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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시죠?
착각인지는 몰라도 8월이 되고 나니 더위가 한 풀 가신 듯한 느낌입니다. 풀숲에서 귀뚜라미인지 방울벌레인지, 아무튼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리고요.
물론 매미도 여전히 목청을 높이고 있죠.
광복절이 끼어 있는 8월,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있는 만큼 이번에 추천할 작품도 그쪽 계열로 골라봤어요.
초등 5학년이 읽으면 좋은 역사 동화책이랍니다.
저는 일부러 찾아 읽은 거 아니고, 업무상으로 읽게 되었지만요.
도서명: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
저자 및 그림: 강다민
* 이 책은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신간 점자도서로 제작 중에 있습니다. 늦어도 9월에는 제작 완료되어 있을 거-예요.
PS. 형태가 점자도서라서 실제 그림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책에 그림이 있다는 정보만 점역자 주를 통해 제공됩니다.
* 소개글 서평
업무적으로 얽힌 작품으로 서평 및 감상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 <정글만리>와 <제3인류>, ‘빨강 연필’, <의자> 등이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더라?
사실 이 책(점자 전자파일)을 들기 전에 살짝 고민했다. 바로 전에 교정을 본 신간이 너무 처참해서 이번에는 또 어떤 꼴일까 싶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원본 책에 ‘저자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써 있었겠는가. 이 문장의 행간에 담긴 의미는 ‘손대지 못할 만큼 오타와 띄어쓰기가 문제 있다’는 뜻이다.
고치자면 한세월이요,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점자 신간도 도리없이 원문을 살린 채 갔는데, 어디 가서 내가 교정했다고 말을 못할 만큼 참담한 수준이 됐다. 이래서 본판 불변의 법칙이 나왔나?
자고로 이럴 때는 정보 수집이라고 했으니, 슬쩍 교열․점역을 맡은 담당자에게 이 책,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 어땠냐고 물었다. 그리고 ‘무난하다’는 말에 안도하며 교정에 착수했다.
역사가 낳은 세 아이의 교차,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
책은 교실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도둑잡기 게임’이라고 하는데, 뉘앙스 보면 사회자가 범인을 지정하고 다른 아이들은 자기네들 안에 있는 범인을 찾으려 하며 각자 자신이 범인이 아닌 이유를 대면서 진행되는 알리바이 추리 게임인 것 같다. 와, 요즘 애들은 이러고 노나? 나 때만 해도 고무줄 놀이나 끝말잇기, 아니면 골볼이나 탁구 치면서 놀았는데.
여하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세 명의 아이들, 물결이랑 하미랑 갓 전학을 온 란이다.
이 세 명의 아이들(소녀)은 저마다 복잡한 역사적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우선 물결이는 증조할아버지가 일제에 저항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물결이는 조상님의 옳고 애국적인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으로 학원 하나 보내줄 수 없는 가난한 집안 사정에 아쉬움을 갖는다. 대학을 나와 방송국 다큐멘터리 PD가 된 아빠 말고는 물결이네 작은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남들처럼 아파트에 살고 싶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한편 하미에게는 학교에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것. 외가 쪽이 우리나라와 혈연이 있는 복잡하고 역사적인 내막이 있다. 부모님 중 엄마는 일본인, 아빠는 한국인이고 하미 역시 때때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며 지낸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배우면서 심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한때 학교에서 일본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 하미는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꽁꽁 숨긴다.
마지막으로 란이는 할아버지가 구의원에 출마하면서 다니던 국제학교에서 물결이와 하미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독단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엉겁결에 전달받은 편지를 통해 집안에 불명예를 알게 된다. 배우를 꿈꾸는 란이는 자신이 친일파 후손임을 알고 감당해야 할 무게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아이들이 한 학교, 같은 반에서 만났다. 인형극, 그림 등을 통한 역사 교육을 배우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6․25전쟁까지 세 아이들의 조상이 거쳐온 시대를 간접 체험하면서 물결이와 하미와 란이, 백 년전부터 시작되어 현대에까지 이어진 ‘비밀’에 얽힌 갈등도 함께 드러난다.
“안녕?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나, 소녀의 이야기야. 옛날, 소녀들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해 줄게. 백 년쯤 전에 태어난 소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 책,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은 근현대 역사서라고 해도 틀린 소리는 아닐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독립운동, 해방, 독립군과 친일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의 대립으로 옳은 일을 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애국지사, 6․25 전쟁 등에 이르는 굵직한 역사를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위인전 나열이나 사료를 제시하는 식으로 풀어놓지는 않는다. 물결이네 학교가 ‘역사 교육 시범 학교’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인형극이나 피카소의 그림 등 다양한 소품을 통해 역사 속의, 전쟁 속의 아픔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진 사건들을 하나하나 다양한 방법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도 껄끄러운 문제로 남아 있는 위안부 사건, 북한군과 남한군 두 진형에게 식량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사상 전쟁에서 무구한 양민학살로 이어진 마을 몰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민간인에게 총칼을 겨눴던 우리나라의 이야기까지...... 민감하고 부끄럽고 아프고 수치스러운, 또 무엇보다도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그렇기에 잊어서는 안 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의 이야기들.
물결이네 반 친구들은 일제의 만행에 분개하는 한편 전쟁의 잔악함에 혼란을 느낀다. 내가 지금 봐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인데, 꼬마들 시선으로 봐도 그 당시의 일들은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내가 놀랐던 점은 피카소가 우리나라의 전쟁 참혹사를 묘사한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다는 부분이다. 아니, 그 유명 화가 말하는 건가? 그런데 그 양반, 언제 그런 작품을 다 남겼다니.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 사람인지, 피부색이 어떤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체형이 큰지 작은지, 외모가 어떤지, 어디에 사는지, 종교가 무언지, 직업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고 차별하지요. 수많은 차별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하나씩 다 같이 없애 가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은 역사를 주제로 하지만 그 역사는 결코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 아이의 이야기에 빗대어 현실 속에 숨 쉬는 역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있었던 일이 아닌, 과거에 있던 일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로 표현한 점이 제법 인상적이다.
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역사를 배우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부분이 꽤 잘 짜여진 스토리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본의 만행을 욕한다. 과거 잘못에, 특히 위안부 문제로 뉴스가 나는 건 일상이 됐다. 사과를 해라,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를 대라 외교 문제에서 곧잘 등장한다. 거의 단골급이다.
하지만 사실 일본군과 똑같은 짓을 베트남 사람들에게 했다는 것, 우리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언급하지 않은 점은 잘 회고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민간 위탁으로 베트남 전후 피해 지원을 했다는 둥, 국가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의 이득 하에 이면합의가 있었을 거라는 둥 각종 합의의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그 문제(베트남 민간인 학살)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일본을 탓할 당위성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민간단체를 통해 지원이라도 했고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일본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글쎄. 내 기준에서는 피장파장 아닌가 싶다. 당시 우리나라가 미국의 참전 요청에 의해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렇다고 민간인 학살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물론 일본의 ‘발뺌’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새삼스럽지만 중․고교 국사 선생님과 근현대사 선생님께 감사드려야겠다. 진도에 쫓기는 특수학교 교육 현장에서 비교적 디테일하고 객관적으로 국사와 근현대사를 가르쳐주셨으니까.
참고로 책 제목인 《백 년 전의 시작된 비밀》은 백 년 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비밀을 말한다. 그 ‘비밀’이란 역사의 다양한 얼굴을 의미한다. 책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그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과거에 이랬으니 배척해도 된다, 미워하는 게 당연하다, 잘못을 저지른 작자의 후손이니 고개를 들 자격이 없다, 옛날 일을 보상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역사의 책임감’을 깨닫게 만든다.
물결이와 란이, 하미는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게 된다. 물결이네 아빠가 제작하고 방송한 다큐멘터리 때문에 란이는 친일파 후손이란 게 밝혀졌다. 물결이는 도우려고 했던 일인데, 어쩌다 보니 하미의 가정사가 학교에 쫙 퍼졌다. 하미와 란이를 대하는 게 어색해진 물결이는 자신의 가난함을 누구에게 원망해야 할지 답답하게 생각한다. 서로를 향하던 원망은 결국 ‘할머니(하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만약에 ‘할아버지(란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물결이)’가 그런 어려운 선택을 고르지 않았다면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향한다.
다행히도 세 아이는 원망에 그치지 않고 하미는 ‘친구들의 놀림이 싫어서’, 란이는 ‘친일파 후손이라는 게 창피해서’, 물결이는 ‘너희 탓이 아닌데 미워했다’면서 정직하게 자기를 들여다보고 서로에게 사과하고 동화는 갈무리가 된다.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에 했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따돌리고 편견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연좌죄’는 진작 폐지됐다. 아비가 죄를 지었다고 아들까지 옥살이를 시키지 않고, 자식이 죄인이라 해서 부모를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 그럼 과거의 매국을 했던, 혹은 매국에 싫든 좋든,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어서든, 적든 크게든 가담한 무리, 소위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의 후손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조상이 매국했지 후손이 나라 팔아먹은 건 아니니까 퉁치고 넘기자고 하기에는 현재 그들은 너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재산 몰수 운운하기에는 당위성이 없다. 불분명한 화풀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게 답이지 싶다. 백 년 전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백 년 전부터 시작된 비밀이 다시금 이어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역사 인식을 옳게 제대로 하기 위해 힘써야 하지 않을까.
괜히 역사를 꼬투리 삼아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울 것이 아니라 말이다. 사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견이나 불란 조장하는 데 도가 튼 건지 순수한 목적으로 모였다가도 이상하게 변질되는 조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니, 꼭 정치판만 얽혔다 하면 볼성사납게 꼴불견이 되더라.
특히 나는 우리나라 외교가 아주 거지 같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당위성과 실리, 그 어느 것 하나 챙기지 못하는 무능력한 작자들! 이런 밥벌레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승자가 제멋대로 펴낸 기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건 객관성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이 《백 년 전에 시작된 비밀》은 말하고 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황순원 작가의 카인의 후예 소개 부탁드립니다.
더위에 수고하셨습니다.
대리 감상 신청 접수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한 줄 방명록을 통해 감상 신청해주세요. 공개적으로 해야 카페 사서의 읽을거리가 풍성해지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