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국제한의사 커뮤니티(International Asian Medicine Community)
 
 
 
카페 게시글
재미모아모아 스크랩 영화 [노아] - 다크 판타지로 재탄생한 `노아의 방주`
뮤즈신 추천 0 조회 48 14.04.09 15: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주연 :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 로건 레먼, 레이 윈스턴

개봉 : 2014년 3월 20일

관람 : 2014년 3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노아의 방주'는 어떤 이야기?

 

드디어 잔잔한 비수기 극장가에 태풍을 불러 일으킬 할리우드 대작 영화 [노아]가 개봉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노아]가 개봉하자마자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노아]를 상영하기 위해 다른 영화들은 교차 상영으로 밀렸습니다.

이번주 개봉작 중에서 [노아]외에도 [프라이버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벨과 세바스찬]을 기대작으로 선택한 저는 이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물론, 상영 시간대도 띄엄띄엄 배치된 것을 보고 좌절해야 했습니다. 기대했던 [노아]의 개봉은 반갑지만, 그로인하여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현실은 많이 아쉽네요.

암튼 [노아]를 봤습니다. 솔직히 저는 종교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저로써는 종교영화가 따분하기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꽤 익숙합니다. [노아]는 바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익숙한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한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입니다.

하지만 [노아]가 '노아의 방주'이야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겼다면 제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를 통해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와 영화 속의 '노아의 방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성서의 내용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가지 유의하셔야할 것은 저는 솔직히 성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노아는 500살의 늙은 나이에 샘, 함, 아벳 세아들을 두었다고 합니다. 창조주는 노아에게 노아와 그의 아들들, 며느리들이 세상 모든 동물들의 암수 한 쌍씩과 함께 탈 수 있는 커다란 방주를 만들라고 명했습니다. 노아는 창조주가 시킨대로 커다란 방주를 만들어 동물들을 방주에 태웠습니다. 

그러자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려 인류 전체가 물에 빠져 죽었고 비가 그친 후에도 물은 150일동안 빠지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마른 땅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 한마리를 보냈는데,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옴으로서 물이 빠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뒤 노아는 창조주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 이에 창조주는 이제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파괴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증거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은 인류의 조상이 되는데, 함은 아프리카인의 조상이, 야벳은 유럽인의 조상이, 셈은 중동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만의 '노아의 방주'

 

사실 성서의 내용대로 [노아]를 만든다면 영화는 거대한 재난영화가 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 자체는 심심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캐릭터간의 갈등 구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계시를 받아 거대한 방주를 만드는 노아와 그러한 노아를 비웃는 다른 사람들 정도가 '노아의 방주'의 유일한 갈등입니다. 

이에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의 방주'에 다채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어 [노아]를 완성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인의 후손인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의 등장입니다. 성서에 따르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카인과 아벨, 그리고 막내아들인 셋입니다. 세 아들 중 맏아들인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그렇다면 왜 카인은 동생을 죽인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질투심입니다. 창조주가 자신이 올린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이 올린 제물만을 받자 그에 대한 질투로 인하여 아벨을 죽였다고 합니다.

[노아]는 바로 그러한 카인을 이용해서 인간의 사악한 면을 모두 가진 두발 가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듭니다. 물론 두발 가인 역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순수하게 창조해낸 캐릭터는 아닙니다. 성서에 따르면 두발 가인은 카인의 7대손입니다. 금속 가공의 시조로도 알려졌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라멕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라멕이 두발 가인을 죽인 사건으로 인하여 창조주는 인간 세상에 더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려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입니다. 

그러한 두발 가인을 셋의 후손인 노아와 대치시키며 [노아]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특히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두발 가인이 금속 가공의 시조라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그를 날카로운 칼로 무장시켜 관객에게 위압감을 주게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두발 가인의 등장으로 셋의 후손인 노아와 카인의 후손인 두발 가인으로 갈등 구조를 만든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대런 어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와 그의 둘째 아들인  함(로건 레먼)의 갈등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높입니다.

사실 성서에 따르면 노아의 세 아들은 각각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를 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에서는 첫째인 샘(더글라스 부스)에게만 일라(엠마 왓슨)라는 아내가 있을 뿐, 나머지 두 아들인 함과 아벳에게는 아내가 없습니다. 아벳은 아직 어리기에 큰 문제가 없지만,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선 함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신부감을 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인간들의 추악함을 두 눈으로 확인한 노아는 결국 아들의 요청을 묵살하고맙니다.

노아와 두발 가인의 갈등과는 달리 노아와 함의 갈등은 한층 더 복잡합니다. 대홍수로 인하여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죽음을 당한다면 함은 평생 혼자 살아야만합니다. 그렇기에 노아에 대한 함이 반항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아를 향한 함의 반항이 두발 가인과 힘을 합하며 [노아]의 긴장감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증폭되는 효과를 불러 일으킵니다.

사실 노아와 함의 갈등 역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순수한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합니다.  성서에 따르면 노아는 포도 재배 기술을 처음 발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고 합니다.(그러한 장면은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이를 재미있게 여긴 함은 다른 두 형제에게 말했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강했던 샘과 야벳은 뒷걸음질로 아버지의 벗은 몸을 쳐다보지 않고 옷으로 덮어주었지만, 아버지에게 불경스러웠던 함의 자손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다고합니다. 노아와 함의 갈등은 바로 이러한 성서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죠.

 

 

대홍수가 일어나면 모든 갈등이 끝날 줄 알았다.

 

사실 저는 [노아]를 보며 대홍수 장면이 노아를 둘러싼 모든 갈등 구조를 끝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대홍수 장면은 영화의 중반부에 일찌감치 펼쳐집니다.

물론 대홍수 이후에도 두발 가인이 노아 몰래 방주에 올라탔고,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함이 두발 가인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며 긴장감은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새로운 갈등 구조를 통해 대홍수 이후에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조입니다.

대홍수 이후 재기된 갈등 구조는 바로 일라의 임신에서 비롯됩니다. 어린 시절에 당한 상처로 인해 불임의 몸이었던 일라. 하지만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안소니 홉킨스)는 일라에게 축복을 안겨주었고, 그로인하여 일라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라의 임신은 노아의 축복을 결코 받지 못합니다.

성서에서는 대홍수 이후 창조주는 노아의 세 아들들이 번성할 수 있게끔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창조주가 원하는 세상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타락한 인간은 모두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아를 그려냈습니다. 그 대상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그가 두 아들인 함과 아벳의 아내감을 구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불임이었던 일라가 임신을 하며 노아의 계획은 헝클어집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일라가 낳은 아이가 남자 아이라면 살려두고, 여자 아이라면 그 즉시 죽이겠다고 선언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대홍수 이전에 노아는 구세주였습니다. 가족들은 노아를 따랐고, 인간을 도왔다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저주를 받은 타락천사 감시자들 또한 노아를 도와 방주를 건설했습니다. 그는 타락한 인간 세상을 멸하려하는 창조주가 선택한 유일한 인간의 구세주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홍수 이후 노아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새로운 세상에 인간은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생각은 노아의 가족들을 위협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러셀 크로우의 카리스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아의 무시무시함은 영화 초반 위압적이던 두발 가인의 존재감조차 희미하게 만드는 위력을 가졌습니다. 샘과 일라는 아직 육지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아를 피해 방주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그러한 계획마저 노아에 의해 무산됩니다. 출산일이 다가오는 일라를 바라보는 노아의 날카로운 눈빛은 [노아]가 단순하게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한 종교영화에서 멈추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노아]의 러닝타임은 무려 2시간 20분입니다. 보통의 영화보다 30분 가량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엔 노아와 두발 가인, 그리고 함의 갈등 구조가 긴장감을 조성했고, 중반에는 거대한 스케일의 대홍수 장면이 제 시선을 사로 잡았으며, 후반엔 창조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자손을 죽이려는 노아의 광기가 저를 섬뜩하게 했습니다. 이쯤되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영화? 아니다. 이건 새로운 다크 판타지영화이다.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듯이 [노아]는 성서에 나와 있는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종교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거대한 판타지의 세계관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바로 감시자라 일컬어지는 거인의 존재입니다. 빛의 형상을 한 천사였지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간을 도와주게되고, 결국 그로인하여 창조주의 노여움을 받아 돌의 형성을 한 흉악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창조주의 노여움을 받으면서도 인간을 도와준 감시자들에 대해서 카인의 후예들은 대학살을 감행합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므두셀라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감시자들과 처음 마주치게 되는데,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감시자들의 외형 덕분에 종교영화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판타지영화에 대한 친숙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감시자의 존재는 [노아]에서 꽤 다양하게 이용됩니다. 종교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 외에도, 감시자들이 노아를 도와 방주를 짓는 장면들을 통해 거대한 방주를 노아와 가족들의 힘으로 지었다는 성서의 내용에 대한 설정을 좀 더 현실적(?)으로 보완했으며, 두발 가인 일당의 공격에서는 노아의 편에서 싸움을 함으로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종교영화라는 것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거북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영화 자체가 해당 종교의 종교관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를 판타지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를 실감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제작비가 필요햇고, 그러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종교영화가 아닌 대중적인 영화 장르가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제게 그러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 저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화속의 새로운 세계관에 흠뻑 빠져 긴장감 속에 영화를 감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타락, 창조주의 계시와 구원,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폭 넓은 이야기들을 완벽하게 즐겼습니다.

러셀 크로우는 오랜만에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엠마 왓슨은 [노아]를 통해 더이상 [해리 포터 시리즈]의 귀여운 꼬마 마법사 헤르미온느가 아님을 어필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로건 레먼의 연기였는데, [퍼시 잭슨 시리즈]에서 포세이돈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을 연기했던 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함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해냈습니다. 영화 속에서 두발 가인이 말했듯, 이제 로건 레먼은 소년에서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암울하면서도 매력적인 판타지의 세계관과 배우들의 멋진 연기 속에서 재탄생한 '노아의 방주'. 역시 이번에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제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네요. 저는 매우 만족감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설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무엇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까?

과연 믿는 자는 선하고, 안믿는자는 악하다고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창조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광기에 휩싸인 노아.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러한 질문을 다시금 마음 속으로 해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