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멸치 회
중학시절부터 나의 식도락은 시작되었다.
큰오빠의 영향이잔 크다.
큰오빠는 청춘의 한 때를 전국을 유람했다. 오빠의 젊은 시절은 취직이 힘들고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그 때 오빠는 어떤 물건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며 세일즈를 했다. 오빠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우리에게 가끔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10살 안팍이던 내가 기억하는 것은 춘천의 막국수 이야기와 추어탕이야기다. 겨울철 얼음이 둥둥 뜨는 막국수를 먹고 국수를 삶은 봉놋방에서 체온을 덥혔던 일, 미꾸라지를 산채로 뜨거운 두부 속에 넣어서 두부를 썰어먹는 일등이 생경했다. 그렇게 타 지역에서 일어나는 생경한 음식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내게 생겼다. 내가 아는 요리법과 색다른 맛은 어디건 가서 먹어보고 배워보고 싶은 것이 지금의 조리사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일지도 모른다.
중학시절 신광여고 앞의 만두가게. 보성여고 근처의 즉석 떡볶이 집, 이대 앞의 빵집, 종로2가의 독일빵집의 바케트 빵. 우리 학교 앞의 신생. 남영역 근처의 분식집. 등등을 전전하며 다니던 버릇은 여학교 졸업한 뒤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계속됐다. 커피와 막걸리 술안주가 추가되면서.
결혼한 후에는 먹는 것이 취미인 남편과도 죽이 잘 맞아 어디에 어떤 음식이 맛있다면 꼭 먹어보고 집에 와서 재현하는 습관이 있었다. 재현한 음식은 90프로 정도는 비슷하다.
몇 년간 별렀던 멸치회. 마침 남편의 이종 사촌 계모임이 거제에 사는 여섯째 이모의 둘째가 유사를 해서 치른단다. 남편의 이종들은 증도나 신안지역출신으로 전국에 흩어져 산다. 참고로 작년에는 양산, 어느해는 대구, 또 어느해는 인천 대전등 사촌들이 사는 지역에서 한 해에 한번, 그리고 고향인 증도에서 한번. 1년에 두 번 치룬다. 하느님이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어져서 살라는 명을 했다면, 아마도 당신의 빚은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으라는 깊은 뜻이 있지 않겠는가. 음식과 문화, 경관들이 다르니까.
거제는 한 번 가 본 곳이지만 상가 집을 다녀왔을 뿐, 그 고장의 유명한 관광지나 사적지를 가보지 못해 근무를 바꿔가면서 가기로 결정했다. 퇴근을 하고 길을 나섰다. 도착한 시가지 저녁 10경. 서둘러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내가 보고 싶은 거제도의 사적지와 음식재료를 파는 곳 등을 검색했다.
막상 계를 치룬 다음날. 동행한 사람들과의 취미가 다른 까닭에 섬 일주를 하고 멸치회를 먹으러 갔다. 멸치회가 유명하다는 포구에 닿았다. 멸치회를 하기 위해 길에서 손질하는 사람들을 보며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신선도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멸치를 발라 물이 있는 바케스에 넣는다. 바깥 날씨는 더웁다. 너무 작아 비늘을 치지 않은 채 3절을 손으로 훓는다. 그 기술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한다.
어쩼든 1인당 15000원의 거금을 주고 멸치회 정식을 시켰다. 멸치회. 멸치튀김. 멸치조림이 나왔다.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회맛, 고소한 튀김, 조림. 양은 푸짐해서 아침을 잘 먹은 우리들에게 이른 점심은 먹고도 남았다.
밤새 사랑니를 앓던 나는 부드러운 회가 당겨 제법 많이 먹었다. 나는 왜 또 증도의 음식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송어회. 송어회초무침. 송어구이 송어조림. 새뜩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훨씬 더 맛이 좋다고 말하면 거제도 사람들이 화낼까. 그건 내가 증도의 사랑이 유별나서라고 이해해주길,
아마도 증도에 가서 식당을 찾았을 때 이곳의 멸치회 정식처럼 자신있게 내놓을 음식이 없었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비싼 민어회, 짱뚱잍탕이 있지만 송어정식을 내나도 무방하겠다.
탯자리를 떠나고 고향산천을 떠나 지금의 일가를 이룬 성근씨에게 다시하번 성공한 축하를 해주고 싶다. 지금이 있기까지 맨몸으로 고향을 떠나온 그의 젊은 날의 용기와 결심. 각오와 노력이 훤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각지에 흩어져 사는 증도인들의 강인한 삶에 박수와 함께 무한한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고장에서 태어나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지(남편의 이종들)들을 찾아보며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또는 어떻게 고뇌했는지 열심히 엿보겠다. 또 그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보겠다. 아마도 내년에는 제주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제주도의 토속음식중 무엇을 택해서 한 가지 먹어볼까? 자리돔젓. 제주도 흑도세기. 아님 몸국, 그 뭐라해도 좋다. 그 지역의 전통속에서 내려오는 토속음식을 먹고 우리의 엤선조들이 살아온 방식을 다시 한번 느껴 보면 되니까.
멸치회를 사주고 요번 유사를 치룬 증도출신 성근씨 고생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