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부부가 향한 곳은 밤고개에 위치한 세곡동 성당이다.
사순절 첫주부터 도곡동성당, 삼성동성당, 홍제동 성당, 금호동 성당을 한바퀴 돌아 왔으니
다섯번 째 한바퀴인 셈이다. 금주가 사순 제5주일째 되는 날이다.
서울대교구에는 모두 233개의 성당이 있다. 매주 걸르지 않고 돌아본다고 해도 4-5년은 족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장기 레이스가 된다고 봐야한다.
어디에서 멈출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예측하기가 쉽질 않다.
일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방죽마을까지 가서 10분 정도 걸으면 아파트 숲이 끝날 때쯤 仁陵山
끄자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곡동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우중충한 중세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세련된 모습이다.
우리부부가 다니고 있는 수서성당에서 분가한 세곡동 성당은 2017년 2월 예수성심을
주보성인으로 설립되었고, 그 해에 한국 건축문화 대상부분에서 우수상을 받게된다.
위대한 벽(Grate Facade)
성스러운 여정 (Divine Promenade)
거룩한 빛 (holy Light)
위의 세가지가 주된 건축 개념인데, 건축가들은 특별한 의식과정으로 대하는 부담감으로
공간적 완성도에 집중하여 건물의 기능적인 부분에 소홀해질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밝아지는 '빛의 성당'은 어두운 성당 분위기를 걷어내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한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정스님 알현하려면 108배를 해야 허락했다는데,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예수님 뵈러가듯
한없이 올라가야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 북적북적 모여서 환담을 나누며 기다리고 있다.
대성전의 내부는 순백색면으로 처리되어서 담백하면서도 편안하며 양쪽 벽면은 오크색상의 굵은
나무 창살로 처리되어서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아주 절제된 작은 크기의 창문과 제대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자연 채광은 '빛의 성당'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모습이다.
성당마다 십자고상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세곡동 성당의 십자고상은 팔을 양옆이 아닌
두팔을 위로 올리고 있는 형상이라 더욱 처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미사를 끝내고 밤고개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성당 앞쪽에는 율동 공원이 크게 자리를 잡고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이 신바람을 내고
있다.
성당 옆으로는 인능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나있고 갈래길에는 德岩사라는 절이 있다.
내친김에 올라가 본 자그마한 덕암사에는 풍경소리만으로 내가 절이요하고 인사한다.
성당 순례 한바퀴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암묵적으로 그 동네에서 식사 해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수를 좋아하는 내눈에 처음 띈 식당은 "내가 칼국수다"라는 상호의 국수집이다.
국수에 별다른 맛을 못느끼는 아내가 메뉴 선택을 양보해준다.
세상일들은 사소한 것에서도 뜻대로 되질 않는 법이런가! 긴줄로 늘어선 대기자들의 모습에 양손을 들고
방향을 틀었다.
봄철이면 꼭 먹어야한다는 <도다리 쑥국>의 주인공은 가자밋과 중에서도 문치가자미이다.
경남 통영에서 시작된 <도다리 쑥국>은 전남 여수에서 눈에 띄더니 봄철이면 전국에서 계절 음식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내가 칼국수다"라는 상호의 국수집 옆에 <목포 명가>라는 해산물 집이 눈에 띄였다.
사람도 북적거린다. 안으로 들어서니 예약여부를 묻는다.
자리 점검을 한후에 마침 2인용 자리가 있다고 한다. 인기가 많은 식당인 것 같다.
메뉴에는 <도다리 쑥국>이 웃고 있다. 값이 만만치 않다. 1인당 이만오천원이다.
문치가자미는 12월과 이듬해1월까지 산란을 한다. 산란을 마쳤으니 얼마나 허기가 지겠는가
(오죽하면 산란하고 뼈만 남은 암컷 명태를 '꺽태'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울까.)
이렇듯 모든 물고기의 모성애는 제 살을 깍아내는 산고를 겪는다.
봄이 시작되자 정신없이 먹이 활동을 하다가 잡히고 만 녀석들로 인간들은 몸 보신에 정신이 없다.
나른한 봄을 맞이하는 도다리 쑥국의 매력은 담백한 쑥향이 앞선다.
섬 할머니들이 직접 캐서 파는 해쑥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
도다리 국에 쑥을 넣는 것이 아니라 쑥국에 도다리를 넣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린 냄새도 없고 쑥향이 좋은 <도다리 쑥국>에 생선을 그저그렇게 생각하는 내 아내는
국물까지 전부 마시는 괴력을 발휘했으니 추천할 만한 음식이다.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서울교구 주보에는 聖畵들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두초(Duccio)---예수님을 유혹하는 악마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그리스도의 변모
엘 그레코(El Greco)---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엘 그레코(El Greco)---삼위일체
사순 제5주일에는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ontegna)의 <예수님의 고뇌>, 흔히 미술사에서는
<겟세마네의 기도>로 불리우는 15세기의 성화이다.
발에서 부터 예수의 몸을 그려나간 구도의<죽은 그리스도>
빌라도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한 예수 모습을 그린 <자, 이사람이오>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경배> 등 수많은 성화를 그린 화가이다.
화가들의 이야기와 미술사를 읽는 즐거움은 주보의 성화를
보는 기쁨을 더욱 크게하고 있다.
씨앗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많은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주소서.
고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