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
[예문] ▷ 김소월의 진달래꽃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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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 작품에는 민족적인 정한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한다.여기서 말하는 민족적인 정한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한이다. 애이불비는 슬프기는 하나 겉으로 그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님을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기정 사실을 표면의식에서는 알고 있으나 무의식에서는 보내고 싶지 않다. 목 놓아 울고 싶지만 오히려 떠나는 님의 발 앞에 '진달래꽃'을 뿌린다. 그가 유독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겠다고 한 데에는 특수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꽃은 단순히 무수한 여러가지 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진달래꽃은 달리 두견, 또는 두견화라고 전해지는데 두견새의 한맺힌 절규가 붉은 진달래꽃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에서의 진달래꽃을 이런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님과의 이별에 대한 소월의 진정한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강하게 암시해 주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님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과, 이와는 정반대로 님과 언제 이별해도 무방하다는 가식적인 태도를 동시에 드러내는 역설적 표상으로서의 진달래꽃은 소월이 의도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달래꽃이 서정적 자아의 마음을 표상하는 소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님 앞에 뿌리는 행위는 님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과,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같이 진달래꽃은 이원적이고 복합적인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 김동리,서정주 등에 의하여 쓰이기 시작한 정한이라는 용어는 김억을 거슬러서 다시 조선 시대의 별한,이한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정한이라는 말이 한국 민중의 전통적 정서의 어느 일면을 전형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김소월이라는 시인을 논하는 과정에서 거론되어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라 할 수 없겠다. 김소월의 시의 기본적 모티브는 님의 상실에서 연유되는 한탄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한탄은 한국적 한의 일면의 속성을 전형적으로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그 슬픔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떠나는 님의 발 앞에 진달래꽃을 뿌리는 마음은 한 맺힌 삶을 살면서도 이를 초극하고 삭이는 한국여인의 지혜의 바탕이 되는 마음이다. 이 작품은 민족적 정한을 계승하면서 그 정한을 정형화하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 애이불비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 소월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 외국인들은 산길에서 마주치거나 엘리베이터안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나누고 미소로 화답한다. 서로를 경계하며 굳은 얼굴로 스쳐가거나 모른척외면하는 우리의 표정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우리의 얼굴이 그처럼 굳어진데는 그만한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슬퍼도 슬퍼하지 아니하고 기뻐도 기뻐하지 아니한다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생활철학속에 인간의 희노애락을 드러내는 얼굴표정이 실종되었던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지도 않았다<중부매일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