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철새도래지를 가다
두루미,재두루미,독수리 등 겨울철새들의 낙원
강원도 철원군은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DMZ안까지 들어가지않더라도 철원지역은 민간인출입통제지역이 많아 자연이 살아 있어 겨울새 월동지로서 천연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철원평야 및 한탄강의 풍부한 먹이와 겨울철에도 얼지않는 온천수가 흐르는 샘통과 같은 얕은 개천이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제202호), 재두루미(제203호), 독수리(제243호) 등이 해마다 겨울철이면 이곳을 찾아온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겨울새인 두루미는 대부분 번식지인 시베리아에서 서식하는데,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철원평야에서 월동을 한다. 일부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목두루미 등은 철원을 거쳐 우리나라 남부지역 또는 일본 규슈, 이즈미 지방까지 날아가 겨울을 보내고 이동시기에 다시 철원을 찾아온다.
연천에서 철원 쪽으로 3번 지방도로를 타면 군(郡) 경계를 지나자 마자 좌측으로 경원선 마지막 역인 백마고지역을 만나고, 조금 지나면 (前)노동당사 건물이 서 있는 관전리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우측은 제2땅굴 및 토교저수지 가는 길(464번 도로), 좌측은 관전통제소를 지나 철원두루미관-평화전망대 가는 길이다. 이곳 좌우 길 북쪽 방향으로 DMZ 남방한계선까지의 지역 곳곳이 철새도래지이다. 좌측으로는 두루미관 가기전 우측으로 ‘샘통지역’, 우측으로는 토교저수지 권역 및 양지리, 이길리마을 한탄강 권역에 주로 철새들이 찾아온다.
관전통제소 이후는 민통선 지역이라 신분증을 맡겨야 들어갈 수 있다.
관전통제소를 지나면 도로 좌우측 논 여기저기에서 철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두루미, 재두루미들이 먹이를 찾아 들판을 거니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을려고 하니 어느새 알아차리고 날아가 버린다. 철새들이 사람 인기척에 무척 민감하다. 두루미 4마리, 재두루미 3마리가 함께 모여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반갑다. 특히 철원지역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함께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두루미관 가기 전 우측으로 샘통 이정표가 보인다. 철원읍 내포리에 있는 샘통은 천연샘물이 사계절 내내 쉬지않고 솟아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샘이 솟는 0.5ha 정도 크기의 연못을 말한다.
현무암 지반을 뚫고 솟아나오는 섭씨 15도 가량의 미지근한 온천이 겨울에도 얼지않고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줄지않기 때문에 300여 년전부터 백로, 두루미, 왜가리 등 철새들의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관전통제소에서 차로 약 20분 쯤 달렸을까? 철원두루미관이 위치한 평화문화광장에 이른다. 이곳 광장에는 두루미관 이외에도 (舊)월정리역, 6.25전쟁추모비, 평화문화관, 평화의 숲공원 등이 있다. 이중 특히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찰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역의 바로 맞은 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 아래 6.25동란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 있어 분단의 한을 실감케 한다.
두루미관에 들어서면 철원의 지역적 특성과 함께 각종철새 박제와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두루미, 재두루미, 독수리 등 철새 생태도 소개하고 있다. 이곳 두루미관에 전시된 조류와 동물박제들은 약 38종, 90여 점에 이른다.
두루미는 암수 모두 머리 위가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부르며, 두루미라는 이름은 ‘두루루 두루루’하고 운다고 해서 유래된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몸길이 140-150cm, 날개길이 220-250cm, 몸무게 7-10kg 정도이며, 힌색 바탕에 목은 검은 색, 머리 위는 적색, 날개 안쪽은 검은 색이며, 꼬리는 힌색이지만 날개를 접었을 때는 셋째 날개깃이 마치 꼬리처럼 검은 색으로 보인다. 구애는 2-3월에 하며, 구애 때 행하는 학춤이 유명하다. 해방 전 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수천 마리까지의 무리를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철원지역과 강화도 등지 등 일부지역에서만 관찰될 뿐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두루미 중 가장 많은 800여 마리가 월동하는 철원지역은 국내 최대의 도래지이다.
반면에 재두루미는 키가 110-120cm 정도로 두루미보다 약간 작으며 몸이 재색을 띠고 있다. 현재 재두루미는 철원지역에 국내 최대인 1,500여 마리가 월동하며, 이동기인 10-11월, 2-3월에만 3,000여 마리 이상이 관찰된다고 한다. 이는 여러 무리가 시기를 달리 해서 이동하는 것을 고려하면 전세계 추정 생존개체 6천여 마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3천여 마리가 철원지역에서 체류하거나 월동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철원두루미관을 거쳐 평화전망대를 둘러본 후 다시 관전통제소로 돌아와 토교저수지로 향한다. 양지리 마을 인근에 위치한 토교저수지는 철원평야의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1972년에 토축한 대규모 인공저수지이다. 저수지 면적 338.34ha에 저수량은 165,680톤이며, 양지리, 대위리, 장흥리, 오덕리 일대의 농경지에 물을 대고 있다. 철원 안보관광의 중심지인 제2땅굴 진입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려한 호수경관과 함께 겨울철에는 월동 철새들의 잠자리가 되고 있다. 겨울철 새벽 7시경 이곳 저수지를 찾으면 일제히 비상하는 기러기떼의 군무광경을 볼 수 있다. 토교저수지 인근에는 철새보는 집도 있다.
이길리로 가는 464번 도로와 토교저수지 사이 들판은 독수리도래지로도 유명하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시간이 맞지않아서인지 독수리들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 농로 여기저기에 제법 큰 뭉치의 돼지고기 덩어리들을 뿌려놓아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 토교저수지 주변에는 매년 겨울 500-600여 마리의 독수리들이 찾아온다고 하며, 이와같이 먹이주기를 함으로써 독수리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독수리는 이곳 이외에도 경기도 파주, 연천, 포천, 양주, 강원도 양구, 고성 등지에서도 볼 수 있으며 남부지방으로도 소수가 내려가기는 하나 주로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많이 관찰된다. 생존집단의 수가 약 2천쌍 내외로 알려져 있으며, 유라시아에 넓게 분포하나 우리나라에 오는 독수리는 주로 몽고지역에서 내려오는 무리로 파악되고 있다.
토교저수지 주변에서 독수리를 만나지못한 대신, 필자는 우연히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들판에서 족히 100여 마리는 됨직한 독수리떼를 만날 수 있었다. 민통선한우촌(033-452-6649)이라는 식당 앞 들판에는 겨울철 날씨 좋은 날에는 11시-15시 경 사이에 수십, 때로는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꾸준히 독수리 먹이를 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루미떼들을 보기 위해서는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이길리는 두루미마을이라고도 불리워질 정도로 두루미탐조마을로 유명하다.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낮에는 철원평야에서 먹이활동을 한 후 밤에는 이곳 이길리마을 옆으로 흐르는 한탄강 상류에서 주로 쉬거나 잠을 잔다.
이길리 마을 자체는 민통선 지역이라서 별도 허가를 받거나 마을 주민의 초청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마을 입구에 통제소가 있어 일일이 검문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않고 철새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464번 도로에서 토교저수지를 지나 몇백 미터 더 가면 마을에 이르기 전 수백미터 앞 우측에 철원철새도래지라고 쓰여진 표지목을 놓치지말아야 한다. 그 표지목 우측길, 무지개농장 간판이 보이는 소로를 따라 700미터 가면 이길배수펌프장을 만나고 바로 그 뒤 제방 위에 철새탐조대인 컨테이너박스 몇개가 보인다.
철새쉼터를 보호하기 위해 탐조대 이외 제방은 모두 높은 울타리를 쳐 놨기 때문에 탐조대에서만 철새보기나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탐조대는 사진작가들을 위한 탐조대와 일반여행객들을 위한 탐조대로 나뉘어져 있다.
탐조대를 이용할려면 입장료 15,000원을 내야 한다. 커피 한잔 및 탐조대 관리비용이다. 10,000원은 철원 농산물 구입권이니 커피 한 잔과 농산물 구입권을 감안하면 무료입장이나 다름없다.
필자가 간 날은 두루미 등 철새가 많이 오지않아 조금 실망스러운 날이었다. 간간이 독수리, 청둥오리, 고라니 등이 나타나 지루함을 다소 잊게 해줬다. 두루미가 탐조대에서 얼마나 가까운 위치까지 오느냐의 여부도 운이다. 근접촬영이 바람직하지만 원거리 촬영을 위해 500mm-600mm 정도의 망원렌즈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겠지만 사진은 특히 기다림의 예술이다.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한나절을 꼬박 기다려서서야 겨우 몇컷의 두루미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작품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새삼 절감한다.
600mm 망원 단렌즈를 사용하고 있는 옆 사진작가는 겨울철에는 거의 매주 이곳에 온다고 한다. 그분은 두루미의 심리상태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대포렌즈를 가진 고수들이 별로 보이지않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알아차릴 만 하다. 두루미 등 철새들은 주위 분위기에 매우 민감하다.
탐조대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적정인원, 옷색깔, 정숙이다. 몇일 전 버스 두 대의 대규모 인원이 왔다 갔다고 한다. 소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관광여행 온 것처럼 울긋불긋 원색복장에 철새들이 놀란 것은 당연하다. 이곳에 자주 왔다는 한 사진작가는 그 후로 두루미가 이곳으로 오지않고 다른 장소로 임시서식지를 옮긴 것 같다고 걱정한다. 필자가 방문한 날 철새전문사진작가들이 거의 보이지않은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철새탐조대에 가려면 소규모 인원에 복장도 철새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원색이 아닌 옷, 즉 검은색이나 회색 등이 좋다. 탐조대 안에서는 가능한 한 움직이지않고 조용히 관조하면서 촬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탄강변에서는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습도가 높을 경우 환상적인 상고대숲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두루미떼라도 지나가면 금상첨화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