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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24일(주일) 주일낮예배♣
성경:베드로전서4:8(신381P)
제목:뜨겁게 서로 사랑합시다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8. Most important of all, you must sincerely love each other, because love wipes away many sins.
논지: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서론
요즘은 과학이 매우 발달해서 정말 못 만드는 것이 없지만 아직도 우리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못 만들고 있습니다(성형수술 때문에 성형외과가 잘된다고합니다).
이 피 속에는 백혈구와 적혈구 혈장과 혈소판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백혈구'는 우리 몸에 이상한 어떤 침입자가 들어오면 얼른 그 침입자를 처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침입자를 처리하는 백혈구의 방법이 아주 성서적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백혈구는 침입자에게 아주 강력한 방법을 사용할 것 같으나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포를 쓰지도 않고 심한 욕설을 쓰지도 않습니다. 백혈구는 그저 침입자를 가슴에 꼭 껴안고 감싸줍니다. 그렇게 해서 꼼짝 못하게 해서 녹여 없애 버립니다. 참으로 백혈구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껴안아 줍니다.
적혈구도 백혈구 못지 않은 사랑을 지닌 친구입니다.
적혈구는 폐에 가서 산소를 받아들여 자기 몸에 가집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이 산소가 없으면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뇌도 그렇고 근육도 그렇고 심장도 그렇습니다. 이 산소가 있어야 생명을 연장합니다.
적혈구는 언제나 이런 생명의 산소를 풍성하게 얻어서 어디 줄 대가 있나 살핍니다. 그러다 산소가 필요하다고 하면 즉시 나누어줍니다. 자기 것을 챙기지도 않고 다 줍니다.
그리고는 약 4일 쯤 살다가 비장에 가서 자기는 죽습니다.
백혈구의 사랑은 감싸는 사랑입니다.
적혈구의 사랑은 나누어주는 사랑입니다.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멋쟁이 친구들 때문에 우리 몸이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세를 당한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권고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뜨겁게(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간곡하게 말씀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박해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생명을 보존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더욱 "무엇보다도 뜨겁게(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1.What: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 준다는" 것은 죄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며 죄를 드러내지 않고 감싸주는 것이요 죄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려 주신 사랑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고맙고 넓은 사랑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17:9)
먼저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서로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언 10:12)
그러므로 사랑의 첫 단계는 바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모자라고 늘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어떤 삶을 주님께 보이고 싶습니까?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허물을 마구 들추어내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을 주님께서 보신다면 기뻐하실까요?
여러분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무엇을 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하시다가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2.Why:왜 허물을 덮어주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십자가로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옷을 입힌다"는 히브리말은 곧 "(허물)을 덮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왜 옷을 입혀 주셨습니까? 비록 죄는 지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만 보아서는 무서운 벌을 내리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기 위해서 죄 없는 양의 가죽을 취하기 위해 그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지은 인류의 역사 속에 하신 일은 거듭하여 죄를 피로 덮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죄를 덮기 위해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양과 염소와 수소의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6:8)
하나님은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을 자신의 사랑의 옷으로 가리우고 계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그 영원한 구원과 사랑의 옷을 입히시고자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옷을 벗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나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옷을 입히시고자 벗으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덮는 것입니다.
3.How:어떻게 허물을 덮어줄 수 있습니까?
1).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는 어떠한 일보다 사랑을 먼저 할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에는 불법이 성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요즘 날로 악해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에는 “열심히”라고 번역된 “엑테네”라는 말은 “뜨거운” “열렬한”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원해 달리는 말이 근육과 힘줄을 최대한으로 뻗어서 힘껏 달리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세를 당하여 우리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사랑을 최우선으로 행해야 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뜨겁고 열렬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설교를 하는 저 역시도 말로는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뜨겁게 사랑하지 못함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부터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하여 뜨겁게 사랑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2).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특별히 베드로전서4:8-10절 자세히 읽어보면 '서로' 라고 하는 말이 세 번 있습니다. 서로! 서로 서로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서로'라고 하는 관계는 이것이 서로 하나의 큰 계약적 관계요 인간적 관계요 행적관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수직적 관계의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했노라. 그런 고로 서로 사랑하라."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그 사랑의 근거해서 우리는 그 결과로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 받았다' 하는 것은 은혜요, '사랑하라' 하는 것은 바로 은사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거창한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옆에 있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태여 멀리 있는 사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사랑하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로서의 개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는 거창한 타이틀을 열렬히 사랑하기 쉽다. 그러나 일반적인 면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 역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전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전 세계를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동시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내가 옆에 있는 남편을 보고 "여보,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남편을 통해 전세계를 사랑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화)
어느 날, 한 가정세미나에서 강사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처럼 집에서 남편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고 보고하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그때 한 권사는 남편이 일찍 타계해서 숙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평소에 부부싸움이 잦은 아들집에 가서 며느리의 발을 씻겨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권사가 며느리 집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 네 발 좀 씻겨야 되겠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시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며느리가 말했다. “그러면 그러세요.” 그 권사는 대야에 물을 담아 며느리 발을 정성껏 씻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며느리가 시집 와서 마음고생이 심합니다.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한 저를 용서해주소서!”
그때 며느리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자책되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이 며느리의 발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숙제하는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자 너무 감동이 되어서 따라 울었습니다.
발을 다 씻은 후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 발을 씻겨드릴게요.” 시어머니가 “그래라!”고 하자 며느리도 엉엉 울면서 시어머니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 뒤 아들 가정의 부부관계가 멋지게 회복되고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시어머니를 생각해주면서 아들 가정이 행복을 찾았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4.what then: 허물을 덮어준 사랑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죄와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본문 8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고 미움은 현미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멀쩡한 것도 현미경으로 보면 세균이 득실득실합니다. 그처럼 현미경으로 보면 허물만 보입니다. 그러나 얼굴에 큰 점이 있어도 망원경으로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나는 남보다 특별히 바르고 특별히 떳떳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 실수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사람은 어느 정도 부족함과 허물이 있어야 사람답게 느껴집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남의 죄와 허물을 들추지 말고 덮어주십시오. 허물을 드러내면 서로 불행해지지만 허물을 덮어주면 서로 행복해집니다.
예화)
작은 시골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부를 돕고 있던 한 소년이 성찬에 쓰일 포도주 그릇을 실수로 떨어트렸습니다. 신부는 즉시 소년을 나무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서 물러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 마라!"
그 후 이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 대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 다른 큰 도시의 성당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소년이 역시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이곳 신부는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성찬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네가 참으로 기특하구나."
이 소년은 자라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이 되었습니다.
티토 소년은 신부의 명령대로 제단 앞에서 영원히 물러가 신을 비웃는 공산주의 지도자가 되었고, 쉰 소년은 훌륭한 종교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 중에 가장 사랑이 많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손수건입니다. 손수건은 말없이 남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닦아주고 감추어 줍니다. 때로는 눈물도 닦아주고, 때로는 더러운 코도 풀게 하고, 손에 때가 묻었어도 아무 말없이 닦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에 손수건을 지니고 다닙니다.
우리는 남의 더러움을 위해 자신이 더러워지는 손수건을 보아야 합니다. 내 손수건에는 나의 냄새나는 허물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수건이 더러워졌다고 그냥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까? 가끔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손수건을 자신의 따뜻한 호주머니 속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을 위해 사랑으로 희생하면 그 대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쉽게 덮으려고 합니다.
2).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지만 과거의 상처도 쉽게 잊게 만듭니다. 성도는 감사한 일은 오래 잘 기억하고 원망스런 일은 금방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신기하게도 원망스런 일에 대한 기억력은 감퇴하고 감사한 일에 대한 기억력은 좋아집니다. 과거의 불행과 상처를 잘 잊을수록 성공과 행복의 확률은 커지고, 과거의 불행과 상처를 잘 기억할수록 실패와 불행의 확률은 커집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봉사하면서도 상쳐받고 크고작은 일로 상쳐받는것을 봅니다. 아무리 큰 상쳐가 있다해도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하면 지난날의 상쳐가 생각나지 않고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없으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상쳐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 사람의 허물이 가려집니다. 그 사람의 허물이 십자가에 박힙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그 허물을 덮습니다. 곧 허물이 녹아지고 사라집니다. 허물이 사라진 형제를 다시 보니 고통의 감정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 주는 사랑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얼마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영역, 사랑의 힘을 잡아 늘여!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구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최용덕님의 "오늘 나는"복음송가 함께 부르겠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 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 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 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