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지(崔誠之)는 자가 순부(純夫)이며 모두 다섯 번이나 이름을 바꾸었는데, 최부(崔阜)·최당(崔璫)·최수(崔琇)·최실(崔實)·최성지(崔誠之)이다. 평장사(平章事) 최보순(崔甫淳)의 4세손이며 부친 최비일(崔毗一)은 관직이 찬성사(贊成事)까지 이르렀다.
최성지는 20살이 되기 전에 과거에 급제하여 계림관기(雞林管記)로 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사한(史翰)에 보임되었으며 동궁(東宮) 소속 관리로 선발되었다. 충선왕을 따라 원(元)으로 갔는데, 집정(執政)이 충선왕을 두려워하고 미워한 나머지 온갖 수단을 써서 최성지를 꾀어 왕을 떠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최성지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곤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눈앞의 이익에 홀리면 선비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충선왕이 〈원의〉 내란을 평정하고 무종(武宗)을 옹립할 때 최성지가 왕의 좌우에 있으면서 도운 것이 많았으므로 지감찰사사(知監察司事)로 임명되었다. 〈최성지가〉 책명(策命)을 받들고 환국(還國)하자 충렬왕(忠烈王)이 기뻐하여 옷 1벌과 은 3근을 하사하였다.
충렬왕이 훙서(薨逝)하자 충선왕이 원에서 상을 치르러 와서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즉위 의례를 연습한 후 최성지에게 가죽 띠를 하사하였다. 〈충선왕은〉 항상 권한공 등과 그를 무시로 불러 보았다. 충렬왕[慶陵]을 장사지낼 때, 최성지는 집의(執義)로 있었는데, 구례(舊例)에서는 중승(中丞)이 서명하여 현궁(玄宮)을 봉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전하기를 능(陵)을 봉하는 자는 불길하다고 하였다. 이날 집의(執義) 이언충(李彦冲)이 사직하였으므로 왕은 최성지에게 명하여 압봉(押封)하게 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대의〉 앞날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라고 하더니, 갑자기 동지밀직사사 대사헌(同知密直司事 大司憲)으로 옮기게 하였다가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전임시켰으며, 찬성사(贊成事)로 승진시켰다가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의 호칭을 하사하고 광양군(光陽君)으로 봉하였다.
충숙왕 7년(1320), 원이 충선왕을 토번(吐蕃)의 살사결(撒思結)로 유배보냈는데, 원나라 수도[京師]에서 15,000리 떨어진 곳이었다. 당시 최성지는 충선왕을 따라 원에 있었으나 도망가서 나타나지 않았고, 오직 직보문각(直寶文閣) 박인간(朴仁幹)과 대호군(大護軍) 장원지(張元祉) 등 18명만이 유배지까지 따라갔다. 당시 사람들은 말하기를, “최성지는 대신(大臣)이면서 임금이 치욕을 당하는데도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 몸을 보전하기 위해 도피하였으니 군신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라고 하였다.
당시에 고려 사람들이 당파를 나누어 〈원에〉 서로 헐뜯었으므로, 〈원〉 조정에서는 성(省)을 설치하여 〈고려를 원의〉 내지(內地)와 같게 하려고 하였다. 최성지가 김정미(金廷美)·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원의〉 도성(都省)에 글을 올려 이해득실을 설명하자 그 의논이 마침내 가라앉았다. 심왕(瀋王) 왕고(王暠)의 일당들이 나라의 이해득실을 소문(疏文)으로 지어 장차 〈원의〉 조정에 말하려고 하자 최성지는 서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모자들이 함께 부중(府中)에 앉아서 녹사(錄事)를 시켜 서명할 것을 청하자 최성지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재상의 지위에 있었는데 하찮은 녹사(錄事) 따위가 〈나를〉 협박하려고 하느냐?”라고 하였더니 사람들이 기가 죽었다.
〈충숙왕〉 11년(1324)에 상서하여 퇴직을 간청하니 광양군(光陽君)으로 봉군하였으며 집에서 지내면서 노래 잘하는 기생을 두고 손님을 청하여 세속을 떠나 담소를 나누며 사람들 사이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후로〉 7년을 살다가 죽으니, 나이는 66살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관비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최성지는〉 성품이 강직하고 헛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글씨가 단정하였으며 시(詩)는 품격이 온화하여 사람의 흥취를 일으킬만했다. 특히 음양술(陰陽術)과 천문학(天文學)[推步法]에 조예가 깊었다. 충선왕이 원에 머무르고 있을 때 태사원(太史院)의 정밀한 역수(曆數)를 보고는 최성지에게 내탕금(內帑金) 100근을 주어서 스승을 찾아 배우라고 하였다. 〈최성지가〉 수시력(授時曆)을 모두 배워 고려로 돌아와 그 역법을 전하여서 지금까지 그것을 따라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