복음이 매우 흡사한 배열 순을 보인다. 마가와 상치 되는 부분에 관하여 마태와 누가는 역시 서로 상치 되며 공통 분모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마가가 중간 역할을 했다고 여겨 진다. 마가가 중간 다리 역할을 했을 경우는 네 가지로 상정 해 볼 수 있다.
1) 마가가 먼저 쓰고 마태와 누가가 독립적으로 마가를 참조 했다 (마가 우선설 Markan Priority)
2) 마태가 먼저 쓰고 다음에 이를 기초로 마가가 쓰고 후에 누가가 마가를 기초로 했다. (성 어거스틴의 주장 - 마태 우선설)
3) 누가가 먼저 쓰고 다음에 이를 기초로 마가가 쓰고 후에 마태가 마가를 기초로 했다. (소수의견)
4) 마가가 마태 누가 두 복음서를 하나로 묶었다는 설.
2원 전통: 마태와 누가의 공통 분모 중 마가에는 없는 것. 여기에는 배열 순서의 동일성이 미약하다. 따라서 마태와 누가는 독립적으로 구전의 Q 전통을 따랐다. 하지만 미미 하나마 배열 순서의 동일성이 감지 되므로 문서화된 Q 전통을 따랐다는 학자도 있음. Q 전통을 거부하는 학자들은 단순히 누가가 마태를 참조 하였다고 봄.
"칼슨"은 나아가 공관 복음 문제의 몇 가지 해결 책들을 요약 한다. 그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두 가지 자료설 ( Two Source Hypothesis)을 소개 한다.
이 두 가지 자료 설은 3원 전통은 마태와 누가가 마가를 자료로 하여 썼고 2 원 전통 부분은 구전의 Q 를 자료로 독립적으로 썼다는 것이다. 즉 마가와 Q 가 공관 복음의 2대 기초라는 것이다. 도마 복음의 발견 이래 Q 의 연구는 더욱 활발해 졌지만 아직 많은 연구를 요구 하고 있다.
이제 껏 본 것은 성경 상에 나타나는 모순들을 어떻게 해석 하여야 할 까 하는데 대한 기초 정지 작업인 것이다.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개괄적으로 다룬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2원 전통의 문제를 다루며 부상한 Q 전통에 대해 보자.
마가 복음에는 없는데 마태와 누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절들이 있음을 얘기 했다. 이중 대략 235 개의 구절들이 그 어떤 한 가지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유추되며, 이 가상의 자료를 Q라고 부르고 있다. Q 란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자료이며 아직까지 이것과 부합되는 어떤 문서도 발견된 적은 없다.
최근의 Q 학자들은 Q 가 독립된 복음서 였을 것 이며 이 Q 복음서를 복원 해 낼 수 있다고 주장 한다.
복원 시 들어 나는 예수의 실체 모습들 중 대표 적인 한 예만을 보겠다. 예수가 거지 철학자 였다는 설이다.
거지 철학자 (Cynic Sage):
이 235 개의 구절 중 예수의 처형, 부활, 빈 동굴을 발견 하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Q 에 나타나는 예수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잣대로 볼 때 비 기독교적 인물 이었다고 유추 한다.
또한 Q 의 거의 전부가 지혜의 말씀 (Wisdom Sayings)을 모집 해 놓은 성격이 짖다는 데서 예수는 에언자 (Prophet)가 아닌 지혜의 선생 (Wisdom Teaher)이었다는 것 이다. 즉 예수는 종말 론에는 관심이 없는 비 기독교적 철학자 였다는 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1 세기 사회 상황을 볼 때 예수를 지혜의 선생으로 보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유대의 풍조는 예언자는 그득 하였으나 알려진 철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지적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 예수는 걸식 하는 철학자, 방랑 하는 현인 (Cynic sage)이였다는 것 이다.
여러분은 그리스의 현인 "디오게네스"를 기억 하실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 좀 쪼이게 비켜 서라고 했던 그 거지 철학자. 그 의 제자들은 방랑 하며 걸식 하고 음식을 주는 자들에게 지혜의 말을 던져 주곤 했다. 로마 시대로 넘어 와서 이 풍조는 다시 부흥을 맞고 요르단 강 동편의 "가다라"라 하는 그리스 풍의 도시에서도 성행 되었다. "가다라"는 갈릴리 호수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거지 철학자의 부류 였다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 하며 지켜야 할 규칙을 주었는데 이것이 이 거지 철학자들의 신조와 일치 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 하라" "오른 뺨을 맞거던 왼 뺨도 내 밀어라"하는 가르침도 사실 걸식 하며 방랑 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영리한 방편 이었다는 것 이다.
Q 에 관한 연구도 방대 하지만 그 만큼 학자들의 결론도 다양 하다. 끝으로 Q 문서를 가정 하지 않더라도 공관 복음의 문제를 설명 할 수 있다는 학자들도 많음을 명심 하시기를.
15. Jesus Seminar
택사스 시골 지역에서 한 때 부흥 강사로 활동 하던 로버트 펑크 ( Robert Funk)의 제창 아래 150 여명의 내 노라 하는 신학 계의 석학들이 모여 들었다. 그 들의 주된 목적은 물론 기독교 교리에 물들기 이전의 예수의 진 면목을 탐구하기 위함 이었다. 예수가 했다고 전 해지는 말씀 중 어느 것이 진짜 예수의 입을 통해 나온 것 인지, 어느 것이 후대 인물에 의해 첨가 된 것 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이루었다.
이 들은 그 들의 연구 결과를 대중을 위하여 미디아에 발표 하곤 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연구 결과가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 된다는 것이다.
보수 주의 진영으로부터 맹 비난을 받고 있지만 로버트 펑크는 그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있다. 기독교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탈 바꿈을 해야 하며 예수 학회가 그 일익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같은 획기적인 전환점도 이루어 낸다는 것이 그의 조심 스러운 희망이요 신념이다.
회원 각각이 정해진 주제에 대해 수 개월 또는 수 년에 걸쳐 연구 한다. 정해진 날에 모이면 이들에게 붉은색, 분홍색, 회색, 검정색의 네 가지 색갈의 구슬들이 주어진다.
각 구슬은 다음을 나타낸다.
붉은색: 확실히 예수가 직접 하신 말씀
분홍색: 예수가 했음직 한 말
회색: 아마도 예수의 것이 아닐 것 같은 말
검은색: 결코 예수의 것이 아닌 말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의 말씀 하나 하나에 각자가 구슬을 던져 투표 하고 이 투표 결과에 의해 그 구절의 진위를 결정 발표 한다.
이 들의 연구에 전제되는 가정들이 있다. 즉 이들은 아래 사항이 맞는다는 전제 하에 그들의 연구를 진행 하는 것 이다.
1.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전설적, 신화적 예수로부터 분리시키는 데에는 공관 복음이 요한 복음보다 더 유용 하다. ( 요한 복음은 예수를 영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재 해석한 책 임을 전기 하였음)
2. 마가가 가장 오래 되었고 마태와 누가는 마가를 참조 했다 (마가 우선설)
3. 마가는 아마도 Q라 불리는 기초 문서를 참조 하였을 것이다.
4. 문서화된 것 보다는 구전 전통과 더 부합되는 구절이 더 신빙성이 있는 구절이다. (문서화 과정은 쓰는 사람에게 본인의 이념을 알게 모르게 삽입 할 기회를 주게 됨을 기억 하시라.)
5. 공관 복음은 문학적인 이야기이지 역사 책이 아니다.
6. 예수는 말세론 자가 아니었다. 즉 그는 임박한 종말을 믿지 않았다.
7.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복음서의 사본이 예수 처형 후 175 년 뒤의 것이고, 사본을 떳던 모든 필경사들이 주석을 달았으며, 후의 필경사들은 이 주석들을 그대로 본문에 삽입 시켰으므로, 우리는 특정한 단어들의 사용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8. 사해문서 ( Dead Sea Scroll)은 별로 도움이 않된다. 예수 탄생 이전에 쓰여 졌으므로.
9. 모든 복음서들이 초기에는 저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통용 되었고, 나중에야 책에 권위를 보태기 위해 유명인의 이름이 붙여졌다. 교부 유세비우스(AD 300) 는 기독교인들은 유명 인이 쓴 책이 아니면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10. 최초의 복음서가 나오기 전에 이미 바울의 글들은 통용되고 있었다. 즉 바울은 복음서를 읽어 본 적이 없다. 바울이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 그의 예수에 관한 추측은 예수 실체를 밝히는 데에 토대가 될 수 없다. (See Chapter 4)
이상 10 가지의 가정이 얼마나 정확 하냐에 따라 예수 학회의 연구 결과의 신빙성도 결정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이제 상기 가정을 토대로 한 그들 연구의 결론을 보자.
그들은 예수가 했다고 전 해지는 말 중 82 %가 사실 예수가 한 말이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많은 성경 구절 중 예수가 진짜로 하신 말씀 이라고 결론 지은 구절들을 보자
1. 마가
12:17 - 황제 (씨저)의 것은 황제에게로 (도마 복음에도 있는 구절 임을 기억 하시라): 마가 중 에는 오직 이 한 구절만 채택 되었음.
2. 마태
5:38-39 - 다른 쪽 뺨을 돌려 대라
13:33 - 밀가루 반죽의 누룩 이야기
20:1-15 - 포도원의 농꾼들 이야기
22: 황제 에게로
주 기도문 중 오직 "...우리 아버지" 만 채택. 산상 수훈 중 "굶주린 자", "가난한 자", "애통 하는 자" 만이 채택 되었고 나머지 "온유한 자", "화평케 하는 자" 등등 은 배제 되었다.
3. 누가
2:20 - 가난하고 굶주리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을지니
6:27 - 원수를 사랑 하라
6:29 - 다른 뺨을 대라, 두 배로 같이 가 주거라, 네 옷을 벗어 주라
10:30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11:2 - 주 기도문 중 "아버지" 한 단어만 채택
13:20 - 누룩 이야기
16:1 - 영악한 청지기 이야기
요한 복음에서는 아무 구절도 채택 되지 않았다
이상 현대 신학 계의 일 부분을 차지하는 예수 실체를 추적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소개 하였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신 독자들이 각자 스스로의 탐구 여행을 떠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기원 한다.
16. Toledoth Yeshu
유태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인식 했는가? 아래의 글을 보시면 기독교의 예수 신격 화에 반발 하여 유태인들이 예수를 얼마나 깎아 내릴려고 했는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이 문서는 6 세기 경 부터 유태인 사이에 유행 했다고 추정 되는 데 현재 최고 본은 14 세기의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히브리 복음 (Gospel of Hebrews)을 풍자 한 것이라고 한다. 많은 유태 전통이 예수의 실체를 부인 하기 보다는 그의 폄하를 꾀하고 있음을 아시라.
3671 년 ( BC 90 경), "아네우스"왕 통치 시, 이스라엘에 불행이 닥쳤으니. 유다 족속의 "요셉 판데라"라는 불미 스러운 자가 있더라 그가 유대의 베들레헴에 거 하더라.
그의 집 근처에 한 과부와 "미리암"이라 하는 과부의 딸이 있었으니. "미리암"은 "요하난"이라는 자와 약혼 한 처지라. "요하난"은 토라에 능통 하고 신을 경외 하니 다윗 왕의 후예더라.
"요셉 판데라"는 매력 적이고 용사의 용모를 지녔으니 어느 한 금식절이 지난 후 "미리암"에게 음욕을 품은지라. 저가 "미리암"의 방문을 두드려 저의 약혼자 "요하난"으로 위장 하더라. "미리암"이 혼전 관계에 호기심을 느껴 저의 의지와는 역행 되게 몸을 허락 하더라.
후에 "요하난"이 오매 "미리암"이 그의 행위가 몹시 낯설음을 알고 놀라니 둘 이서 곧 "요셉 판데라"의 범죄 행위와 "미리암"의 실수를 깨닫더라. "요하난"이 "라반 시몬"에게 가서 이 비극을 고 하더라. 증인도 없고 "미리암"이 이미 임신한 관계로 "요하난"은 바빌론으로 떠나더라.
"미리암"은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저의 오빠 이름을 따라 "예호수아"라 하니 이 이름이 후에 "예수"로 변질 되더라. 8 일만에 그가 할례를 받고 성장한 후에는 지 어미의 손에 이끌려 율법을 가르치는 회당에 출입 하더라.
어느 날 예수가 선생 앞을 지나는 데 머리를 가리지 않았으니 수치스러운 불경 이더라. 이 일로 예수가 후레 자식인지 아닌지 논란이 일더라. 선생들이 경전을 논 하는 데 예수가 끼어 들어 스스로의 경솔한 의견을 내 세우니 "모세"가 "예트로"에게 지도를 받았은 즉 선지자의 으뜸이 될 수 없다 주장 하더라. 이 일로 더욱 예수의 출신 성분에 대해 말이 많은지라. "라반 시몬"을 통하여 저가 "요셉 판데라"의 후레 자식임을 알더라. "미리암"이 이를 시인 하니 소문이 퍼지매 저가 갈릴리로 피신 하더라.
"아네우스"왕이 죽은 후 저의 부인 "헬레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더라. 예루살렘 성전의 주춧 돌이 있으니 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더라. 누구던 이 이름을 아는 자는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이뤄지게 하는 힘을 갖게 되니 선생들이 이를 방지 하고자 성전 입구에 청동 사자를 세우더라. 누구든 이 이름을 본 자에게는 사자가 울부짖으니 그 표호에 이 이름을 잊게 됨이라.
예수가 성전에 들어와 이 이름을 알게 되매 그가 그 이름을 넙적 다리의 거죽을 오려 내고 살 속에 적어 넣더라. 성전을 나갈 쌔 사자가 우니 저가 그 이름을 잊어 버리더라. 집에 와서 칼을 들어 살 가죽을 들어 올리니 저가 다시 그 이름을 기억 하더라.
그 가 이스라엘의 젊은 자 310 명을 모으며 그의 출신 성분을 비웃었던 자들을 권력에 눈 먼자들로 비판 하더라. 저가 선포 하기를 나는 메시아이니 이사야 선지가 예언 하기를 보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자식을 낳을 것 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였다 하더라. 저가 또 다른 경전을 들어 말 하기를 나의 조상 다윗이 나에 관해 이미 예언한 바라 즉 주가 나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는 나의 아들이요 이날 내가 너를 지었도다 하였다 하더라.
무리들이 밀려 와 그대가 메시아 이면 징표를 보이라 하며 걸어 본 적 없는 앉은뱅이를 그 앞에 데리고 오니 예수가 그 이름을 외우니 저의 병이 나은지라 모든 무리가 그를 메시아 즉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로 경배 하더라.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번지니 산헤드린 회의에서 그를 체포 하기로 한 지라 "아나누이"와 "아하지아"라는 둘을 보내 저의 제자인 양 가장케 하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그를 초대 한다며 그를 유인코자 하더라 예수가 조건을 붙여 승낙하니 이는 산헤드린이 저를 주로 영접 하여야 한다 함이라. 그가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니 "놉"에 다다른 지라. 거기서 저가 당나귀를 구해 그 위에 타니 "스가랴" 선지의 예언을 이루려 함 이더라.
선생들이 그를 묶어 "헬레네"여왕 앞에 끌고 가니 저 들이 고발 하기를 이 자는 마술사요 모든 이들을 유혹하는 자라 하더라. 예수가 반박 하기를 선지들이 오래 전의 나의 왕림을 예언 하였은 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리니 하였으니 내가 바로 그라. 그러나 너히를 보라 불경 죄를 짓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지 않았느냐 하더라
여왕이 선생들에게 묻기를 그가 하는 말이 토라에 있느냐 하니 저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하지만 이 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 경전에 이르기를 내가 명하지 아니한 바를 내 이름을 들어 말하는 선지나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나 모두 죽으리라 하였음이라 하더라.
에수가 소리 질러 가로되 여왕이여 나는 메시아이니 죽은 자도 살림이라 하더라. 시체를 들여 와 놓으니 저가 그 이름을 외우더라. 시체가 다시 사매 여왕의 마음이 흔들리매 이르기를 이것은 진정한 징표로다 하더라. 여왕이 선생들을 꾸짖어 모욕을 주어 쫏아 내니 예수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늘어나며 이스라엘 전역에 심한 논쟁들이 일더라.
예수가 갈리리로 가니 선생들이 여왕 앞에 나아가 고 하되 예수가 마술을 부리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더라. 여왕이 "아나누이"와 "아하지아"를 명 해 그를 구인 하도록 하더라.
저들이 예수를 갈릴리 상단에서 발견 하매 저가 신의 아들 임을 선포 하던 중 이더라. 그를 체포 하고자 할쌔 폭력이 발생 하니 저가 갈릴리인들에게 이르기를 싸우지 말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부터 온 능력으로 저를 증명 하리라 하며 그 이름을 외운지라 진흙으로 빚어 만든 참새들이 훌쩍 날아 오르며 물 가운데 서있는 돌이 둥둥 뜨니 저가 그 위에 올라타 마치 배를 젓듯 오락 가락 하더라. 모든 이가 경탄을 금치 못 할 쌔 예수가 저 둘을 명하니 저 들이 돌아가 여왕에게 이 일을 고할 때 여왕이 심히 떨더라.
선생들이 "유다 이스가리옷"이라 칭하는 자를 선택 하여 성전에 데리고 가 그 이름을 알게 하니 저가 예수가 한 그대로 하였더라.
예수가 여왕 앞에 소환된 바 이때에 선생과 "유다 이스가리옷"도 함께 있더라. 예수가 말하기를 나에 관해 말해진 대로 내가 하늘로 오르리라 하니 그가 두 손을 펴 마치 독수리의 날개인 양 하며 하늘과 땅 사이를 날으매 모두가 신기 해 하더라.
장로들이 "이스가리옷"에게 청 하여 같은 일을 행 하라 하니 그가 그리 한 지라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니 그가 예수를 땅으로 내려 오게 강제 하였으나 둘 다 그 이름을 외우는 고로 서로가 서로를 이기지 못 하더라. 마침내 "이스가리옷"이 예수의 신성을 더럽히니 둘 다 땅에 떨어지매 불경스러운 자에게서 그 이름이 떠났음이라. 이 일로 예수의 탄생 전 날 애통해 하는 전통이 생겨 났더라.
예수가 체포되매 저의 머리는 천으로 감싸였고 몽둥이 찜질을 당하니 저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이미 그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음이라. 저들이 그를 "티베리우스"의 회당에 포로로 잡고 기둥에 결박 하더라. 그의 갈증을 달래고자 식초를 주어 마시게 하니 그의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우더라. 장로들과 예수의 지지자들과 몸 싸움이 일어나니 예수가 그 틈을 타 "안티옥"으로 도망 가더라. 거기서 그가 유월절 전 날 까지 머무르더라.
예수가 다시 성전으로 가 그 이름을 얻고자 결심 하니 그 해의 유월절은 금식 주간에 떨어 지더라. 유월절 전날 예수가 무리를 끌고 예루살렘을 향 하니 그가 나귀를 탔더라. 많은 이가 그 앞에 무릅을 꿇으니 그가 310 명의 제자들과 성전에 들더라. 제자 무리에 속해 있던 "이스가리옷"이 선생들 에게 기별 하여 예수가 성전에 있으매 제자들이 십계명을 걸고 맹세 하기를 예수의 신분을 밝히지 않기로 하였다 하며 저가 그 앞에 절하면 그 가 그 인 줄 알라 하더라. 이러히 예수는 다시 결박 되매 이름을 묻자 저가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마타이", "나키", "부니", "넷저"라 답 하며 그가 경전 구절을 인용 할 때 마다 선생들이 역 구절을 인용 하더라. (이 이름들은 또 다른 유태 전통에 나타나는 예수의 5 제자 이름들 임)
예수가 유월절 전날 제 6 시에 처형 당하더라. 저들이 그를 나무에 매 달으매 나무가 부러지니 저가 그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에 이미 어떤 나무도 그를 지탱치 못 하도록 능력을 사용 하였음이라. 그들이 저를 양 배추 받침대에 달으니 그의 능력이 미치지 못 한지라 그가 거기서 오후 기도 시간 까지 달려 있으매 경전에 이르기를 그의 몸이 밤새 도록 나무에 달리게 하지 말지라 하였음이라. 저들이 그를 성 밖에 묻더라.
그 주간의 첫날 그의 용감한 제자들이 여왕에게 나아가 보고 하기를 처형 당한 그가 진정 메시아 였고 그가 무덤에 없으며 그가 예언한 대로 그가 승천 하였다 하더라. 꼼꼼히 수색 하였으나 그의 시체를 발견 할 수 없더라. 정원사가 그의 몸을 무덤에서 꺼내어 수로 밑의 모래에 묻었음 이라.
여왕이 엄중 경고하여 3 일의 말미를 주며 그의 시체를 찾아 낼 것을 명 하니 곳곳에 근심이 있더라. 정원사가 "탄후마" 선생의 탄식을 듣고 그 의 행위를 고 하니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 내어 승천 하셨다 주장 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함 이라. 선생들이 그의 몸을 발굴 하여 말 꼬리에 묶어 여왕 앞에 나아 오더라. 이 자가 승천 했다는 예수라 하고 고하매 여왕이 저가 거짓 선지임을 깨닫고 제자들을 책망 하며 선생들을 칭송 하더라.
저의 제자가 온 세계로 퍼져 나가니라. 셋은 "아라랏"산으로 셋은 "알메니아"로, 셋은 "로마"로 나머지 셋은 해변의 왕국으로 가니 저들이 사람들을 거짓으로 유혹 하나 결국은 모두 처형 당하더라.
이스라엘 안의 저의 지지자들이 이르기를 너히가 주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도다 하니 이스라엘인들이 대답하기를 너히가 거짓 예언자를 믿었도다 하더라. 분쟁과 논쟁의 끊임 없음이 30 여년 지속 하더라.
선생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이스라엘 인들로 부터 분리 시키기를 원 하니 저들이 "시몬 게바"라 하는 자를 불러 명하여 나사렛의 "안티옥"으로 보내니 그가 거기서 선포 하기를 나는 예수의 제자라 저가 길을 예비코자 나를 보냈도다 예수가 행한 대로 나도 징표를 주리라 하더라.
그 이름의 비밀을 터득한 "시몬"이 그로 말미암아 문둥병자와 앉은뱅이를 고치매 저가 예수의 제자로 받아 들여 지더라. 저가 이르기를 시편 110:1 에 기록된 대로 예수가 아버지 오른 편에 계시다 선포 하더라. 또한 저가 이르기를 이사야가 예언한 바 너의 제사와 절기를 내가 싫어 하나니 하였은 즉 유태인의 법도를 떠날 것을 명 하더라. 저히들이 이제 제 칠일 대신 주일의 첫 번째 날을 지키며, 유월절 대신 부활절을, 주중의 절기 대신 승천을, 신년 절기 대신 십자가를, 참회절 대신 세례 의식을, "차누카" 대신 신년 절기를 기념 하더라. 저들이 음식을 가려 먹는 율례와 할례에 무관심 하며 고통을 온순히 받아 들이며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대라는 가르침을 따르더라. 나사레 인들 에게는 "바울"이라 알려진 "시몬 게바"가 가르친 이 모든 규범들이 저들을 이스라엘 인들로 부터 분리 시키고자 함이니 분쟁과 논쟁을 종식 시키고자 함 이더라.
17. Website Reference
유태 역사 학자 조세푸스 외:
1. Catholic EncyclopediaCatholic Encyclopedia
2. The Jesus PuzzleThe Jesus Puzzle by Earl Doherty: Josephus Unbound
3. The Mistery of the Testimonium FlaviumThe Mystery of the Testimonium Flavium by G.J. Goldberg, Ph. D.
세마포:
4. Times MagazineTimes: 4/20/1998 Vol.151 No15 by David Van Biema
1 세기 문서:
5. The Jesus PuzzleThe Jesus Puzzle by Earl Doherty
"아볼로"와 사도들:
6. The Jesus PuzzleThe Jesus Puzzle by Earl Doherty
"미트라":
7. The Cosmic Mystery of MithrasThe Cosmic Mystery of Mithras by David Ulansey
"조로애스터":
8. The Secrets of ZoroastrianismThe Secrets of Zoroastrianism by Mark Willey 1995
Dr. "Khun"의 강의:
9. The Great Myth of the Sun GodsThe Great Myth of the Sun-Gods by Alvin Boyd Kuhn (1880-1963)
도마복음:
10. The Scholars' TranslationThe Scholars' Translation of the Gospel of Thomas by Stephen Patterson and Marvin Meyer
골드버그의 발견
11. The Mystery of the Testimonium FlaviumThe Mystery of the Testimonium Flavium by G.J. Goldberg, Ph. D.
추적의 역사
12. The Many Quests for the Historical JesusThe Many Quests for the Historical Jesus by Donald A. Wells, Ph.D.
공관 복음 문제
13. The Synoptic ProblemThe Synoptic Problem by Stephen C. Carlson
14. The Catholic Encyclopedia: SynopticsThe Catholic Encyclopedia: Synoptics
Q 문서
15. The Search for a No Frills JesusThe Atlantic Monthly, December 1996: The Search for a No-Frills Jesus by Charlotte Allen
예수 학회
16. The Many Quests for the Historical JesusThe Many Quests for the Historical Jesus by Donald A. Wells, Ph.D.
톨레돗 예수 ( Toledoth Yeshu )
17. Ancient Jewish Accounts of Jesus, The Toledoth YeshuAncient Jewish Accounts of Jesus, The toledoth Yeshu by Alan Humm
나머지 덜 중요한 관점은 생략 합니다. 일단 이 사이트에 들어 가시면 서로 Cross-Link 가 되며 "반대 입장"의 의견들도 접 하실 수 있습니다.
위의 모든 분들에게 연구 결과를 인터넷에 올려 만인이 자유롭게 접 할 기회를 제공하여 주신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III. APPENDIX SECTION : 보충 자료들
1. 초대교부들은 나사렛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었나?
초대 교부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아래의 간단한 연대표를 마음에 주입 하십시오. 모든 연대는 주요 인물들의 활동및 문서 저술 연대의 추정치 임.
연대 | 인물 | 특기 사항 |
27-34 | 세례 요한 | |
26-36 | 나사렛 예수 | |
91-101 | 클레멘트 | 베드로의 후계자? |
94 | 조세푸스 | 정치가, 독립운동가?, 친 로마 유태인 역사가 |
100 | 바나바 | 바울의 동역자 |
110 | 이그나티우스 |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실제 태어나 먹고 마시고 실제 죽었다 다시 사셨다 기술. |
130 | 파피아 | 저술이 부분적으로 유세비우스에 의해 보전 됨. 예수가 살려 낸 자들이 트라잔 황제 통치 시 까지 생존 했다 함. |
160 | 폴리캅 | 이그나티우스와 친구? |
165 | 저스틴 | 복음서를 "사도들의 회고"로 인용 함 |
172 | 타티안 | 저스틴의 제자. 4 복음서를 통합 한 복음서 저술 |
202 | 이레니우스 | 예수가 50 살 넘어 장수 하였고 자연사 했다고 주장 |
220 | 터툴리안 | 삼위 일체설 창안자 |
교부들 중 사도들 또는 예수의 제자들과 직접 교통 했다는 인물들이 있는데 이 들을 초기 교부 (apostolic fathers) 라 칭 하며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바나바 와 허마가 여기에 속 합니다. 그 이후의 교부들을 후기 교부 (sub-apostolic fathers) 라 칭 합니다 (편의상 기독교 변증가들도 포함 시켰음).
이 들이 얼마나 나사렛 예수를 알고 있었는지, 또한 그 들의 기록에서 예수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증거들을 얼마나 발견 할 수 있는지 보시겠습니다. 문서에 예수 또는 그리스도의 호칭이 나와도 그 호칭이 꼭 나사렛 예수를 지칭 하는 것은 아님을 명심 하시기를...이 점은 본 글 챕터 4 를 보시길....(이하 존칭 생략)
먼저 초기 교부 부터........
대체적으로 이 들은:
1)베드로가 세웠다는 로마 교회에 대해 침묵 한다(클레멘트는 예외)
2)베드로에 대 해서도 별로 언급을 않 하며, 하더라도 다른 사도들 중의 하나로 여긴다 (많은 이들이 사도 하면 예수의 11 제자를 떠 올리는 데 사도들이 누구 인가를 본글 챕터 6 에서 보시도록)
3)신약 성경에 대해 침묵 한다
4)구약 및 구약 외경, 위경, 이방 신화등의 구절들을 예수의 가르침으로 빈번히 인용 한다.
이 들의 예수는 아직 4 복음서의 나사렛 예수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그나티우스는 매우 흥미롭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단편을 보여 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제 한 사람씩 들여다 보자.
1. 클레멘트(30-96 A.D.)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많은 글들이 그의 이름 하에 남겨 졌는데 그의 첫째 서신을 제외한 다른 것 들은 보수주의 자들도 위작이라 인정 한다.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 gopher://ccat.sas.upenn.edu:3333/00/Religious/ChurchWriters/ApostolicFathers/1Clement
이 글에서 역사 성을 띄고 있는 문구는 그의 베드로와 바울에 대한 언급 이다.
".....우리 시대에 가까히 있었던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 하자..............의로운 교회의 기둥들은 핍박 받기를 순교 하기 까지 하였다. 우리의 사도들을 기억 하라. 베드로가 있었으니 수 많은 고초를 겪으며 영광의 자리로 나아 갔느니라. 열심과 고난을 극복 함으로 바울은 우리에게 인내 함의 보기를 보였노라. 일곱 번이나 갇혔으며, 유배 되고, 돌 팔매질에 맞으며 동과 서에서 선교 하였은 즉.......세상을 떠나 성 스러운 곳으로 들어 갔느니라.........."
이 편지 조차도 그 진위가 확실치 않다. 현존 하는 최고 본 말미에 "고린도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라 씌여 있는데 두 번째 편지를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두 번째 서신은 모두가 인정 하는 위작 임.
누구의 작품이던 간에 글 중 흥미로운 부분을 하나 집고 넘어 가자. 부활에 대해 논 하는데 나사렛 예수의 부활은 어디로 가고 없고 아라비아의 전설적 불사조 (phoenix)를 설명 하고 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 나는 놀라운 부활의 징표를 보라. 불사조라 불리우는 새가 있는데 그 수명이 500 년이라. ....................... 몸이 부패 해지면 벌레를 하나 생산 해 내는 데 썩은 몸의 체액에서 양분을 섭취 하여 깃털을 기르더라. 힘을 기른 후 ...... 이집트의 헬리오포리스라는 도시로 날아 가 만민의 눈 앞에서 태양 까지 이른 후 돌아 오느니 제사장들이 조사 해 보니 500 년 마다 돌아 오느니라"
이 불사조 신화는 부활의 정당성을 설명 하는데 터툴리안 및 다른 교부들도 사용 하고 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와 플리니도 기술 하였음.
2. 이그나티우스(50-117)
마가 복음 4 장 35 절의 예수가 품에 안은 아이가 바로 이 인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한 사도 요한의 설교를 직접 들은 것으로 전 해진다.
7 개의 서신이 그의 것으로 추정 되며 나머지 문서는 모두 위작 임. 7 개의 서신도 많은 손질을 거쳐서 본래의 내용을 복원키 어려움.
이중 트랄리안에 보내는 서신을 보자. 예수에 관한 흥미로운 묘사가 있다.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ignatius/igtral.htm
"8:7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말 하는 자에게 대해 너히는 귀먹어리가 될 찌니
8:8 그는 다윗의 혈통 이요, 마리아의 아들이며, 진짜로 탄생 했으며 먹고 마시고, 진짜로 빌라도에 의해 고난 받으셨느니라
8:9 실제로 하늘, 땅 그리고 지하의 모든 이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렸고 죽었느니라
8:10: 더구나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 하셨느니라"
4 복음서를 잠깐 접어 두고 다시 돌아 보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거쳐 바울 까지. 또 바울 및 기타 1세기 문서들을 지나 트랄리안 서신 직전 까지 나사렛 육체적 예수를 이렇게 복음서에 근접 하게 서술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수 차례에 걸쳐 이 육체적 예수를 강조 하는데, 이그나티우스 전에는 전무한 정보이다.
3. 폴리캅: (69 -- 155).
성자, 서머나의 추기경으로 알려 짐. 빌렙보에 보내는 서신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진위 여부에 많은 논란이 있음. 이그나티우스가 폴리캅에게 보내는 서신을 남겼는데 이 서신이 진본이면 폴리캅의 서신도 진본이 되고, 아니면 두 서신 모두 한 인물에 의한 위작이 됨.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polycarp/polphil.htm
4.바나바
바울이 개종 해서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 바울을지지 하며 사도들에게 소개한 인물 (바울은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만 만났다고 서술 함- 갈라디아서 1 장 18-19)
바나바 서신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barnabus.htm
역사적 증거가 담겨 있는 구절을 보자.
"4:14 형제들아 이것을 명심 하라. 많은 이적과 징표가 이스라엘에게 주어 졌지만 그 모든 것이 버림을 받았으니. 우리는 선택 받도록 마음 가짐을 조심히 하자. 경전에도 "많은 이가 부름을 받았으나 선택된 자는 극히 적더라" 하지 않았더냐?"
여기서 "많은이가....." 구절이 마태 복음의 구절을 인용한 것 같다는 것 이다. 이 것을 단지 경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직도 성문화된 4 복음서는 없었던 것 같다.
바나바는 유태인 이었는 데 이 서신을 과연 유태인이 쓴 것 일까? 서신 중 모세의 율법을 다루는 곳을 보자 모세가 먹지 말도록 명한 동물과 음식에 대해 챕터 10 에서 이렇게 서술 하고 있다.
토끼에 관해 "토끼는 일 년 마다 자궁이 하나 씩 더 생겨 나기에 나이 숫자 만큼의 자궁을 갖고 있다"
승냥이에 관해 "이 짐승은 매 년 그 성을 바꾼다. 한 해는 암컷으로 다음 해는 숫컷으로"
수달에 관해 "이 짐승은 입으로 부터 수태 된다"
이래서 이 짐승들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5. 허마의 목자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hermas1.htm
이 문서는 작자 미상 임. 편의 상 허마로 부르고 있다. 기독교 윤리를 강조한 서술이며 회개를 권고 하고 있다.
이제 후기 교부들 및 변증가 들을 보자.
6. 파피아(70-155 A.D.)
다섯 권의 책을 남겼다고 전해 진다. 모두 실종 되었고 부분이 유세비우스에 의해 보전 되고 있다.
http://www.newadvent.org/fathers/2501.htm
사도 요한의 설교를 직접 들었다 전해지지 만, 본인 스스로 이를 부정 하고 있다.
"장로들 시중을 들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꼼꼼히 물었다. 안드레는 무어라 말씀 하셨는지, 베드로 사도는, 또 빌립보, 도마, 야고보.... 등등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 "
즉 그의 정보는 한 다리 건넌 것 들 이라는 것 이다.
예수가 부활 시킨 사람들에 대해 "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살려 낸 사람들은 트라잔 황제 통치시 ( 98-117) 까지 살았다." 라고 기술 하고 있다. 요한과 교통 했다는 전설및 이 대목이 후에 예수가 50 을 넘어 장수 하였다는 이레니우스의 주장과 연결 되어 있다
7. 저스틴 (100-165)
초기 교부중 이그나티우스의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 운운 구절이 나사렛 예수에의 가장 근접한 묘사 였다면, 저스틴의 저술들은 확실하게 복음서에 기초를 두기 시작했다.
조금 미진 하다면 저스틴은 기초 경전을 "복음서"라 부르지 않고 "사도들의 회고"라 칭 하고 있다.
저스틴의 변증: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justin/justin.htm
저스틴의 동 시대나 이후의 교부, 변증가들은, 적어도 AD 180 년 까지는, 복음서를 모르고 있는 듯이 보이며 따라서 나사렛 예수에 관한 증거들이 없다고 보여 진다.
7. 티오필러스 (180)
다른 교부들이 그러했듯이 유태 경전 (구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
오토리쿠스 (Ad Autolychum) 라는 저술만이 현존 하고 있음
http://ccel.wheaton.edu/fathers2/ANF-02/anf02-41.htm#TopOfPage
그의 저술에 예수 또는 그리스도 라는 칭호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음. 기독교의 교리와 진리는 하나님에 의해 성령을 통해 계시된 것 임 (바울의 영적 예수와 비슷하지 않은가?). 복음서란 단어를 쓰는 데 이는 4 복음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임. 구원은 신의 계명을 따르는 자들에게 있다고 함. 예수의 십자가 상의 대속은 전혀 언급이 없음. 오토리쿠스가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 있으면 그 증거를 대라" 하지만 예수의 부활을 들어 변증 하지 못함.
8. 아테나고라스
기독인을 위한 증언 (A Plea For the Christians) http://ccel.wheaton.edu/fathers2/ANF-02/anf02-46.htm#P2139_587041
전체 37 챕터의 저술로, 여기서 그는 황제에게 기독교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믿는 종교 임을 설명 함. 하지만 전 챕터를 통해 말씀(Logos)이 나사렛 예수로 성육화 되었다고 증언 한 곳이 없음. 플라톤, 스토아 철학 및 그리스 신화는 빈번히 인용 하는데 예수의 행적은 전혀 무시 함.
성육 화가 없으므로 예수의 죽음, 부활, 대속에 관한 대목도 전무. 실제 예수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아예 나타나지 않음.
구원은 오직 이 한 길, 즉 " 하나님과 그의 말씀 (Logos)을 아는데서" 온다고 함.
9.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130) 작자 미상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diognetu.htm
하나님이 그의 아들 (Logos)을 보냈다고 함. 예수의 이름은 전혀 나타나지 않음.
"하나님이 우리의 죄 대속을 위해 그의 아들을 인질로 주셨으니.." 이대목은 복음서와 비슷한데 그 이후 아들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소식 전무.
10. 타티안
저스틴의 제자. 구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 후에 4 복음서를 통합한 복음서를 내다.
통합 복음서(Diatessaron) http://www.newadvent.org/fathers/1002.htm
그 이전 160 년 경 로마에서 발간한 변증록 http://www.newadvent.org/fathers/0202.htm
에서 그는 이방인들이 진리로 눈을 돌릴 것을 권면 하는데, 예수나 그리스도 또는 크리스쳔이라는 단어 조차 등장 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을 Logos 설명에 할당 하고 있다.
11. 미누시우스 펠릭스 (155)
그의 저서 옥타비우스 http://www.newadvent.org/fathers/0410.htm 는 150 -160 사이의 저술로 추정. 크리스쳔이라는 단어는 빈번히 쓰는 데 예수나 그리스도 라는 단어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음.
예수 실존에 관해 이해 하기 힘든 증거가 보이고 있다. 그것을 보자.
기독도들이 처형 된 범죄자를 숭배 한다는 비난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 하고 있다. (옥타비우스: 챕터 29: 2-3)
"29:2 우리가 범죄자 (Criminal)와 그의 십자가를 숭배 한다고 너희는 주장 하지만, 정상적인 인간들이 범죄 자를 신으로 믿을수 있다는 너히들의 그 생각 자체가 황당 하도다.
29:3 가련토다! 죽어야 할 한 인간에게 희망을 거는 자들이여. 그러한 희망은 그 한 인간의 죽음과 함께 물거품이 되나니"
어째서 그 범죄자는 죄가 없었으며, 우리의 죄를 대속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고 대응 하지 못 할까? 어째서 희망을 거는 그 한 인간이 신의 아들이며, 죽어도 다시 사시는 구원자 이시며, 따라서 우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될 수 없다고 말 하지 않을까요.
AD 150-160 이 되어도 아직 나사렛 예수의 모양 새가 정립 되어 있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까지 보시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저스틴을 제외한 대부분 변증가들이 나사렛 예수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스틴도 사실 그의 인생 전 반부에는 여타의 변증가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150 년 경의 작품인 그의 변증 (챕터 5)에서 저스틴은 Logos가 "형상을 받아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라 칭함을 받았다" 라고 서술한다. 복음서와 부합되는 신앙 관이다.
하지만 그는 아래와 같은 서술도 남기고 있다.
유태인 트리포와의 대화 (Dialogue with the Jew Trypho): 제 2의 유대인 전쟁 AD 130 년 경이 배경으로 저스틴의 개종 시점으로 추정. - 에베소 가까운 바닷 가에서 그는 한 유대 노인을 만난다. 이 노인은 성령을 받은 유대의 옛 선지자들에 대해 말 한다. 이 옛선지들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 의 영광을 선포했다고 가르친다. 저스틴은 그의 영혼의 불꽃을 느끼고. 이것을 계기로 개종 한다.
이때 노인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을 플라톤 철학으로 해석 한 것임. 당시 저스틴의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영적 그리스도였다. 후에 복음서의 영향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기 시작 했지만, 그 이전의 저스틴의 구원은 하나님을 구현해 내는 영적 아들에게 있었다 (Logos religion: Son saves by revealing God).
이제 '이레니우스'로 넘어 갑니다. (이레니우스로부터,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유세비우스를 거쳐 성 어거스틴에 이르기 까지 모두는 복음서의 예수를 기술 하고 있습니다.)
1. 이레니우스(120-c. 200) 프랑스 가울의 추기경 4 복음서를 알고 있었음.
문제는 그가 복음서를 읽어 본 후 매우 분개 했다는데 있다. 그의 구세주 예수가 30 대 청년의 나이에, 그것도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록 되어 있지 않는가? 그는 반박 한다. 아니다. 예수는 장수 하셨고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끝 내신 후 영광되게 은퇴 하셨다고 강조 한다 그는 그의 주장이 믿을만한 소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 한다.
이레니우스의 이단 비판 http://wesley.nnc.edu/noncanon/fathers/ante-nic/irenaeus/01-ag-he.htm
(Book II, Chapter22:4-5):
"22: 4: 세례 받을 때에 30 세 이시니.............중략....... 종국에 죽음을 맞으시니 죽은 자 가운데 처음 산 자요... 모든 것 전에 존재 했으며, 모든 이에 앞선 자 였더라.
22: 5: 그러나 저 들은 잘못 알고 있으니 그가 오직 일 년만 가르치시고 12 달 후에 죽었다 함이라. 이러히 말 함으로 저들은 스스로 손실을 자초 하나니 그의 모든 업적과 이력을 말살 함 이라. 그는 노년기 까지 살으 셨으니 모든 선생들 중의 으뜸이라. 가르침을 베풀지 아니 하셨으면 어찌 제자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선생의 원숙한 나이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어찌 가르쳤겠는가? 세례 받으실 당시 채 30이 않되셨으니 누가(Luke)도 "예수가 세례 받으러 오매 그의 나이가 곧 30이 되니라"하지 않았던가? 저들이 그가 오직 일 년 만 가르쳤다 하니 30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함 이라. 보라 그가 30을 넘어 40, 또 40을 넘어 50세에도 생존 하셨으니 그 나이에도 선생의 지위를 지키고 계셨느니라. 복음과 장로들이 증거하고 있지 않느냐? 아시아의 사도 요한과 교통한 자들에게 요한이 전한 정보 이니라. 그가 저들과 함께 트라잔 황제 통치 시 까지 같이 지내셨다 하더라. 그들 중 요한외에 다른 사도들도 만난 이들이 있으니, 다른 사도들도 모두 같은 내용을 증거 하였도다. 우리가 누구를 믿을까? 이러한 목격담들을 믿을까? 아니면 사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꿈 속에서도 조차 사도를 접한 적이 없는 프톨레미우스를 믿을까?"
예수가 장수 했으며 그 정보는 요한과 다른 사도들에게서 시작 되었다고 주장 하는데 독자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는지? 참고로 파피아도 예수가 살리신 자들이 트라잔 황제 통치까지 살았다고 저술 하고 있다.
2. 터툴리안 (160-220)
"믿을 수 없으므로 나는 믿는다" 이 유명한 문구는 바로 이 교부의 말씀 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한 명제에 근간을 둔 그의 믿음은 역시 실패 하고 만다. 기독교 변증에 힘 쓰고 이단 공격의 기수 였던 그가 그의 맹 목적인 믿음의 실수를 자인 하고 기독교를 포기한 후 말년에 오히려 기독교 비판에 나서게 된다.
변심 하기 이 전에 쓴 글에서 그는 기독교인들이 태양 숭배자 임을 자인 한다.
이교도가 기독도들은 태양 숭배자라고 비난 하자 "너희들이 우리가 태양을 숭배 한다 하지만 너희들도 그러하지 않느냐?" 라고 대답 한다.
부활에 대해 역시 불사조 신화를 인용 한다.
"부활의 희망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말 하노니 동방의 희귀한 새를 이름이라.....이 새는 스스로 죽나니... 생일 날 죽으매....... 없어진 곳에 똑 같은 다른 하나가 나타나니.................... 이보다 더한 증거가 어디 있느뇨? ...... 하나님도 경전에 이르기를 "의로운 자는 불사조 (Phoenix)와 같이 번창 하리라" 하셨음이라"
터툴리안 이후 어거스틴에 이르기 까지는 이미 복음이 성문화 되어서 널리 유통 되고 있음을 명심 하시고 원 하시면 아래에 접속 하셔서 더 깊이 탐구 하십시오.
I. Guide to Early Church Document: http://www.iclnet.org/pub/resources/christian-history.html
II. Catholic Encyclopedia: http://www.newadvent.org/cathen
III. Eusebius: Church History: http://www.newadvent.org/fathers/2501.htm
IV. Fathers of the Church: http://www.newadvent.org/fathers
V. Early Church Fathers: http://ccel.wheaton.edu/fathers2
VI. Non-Canonical Homepage (외경 사이트): http://wesley.nnc.edu/noncanon.htm
VII. Non-Canonical Page (외경 사이트): http://gbgm-umc.org/umw/bible/noncanon.stm
2. 기독교 문서 변조의 대표적 사례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본인의 영역이므로 한글 성경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뜻이 달라진 것은 없고 쉬운 현대어로 풀어 쓴 것 임을 아십시오 - 이하 존칭생략)
(1) 복음서의 공허한 인용 귀들 / 옛 선지의 예언을 이룸?
1) 마태 2:23
... 예수가 나아가 나사레라 불리는 도시에 거 하니 이는 선지자가 예언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우리라"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 (성경 전체를 통해 위의 예언을 발견 하시는 독자는 연락 바람)
2) 마태 27:9-10
예레미아 선지의 말씀이 이루어 졌은즉 즉 예레미아가 예언 하였기를 " 그들이 은 삼십량을 취하여 ....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지불 하니 주가 명 하신 바 대로니라. (예레미아서, 또 예레미아 애가 및 그의 제자 바룩의 모든 문서에서 위의 예언을 찾으신 분 연락 바람)
3) 요한 7:37-38
축제 마지막 날 예수가 일어나 선포 하기를 "누구든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게 하라. 누구든 나를 믿는 자는 경전에 이르기를 '그의 배꼽에서 생명수가 강물같이 흐르게 되리라' 함과 같으리라." (구약 전체를 통해 이러한 인용구를 찾으신 분 연락 바람)
4) 마태 2:13-15
그 들이 떠난 후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 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이와 에미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이를 때 까지 머물찌니, 헤롯왕이 아이를 찾아 해치고자 함이라. 요셉이 일어나 야밤을 틈타 아이와 에미를 이집트로 피신시키고 헤롯의 사망 시 까지 머물더니 이것은 주가 선지를 통해 말씀하신 "내 아들을 이집트로 부터 불러 내었다" 하심을 이룸이라. (이 구절은 호세아에 있음)
호세아 11:1-2
이스라엘이 아직 어렸을 때, 내가 그를 어여삐 여기었고, 이집트로 부터 내 아들을 불러 내었느니라. 부르면 부를수록 그 들은 더욱 멀리 떨어져 나갔으며 '발림'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 에게 향불을 바쳤느니라. (불러 낸 아들은 예수가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임. 따라서 마태 2:13-15의 인용구는 공허한 것임)
(2) 나의 이름은 여호와니 이 때까지 (모세 때까지) 아무에게도 이 이름을 일러 주지 아니 하였노라" - 번역 성경으로 보면 맞는 말 / 히브리 원본으로 보면 틀리는 말/ 한글 성경으로 보아도 틀리는 말.
출애굽기 6:2
'엘로힘'이(한글 성경은 하나님으로 표기) 모세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주 이니라.
출애굽기 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엘샤다이' (한글 성경은 하나님으로 표기)로 나타 내었으니 나의 이름 여호아는 그 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었느니라. (즉 모세와 상면하는 이 순간 이전에는 아무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몰랐다는 것 이다. 참고로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태, '엘샤다이'는 산신 - Mount God -)
히브리 성경에서 번역 되어 나온 번역 본들을 보라. 과연 이 출애급기 구절에서야 비로소 여호와라는 단어가 등장 하고 있다. 시편과 이사야 몇 군데를 빼고는 이 단어가 과연 전혀 등장 하지 않음. (한글 성경은 예외. 한글 성경의 역사는 잘 모르나 히브리 원본에 충실 하고자 한 듯)
한글 성경과 히브리 성경을 보자. 모세 이전 부터 여호와의 이름은 알려져 있었고 빈번히 불리워 졌다.
창세기 2:4
그날 여호와가 땅과 하늘을 만드셨다.
창세기 4:1
.... (이브가).. 가인을 임신 하고 여호아로부터 자식을 얻었노라 하더라
등등....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부르며, 이 이름은 창세기에만 150 번이 넘도록 나타나고 있음.
번역 성경으로 보면 맞는 출애급기 6:8. 한글 성경으로 보면 틀리다니. 같은 성경들이 이렇게 틀리는 것에 대해 이제 알아보자.
"그리스본 70인 역"의 배경을 보면서 시작하자.
(3) '프톨레미' 왕의 지원 하에 유태 성서 박사 70인이 히브리 경전을 그리스 어로 번역 하였다 / 전설.
70 인이 각각 독립적으로 일 하였는데 놀랍게도 70 개의 모든 번역이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 하였다 / 교부들의 주장
70인 역 (THE "SEPTUAGINT")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 하고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운다. 이도시는 곧 고대 사회의 문화 교류와 교역의 중심지가 된다. 많은 유태인들이 이주하게 된다 (Diaspora)
당시 세계 공용어는 그리스어 였다. 히브리 어는 사장 되어 갔으며 오직 성직자들만이 히브리 경전을 읽고 아람어나 그리스어로 풀어 주곤 한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태인들은 점차 그리스어로된 경전을 필요로 하게 되고 여기 저기서 이러한 그리스 번역 본 문서들이 나타나기 시작 한다.
이러한 와중에 70 인 역에 관한 전설이 한 편지에서 시작된다.
이 편지는 BC 200 년 경 '아리스테아'라는 사람이 그의 형 '빌로크라테스'에게 보내는 형식을 취 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 그는 프톨레미 왕이 유태 성서 박사 70 인을 초빙 하여 유태 경전을 번역 시킨 일을 소개 하고 있다. 물론 이 편지 원본은 실종 되었고 그 내용은 우리의 골치 아픈 '조세푸스'에 의해 보존 되어 있다.
" 이 편지의 진위 여부는 루이스 비브스 (Louis Vives) (1492-1540) 교수에 의 해 처음으로 의심이 제기 되었는데, 현재 전반적으로 위작으로 판명 하고 있다" - (구교 백과 사전 xiii, 722)
이제 이 전설을 벗어나, 누가 번역 했던 간에, 실제 이 그리스 번역 본들이 얼마나 정확 했는지 보자.
" 교회는 70 인 역을 채택 하였다. 70 인 역은 히브리 원본과 달랐다. 몇 권의 책과 구절들이 더 추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번역의 실수가 있었고 .......... 더구나 70 인들은 유태 랍비들이 쓰는 것과는 다른 히브리 경전을 토대로 번역하는 바람에.... " (구교 백과사전 vii, 316)
" 70 인 역은 믿을 바가 못 되니 제 멋대로 번역되고 변조 되었으며... 따라서 교회에 의해서 거부 되었다" (구교 백과사전 iv, 625)
문제는 소위 이 70 인 역이 초기 기독교에서는 유일한 경전으로 취급 받았고 많은 교리들이 이러한 70 인 역에 기초 해서 발생 했다는 데 있다.
'터툴리안', 성 '어거스틴', 성 '제롬' 등등의 초기 교부들은 모두 이 번역 본들이 신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그러히 믿은 책들 중에는 전설 속의 그 당시에는 존재 하지 않았던 책들이 있었음 에도 불구 하고. (초대 교부들의 reference 는 Appendix I 을 보시라)
저스틴 교부는 70 인이 따로 번역 했으나 글자 하나 까지 일치 된 신의 영감에 의한 작품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는데, 조금 더 나가서 프토레미 왕이 헤롯 왕에게 친서를 보냈다 운운 하면서 실수를 범 한다. 알다시피 헤롯은 프톨레미보다 근 200 년 뒤의 사람이다.
히브리 경전에 없는 것들이 70 인 역의 전설을 따라 버젓이 기독교의 구약 성경으로 채택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구교가 아직도 성경에 포함 시키고 있는 "토비아" 이다.
70 인 역에 의하면 창조의 시점 이 1195 년이나 당겨져 있고 '무드셀라'가 '노아'의 홍수가 나고도 14 년이나 계속 살아 남은 것으로 계산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리스 교부들이 예수에 관한 예언을 이 잘못된 70 인 역에서 인용 했다는 데 있다.
(4)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나으리니.............
마태 1:22
이 모든 것 들이 주가 선지를 통해 말씀 하신 " 보라 처녀가 잉태 하여 아이를 낳을 것 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심을 이루기 위함이라 (이사야에 있음)
이사야 7:14 (히브리 원본대로)
따라서 주가 표적을 보이시리니; 보라 젊은 여인이 잉태 했으니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젊은 여인이 처녀로, 이미 잉태 했는데 잉태 할 것으로, 즉 미래형으로 각각 번역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처녀가 잉태 한 것으로 번역 되는 바람에 후에 마태 복음 기자가 이 오역을 그대로 채택 하여, 오늘 날 기독교의 동정녀 잉태 설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로 히브리 어로 젊은 여인은 ("ha'almah"), 처녀는 ("ha'bethulah").
이사야 7,8,9 장은 '헤즈키아'의 아버지 '아하즈' 왕과 당면한 '아씨리아'의 침공 그리고 기적 같은 구원에 관해 얘기 하는 부분으로 먼 훗날의 예수 탄생의 예언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아기가 이미 잉태 된 당시의 인물을 지칭 하는 것이다.
70 인 역에서 히브리 단어 젊은 여인 Almah 가 그리스어 처녀 parthenos 로 잘못 번역 된 것이다.
한글 성경에서 문제의 이사야 구절을 찾아 확인 하시라. 주석란에 아주 작게 젊은 여인이 잉태 했으니 하고 올바른 해석을 달아 놓았을 것이다.
지금은 주석에라도 이렇게 달아 놓았지만 초대 교부들은 이 실수를 알면서도 완강히 고집을 폈다.
이 실수는 고대 유태인들도 알아 차리고 강력히 항의 하였다. 라틴본을 번역한 성 '제롬'의 말을 보자:
" 유태인들이 Almah가 처녀가 아니고 젊은 여인이라고 항의하는 것에 대해 알고는 있다. 사실 처녀는 Bethulah라 불리지만, 젊은 여인은 almah가 아니고 naarah라 불린다" (Jerome, Adv. Javianum I, 32; N&PNF, vi, 370.)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 한다고 썼다면 그당시 누가 믿었겠는가?..... 수잔나와같이 간통한 여인으로 몰릴 것이 아닌가?....." (Jerome, The Perpetual Virginity of Blessed Mary, N&PNF, vi, 336.)
구교 백과 사전에서 결론을 내리자.
"현대 신학은 이사야서 7:14 절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예언 이라는 것을 인정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 마태가 '보라 처녀가 잉태 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 한 것은 이사야 구절을 잘못 이해 한 것 으로 판정 된다.(Catholic Encyclopedia. xv, 451.)
(5) 이 반석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요한 1:42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 너는 '게바'라 불리우리라 하니 '게바'는 바위를 뜻 함이라.
이 '게바'는 그리스어 Petros (바위라는 뜻)로 번역 되었고 '시몬'의 이름은 '게바'에서 '베드로'로 변했다.
마태 16: 18-19
.....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위에서 무엇이던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본글 챕터 5에서 이미 이 구절을 논한 바 있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
마태 16:18-19는 베드로가 예수의 택 함을 받고 천국 문의 열쇠까지 받아 쥐는 장면이다. 이러히 베드로가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는 배경을 보자.
예수가 너히들은 내가 누구라 생각 하느냐 하는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태16:16)이라고 대답 하자 예수가 그 비밀을 지킬 것을 명 하며 베드로에게 이러한 상급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배경은 마가8:27-30 누가 9:18-22 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반석 위의 교회 및 천국의 열쇠 운운 구절은 유독 마태에만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 예수의 신분 즉 그리스도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베드로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을까? 베드로의 대답이 이러한 상급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획기적인 것 이었을까?
예수가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베드로의 대답 이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예들을 보자.
1)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그러히 일름
2) 의심 하는 요셉에게 꿈에서 계시 됨
3) 하늘 문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하고 세상에 선포 됨
4) 귀신의 군대 조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이까?' 하고 선포.
5) 베드로 및 다른 어부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이다'하며 경배 했을 때.
6) 예수와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장면에서 예수가 베드로를 구해주자 배에 있던 제자들이 모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이다'하며 경배 했을 때.
7) 베드로가 제자가 되기 이전 그의 형제 '안드레'가 베드로 에게 와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메시아를 발견 하였다' 했을 때
7) 다음 날 '나다니엘'이 예수에게 ' 선생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 이시 나이다' 했을 때
보다 시피 베드로의 대답은 별로 새로 울 것이 없는 것 이었음.
후기 베드로를 숭상 하는 자들의 interpolation이라는 것은 자명 하다. 이 구절이 베드로 전 후 서를 포함한 1 세기 모든 문서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음은 전기 하였다 (챕터5). 베드로가 천국의 수문장이라는 정보는 AD 211년 교부 터툴리안의 저술(Scorpiace, x; ANF. iii, 643.)에서 보이기 시작 할 뿐 이다.
(6) ....땅 끝 까지 전 하라...
챕터 5에서 이 구절이 4 세기 경이 지나서야 삽입 되었음을 설명 했음. 예수가 이방 선교를 금지한 구절과, 사도 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의 이방 선교 관과 연관해서 그 모순을 지적 했음. 여기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보자.
마태10-23
인자가 올 때 까지 이스라엘 밖으로 나가지 말찌니....
예수의 재림이 임박 했음을 알리는 구절이다. 이렇게 급박 하게 예수님이 재림 할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땅 끝 까지 선교 하라니....
참고로 마가 복음이 원래 이 지상 명령 구절이 포함 된 16:9 이하의 구절 전에 끝나고 있음은 챕터 5에서 전기. 이와 관련해 구교 측의 얘기를 들어 보자 (구교 백과사전).
" 마지막 16:9-20 의 12 절은 그 진위에 문제가 있다. 마가는 그 끝 맺음에 3 가지가 있는데 8절에서 끝나는 짧은 version, 9-20 절을 포함한 긴 version, 그리고 중간 길이의 version..... 이 셋 중 중간 길이의 것은 쉽게 제거 되는 바 .... 아무도 이 중간 것을 진본으로 채택 하지 않는다. ......... 긴 것과 짧은 것 중 어느 것이 진본인가 보면 .....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긴 것은 모든 고본에 없었다고 되어 있는바........ 모든 마가 고본이 8 절 에서 끝 나고 있다고 이 역사가는 서술 하고 있으며....... 성 '제롬'도 서술 하기를 거의 모든 그리스 고본에 9-20절 구절은 포함 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으며.......... 3 세기, 4 세기의 교부들도 이 구절에 대해 침묵 하는 것으로 보아 동 구절을 모르고 있었던지, 또는 제외 시킨 것으로 해석 되어 진다...... "
(7) 기타
1) 간통 중에 잡혀 온 여인 이야기:
1546 년의 '트렌트' 종교 회의에서 인준을 받기 전까지 이 구절은 위작으로 여겨졌음.
2) 요한복음 21 장 전체:
요한 20:30-31 절에서 공식적으로 복음이 끝나고 21장 이후는 중복된 후 세대에의한 interpolation 임. 20:31 까지 만 읽어 보시라. 완벽한 끝 맺음을 하고 있지 않는가?
3) 주 기도문:
주 기도문 말미의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부분 (Doxology) (마태 6:13)은 interpolation 임. 신교 Revised Version 성경과 구교 Catholic True Version 성경에서도 이를 인정 하여 삭제 되어 있음.
3. 휴거에 관하여
약속대로 휴거에 관한 엮은이의 짧은 생각을 올립니다. 먼저 휴거와 종말에 관한 소동의 역사 부터 보시겠습니다. 소란 스러웠던 것만 간추립니다. (이하 존칭 생략)
A.D. 131-132: 유대 대 제사장 "아키바"가 "코흐바"의 아들 "시므온"이 기다리던 구세주라 선포 하다. "시므온"은 로마에 대항 하여 희생 번제 의식을 부활 시키고 "쿰란"을 탈환 한다. 유대 기독도들은 반란에 가입 하기를 거부 하다.
156: "프리지아"의 "몬타누스"가 구세주의 재림이 임박 했음을 예언 하다. 새 예루살렘 성전이 "프리지아"에 내려 오리라 주장 하다. 소 아시아, 북부 아프리카 및 로마까지 그세력이 뻗쳤으며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도 가담 하다.
220: 로마의 성 "히폴리투스"가 종말이 A.D. 500 년에 온다고 주장 하다.
490: 종말이 A.D. 800 년에 온다고 수정 되다. 그 사이에도 수시로 예언자들이 나와 예수의 재림이 임박 했음을 경고 하여 기독도들이 많은 혼란에 빠지다.
786: AD 800 년 종말이 다가 오며 시중에 다음과 같은 루머가 돌다 - "남자들의 옷에서 십자가 형상이 나타나며, 하늘과 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다른 많은 징표가 보여서 공포에 전율케 하다".
999 년 12월: 종말은 다시 1000 년으로 수정 되다. 1000 년이 다가 오자 긴장이 고조 되었으며 군중들이 무리를 지어 배회 하며 마술사와 탐관 오리들의 처형을 요구 하다.
1033: 예수 탄생이 아닌 부활 후 1000 년으로 다시 수정 되다. 예수 재림을 맞기 위한 순례자들로 예루살렘이 문전 성시를 이루다.
1186: 유럽에서 유행된 "톨레도" 서신에 의해 종말은 1186 년으로 수정 되다. 캔터베리 대 주교가 예수 재림에 대비해 영국 전역에 3 일 금식령을 내리다.
1200: 캐톨릭 사제, "피요레스"의 "요아킴"이 1200 년이 예수 이후 40 세대의 기간임을 주장 하며 종말을 1260 년으로 수정 하다.
1254: "프레드릭" 황제가 "인노선트 4세" 교황의 라틴 이름의 합이 666임을 들어 그가 적 그리스도 임을 전파 하다.
1260: 사도 형제단 분파가 "요아킴"의 1260 년 설을 떠 받들어 1307 년 부패한 로마 교회를 공략 함으로 종말을 앞 당기려 하다.
1420년 2월 10-14: 보헤미아의 "타보라이트" 분파가 이 날을 예수 재림의 날로 전파 하다. 이날 예수의 재림이 없자 분파의 지도자가 예수가 비밀리 왔음을 주장 하다 (여호아의 증인이 1914년에 했던 것과 마찬 가지로). 그 들은 스스로 무장 하였고 반대파들 에게 무력을 행사 하다.
1434: "타보라이트" 분파의 폭력이 중부 유럽을 강타 하다. 결국 1452 년 보헤미안 군대에 의해 섬멸되다.
1490: 캐톨릭 사제 "지롤라모"가 1500 년 종말을 주장 하다
1640: 종말이 1700 년으로 수정 되다.
1654: 추기경 "어셔"가 1996 년 종말을 주장 하다.
1665: 유럽과 중동의 유태계 에서 랍비 "샤베타이"가 구세주 라고 선포 하다.
1666: 랍비 "샤베타이"가 "오토만" 정부에 의해 체포 되고 회교도로 개종 당하다.
1733: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의 거성 "아이삭 뉴톤"이 예수 재림은 대략 2000 년 경에 있으리라 생각 하다.
1774: "앤 리"가 미국에 독신 주의를 옹호 하는 종말 집단을 세우다.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화신이며 신의 여성적인 면을 대표 한다고 주장 하다.
1790: 캐톨릭 예언가 "수제떼"가 프랑스 시민 혁명에 감동을 받아 종말이 1800년에 온다고 하다.
1802: "조안나"가 144,000 의 영국인들 에게 인을 치기 시작 하다.
1825: 영국의 "에드워드" 목사가 1864 년 종말을 주장 하다.
1832: 미국의 "조셉 스미스" (몰몬교 창시자)가 다음과 같이 주장 하다 - 예수재림에 관해 진정으로 기도 드리던 중 다음과 같은 계시를 들었다. "네가 85 세까지 살면 인자의 얼굴을 볼 것 이니 이 문제로 나를 더 괴롭히지 말라"- : 이에 의거 해 "조셉 스미스"가 다음과 같이 선포 하다 "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 하노니 내가 85 세가 되기 전 까지는 인자가 구름 타고 오시지 않을 것이다."
1844: "조셉 스미스" 사망 (85 세가 되기 전)
1889: 기독교 "헤럴드" 신문 주필 "마이클" 목사는 1896 년 144,000 명이 휴거 될 것 이며 1901 년 종말이 온다고 주장 하다.
1959년 4월 22일: 수 백명의 다윗 분파 단원들이 택사스 주의 "웨이코"에 모여 예수 재림을 기다리다. 이 장면이 미 전역에 생 중계되다.
1978: "짐 존스" 교주의 사주 아래 인민 사원 단원 900 여명 자살 하다.
1980: "나사" 우주 항공국의 엔지니어 "에드가"가 1988 년 휴거 설을 주장 하다.
1991: "말란" 목사가 2002 년 종말을 주장하다.
1992: 한국의 "이장림" 목사가 주도 하는 다미 교회가 동 년 10 월 28 일 휴거를 주장 하며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다. 당 일 20,000 이 넘는 신도들이 모여 들었으나 온 세계의 조롱 거리가 되다.
1993:택사스 "웨이코" 의 다윗 분파가 FBI와 대립 중 섬멸되다.
1999년 1월 4일: 이스라엘 내무 장관은 예루살렘으로 속속 몰려드는 종말론 자들에 관해 우려를 표명 하고 그중 11명을 추방 하다.
1999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휴거와 종말론이 가난한 심령들을 희롱 하고 있슴. 한국은 다미 선교 회의 소동 이후에도 휴거 분파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고 여기에 가담하는 신도들은 놀랍게도 학력에 관계가 없고 얼마나 교회 생활을 했는가 와도 관련이 없어 보임.
휴거라고 들 쉽게 말 하지만 원래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런 단어가 없음. 가장 근접한 성경 구절들을 보면 다음과 같음
1. 사도 행전 8:39, 고린도 후서 12:2-4, 계시록 4:1-2 - 영에 사로 잡힘 (being caught up in the spirit)
2. 골로새서 1:13 - 천국으로 옮겨 짐 (translated into the Kingdom)
3. 에베소서 2:5-6 - 구세주와 함께 천상에 섬 (raised up into the heavenlies with Christ)
4. 계시록 3:21, 4:1-2, 12:5 - 그리스도의 권능과 영광의 영적 차원의 보좌에 휩싸임 (caught up into the throne, the spiritual dimension of the Christ's authority, power and glory)
보다시피 휴거라는 말은 성경에 없음. 소동의 역사를 다시 보시라. 1800 년 중반에 와서야 휴거라는 단어가 등장 하고 있음. 원래 기독교 전통에 없는 것 임이 자명 하다. 초대 교회에서도 이 단어가 쓰인 흔적이 없고 1 세기 초대 교부들도 휴거를 가르치지 않았다. 신교의 개혁가들도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음. 1830 년 까지 사실 아무도 이것을 사용 하지 않고 있음을 보시라.
우리의 육신이 구름 위로 끌려 올라 간다는 생각들이 어떻게 번지게 되었는지... 그것 보다는 상기의 성경 구절 1),2),3),4)에 내포된 가르침을 휴거로 생각 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렇다면 휴거란 육신이 구름 위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달픈 영이 주께 닿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휴거는 우리 각각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며 일어 나고 있는 일이며 또 우리가 육신을 벗을 때 까지 일어 날 사건이 아닐까...
4. 인류의 꿈: 밤하늘의 별 그리고 성경 이야기
마태복음: "우리가 동방의 그의 별을 보고 경배 하고자 왔노라"
(We have seen his star in the east, and come to worship him. 한글 성경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로 번역)
동방 박사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서쪽으로 행군 하여 베들레헴에 도착 하건 만 그들이 본 별은 동쪽에 있었다고 하니, 그들은 그 별에 대해 등을 돌린 채 행군 했다는 얘기인가?
온 인류의 염원 구세주의 탄생을 기별 하는 이 별은 지금 과연 어디 있는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밤 하늘에 빛나는 저 무수한 별들...... 어느 것은 강하게 어느것은 가녀리게.... 그대에게 무엇인가 말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는가? 혹은 무리를 지어 있어, 각각이 기묘한 형태를 지닌 채, 생물의 모습으로 살아 숨쉬며 각각의 모양대로 저마다의 사연을 우리에게 전달 하고저, 밤이면 어김 없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보라 한 낮의 이글 거리는 태양이 떠 오르느나니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이매 (춘분), 대략 14,000 년 전 시절에는 사자 (Lion) 자리에서 그러 했느니라.
우리의 구원자가 사자 자리에서 나오시매 생명의 문 동편과 서편을 (춘분과 추분) 지키시나니 일컬어 게룹 ("cherubim")이라 하더라. 어린 시절 사자 새끼 ("lions whelp" of the Old Testament)로 불리우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은 유대의 사자 ("the lion of Judah), 유다 가문의 사자 ("the lion of the house of Judah,")라 일컷더니, 에티오피아 왕들은 아직까지 스스로를 이러히 칭 하더라.
보라 하늘이 서서히 움직이매 (precission of equinox) 살아 있는 생물 (zodiac)들이 같이 행 하더니, 바퀴 안에 바퀴가 있어 (대천구, 소천구) 모든 것들이 일시에 같이 행 하더라 (다니엘서). 천 년 같은 하루가 두 번 지나니 (2160년) 우리의 구원자가 게 (Cancer)자리로 부터 나오더라. 게(crab)는 물 속에 살건만 땅 위로 기어나와 공기를 맛 보나니 보라 저가 세상의 허상을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갈망 하는 자 로라.
먼 옛날 지금의 게 자리에 풍뎅이 (Beetle)가 대신 있었으니 풍뎅이는 불사라. 보라 늙은 풍뎅이가 나일강의 진흙에 몸을 묻으매 그 곳에서 새끼 풍뎅이로 환골 탈태 하니 불사조 (Phoenix)의 화신이라. 영생과 부활의 징표가 되더라. 보라 애비 풍뎅이가 암컷의 협조 없이도 홀로 지어 내어 놓으니 (alone-begotten son) 독생자(monogenes)라 일컷더라.
게 자리에 희미 하게 공존 하는 당나귀 (ass)를 보라 저가 우리의 구세주가 타고 가실 바로 그 나귀니라. 구세주가 십자가에 달리실 길에 힘을 더하는 자니 옛 이집트인들도 말 하기를 보라 위대한 말씀이 당나귀에 의해 행 해졌느니라 하더라 ("The Great Words are spoken by the Ass.- 사자의 서") 구약에도 당나귀가 말했다 하지 않더냐 (발람의 당나귀)
이제 쌍둥이(gemini) 자리로 진행 하니 이 곳에서 가인과 아벨이 대립 했으며 야곱이 그 형 에서의 장자권을 취 하더라 (창세기). 두 별중 한 별은 점차 밝게 빛나며 다른 별은 점차 쇠 하나니 구세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일컷기를 나는 쇠 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 하여야 하리라 하였도다 (요한 복음).
쌍둥이 뒤로 황소(taurus)가 오니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한 곳이요, 미트라 밀교가 상징으로 삼은 것이라.
황소 뒤로 양 (aries)이 오니 대략 BC 155 까지의 세대라. 이 곳에 양 떼들이 있고 양 치는 목자가 있으며,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도 이 곳에 있음이라. 양의 시대에도 아직도 미련 하게 황소를 숭배 하는 자들이 남아 있으니 이를 우상 숭배 한다 하더라. (출 애굽기)
양 뒤로 물고기(pisces)가 오니 두 마리라 하여 쌍어궁이라 하더라. 물고기를 건지고자 갈릴리 해변에 구원자가 나타 나시며, 12 제자를 부르시매 모두 어부들이라. 고기 잡는데 일가견이 있는 자들 이더라. 초대 교부들도 예수를 Great Fish, 성도들을 small fish로 부르지 아니 하였더냐? 로마에 바칠 세금으로 물고기 입에서 금화가 발견 되지 않았더냐? (복음서)
Pisces는 물고기 외에도 빵의 집 (house of bread)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히브리 말로 베다니 또는 베들레헴이라 하더라. 보라 예수님이 이 빵의 집에서 다섯 덩어리의 빵과 쌍어로 (오병이어의 기적) 인류의 근본 문제를 손수 풀어 주시지 아니 하였더냐?
이 곳에서 6 별자리를 건너 맞은 편에 무엇이 있느냐? 처녀 (virgo)가 있지 아니하냐? 우리 주가 그 곳에서 잉태 하셨으니 이 곳에서 탄생하심이 마땅 하다 하리라.
이제 현 세대가 들어 가고 있는 보병궁(acquarius)으로 가 보자. 온전한 인간이 있는 곳은 오직 이 곳이니, 그는 물 잔을 보호 하는 자라 (water bearer). 그가 잔을 기울여 물을 부으매 땅에 대 홍수가 나며, 그의 물은 또한 생명수이니 우리의 구세주는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갖고 오신 분이라 아니 하였더냐?
뒤에 오는 염소(capricorn)을 보라 저의 이름은 염소 뿔(goat-horn)을 뜻 하니 구세주는 우리 구원의 뿔이 되시도다 하더라. 구세주가 대속을 위해 (scapegoat) 십자가에 달리시매 비극이라. 이리하여 옛 헬라인들도 그들의 비극을 염소 노래 (goat song)라 하지 않았더냐?
뒤에 오는 이 생물을 보라 반은 사람이요 반은 말이라 (sagittarius). 그가 활과 화살을 지니고 있으니 활 쏘는 자라. 그가 무엇을 겨냥 하고 있는가? 반 육신 반 영혼의 인류여 그대들은 무엇을 겨냥 하고 있는가? 이 활 쏘는 자는 호러스 (이집트의 태양신)의 눈을 쏜다고 하거늘....
전갈의(scorpio) 자리로 옮기니 이 곳은 옛날에는 독수리(eagle)가 거 하던 자리라. 주는 빠른 독수리요. 독수리 날개쳐 오르 듯 내 영이 주께 오른다 하지 않더냐?
저울(Libra)의 집을 보라. 이 곳에서 모든 피조물의 경중이 조사 되나니 인류의 영과 육이 그 무게를 심판 받으리라.
뒤에 오는 처녀를 보라(Virgo).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니 우리의 대 자연이요, 생식의 근원이니 땅을 뜻 함 이라. 그녀에게서 구세주가 잉태 되니 보라 그녀가 한 손에 아기를 안고 있지 아니하냐? 그녀 발 밑에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뱀(hydra별자리)을 보라. 아기를 곧 삼킬 것 같지 않느냐?(계시록). 그녀가 발 뒷 꿈치로 뱀의 머리를 밟으려 하도다 (창세기).
이 처녀의 집에서 전세 들고 있는 포도를 (grape 별자리)보라. 이 곳에는 포도 넝쿨과 포도원과 청지기 또 포도주가 있노라. 홍수 후 노아가 여기서 술에 취했으니 아들들이 뒷 걸음으로 그 하체를 가리웠다 하더라.
이집 저집 다녔는데 구세주 탄생을 기별한 그 별은 어디 있는가?
큰 개자리 (canis the major)의 시리우스 별 (dog-star)을 보라. 이 농군의 사냥개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려 열심히 짖고 있도다. 한 시대의 개막을 알리려는 양... 어두움을 견디고 동물의 속성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고 하고저 하는 양...
이 견군 보다 항상 앞서 가는 오리온 별 자리를 보라. 이 곳에서 가장 밟게 빛나는 세 별을 보라. 이 삼 인의 현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구세주의 왕림을 알리는 견군의 일성에 놀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구세주를 찾아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빛나는 그 별 시리우스는 바로 등뒤로 하고.(동쪽)
몇 천년 전의 어느 겨울 밤 (동지-크리스마스 이브) 시리우스는 하늘 중심에 떴고 그 때에 동편 지평선에는 한 처녀(virgo)가 막 올라 오고 있었으니 한 손에는 아기를 다른 한 손에는 보리 이삭을 ( spica - 처녀자리의 일등성) 잡고 있으니 이 보리 이삭으로 만든 빵을 먹을 때 마다, 신을 향한 불쌍한 인류의 굶주림은 채워 지리라.
5. Petrine Faction vs. Pauline Faction
바울에 관 한 끝 없는 의문:
1. 바울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매우 무지 해 보인다는 관점은 챕터 4-5 에서 서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모르고 있는 듯이 보이는 데, 사도 행전에서 딱 한번 인용하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노라" 하는 구절인데,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런 구절은 바울 서신에도 없고, 복음서 내에도 이런 예수의 말씀이 없습니다.. 이 구절을 삽입한 사도 행전 기자의 의도는 무엇 이었을 까요?
2. 베드로 후서 3:15-16 "(15): 형제 바울이 주께서 주신 지혜를 서술 하여 놓았듯이, 주는 구원 임을 명심 하라. (16):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 일관된 입장을 펼쳤느니라. 그의 서신들은 이해 하기 어려운 것 들도 포함 하고 있으니 무식 하고 흔들리는 자 들은, 다른 경전을 외곡 했듯이, 그의 서신들을 곡해 함으로 화를 자초 하였도다."
베드로 후서 기자 (베드로?)도 인정하 는, 바울 서신의 이해 하기 어려운 면, 외곡 되기 쉬운 면, 이것들은 무엇 이었을 까요? 또 바울 서신을 곡해한 이 무식한 자들은 누구를 가르키는 것 일까요?
이제 바울에 관한 논란에 대해, 많은 해석들 중 한 가지를 보시겠습니다. (이하 존칭 생략)
오늘 날의 기독교는 다양한 교파들을 포함 하고 있다. 신교, 구교, 동방정교, 성공회 등등... 같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빼고는 사용 하는 성경의 구성도 틀리고 찬송도 틀리고 예배 의식도 틀리고 교리도 틀린다. 혹간은 서로를 이단이라 부른다.
신교만 해도 감리교, 장로교, 침레교 등등으로 나뉘고 있으며, 한국의 장로교만 보아도 기장, 예장 등등 으로 나뉘고, 예장만도 다시 보수, 합동, 통합 등등으로 갈리고 있다. 혹간은 서로를 이단이라 부른다.
그것 뿐 인가? 예수의 이름을 내 걸고 모여드는 수 많은 비 정통적 분파들을 보라 (이름들은 생략). 이들은 서로를 이단이라 부른다.
많은 분들이 초대 교회 시절로 돌아가 통합된 기독인의 모습을 되 찾아야 한다고 설파 한다. 오늘 날의 세포 분열은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을 인간의 의지를 반영 하여 해석 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의 기독교는 사실 초대 교회 시절에 비해 상당한 통합 과정을 거쳤고, 매우 단순화 되어 있다는 최근의 발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초기 기독교 문서들의 금 세기 발굴들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초기 기독교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게 된 오늘 날, 모든 학자들이 한 가지로 공통되게 찬성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초기 기독교의 극심한 다양성일 것이다. 오늘 날의 기독교는 이 초기의 다양성을 극복하고 훨씬 통합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분열상은 적어도 현대의 분열상에 못지 않았다고 하면 매우 안전한 판정일 것이다.
기독교 영지주의, 로마교회, 예루살렘 교회 등등... 이들은 교리에서도 아주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각각의 교부들이 저나름 대로의 정경을 선택 해 쓰고 있으며, 외경과 정경의 구분이 확실히 이루어 지고 있지 않다. 오늘 날의 분열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우리는 그래도 정립된 유사한 범주의 정경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독교 초기 시절의, 다양한 분파의 난립 와중에, 바울 (정확히 바울 분파 Pauline Faction)과 베드로 (베드로 분파 Petrine Faction)간의 대립, 갈등의 흔적이 보여지고 있다. 즉 바울의 영적 예수의 가르침 대 베드로의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 확립 노력이 서로 경주 하고 있는 흔적을 유추 해 낼 수 있다는 것 이다.
이 갈등의 흔적, 예를 들어 바울(정학히 바울 분파)의 가르침이 동 시대의 주의와 경고를 유발 시킨 것 등등이 사도 행전 및 야고보 서등의 서신 문서에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다른 예수를 가르치는 거짓 사도에 대해 경고 한다. 이 거짓 사도들은 누구일까?
저스틴 교부는 기독교의 사조 바울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으며, 바울의 서신들에 대해서도 침묵 한다. 사도 행전도, 바울의 행적이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할 성질의 글이 었으나, 그의 순교하기 까지의 기록은 실고 있지 않다. 바울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했듯이 베드로 분파의 바울에 대한 침묵이라는 현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바울에 관한 침묵 내지는 암시적 공격의 극치를 보여 주는 문서를 보자.
초기 교부 란(Appendix I)의 클레멘트를 기억 하실 것 이다.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진 구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이 클레멘트의 이름을 저자로 빌린 (유사 클레멘트 문서), Homily(설교, 훈계)가 우리의 관심 거리이다.
Homily I에서 저자는, 클레멘트 본인이 쓴 형식을 취해, 클레멘트의 어린 시절 영혼의 구원 문제에 고심한 것, 유대 지방에 신의 왕국을 선포하는 한 목소리가 전파 되기 시작한 것, 로마에 기쁜 소식 (gospel)이 전 해진 것, 본인이 이를 듣고 로마를 떠나 유대로.가던 중 풍랑으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 하는 것, 그 곳에서 바나바의 노상 전도 설교를 듣게 되는 이야기, 이후 유대로 도착 하여 먼저 떠났던 바나바에 의해 베드로에게 소개되는 경위, 베드로 가르침에 심복하여 이후 그와 동행하며 베드로의 행적을 기록하게 되는 경위를 쓰고 있다.
작자는 미상이고 2 세기 중반 내지 3 세기 중반의 문서로 추정 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얘기가 아닌 가상의 드라마 임이 분명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문서인 것 이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제목과 내용에서도 얼른 알 수 있는 것이 이것은 베드로 분파의 작품 이라는 것이다. 초기 이방 선교 상황을 묘사 하는 문서인데 바울에 대해 일체 침묵 하고 있다. 독일 튜빙겐 학파의 바우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문서는 베드로 분파의 바울 분파에 대한 공격을 암시 하고 있다고 해석 한다. 즉 글 중에 나오는 베드로의 적 이자 경쟁자 사이몬은 사실 바울을 빗댄 인물 이라는 것이다.
글중, 줄기차게 베드로 따라 다니며 공격하고 비판하는 사이몬. 그는 누구인가?
사도 행전 8:9절 이하에도 나타나는 사이몬은 마술사이며 동 구절이 성경 상에 보여지는 그에 관한 정보의 전부이다.
저스틴 교부:("First Apolog.", xxvi)에 의하면, 사이몬은 사마리아의 깃타 지역 출신으로, 스데반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진짜 목적은 그의 마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 후에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의 능력을 보고 돈으로 사고자 했음은 사도 행전에 기록 되어 있음. 잘못을 빌고 베드로의 축도 받기를 원했으나 그 후에도 그의 행실은 여전했으며, 최초의 이단자 또는 이단의 아버지라 명명 되었다고 한다.
Homily II.(Chapter XXIII.)자체 내에서 묘사된 사이몬을 보자. 사이몬은 세례 요한의 30 제자 중, 가장 총애 받던 제자였으나, 요한의 후계자가 되지 못 했다고 한다. 세례 요한의 다른 제자 도시테우스가 세례 요한의 처형 소식에, 이집트에서 마술 수업중 급거 귀국 하여, 사이몬이 사망 했다고 헛 소문을 퍼치고 후계자리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다.
줄기차게 베드로에게 언쟁을 걸어오는 사이몬의 논조는, Homily XVI에서 보이는 데, 지금도 매우 낯익은 논쟁일 것이다. Chapter VI에서 사이몬은 구약의 신은 다수 신이라 주장한다. 창세기의 "보라 저가 우리와 같아질까 하노라" 등등의 구절을 인용 해 가며... (저의 글 챕터 8을 참조). Chapter IX에서 사이몬은 성경이 서로 간에 모순점 투성이라는 것을 주장 한다. Chapter XIII에서 베드로는 답변 한다. 성경 내의 모순은 읽는 자들을 시험 하기 위한 것 이다 라고. Homily XVII.(Chapter IV)에서 사이몬은 베드로가 다른 예수를 전파 한다고 주장 한다. (바울 고린도서 의 다른 예수와 상통 하는 것 일까?).
이 사이몬이 바우어등의 학자들 에게는, 초대 교회의 베드로 파 (Petrine faction) 와 바울 분파(Pauline factions)의 대립의 증거로 비추어 지고 있는 것이며, 이 두 양대 산맥의 통합이 오늘 날의 구교, 더 나아가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 하게 되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사이몬에 빗대서 바울을 공격 하고저 했다면 무슨 공격이 가장 중요 했을까?
저의 글 챕터 5에서, 사도간의 정통성 다툼에 관해 언급 했다. 사도직의 권위 다툼 와중에서도, 아무 측도 나사렛 예수의 친 제자임을 들어 기득권을 쟁취 하려 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 했다. 베드로를 포함한 어느 사도도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신화파의 주장도 설명 했음.
그렇다면 이제 바울서신이 쓰여진 지 적어도 100년 뒤에 Homily를 쓰고 있는 이 기자의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그 것이다. 즉 100 년 전의 침묵에 대해 보완하는 것. 즉 베드로는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사도이니 만큼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바울보다 우월한 사도임을 설파하는 것. 바로 그 것이다.
이제야 드디어 "환상을 통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자가 선생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겠는가?" 하며, 베드로가 예수의 친 제자임을 들어 사이몬 (바울?)을 공격 하기 시작 한다.
Homily XVII에서 베드로는, 육체적 감각 기관으로 체험한 것이 초 자연적 환상의 경험보다 더 확실 하다고 주장 한다.
"여호아가 진노중 아론과 미리암에게 하신 말을 보라. '선지자가 너희 중에 일어 나면, 내가 그에게 꿈과 환상들로 나타내 보이겠으나 모세에게는 그러히 아니 하리니, 모세에게는 내가 친히 내 모습을 보이리라. 꿈이 아닌 마치 친구에게 얘기하듯..... ' 진노 중 에는 환상과 꿈으로 보이시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나 친구에게는 얼굴 마주 대 하듯이 하시느니라. 적에게는 꿈과 환상을 통 하지만........
즉 주의 진정한 종에게는 육체적으로 만나 주시지만 꿈과 환상을 통해 본자는 필경 주의 진노하심으로 말미암음 이라는 얘기이다.
이어서 (Chapter XIX.)
"만약 예수가 너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서 말씀 하셨으면, 그는 필시 너를 적대하여 분노 중에 나타내 보이셨음이라. ................몽환 중에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가 어디 있느뇨? ........만약에 그럴 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왜 예수가 우리와 친히 섞이셔서 일 년을 지내시며 가르치셨는가?.....너희가 진짜로 환상을 통해, 한 순간 만 이라도, 예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그와 현실에서 동행까지 했던 나를 적대하지 말라. 너희가 교회의 반석을 적대하게 됨이라."
이제야 기대하던 공격이 나오는 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사이몬은 적 그리스도로 묘사 되고 있는 데 베드로 분파는 바울을 적 그리스도 로 본 것 일까?
바울의 가르침은 복음서 보다 앞서 이미 유행 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역사적 예수를 무시 했다 하여 영지 주의로 몰리는 경우도 허다 함. 이 점에 대해서 Homily에는 다음과 같은 암시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적 그리스도)가 나와 거짓 복음을 먼저 전파 하리라 하고 예수가 설파했다고, 베드로 분파는 주장하며, 진짜 복음은 이단(적 그리스도)의 방해를 피해 숨겨져 있었다고 설명 하고 있는 그 것입니다..
이 대립에서 일단 베드로 분파가 상승 세를 탔음은,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인 되었고 천국의 수문장으로 숭상되는 전통 등등 에서 엿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 할 수는 없었겠지요.
어찌 되었건, 이 두 분파의 전통은 오늘 날의 기독교에 녹아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조화를 이루 건, 못 이루고 있건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바울 분파의 "영적 교류 또는 현시"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 이겠지요. 많은 교부와 성자들이 혼절 상태로 빠져 예수님을 만났으며, 오늘 날에도 이런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 영적 예수와 나사렛 예수에 관한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드리고저 했습니다.
참고로 Homily 문헌은, Appendix I의 초대 교부란 중, 초기 기독교 문서 사이트로 링크 하시면 해설과 전문을 접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