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정신
공자와 맹자(BC 372-289)는 다 같이 무력으로 통치하는 패도(覇道)정치가 아닌 덕으로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왕도(王道)정치를 주장했다.
공자는 통치자가 만일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렇게 하라고 계속 충고하지만, 맹자는 폭군은 끌어내리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자는 제후들이 불러주기를 바라고 천하를 유람했지만, 맹자는 제후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았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군주는 하찮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군주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갈아치우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는데도 가뭄과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사직단을 헐어버린다. 그러나 백성은 갈아치울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니 제후들이 맹자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에게 서슴없이 인의를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연유였을까?
세상이 평등해지려면 약자에게 더 많은 동정이나 혜택을 주어야 한다. 똑같이 혜택이 적용되면 권력을 가진 자는 더욱더 강해질 뿐 평등은 없어진다는 신념으로 맹자는 약한 자 백성의 입장에서 권력을 향하여 서슴없이 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자는 군주들에게 등용되기를 바랐지만, 맹자는 권력을 가지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면 권력을 비판하기 힘들다.
전국 시대는 온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다.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상황에서 공자나 맹자의 주장(민심이 떨어지면 권력도 없다는 것)을 제후들이 맞는 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맹자가 듣기 싫은 말을 해도 권력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또 사람들이 현자(賢者)라고 인정하는 맹자를 해치면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 그 군주의 평판이 나빠지고 경쟁자들에게 공격의 좋은 빌미가 되기 때문에 맹자를 해칠 수 없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지지와 인(仁)과 의(義)가 바탕이 된 맹자의 마음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맹자
제나라 선왕이 묻길,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치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왈, "경전에 있습니다."
선왕이 말하길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습니까?"
맹자가 말하길,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 도적)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 잔인)이라 하며, 잔적(殘賊)을 하찮은 사내(一夫 )라고 합니다.
하찮은 사내(一夫)인 주(왕)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맹자’를 읽다가 “임금이 신하를 풀이나 개미처럼 여긴다면 신하도 임금을 도적이나 원수처럼 볼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자 분기탱천 하여 말한다.
“이놈의 늙은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사지가 멀쩡할 것 같은가 장안의 책을 다 끌어다가 불태워버려라”<명사明史전당전錢唐傳 형부상서 전당錢唐어록> 이사건 이후 명에서는 맹자의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