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것은 문득이다. 매일 다니던 길에서 어제는 보지 못하였다가도 오늘 ‘문득’ 바라보게 된다. 숲의 색이 연초록으로 변하는 것도 문득이고, 뿌려 둔 씨앗에서 떡잎이 올라오는 것도 문득이고, 이렇게 꽃이 피는 것도 문득이며, 새가 우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자연이 내게 다가오는 것도 문득 문득이다.
그래서 항상 잘 살펴야 한다. 잘 살펴야 그것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올라오는 아련한 감성이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지난주에는 법당 앞의 회양목에 핀 꽃을 보았다. '회양목에 무슨 꽃?'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나무에도 앙증맞은 꽃이 피어난다.
봄꽃들이 만발하는 계절. 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온 산천을 화려한 꽃으로 물들이는 이 때에 회양목 같이 멋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이 나무가 어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느냐마는 조금만 깊이 관찰해 보면 그런 다른 봄꽃들에 뒤지지 않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회양목 꽃은 그 잎보다 더 색이 연하고 작은 까닭에 얼른 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애정을 가지고 유심히 관찰해 보았을 때 연초록빛의 아주 예쁜 꽃을 보여준다. 이런 바라봄과 발견이 소박하지만 작은 행복을 안겨준다.
황양목선(黃楊木禪)이란 말이 있다. 황양목은 회양목을 지칭하는 것으로 회양목 같은 참선수행자를 이르는 것인데, 근기가 우둔하여 아무리 참선수행을 하여도 제대로 성취를 못 이루는 수행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만큼 회양목이란 자라는 것이 더디고 느려 자라는 지도 모르게 자란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황양목선의 수행자를 아둔한 수행자로 보기보다는 더디고 느리더라도 일년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가지고 있음을 볼 때 항상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하는 수행자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남에게 쉬 드러나지 않더라도 늘 때가 되면 꽃을 틔우는 것을 볼 때면 숙연해진다. 요즘이야 얼마나 나를 드러내고자 하고, 드러내기 위해 온갖 화려한 치장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쓰는가. 그럼에도 묵묵하고 묵연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가꾸는 황양목선의 수행자가 있다.
이런 회양목의 꽃을 보기 위해서, 또한 황양목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안팎으로의 비춰봄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어떤 꽃이든 그 어떤 존재든 우리가 그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라봄이 필요한 것이다. 머릿속이 온갖 상념들로 꽉 차 있다거나, 마음속에 온갖 욕심과 집착, 바람들이 쌓여 있을 때, 또 걱정스런 무언가가 내 마음을 짓누를 때, 나의 시선이 면밀한 비춤이 되지 못할 때 우린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것을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모든 봄의 생명들도 마찬가지. 봄이 오면 내 마음에서도 함께 봄이 와야지, 봄이 오는데 꽃이 피는데 내 마음에서는 여전히 꽃이 피지 않고 봄을 맞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봄은 오지 않는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 봄은 오지 않는 것이다.
봄이 오고 꽃이 필 때, 내 안에도 봄이 오고 꽃이 피는가 안팎으로 살피고 또 살필 일이다.
이 아름다운 봄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이번 주말에는 산으로 들로 이 아름다운 3월의 대지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내 안의 모든 세포가 봄을 만끽하게 해 주어 보면 어떨까요?
2015.03.27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