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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落照)
박 태 원
一의一
“이번 겨울은 춥지 않았었나요.”
“글쎄요 아주 봄날 같으네요.”
하고 이러한 인사들을 주고받기는 해도 그래도 겨울날은 역시 겨울날이었다.
한길 위 행인들의 걸음걸이가 추위를 탄다.
두루마기 입은 아의 두 손이 아구통이 속에 감춰진다.
외투 입은 양복쟁이의 목덜미가 시리다.
역시 겨울밤이다.
전차가 지난 뒤면 자동차가 지난 뒤면 으레히 잠깐 동안씩은 소리 없는 네거리의 아스팔트 위를 신문 배달부의 지까다비¹ 신은 두 다리가 달려갔다.
그의 옆구리에 찬 방울이 시끄럽다.
석간이 배달된 뒤 두 시간.
호외다.
만주에 또 무슨 일이나 생긴 것일까?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렇든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약국 뒷방에서는 늙은이와 젊은이가 지금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으니까.
옆에서 구경하는 이가 한 명……
“이건 늙은이를 너무 능멸히 여기는 게지. 남의 집을 막 들어 와?”
“무슨 문제가 생길 듯해서 들어갔죠.”
“문제는 무슨 문제야. 여기 한 접 탕 놔두면 그만이지 뭐야…… 저쪽을 제치나? 그러면 막지…… 여기를 끊나? 그러면 벌떡 서구…… 아무렇게 해두 두 집 나는데 문제가 무슨 문제야. 자 객쩍은 짓 그만하구 어서 딴 데 집내기나 허우.”
“그래두 요기다 한 점 더 놔볼걸요.”
“소용없대두 자꾸 그러는구먼…… 이렇게 벌리면 그만이지.”
“요기다 또 한 점 놓거든요.”
“아 이건 너무 늙은이를 능멸히 여기는구료. 호구(虎口)²로 들어 와?”
“호구라고 못 들어갈 것 있습니까?”
“때리면 그만인데 못 들어갈 것이 있느냐?”
“때립쇼그려.”
“때리지.”
“그때에 여기를 벌떡 서거든요.”
“그럼 소용 있나? 이러면 그만이지…… 뭣? 그러면 때린다? 아차 거길 내가 못 놓는구나 쯧쯧 그럼 죽었게?”
“죽지는 않죠. 서로 못 들어가니까…… 비겼죠.”
“그럼 내가 졌게? 그래 내가 미쳤지 그걸 비겨놓는 바둑이 어디 있담 쯧쯧쯧쯧…….”
성미가 급한 노인인 게다. 어조가 빠르고 높다.
오늘도 막걸리를 자신 게다.
눈알이 붉고 입김이 덥다.
“어서 둡쇼.”
젊은이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말하였다.
칼라와 넥타이를 안 하였다.
그의 옆에 놓인 젖은 수건과 비눗갑.
목욕을 갔다 온 길인 게다.
“뭐 더 해볼 것 없어. 졌수 졌어.”
노인의 내짓는 손이 제법 술 취한 이답다.
바둑판에서 한 자 길이 방석을 뒤로 물려 벽에 가 기대앉으며 노인도 쌈지 끈을 푼다.
“오늘은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잠자코 옆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던 젊은이가 물었다.
겨울밤이라 그래서 그렇던지 그의 흰 두루마기는 방 안에서도 쓸쓸하였다.
목이 잠긴 목소리다.
다시 보니 목을 둘둘 만 붕대.
감기가 든 게다.
노인은 그의 말에 대답 없이 담배만 뻑뻑 빤다.
“오늘은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목쉰 소리가 또 한 번 물었다.
“네 네?……고개 넘어 좀 갔다 왔지요.”
고개는 무학재³ 고개다.
“오늘 이발하셨습니까?”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맞은편 젊은이가 노인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기름까지는 안 발랐어도 그래도 법대로 갈라 붙인 머리다.
“아니 그저께.”
노인은 잠깐 있다가
“영신환⁴ 세 봉 주구 깎았지. 전에 막 깎을 때는 두 봉만 줘두 되더니…….”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一의 二
“거― 약주두 영신환 내구 잡수십니까?”
흰 두루마기가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그러나 그의 목쉰 소리는 얼른 알아듣기 어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뭐? 뭐요?”
하고 노인은 곰방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젊은이는 자기가 그리 친하지도 않은 노인에게 대해 실언을 하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저 저·…‥”
하고 말을 더듬는 것을, 또 한 젊은이가 받아서
“저 최주사가 말씀이에요. 약주 잡수실 때는 어떡허십니까. 영신환 한 봉에 술 한잔 안 줍니까?”
“나는 무슨 말이라구…… 어림두 없는 소리. 그렇게만 된다면야 작히 좋겠소마는…….”
노인의 얼굴에 말소리에 졸음이 있었다.
그러나 흰 두루마기 입은 젊은이는 이 노인과 더 좀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새 약 많이 나갑니까?”
“흥!”
노인은 하잘 수 없는 코웃음을 우선 웃어놓고
“말씀 마슈. 오늘두 고개 넘어 왕복 삼사십 리에 단돈 일 원 오십 전이니 늙은 놈이 해먹을 노릇이유?”
해먹을 노릇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매약(賣藥) 행상 밖에는 할 것이 없는 노인의 처지다.
“그래두 노인께서 기운은 좋으십니다. 매일 사오십 리씩 걸으시 구두 까딱없으시니.”
“……”
“그런데 최주사께서 약주가 과하세요.”
이번 말도 노인은 잘 알아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뭣? 뭐요?”
노인이 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젊은이는 한 번 경험이 있은 뒤라 늘라지 않았다.
“약주가 과하시다구 그랬에요.”
“흥! 약주가 과하다? 먹고 싶은 거 어떻게 허우? 그렇지 않어요? 히히.”
“매일 그렇게 과음을 하시면 몸이 깎이지 않으세요?”
“몸이 깎인다? 흥.”
하고 노인은 갑자기 몸을 바로 앉으며 담뱃대를 손에 들었다.
그의 어조가 빠르고 높다.
“사람이 제 몸을 애끼구 오래 살구 싶어하구 하는 것이 그게 모두 희망이라는 게 있기 때문인데…… 내게 무슨 희망이 있단 말씀이유?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렌데 무슨 여망이 있단 말씀이유? 약이나 좀 팔리면 막걸리나 사 먹구 담배나 좀 사 먹구 그럴 뿐인걸…… 흥!”
“최 주사께서 올에 연세가 몇이십니까?”
“나요? 경오생 (庚午生)⁵이오.”
“경오생 이시면…….”
하고 흰 두루마기가 혼자 속으로 쳐보려는 것을 또 한 젊은이가 가르쳐주었다.
“예순넷이셔.”
“이제두 이십 년은 더 사십니다.”
“그렇게 살어서 뮐 하게요. 돈 있구 권세가 있어야 오래 살어 재미 보죠. 흥!”
노인이 딱한 코웃음만 치는 것을 양복 입은 젊은이가 화제를 바꾸어
“그러지 마시구 옛날 얘기나 좀 합쇼그려.”
“옛날 얘기는 무슨 옛날 얘기?”
“아 왜 동경 유학 하시던 얘기……”
감기 든 젊은이는 이 말을 농담으로 들었던 게다.
말없이 빙그레 웃는 것을 노인은 갑자기 기운이 나서
“참 생각하면 그것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지. 그게 을미년이로구료 끙.”
노인이 잠깐 말을 끊고 기침을 하는 틈을 타서 한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를 보고 가만히 물었다.
“정말인가?”
그 대답으로 또 한 젊은이가 고개를 끄떡거리는 것을 보고 그는 두루마기 앞자락을 여미면서 새삼스레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一의 三
“그게 을미년이니까 지금부터 치자면 서른아홉 해 전이렷다.”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내부대신이 지금 후작 박영효였느니…… 관비 동경 유학생을 뽑는데 지원자가 천여 명이라……”
“무려 친여 명이로군요:”
“나두 나중에야 어찌 됐든지 지원을 하지 않았겠소.”
“그때 최주사께서는 무얼하고 계셨습니까?”
흰 두루마기가 팔짱을 끼며 묻는다.
“그때요? 경무청에 다녔지요. 내가 경무청 순검이라오. 이때나 그때나 순검 이 호기는 있었지요. 그래 시험을 보지 않았겠소. 지원자는 천여 명인데 뽑기는 백 명을 뽑는구먼. 일인(日人) 의사가 온통 발가벗겨놓고 신체검사를 하구, 거기서 뽑힌 놈을 일제히 또 작문을 한 장씩 짓게 하는데 전라도 문자로 어떻게 이까짓 놈두 한몫을 꼈구려.”
“최 주사께서 이발을 그때 하셨다네.”
하고 양복 입은 젊은이가 일러주는 것을 노인은 곧 이어서
“이발이야 조선서 그중 먼저 한 축이지. 조선 단발령이 내린 것이, 을미년 동짓달인데 나는 삼월에 일본 건너가자마자 깎았으니까. 하하하하……”
“가실 때 단체로 가셨겠군요?”
“아암 박영효가 인솔자로구료. 도보로 백여 명이 인천을 가는데―”
“경부선이 개통이 안 되었군요?”
“경부선커녕 경인선두 안 깔렸을 때지. 아 ― 서른아홉 해 전이구료.”
“딴은…….”
“그래 도보로 인천을 가는데 노돌 모래사장에 이르자 박영효가 호령을 걸어 백여 명을 뺑 둘러서게 하구 자기는 한가운데 서서……”
“이발들을 하라구 명령이죠?”
양복 입은 젊은이가 앞질러 말하는 것을 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이발은 일본 건너가서 했다니까 그러는군.”
“그래두 지난번 이야기하실 때는 노돌 모래사장에서 이발을 하였다구 하시더니요.”
“언제 그랬었나. 잘못 들은 게지…….”
하고 노인은 딴전을 한다,
“어서 얘기나 헙쇼.”
흰 두루마기가 재촉한다.
“그래 박영효가 뺑 둘러 세워놓구 한바탕 연설이렷다.”
“뭐라구요?”
“여러분 중에는 양반의 아들두 있을 테구 중인의 아들두 있을 테구 평민의 아들두 있을 덴데, 지금 세상 형편이 자꾸 개척하는 시대야. 상중하 차별이 없는 시대야. 누구든 공부만 잘해서 우등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즉 양반이지 별게 아니란 말이야·…… 말인즉슨 옳은 말이지.”
“옳은 말이라는 것보다두 당연한 말이지요.”
“당연한 말이라? 옳아 지금 세상이 평등 시대라서……하지만 여보! 그게 서른아흡 해 전이구료. 그때 그런 말 할 줄 아는 게 영특한 게요.”
“네, 네, 잘 알었습니다.”
“그래 박영효 하는 말이 그라니까 허구한 날 반상만 가리고 앉았는 자가 있다면.”
하고 노인은 여기서 한숨 소리를 높여
“어딜 꿈쩍 거두⁶두 못하게 해놓지…… 말인즉슨 옳은 말이지.”
“하하 딴은……그래 동경서 몇 해나 공부를 하셨습니까?”
“흥, 참 그 얘기 하자면 기맥히지. 몇 해가 다 뭐여. 그해 겨울루 돌아와버렸는걸.”
“그건 왜 또 그려셨에요?”
“흥!”
노인은 딱하게 코웃음을 또 한 번 치고 꺼진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인다.
―의 四
“을미년이라면 명성황후 괴변 난 바로 그햅니다.”
노인은 담배 연기와 함께 술김을 뿜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라에 괴변이 났는데 우리들끼리만 유학생입네 하구 동경에 남어 있을 수 있습디까? 그래 나와버렸지. 일이 그렇게 된 게야.”
“그때 여러분이 모두 한데 나오셨에요?”
노인의 이야기 상대자는 역시 흰 두루마기 입은 젊은이다.
“아니 더러는 나오구 더러는 안 나오구…….”
“그러면 더 좀 거기 계셔보시죠, 왜 그렇게 나와버리셨에요.”
“흥 참…… 더 있으면 뭘 합니까? 원래가 당시 유학생들이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인물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야 아주 없다구는 안 하지만 대개가 치자면은 건달팽이로구려. 동경이라구 일껀들 가서 무슨 공부들 한 줄 아시유?”
“그럼 무얼 하셨게요?”
“흥 말씀 마시유…… 그저 공부는 하지 않구 빨구 × ×구…… 하하 기맥힐 노릇이지.”
“차포겸장 (車包兼將)⁷ 입니다그려 .”
“그런 문자가 있던가?”
“없습니다. 어서 얘기나 하십쇼.”
“우리가 들어가는 길루 복택유길 (福澤諭吉)⁸ 이를 만났구료.”
“어디서요?”
“학교서…… 우리가 경응의숙(慶應義叔) 엘 다녔었거든…… 지금두 동경에 그런 학교가 있지요?”
“있습니다.”
“처음에 복택이가 물어보더구면. 성명이 무엇이오. 아무개요 내답하니까 조선 사람들은 성명 외에 자가 있구 별호가 있구 하다니 그것두 말하우 하길래 일일이 댔겠다. 그랬더니 이번엔 신분을 물어보더군. 황족(皇族)이시오 화족(華族) 이시오 사족(士族)이시오 하구…… 황족은 일군의 일가렷다. 화족은 십부대신의 일가렷다 모두 내게는 당치 않길래 사족이라구 할밖에…… 백여 명 유학생을 일일이 물어보구 나더니 이번엔 지망이 뭐냐구 묻습니다그려.”
“그래 뭐라구 그러셨습니까?”
“흥!”
노인은 자조미가 풍부한 코웃음을 치고 나서 어느 틈엔가 또 불이 꺼진 담배에 다시 성냥을 그어대고 그리고 또 한 번 “흥!” 하고 코웃음을 친 다음에야 이야기를 계속했다.
“역시 관직을 원한다구 그랬죠. 하나하나 물어보니까 백 명이 하나 빼지 않구 관직 지망자라구 그러는구료.”
“그럼 모두 정치과에 들어가셔야만 했겠군요.”
“아따 이 양반, 그냥 얘기나 들으슈 하하하…… 그래 그 말을 듣더니 복택유길이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떠오릅디다. 자기는 설마 백명 학도 하나 빼지 않구 그렇게 대답할 줄이야 몰랐었던 게지. 원래가 사농공상 중에 농공상 세 가지가 나라 흥하는 근본이로구료. 관직 이란 매양 거저먹구 행세하구 엄벙뗑하는 그거지 아무것두 아니에요. 그야 하나두 없어서야 그도 어렵겠지만, 이건 모두들 그걸 하겠다니 될 말인가. 정작 농공상 세 가지는 아주 천하게들 생각하구·…‥ 흥! 참!”
노인은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재떨이 대신 쓰는 양철통에다 탁탁 재를 떨고 나서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다시 생각난 듯이 손에 고쳐 들고 쌈지 끈을 푼다.
一의 五
“그러나 이왕 관직들을 지망하였거든 거기 합당한 공부들이나 열심히 해야지, 이건 나부터가 명색이 유학생이지 어디 무슨 공부한담디까? 심심하면 공관으로 놀러나 가지. 당시 공사(公使)가 공영하렷다.”
“공삽니까? 영사(領事)입니까?”
“글쎄, 그게 참 자금 생각해보니 모호하군. 그게 참 뭐든가? 아 내 정신 봐라……”
“그거야 추후에라두 알려면 알죠. 그래 공사가 어쨌어요?”
“공사가 처음에는 반색을 해 맞어주구 온통 과일에 과자에 대접이 좋았조. 학교들 잘 댕기시오, 일어들 많이 배셨소 하구…… 그야 해라는 없지. 모두 선비니까…….”
“그렇겠죠.”
“그러던 것이 누가 어찌 가다 한두 번씩 찾아가야지, 이건 허구 한 날 드나들며 남 과일하구 과자만 축을 내놓으니 누가 좋아하겠수. 나중에는 그만 진력이 났는지 이제부터는 공관에서 청하거든 오구 그렇지 않으면 그저 보두 공부들이나 잘하라구…… 하하.”
“하 하 하.”
말없이 노인의 이야기만 듣고 있던 양복 입은 젊은이도 같이 웃는다.
“참 그때 옷은 무엇들을 입구 계셨어요? 그대루 조선 옷들 입으셨나요?”
“천만에…… 학도복이지. 양복이죠. 통학할 때는 학도복 평상시는 철 따라서 히도에모노 아와세와다이레…….’ 그렇죠.”
흰 두루마기가 노인의 일본말 발음에 우스워서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감추느라고 손을 들어 콧잔등이를 만진다.
“거기 참 우슨 얘기가 있죠. 오나가나 어디든 없겠소만은 거기두 여기 심마찌¹⁰ 같은 데가 있더구먼. 거기를 처음에 학도복들을 입구 가지 않았겠소. 그랬더니 학도들은 절대루 안 된다구 어디 들어줘야지. 그래 다시 주인에게로 와서 이번엔 히도에모노들을 입구 갔지. 그랬더니 들어가게 한단 말이야. 아암 그것들두 우리가 학도들인 줄이야 뻔히 알구 있지만 학도복만 안 입구 가면 그저 이랏샤이¹¹로군 하하하.”
노인의 웃음 뒤에 그곳에 잠깐 침묵이 있었다.
잠깐 기다려도 말없이 담배만 빠는 노인에게 양복 입은 젊은이는 자기 자신이 노인의 입으로써 확실히 여섯 번 이상 들은 유학담의 계속을 재촉한다.
“학교가 가기 싫어 꾀병을 앓구 병원에 입원하시던 얘기는 안 하십니까?”
“으응 그거? 참 병원에두 여러 번 입원했지요. 그야 꾀병이라면 꾀병이지만 사실 몸들두 성할 턱이야 없었지. 매일 앓구 빨구 ××구 하니 참 노형 문자마따나.”
하고 노인은 흰 두루마기 입은 젊은이를 보고
“뭐? 무슨 장군?”
“차포겸장 말씀입니까?”
“그래 옳지 차포겸장! 밤낮으루 차포겸장이니 어느 장사(壯士)가 살아나겠수. 그러니 입원두 할밖에. 입원하구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루 갑갑하구 또 음식이 안 맞죠? 그래 밤중에 몰래나가서 과자 사 먹기…….”
“잡숫기는 잘 잡수십니다. 하여튼.”
“아따 이 양반, 먹는 데 어른 아이 있습디까? 하하하하……”
“하여튼 한때 잘 노셨습니다그려.”
“놀았으니 지금 이 꼴이 아니유? 수염이 허연 놈이 약가방을 들구 부지런히 돌아다녀야만 다만 막걸리 몇 잔이라두 얻어걸리니…… 말씀 마시오 흥!”
노인은 또 코웃음을 치고 난 다음에 이번엔 가볍게 한숨까지 내쉰다.
一의 六
“그래 일본서 나오셔서 무얼 하셨에요?”
흰 두루마기가 노인의 담뱃불 붙이고 나기를 기다려 또 물었다.
“경무청에 다녔지요.”
“경무청에는 동경 유학 가시기 전에 다니시지 않었습니까?”
“가기 전에두 다니구 나와서두 다녔지요. 내가 경부청에 다닌 게 도합 십구 년……경성 감옥 간수가 일 년…… 노돌 슛사쓰가까리가 이 년…….”
“노돌 슛사쓰가까리가 뭡니까?”
“뭐 정거장에 출찰개 있지 않소?”
노인은 출찰계(出札係)를 출찰개라 발음하였다.
“그때 노돌 정거장 남문 정거장 이렇게 있었거던요. 그래 나는 노돌 슛사쓰가까리를 하였다우. 그게 이 년…… 나중엔 하다못해 나무 시장 표사무까지 봤으니까 말할 것 뭐 있소.”
“나무 시장 표사무라니요?”
“대한문 옆에 넓은 터전 문이 있습닌다. 요새 보니까 자동차 운전 연습들을 게서 하더군.”
“네에 거기요?”
“거기가 전에 나무 시장이었습니다. 게서 내가 표사무를 봤지요.”
“거기는 어떻게 그렇게 관계를 하시게 되었습닌까?”
“다름이 아니라 그 터전이 법인부래상(法人富來祥)¹²의 땅이지요. 왜 남문 밖에서 크게 벌리고 장사하는 부래상 형제상회라는 게 있지 않소? 바로 그 부래상의 땅이지요. 거기 지배인인 김○○와 내가 원래 알겄다, 요 슛사쓰가까리를 그만두구 놀구 있을 때 김○○를 만났구료. 그랬더니 지금 뭘 하구 있느냐고 그가 내게 묻지 않았겠소? 그래 놀구 있다구 아무것두 하는 게 없다구 그랬더니, 그러면 나무 시장 표사무래두 보라구 그러더군요. 일이 그렇게 된 게죠.”
노인은 말을 끊고 잠깐 동안은 담배만 뻑뻑 빤다.
“그러면 부래상의 김○○씨와 근래도 서로 왕래가 계시겠군요.”
“누가?”
“최 주사께서요.”
“내가 누구하구?”
“김○○씨 하구요.”
“원 어림두 없는 소리 하시는군.”
노인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 왜요?”
“왜라니……”
하고 노인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매양 사람들끼리 사귀는 게 별수 없습니다. 똑 저울질하는 거와 매한가지니까…… 저울이 핑핑해야만 사괴두 어울리는 거지 한편이 기울면 안 되죠. 보시구료 가령 한편이 재산이 있으면 한편은 지위가 높다든지……, 한편이 지위가 높다면 또 한편은 학식이 유여하다든…… 똑 그래야만 되는 거지, 이건 돈두 없구 지위두 없구 그렇다구 학문조차 없는 내가 김○○와 교제를 하면 교제가 되겠소? 어림 두 없는 소리지.”
“그건 겸사의 말씀이십니다.”
“겸사의 말씀은 무슨 겸사의 말씀이오 흥! 며칠 전엔가두 바로 약방 앞을 지나가더군.”
“누가요? 김○○ 씨가?”
“네, 그걸 모른 체했죠. 굳이 아는 체를 하면 무얼 하우? 예전엔한 좌석에서 같이 술두 몇 번 먹어봤지만 지금이 어디 그때요? 참으로 격세지감이 없지 않아 있구료.”
“아는 체를 좀 하시면 또 어떻습니까?”
“참 이 양반 답담한 말씀만 하시는군. 김○○라면 아주 따다인¹³이 아니요?…….”
“따다인이라니요?”
“그 왜 돈 있구 지위 있는 사람을 다인이라구 안 그러우? 원세개를 원다인이라구 그랬으니까…… 따다인 이라면 아주 다인이란 말이지.”
“그래, 김OO가 따다인, 나는 빈 불알만 남은 놈이니 아는 체를 하면 무얼 하우? 그전같이 사귀자니 그 사람이 싫어할 게요 은근하게 대하자니 아첨하는 게 될 게니…… 그저 모른 체하는 게 그 사람에게나 내게나 피차간에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노인의 얼굴에는 역시 고적한 음영이 떠돈다.
二의 一
늙은 어버이는 장성한 아들의 봉양을 요구한다.
예순넷이나 된 노인, 한 발을 관 속에 집어넣고 있는 노인이 주위에 자기를 봉양해줄 아무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은 한 개의 비참한 사실이다.
하루에 탁주 몇 사발이면 족하다는ㅡ그 결코 대단하지 않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약가방을 둘러메고 하루 오륙십 리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최주사에게 있어서 가장 딱한 현실이다.
최 주사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최주사는 그것이 늘 한이 되었다.
“아들 하나만 있었더면, 아들 하나만 있었더면.”
하고 천만번은 생각하더라도 천만번 소용없을 그러한 생각을 때때로 하고는 그때마다
“픽!”
웃고
“흥!”
코웃음을 치는 최주사다.
자기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을 최주사가 얼마나 한으로 여겼느냐 하면은ㅡ
이 약방 젊은 주인에게 올해 네 살짜리 어린것이 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아이 보아주는 계집애를 따라 약방으로 나와서는
“아버지. 나 돈 한 푼.”
하고 그 조그만 손바닥을 내어민다.
그것을 보고 어느 날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조차 한 최주사다.
그뒤 며칠 동안 어린애는 약방 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였다.
젊은 아버지가 그것을 엄금한 까닭이다.
“딸은 암만 있어야 소용없에요. 그저 아들이 아들이 제일이에요.”
하고 잠꼬대로까지 중얼거린 최주사다.
그에게는 딸이 형제가 있었다.
그야 그 딸들이 아직 나이 어렸을 적에는 최주사도
“딸이든 아들이든 다 같은 내 자식이지!”
하고 아버지의 애정을 모조리 쏟아서 길렀다.
그러나 그들이 시집을 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한 이제 이르러 생각하면 최주사는 결국에 있어서 남의 계집을 애지중지 양육해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기 막힌 노릇이다.
현재 큰딸 내외가 사는 구룡산의 한 채 초가집은 비록 금전으로 환산해 그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엿한 최주사의 소유물이다.
최주사는 애초에 자기 마나님과 거기서 살림을 하면서 큰딸에게 데릴사위를 맞아주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별다른 일 없이 한집 안에서 살아왔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은 그의 마나님의 ‘죽음’으로부터 생겨났다.
홀몸이 된 뒤 열흘이 못 가서 최주사는 자기가 마치 딸의 집으로 찾아들어가서 얻어먹고 지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최주사는 이 집에서 숙식을 하는 것이 불쾌하였다.
그야 어머니가 돌아갔다고 장모가 돌아갔다고 그의 딸이나 그의 사위가 최주사에게 대해 대우가 달라진 것은 아닐 게다.
그러나 최주사의 신변을 가장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주던 자기 마나님의 상실은 최주사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타격을 아니 줄 수 없었다.
최주사는 끝끝내 집을 나와버렸다.
그는 그가 삼십 년 내로 관계를 맺어온 이 약방을 근거지로 삼고 전이나 다름없이 매약 행상을 다녔다.
“내가 딸네 집이 왜 있어? 사위네 집이 왜 있어?”
하고 최주사는 누가 집을 나온 이유를 물을 때마다 대답하였다.
“그래두 그게 최주사의 댁이 아닙니까?”
하고 혹시 누가 말하면,
“데릴사위를 얻었으면 벌써 그건 사위 것이 된 건데 내가 왜 지긋지긋이 거기 붙어산단 말이오. 이렇게 되면 그게 딸네 집이지, 사위네 집이지, 내 집인가?” .
하고 최주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 약방의 점원 하나가
“그러실 건 무엇 있으십니까? 손주딸 업어두 주시구 물두 좀 길어주시구 장작두 좀 패주시구…… 그렇게 누구 문자마따나 엄벙 뗑 하구 같이 사시죠 왜 그러세요?”
하고 말하였을 때와 같은 때는,
“왜 내가 그 집 하인인가? 그 집 종인가?”
하고 최주사는 펄펄 뛰기조차 하였다.
二의 二
“효자가 불여악처라…… 효자 자식이 나쁜 계집만 못하다…… 옳은 말이지 옳은 말이야!”
최주사는 마나님을 잃은 뒤루 곧잘 그러한 말을 하였다.
“어떤 시러베아들 놈의 효자가 제 애비 술 취해 쓰러져 자다가 밤중에 오줌 마려 할 때 애비 이불 속에다 오강을 들이밀어준다 말이요.”
최주사는 약주 좋아하는 이인 만치 예를 들어도 이러한 종류만 든다.
듣는 사람들은 그냥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노인과 그의 큰딸 내외와의 교섭은 아주 끊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달에 두어 번씩 구룡산으로 딸을 찾아갔다.
숙식을 이 약방에서, 막걸리를 술집에서 구하고 있으니 노인에 새 옷을 갈아입을 곳은 그래도 딸네 집밖에 없었다.
딸네 집에 다녀온 날은 으레 노인의 입에서 딸의 얘기 사위의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그가 그의 딸을 그의 사위를 좋게 말한 것을. 그들은 들은 일이 없다.
“흥! 술을 잔뜩 먹구 어디서 낙상을 했다던가? 온통 머리를 붕대로 싸매구 드러누웠더군. 그래두 일급이 아니라 월급이라 해서 며칠 안 나가드래두 봉급을 제하지는 않는다든가? 흥!”
“흥! 이걸 날더러 허라구 주더군. 양말대님 말이야. 이게 제게는 넷씩 다섯씩 있다우. 아주 그거 날탕이지 말할 것 없에요. 만년필인가 무언가두 성한 게 있건만 또 하나 새루 사구…… 사 원을 줬다든가 오 원을 줬다든가…… 철도국 직공 다니는 놈이 무슨 돈이 있어서 흥!”
“흥! 며칠 전에 또 봉천인가 어딘가 갔다 왔다든가? 누구냐구? 내 딸 말이지 누구요…… 철도국에를 다니는 사람의 가족들은 기차를 거저 탄단다. 그래 그 애두 걸핏하면 안동현이니 봉천이니 갔다 오지요. 치맛감이라 저고릿감이라 비단두 사 오구…… 그야 그냥 그대루 가주 나오면이야 아암 세관 물지. 그래 거가 어디 아는 사람 집에서 치마저고리를 만들어 겹쳐 입구 나오기두 하구…… 언젠가는 하다못해 고추를 다 사러 들어갔었구료 흥!”
노인의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에 그 한 가지 한 가지마다 “흥!”
하고 코웃음 칠 것을 잊지 않았다.
약방의 젊은 주인과 또 점원들은 그의 이야기를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에 아무런 비평도 가하지 않았다.
다만 노인이 어쩌다가,
“흥! 약주를 이십 전어치를 사다 주길래 먹구는 왔지만, 이왕 많이 못 사 올 테면 막걸리를 사 올 게지. 그야 안 먹은 거보다는 낫기야 하지만…… 흥!”
하고 그러한 말을 할 때 듣는 이들은 물론 이 노인의 큰딸 되는 여인을 동정 하였다.
그리고 딸의 모처럼의 호의를 그렇게 측정하고 있는 이 노인의 심정을 비천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주사의 귀염을 받지 못하는 것은 큰딸 내외뿐이 아니었다.
영등포인가 어디 인가에서 산다는 그의 작은딸 내외도 노인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언젠가는 그의 둘째 사위가 남에게 돈을 꾸어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실패만 보아, 들어 있는 집도 남의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러니 그 애 집안두 다 망했지. 그래 가지구 되겠수? 원래 내 둘째 사위 라는 녀석이 어수룩해서 남의 꾀임에 빠지기 쉽구 원체가 몸이 약질이구 게다가 없는 살림에 돈만 쓰려 들구.”
뭐니 어쩌니 하고 자기 이야기에 자기 스스로 홍분이 되어 한바탕을 늘어놓고는
“그러니 안 망하겠수? 안 망하겠수?”
하고 말끝마다 주를 다는 최주사를 보고 누가
“사위 집 망하는 게 좋을 건 무에 있습니까?”
하고 철없는 말을 한 일도 있지만 그것은 도리어 최주사가 자기 사위의 비운을 민망히 여기는 데서 나온 말에 틀림없으리라고 약방의 젊은 주인은 생각하였다…….
二의 三
“그게 그렇습닌다. 누구를 물론하고 우리 사람이란 매양…….”
하고 약방의 젊은 주인을 상대로 그의 인생철학을 이야기하다가 그치고 흘깃 바깥을 응시한 최주사다.
지난봄의 일이다.
문밖을 낡은 중절모 쓴 노인이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게 윤수경이 아닌가?”
최주사는 혼잣말을 하고 밖으로 그 노인을 쫓아나갔다.
이삼 분 뒤에 돌아온 최주사를 보고 약방의 젊은 주인은 물었다.
“그게 누구예요?”
“예전에 뫄T-ㅡ간(慕華館)¹⁴에서 싸전 하는 윤수경이라구……. 십오륙 년 전에 광주인가 어디루 낙향을 해버린 뒤루 소식을 몰랐드디 달포 전에 서울루, 또 서울루 올라왔다드군…… 지금 자하굴서 산다나?”
그러다가
“아차!”
하고 다시 밖으로 뛰어나간 최주사다.
그는 갑자기 그가 십오륙 년 전에―아직 윤수경이가 모화관 있을 때에―그에게도 돈 오 전 빚진 채 입때까지 갚을 기회를 갖지 못하였던 사실을 생각해내었던 것이다.
전찻길로 거의 두 정류장이나 쫓아가서 채권자 측에서는 이미 기억을 상실하고 있는 차금¹⁵을 기어코 청산하고 나야만 마음이 시원한 최주사였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떡허우? 하지만 내가 지금 아무리 이 꼴이 되었드래두 남에게 돈 오 전 신세 지구 있을 처지까지는 안 됐으니까…… 그렇지 않소? 일이…….”
“이렇게 그의 심정을 설명하는 최주사다.
신세를 안 지기로 말하자면 노인은 약방에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 들었다.
점원들의 저녁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최주사다.
십 분 후에 얼큰해가지고 돌아오는 노인을 보고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점원들이
“최주사! 어서 들어오셔서 진지 좀 잡숩쇼.”
하면 고집 센 노인답게 강하게 고개를 흔들고,
“나 먹구 왔어…… 한잔 하구 왔어…… 한잔 했으면 그만이지 예다 또 어떻게 밥을 먹는담…….”
그리고 곰방담뱃대를 꺼내드는 최주사다.
“그래두 몇 술 뜨세야죠. 그렇게 약주만 자꾸 잡수시면……”
하고 약방의 젊은 주인이 말이라도 한다면
“뭐요? 관계찮어요. 다른 이들은 밥이 주관이겠지만 내게는 술이 주관이오. 밥은 이를테면 부속품이니까·…‥ 하하.”
하고 노인은 껄껄 웃는다.
사실 알코올 중독자인 이 노인에게 있어서 밥은 한 개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몰랐다.
“흥! 가만있자…… 엊저녁 안 먹구 오늘 조반 안 먹구 지금 또 안 먹구……그러니까 세 끼 굶은 셈이로군…… 하하하…… 먹지 않어두 괜찮은 거야 애써 먹을 까닭 없에요. 그저 막걸리 몇 잔 했으면 훌륭하지…….”
하고
“하하하하.”
웃고 그리고 다음은 혼잣말같이
“인제 내일 아침이나 몇 술 뜨면…….”
하고 최주사는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은 딴 때나 마찬가지로 동이 훤하게 틀녘이면 일어나서 세수만 후딱 하고는 약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문밖 어느 단골 술집에 들러서 해장술로 막걸리 몇 사발과 한 그릇 오 전짜리 국밥을 사 먹는 것이 통례였다.
술집에 때 낀 놋숟가락을 쩔그렁 내던지고,
“이만하면 훌륭하지.”
하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는 소매로 입을 쭈우 씻는 최주사다.
그래 약국 안집 부엌 에서는,
“또 한 그릇 남어 들어왔군 누가 안 먹 었누?”
“최주사가 안 잡수신 게지.”
하고 이러한 대화가 흔히 교환된다.
二의 四
그러나 최주사가 이 약방에서 음식을 아니 먹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최주사가 행상을 나가지 않고 약방에서 쉬는 날을 보면 안다.
최주사는 곧잘 점원들과 함께 식탁에 참례하였다.
그러나 연거푸 두 끼니를 자시는 일이 드물었다.
점심을 권하기라도 한다면,
“왜 내 조반 먹지 않었나?”
하고 손을 내짓고 그리고 담배만 뻑뻑 빨았다.
어떤 때는 저녁밥을 권하는데도 역시,
“왜 내 조반 먹지 않었나? 그거면 그만이지 무얼 또…….”
하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술을 또 자실 시간이 된 까닭이다.
최주사의 위장은 분명히 밥보다 술을 환영하는 듯싶다.
애초에는 세 번씩 네 번씩 부득부득 권해보던 점원들도 그것을 안 뒤부터는 결코 강권하려 들지는 않았다.
최주사의 그러한 습관(?)을 약방의 젊은 주인도 어렴풋이나마 알기는 알았다.
그래도 아침에 그가 약방에 나와 점원과 사이에,
“최주사 나가셨나?”
“네.”
“조반 잡수시구?”
“아니요. 조반 나오기 전에 나가셌는데요.”
이러한 문답을 하고 난 뒤에 역시 일종 쓸쓸한 느낌을 갖는다.
―노인은 나의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에게는 생각이 되었다.
약방의 젊은 주인이 최주사에게서 갖는 쓸쓸한 느낌에는 역시 그러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는 노인의 그러한 심정에서 비창한 무엇을 발견한 듯이 생각하고 저 모르게 가만한 한숨조차 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노인의 아랑곳할 바가 아니었다.
자기의 힘이 자라는 한으로 남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또 남에게서 폐 끼침을 받는 일 없이 그의 한평생을 마치려는 것이 이 노인이 자기 생활에 갖는 굳은 신조인 듯싶었다.
까닭에 누구든 최주사가 그의 생활을 위해 남에게 돈을 취하는 것을 일찍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매양 어떠한 법칙에든 예외라는 것은 있었다.
자기의 생활의 어떠한 긴박한 경우에도 남의 원조를 빌리고자 않는 이 노인도 술값이 떨어졌을 때만은 그것을 한 개의 ‘제외예’¹⁶로 쳤다.
그러나 그것 역시 누구에게 십 전 이십 전 돌려쓸 필요는 없었다.
경성시내 시외 수십 처의 단골 술집에서 그가 원하는 대로 암만이든 외상을 주는 까닭이다.
그 외상값을 최주사는 하루 이상 묵혀두는 일이 없었다.
‘오늘은 꾸다요. 내일 드릴게 한잔 노시오.”
하고 먹은 그 내일이 되면 틀림없이 술값을 들고 최주사는 그 술집을 찾아드는 것이다.
“술은 먹꾸 돈은 없다.”
그래서 ‘꾸다’라고, 노인은 묻는 사람에게 설명 해주었다.
그러한 ‘문자’를 스스로 발명해 사용하는 것에 어린이 같은 만족과 득의를 느끼는 최주사였다.
그러한 최주사가 혹시 돈을 꾸는 것은 그가 단골 술집을 근처에서 찾기보다는 아는 이를 만난 것이 좀더 빠른 경우다.
“내일 댁에 계시겠소?”
하고 노인은 돈 꾸어주는 이에게 으레히 물었다.
“아따 얼마 안 되는 것 천천히 갚으면 어떻소?”
하고라도 그 사람이 말한다면,
“많든 적든 세음이야 세음이지. 그럼 내일 만납시다.”
하고 최주사는 어디까지든 자기 자 에게 엄격하였다.
二의 五
“최주사 오래간만에 한잔 사주시구료.”
하고 날마다 이 약방에 들르는 이가 최주사를 보고 조르는 일이 있다.
“내가 웬 돈이 있어서……”
“없거든 꾸다루는 안 되우?”
최주사는 말없이 고개를 모로 흔든다.
“외상술을 어디. 남을 대접하는 것은 대접하는 편이나 대접받는 편이나 다같이 승거운 노릇이지.”
하는 것이 이 노인의 지론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인 단독의 경우에도 적응되는 듯싶었다.
‘싱거운 술’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먹으려고 최주사는 노력하는 듯싶었다.
약이 그중 많이 팔리기는 늦은 봄부터 이른 여름 그때였다.
하루 나갔다 들어오면 그는 하루 경비를 제하고도 최주사의 주머니에 사오 원의 돈은 들어 있었다.
여름 한 철도 해롭지는 않았다.
여름은 언제든 ‘참외’와 ‘장마’와 함께 ‘배탈’과 ‘학질’을 가져온다.
최주사의 가방에서는 영신환과 금계랍의 출납이 잦았다.
그러나 늦은 가을부터 겨울 한 철은 최주사를 가장 괴롭힌다.
최주사의 ‘경험의 통계표’에 의하면 매번 감기 드는 사람은 배탈 나는 사람의 절반 수효도 못 되었다.
평시의 하루 경비를 이틀에도 사흘에도 벌어 쓰느라고 최주사는 늘 풀이 죽었다.
최주사의 하루 경비는 육칠십 전 내지 일 원가량이면 족하였다.
만약 아침에 해정술¹⁷과 함께 밥을 사 자시는 경우에는 그 밥값이 오 전……담배는 이십오 몸메(勿)¹⁸ 든 ‘희연’과 ‘장수연’¹⁹을 각 한 봉지씩 사놓으면 딱 나흘을 자시니까 하루 담뱃값이 육 전 조금 더 되는 걸…… 그리고 그 나머지는 전부가 술값이었다.
하루 막걸리 열대여섯 사발은 자셔야 하는 최주사가 그 열대여섯 사발을 이틀에도 사흘에도 별러 자셔야만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최주사에게는 고통이 었다.
하는 수 없이 ‘꾸다’를 보충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한 번 되풀이 말하거니와) 술맛이 싱거웠다.
“오늘은 제법 겨울날인걸…… 그래 최주사도 오늘은 쉬시는군.”
하고 약방 안에 초연히 앉아 담배만 태우고 있는 노인에게 누가 인사라도 한다면 노인은 하잘 수 없는 웃음을 한 번 웃고 그리고 말이다.
“흥! 술만 생긴다면이야, 약만 팔린다면이야, 엄동설한엔들 왜 내가 이러구 앉었겠수? 흥! 참 기맥히지. 전에 한참 무엇할 때는 눈이 퍼붓는데두 고개 너머 홍지원으로, 녹번이 고개루, 구파발루 한바탕 돌아왔었지만……”
“오늘두 한번 나가보시죠. 사람 일이란 누가 압니까?”
“여보, 누가 알긴, 내가 알지. 막걸리 한잔 못 사 먹고 헷걸음만 칠 건 뻔한 노릇이지 누가 언제 날더러 오란답디까? 흥!”
그리고 다음은 혼잣말로
“어제는 고개 너머를 갔었으니 내일은 동막으루 해서 양화도루 해서 염창을 들르려면 들러서 영등포로 돌아 들어와야지.”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심부름하는 아이를 부른다.
“저 너 지금 바쁘지 않으냐?”
“왜 그러세요.”
“약 좀 내놔라. 저 영신환 스물, 활명수 다섯……사향 소합환 셋…… 청고약 큰 것 스물, 적은 것 서른…….”
“그뿐이에요?”
“가만있거라. 저 참, 암마고약 열만 허구.”
이 노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나는――그러나 이 ‘나는’ 하고 말하는 것을 최주사 앞에서는 삼가야 한다. 누구든 그의 앞에서 ‘나는’이라든지 ‘내가’라든지 하고 말한다면, 이 노인은 장난꾼 같은 웃음을 띠는 일도 없이 “나는 수야(誰也)²⁰오?” 하고 타박을 준다. 까닭에 나도 독자들이 최주사의 버릇을 본뜨기 전에 ‘이 이야기의 작자(作者)인 나는’ 하고 주석을 붙이기로 한다――내일 이 노인을 따라서 동막으로 해서 양화도로 해서 염창을 들르려면 들러서 영등포로 돌아 들어올 작정이다.
三의 一
감영 앞에서 독립문까지 사이에 구듯방이라고는 모두가 넷밖에 없다.
서측에 하나 동측에 셋 ―
적십자병원을 지나서 맨 처음으로 다닥치는²¹ 구둣방이 아침 일곱 점 사십 분에 막 문을 열어놓고 주인은 안에서 세수를 하려니까 기침 소리가 나며 누가 문으로 들어와 다 낡은 의자에 가 털썩 주저앉는다.
비누칠한 얼굴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밖을 내다보니 최주사다.
“어서 옵쇼. 매우 날이 치운데요.”
그리고 주인은 “어파 어파” 하고 유난히 소리를 내어가며 다시 세수를 한다.
“오늘은 제법 손끝이 시립든데…….”
하고 최주사는 새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나 시린 것은 손끝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주사의 입술 위로 최주사의 콧물이 한 줄 인사체면도 없이 바야흐로 흘러내리려든다.
최주사는 작년 겨울에 태평통 고물상에서 사 원 오십 전 덜 받고는 못 팔겠다는 것을 승강이를 하다시피 해 가까스로 사 원에 흥정 하였다는 외투 주머니에서 네모반듯하게 찢어서 착착 접어 놓은 신문지 조각을 꺼내서 그것이 두 장도 석 장도 아니요 확실히 한 장이라는 것을 살펴본 다음에 그것으로 코를 풀었다.
그러나 손끝이 약간 시리든 콧물이 한 줄 흐르든 최주사의 뱃속만은 든든하였다.
일곱 점 치는 소리를 미처 듣기 전에 간밤에 약방에 심부름하는 아이가 내어준 약을 신문지에 싸들고 밖으로 나온 최주사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재판소(지금은 경찰서가 됐지만 그래도 모두들 재판소라고 부르는 것이 얼른 알아듣기 쉽다) 옆 골목 안 술집에서 막걸리와 국밥을 사 자신 까닭이다.
그 술집은 이를테면 알코올에 중독된 이들만 모여드는 곳이다.
그들은 대개가 그 근방에서 노는 거관,²² 가쾌,²³ 지게꾼, 인력거꾼…… 그러한 무리였다.
안주 없는 사발 막걸리―그것은 그 분량에 있어서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술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두 사발하고 오 전짜리 밥 한 그릇을 자신 뒤면 최주사는 적어도 한 시간가량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독자들 중에 셈 빠른 이는 이제부터도 삼십 분가량은 최주사에게 별반 근심 걱정이 없을 것을 알라―
그러나 저기압은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습래²⁴한다.
“참! 윤씨 돌아가신 것 아십니까?”
“윤씨라니 윤씨가 누구야? 설마 자골 사는 윤수경이 아니겠지?”
최주사는 코를 풀고 나서 약 싼 신문지를 풀어헤치다 말고 고개를 들며 황급히 물었다.
“네네, 바루 그 윤씨요…….”
“뭣? 윤수경이가 죽었어? 아 윤수경 이가? 그래 언제 죽었소?”
“바로 간밤에 죽었다는군요.”
“그래 무슨 병이야?”
“심장마비라던가요?”
“심장마비! 흥!……”
노인은 혼자 고개를 끄떡거리고 잠깐 잠잠히 앉았다가 반은 혼잣말로
“윤수경이가 나하구 동갑이렷다…… 같은 경오생…… 나하구 동갑짜리가 모두 다섯이었겠다…… 별감 다니던 조가는, 오 년 전 약국 하던 김혜종이는, 작년 싸전 하던 신준구두, 작년 전당포 하던 최가는, 그렇겐가?…… 모두 죽구 나하구 윤수경이만 남었던 것이……흥!”
“그래두 최주사는 이제두 열다섯 해? 스무 해? 스무 해는 더 사십니다.”
“흥! 알 수 있소? 모두들 날 보고 그렇게 말들을 합디다만은 누가 알 수 있소? 지금이라도 동막 나가다 말고 자동차에 치여 죽을 지. 하하하……”
노인의 웃음은 울음에 가까운 음울한 것이다.
구둣방 주인은 그것을 느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주사 자신도 그것을 느꼈던 게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쳐다보고 그리고 생각난 듯이 주인을 보고 말했다.
“가방이나 좀 내주우.”
三의 二
주인이 안에서 내다주는 가방을 받아 그 속에다 들고 온 약을 넣고 난 다음에 최주사는 새로 담배를 피워 물고 다 낡은 방한모를 고쳐 쓰고 그리고 일어섰다.
“이따 봅시다.”
“안녕히 갔다 옵시오.”
최주사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감영 앞으로 간다.
최주사는 웬일인지 작년 겨울부터 그의 약가방을 이 구둣방에다 맡기고 다녔다.
아침에 그리 가서 찾아가지고 한 바퀴 휘돈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또 으레히 그것을 그 집 에 맡겨두었다.
그 까닭은 아무도 몰랐다.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노인의 이 습관이 시작되었을 때 어느 날 약방의 젊은 주인은 점원을 보고 물었다.
“최주사가 가방을 새문 밖 어느 구듯방에다 맡겨두고 다니신다니 그 왜 그러시는 거야?”
“글쎄 모르죠…… 여기다 두시면 모두들 열어보구 헤쳐보구 할까봐 그러시는 걸까요?”
하고 하나가 말하는 것을 다른 점원이,
“아니야. 최주사가 영등포두 나가시구 뚝섬두 나가시구 하시지만 고개 너머를 그중 자주 다니시니까 그래 감영 앞까지 무거운 가방 턱없이 들구 다니시기 싫어 그러시는 게지.”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당치 않은 추측인 듯싶었다.
약방의 젊은 주인은 자기 자신 이러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
“최주사는 노인답지 않게 성미가 워낙이 깔끔한 이라 행여나 가방을 여기다 두고 지내면 남 보지 않는 사이에 약장 서랍에서 약봉지라도 훔쳐 넣는다고 의심 받지나 않을까―해서 아주 애저녁에 가방은 다른 데다 넣어두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이 추측은 최주사의 성벽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수긍할 수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러한 자지레한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객쩍게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알면 이날 아침의 최주사는 응당 우리들을 경멸할 것이다.
구둣방을 나온 최주사는 엄숙한 얼굴을 하고 죽음에 관해 인생에 관해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감영 앞 네거리까지 와서 서쪽으로 꼬부라질 때 최주사는 남의 점두(店頭)에다 누구 꺼리는 일 없이 판을 차리고 앉았는 ‘고구마 장수’ ‘황밤 장수’ ‘군밤 장수’…… 이러한 것들을 보았다.
그 가게의 빈지²⁵는 여덟 점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닫혀 있었다.
그 닫힌 빈지 한복판에 붙어 있는 백지 위의 ‘기중(忌中)’이라는 문자가 역시 최주사의 마음을 언짢게 해주었다.
눈을 들어보니 지붕 위에 ‘서대문 포목점’ 여섯 자가 씌어져 있는 간판이 서 있다.
“이 집이서두 누가 죽었군……”
최주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또다시 어젯밤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윤수경이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윤수경이는 자기와 동갑이었음에는 틀림없었으나 두 사람을 같이 세워놓고 보아 그들을 같은 경오생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게다.
기운이 하도 좋대서 어제도 십오 년은 더 사느니 이십 년은 염려 없느니 하는 것이지 그의 얼굴만 가지고 보더라도 이미 노쇠한 빛을 감출 길 없었다.
그야 그의 얼굴에 심각하게 박혀 있는 주름살들은 노쇠로보다도 신산한 생활고로 생겨났던 것일 게다.
그러나 그것들이 무엇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든 간에 그 수많은 주름살들은 별반 그러한 것을 많이 가지지 않은 윤수경 이와 사이에 오륙 년 내지 칠팔 년이나 나이의 차가 있는 것같이 보는 이에게 인상을 준다. 자기와 비겨보아 그렇게도 젊던(?) 윤수경이가 그렇게도 쉽사리 죽고 말리라고는 과시 뜻밖이었다.
최주사는 그간 십오륙 년이나 못 만났던 윤수경이를 봄에 한 번 꼭 한 번 종로서 만났던 것을 생각해내었다.
누구든 흔히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이지만 참말이지 그것은 엊그저께 일만 같았다.
최주사는
‘사람이란 그렇게두 쉽사리 죽는 것 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三의 三
죽첨정²⁶ 이정목 전차 정류소를 지나면 다리가 있다.
그 다리 모퉁이에다 구루마를 끌어다 놓고 한 여인네가 과일 가게를 벌이고 있다.
사과와 귤.
이 두 가지 과일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붉고 누르게 윤이 나고 또 신선하였다.
그러나 그 옆에 웅숭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에는 어쩌면 아침에 세수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얼굴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듬어 올리려고도 하지 않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말없이 흘깃흘깃 보았다.
그의 목에는 원래는 흰 것이 때 묻고 먼지 끼어 거의 잿빛이 된 털목도리가 둘려 있었다.
여인의 몸을 싸고도는 모든 것 이 한결같이 불건강한 것이다.
최주사는 이 여인을 오늘 처음 본 것이 아니건만 이 아침에 그러한 것을 유난하게 느낀다.
노인은 어느 틈엔가 또 입술 위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훌쩍 들이마셨다.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부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불쾌하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최주사는 또다시 죽은 윤수경이 생각을 한다.
윤수경이가 낙향을 한 뒤 이래 십오륙 년간 서로 왕래가 그치고 소식도 알리는 일 없이 지내왔으나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최주사가 사귀어온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윤수경이가 첫손 꼽을 친구였던 것 같다.
사람이 얌전하고 남의 말 하지 않고 깨끗하고 사정 알아주고…… 최주사는 죽은 친구의 미점(美點)을 헤어보았다.
“참 얼굴두 잘생겼지. 참말 미남자였지……”
최주사는 여기에 이르러 일찍이 자기가 윤수경이에게 용양지총(龍陽之寵)²⁷이었던 것을 생각해내고 호젓한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사십 년 전의 일이다.
모두들 젊었을 때다.
젊었을 때에는 별별 일이 다 많았다.
기꺼운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언짢은 일도, 그리고 부끄러운 일도, 망측한 일도, 참말 별별 일이……
그러나 그 온갖 별별 일이 모두가 한결같이 아름답게 추상(追想)된다.
참말 모두들 젊었을 때다. 최주사는 근래에 없이 이 아침에 그 시절이 그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람도 지난날을 그리워하도록 나이 먹으면 이미 여망(餘望)은 없다고 느낀다.
젊었을 때는―그러나 그가 사십 줄에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직도 아직도 젊었을 때다―그래도 꿈이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는 ‘나무 시장 표사무’를 보고 있었을 때에도 설마 자기가 그걸루 늙어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과연 그는 그것을 삼 년 동안 하였을 따름으로 그만두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약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최주사에게는 꿈이 없었다.
희망이 없었다.
꿈과 희망을 가질 만한 기력이 없었다.
이제 그의 생활의 변화는 죽음으로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주사의 울퉁불퉁 푸른 힘줄이 삐져 보이는 두 손은 약가방만을 어루만지다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다.
최주사는 저 모르게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쇠자국 누런 장식…… 그것들이 노인의 눈에 가장 불길한 것이나 되는 듯이 비친다.
노인은 갑자기 온몸에 그 약가방의 무게를 느꼈다.
삼정목 정류소 앞을 지난다.
우물과 우체통이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얼마 더 안 가 ‘조선장의사 아현 지점’이 있다.
최주사는 그 앞을 지나며 딴 때 없이 마음이 언짢았다.
윤수경이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다.
그의 문제는 끝났다.
이제는 자기 차례다.
참말이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누가 알 일이냐?
최주사의 털신 신은 발은 제풀에 술집을 찾아든다.
三의 四
“에이그 막걸리 영감 오네.”
술집 안에 손님은 두 명밖에 없었다.
줄 곳 없는 시선을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하고 앉았던 술집계집은 최주사를 보자 외롭던 차에 심분 다행한 듯이 소리친다.
“어서 옵쇼 꾸다 영감ㅡ”
최주사는 노인답지 않게 흘겨보는 시늉을 하면서,
“얘ㅡ, 너는 왜 나만 보면 언필칭²⁸ 막걸리 영감이구 꾸다 영감이냐…… 손님들두 계시구 한데……”
하고는 이번에는 그 두 ‘손님들’을 번갈아 보고 인사 청하는 웃음을 웃는다.
너비아니를 막 입에 넣으려고 하던 위생계 인부인 듯싶은 사나이는 젓가락을 잠시 멈추고 할 수 없는 듯이 웃는 시늉을 해 보이고 그리고 그의 약가방을 흘깃흘깃 보았다. 그러나 저편 구석에서 추탕인지 술국인지 숫제 뚝배기째 늘어지게 들이마시고 있던 반찬 가게 주인 같은 사나이는 뚝배기를 내려놓고 그에게로 와서
“영감! 오랜간만에 뵙습니다그려.”
하고 알은체를 하였다.
“네네, 안녕하세요?”
노인은 젊은이끼리 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를 한다.
“오늘은 어디 삼개(痲浦) 나가십니까?”
“네, 저 동막으루 해서 양화도루 해서 염창을 들르려면 들러서 영등포점 돌아 들어오려고…….”
“날이 갑자기 치워져서 다니시기에 곤란하시 겠습니다.”
“곤란해두 다녀야죠.”
그리고 노인은 그의 버릇으로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반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다만 일 원이라두 변통을 해야 내 막걸리 값은 어떻든 간에 윤수경이 집 이 조상²⁹이래두 가지 이렇게 말쑥해서야……”
“막걸리 한잔 놨습니다.”
하고 계집은 직업적 어조로 말하고,
“왜 누가 돌아가셨에요? 네?”
하고 저도 말참견을 한다.
“응 내 친구가……내 죽마고우가…….”
최주사가 왼손으로 막걸리 사발을 들어 꿀꺽꿀꺽 들이켜는 것을 곁눈으로 보며,
“우리 꾸다 영감은 언제나 돌아가 나?”
하고 불쑥 그러한 소리를 한다.
막걸리 사말을 채 입에서 떼기 전에 최주사는
“하하하하.”
웃다 말고 사래가 들린다.
“언제나 돌아가셔? 낸들 아니? 오늘 아니면 내일……내일 아니면 모레……하하하하.”
그러나 그의 웃음은 평일에 그가 그러한 종류의 말을 하고 뒤따라 터쳐놓던 웃음과는 달랐다. 그의 웃음에는 딴 때 없이 부자연한 ‘무엇’이 섞여 있었다. 노인 자신도 그것을 느낀 듯싶었다.
갑자기 엄숙한 얼굴을 하고 젓가락을 들어 김치를 한 쪽 입에 넣으며 계집 쪽을 보지도 않고 가만히 말하였다.
“또 한 잔 놔라.”
계집은 기계적으로 술구기³⁰를 잡으며 또 한 번 노인 쪽을 곁눈질 하였다.
“그 말 한마디에 노하셨수? 영감……”
최주사는 그 말에 대답을 아니 하였다.
말없이 또 한 번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고 그리고 손등으로 입을 쭈욱 씻은 다음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왜 말이 말 같지 않어요? 대답을 안 하시니…….”
계집이 입을 삐쭉 내민다.
노인은 역시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계집 이 신문지 조각에다 싸주는 왜콩³¹을 한 뭉치 아무렇게나 주머니에다 처넣고
“먼저 갑니다 헤혜.”
하고 반찬 가게 주인인 듯싶은 사나이에게만 인사를 하고 그리고 노인은 밖으로 나왔다.
그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종시 계집의 하던 말이 언짢게 느껴졌다.
“우리 꾸다 영감은 언제나 돌아가시나?……”
그 말은 그 계집의 입으로써 이번에 처음 들은 말이 아니다.
그렇건만 이번만은 그 농담이 종시 그의 마음을 언짢게 하였다. 불안하게 하였다.
최주사는 문득 그러한 오늘 아침의 자기를 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 이 모두 쉬이 죽을 징조야…….’
하고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四의 一
죽첨정 경찰관 파출소 앞에서부터 서쪽 길은 신작로 닦느라 한장 어수선하다.
왼손편 쪽 길가의 집들을 말끔 헐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삽짙을 하였다.
트럭³²이 끊임없이 흙짐을 나른다……
‘이것이 모두 쉬이 죽을 징조야…… 징조야…….’
하고 몇 번씩 기운 없이 중얼거리며 걸어오던 최주사는 주재소 앞에까지 와서 왼손 편짝으로 꺾었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그의 걸음걸이까지가 풀이 죽어 보인다.
다 낡은 방한모 고물상에서 산 외투, 마른 날만 신고 다니는 털신, 그리고 약가방……. 이 길가에 체경³³이라도 걸려 있어 최주사가 자기 눈으로 자기의 초라한 행색을 볼 수 있었다면 최주사는 이 아침에 응당 좀더 마음이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길을 얼마 안 가 조그만 양약국의 유리창 문을 척 열고 들어섰을 때 그의 얼굴에 웃음이 있었다.
그것은 단골손님에게 대한 장사하는 이의 웃음이었다.
최주사는 역시 한 개의 매약 행상에 틀림없었다.
“평안하시오 ㅡ”
말소리까지 명랑한 무엇이 있는 듯싶었다.
방에서 막 조반을 치르고 난 듯싶은 주인은 손님인 줄 알고
“어서오십 쇼ㅡ”
하려다 그것이 최주사인 것을 보고 약간 실망한 듯싶었다.
그래도 역시 그는 방에서 일어나 나오며
“어서오십시쇼 ㅡ”
하고 인사를 하였다.
“약 많이 파십니까?”
주객(主客)이 모두 약장수라 이렇게만 써놓으면 누가 한 말인지 모를 것이나 이것은 최주사의 인사다.
“웬걸이오. 요새 어디 누가 약 찾아요?”
주인은 부젓가락을 들어 별 뜻 없이 질화롯전을 가만히 때린다.
화로에는 구공탄이 한 덩이 묻혀 있다.
“그래두 요새 날쌔가 고르지 않어 감기약들을 많이 찾을 텐데……”
“어디 별루 찾는 것 못 보겠던데요.”
“그래두 앞으로 자꾸 쓰일 것이니까 넉 넉히 준비해두드래도 손(損)은 없습닌다…… 한 열 봉만 두시려오?”
“무얼?”
“감기약이지. 소연산이지.”
“어유 그걸 다 뭘 해요…… 돈 요담번에 가져가셔도 좋다면 다섯 봉만 냅쇼…… 다섯 봉두 그걸 다 뭘 해…….”
“뮐 하긴, 파실 거지, 하하하. 자 그럼 다섯 봉…… 영신환은 몇 봉?”
“아직두 많어요.”
“그럼 활명수? 채명산? 능치고?…….”
“다 있에요.”
“아따, 이렇게 심하게 안 팔어주어야 어떡허우?”
“나두 받어놓기만 할 수 있습니까? 차차 팔리는 대루 말씀 여쭙지…… 참, 청고약이나 열만 허구 촌충약 셋만 주수.”
“네네.”
“그것두 모두 요담번에 드립니다.”
“지난번 것은 어떡허구?”
“일 원 이십오 전 말씀요?”
“네.”
“그건 오늘 드리죠. 그걸 드리려니까 오늘 게 외상이죠.”
“어흠, 감사하외다…… 아주 외상 놓는 김에 다른 것두 좀더 두구 갈까요?”
“원참, 노인께서두…… 언제든 약은 꼭 노인한테서만 살 테니 그건 염려맙쇼.”
“어유 고맙습니다.”
그리고 최주사는 담뱃불을 새로 붙여 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난 듯이 주인을 보고
“참 자제 어디 갔소?”
“누구요? 길득이요?”
“예, 길득이……”
“왜, 안에 있죠.”
최주사는 안을 향하여
“길득아―”
하고 불렀다.
四의 二
“그 앤 왜 부르십니까?”
주인이 의아스러이 묻는 것이 최주사는
“아니 뭐ㅡ 저―”
하고 몽롱하게 대답하며 담뱃대를 고쳐 문다
쿵쾅거리며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안으로부터 뛰어나왔다.
“오― 너 잘 있었니? 요새 장난 잘하니?”
최주사는 길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리고 바로 아까 술집에서 안주로 받아온 왜콩을 봉지째 아이 손에 들려주며 주인을 보고 하는 말이다.
“들어오는 길루 길득이를 주면 바루 주인 양반께 강제루 약이나 팔아달라는 듯싶어서…… 그래 매양 이런 것은 갈 때 내놓죠……옳아, 또 그렇다구 그냥 가주구 가려다 오늘 외상값 받은 동에 내논 줄은 알지 마슈…….”
“원 참 노인께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하하…… 그건 다 웃음의 소리구…… 재미 많이 봅쇼. 길득이 잘 있거라.”
노인은 밖으로 나와 다시 걸어가며
‘사실 말이지 고까짓 일 전어치나 그밖에 안 되는 것을 가지구 무슨 저한테 약 좀 더 팔어달라구 코아래 진상이나 하는 줄 알면이야 그런 싱거울 데가 어디 있나. 사실이야……’
하고 그러한 생각을 한다.
최주사는 원래가 그렇게 신경 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역경’에 있으면 사람은 흔히 그러한 경향을 띠게 된다.
최주사의 경우는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할 게다.
최주사는 경성직업학교 앞을 지난다.
다음에 아현공립보통학교 앞을 지난다.
만약 이대로 그가 갈 수 있었다 하면 최주사는 또 잠시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날 아침에 윤수경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우울한 생각’을 더 하지 않아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운명’은 바로 그때 최주사의 옆으로 한 채의 자전거를 달려가게 하고 그리고 자전거 탄 젊은 아이로 하여금 침을 퉤 뱉게 하였다.
침방울이 최주사의 뺨에 튀었다.
그것은 누구에 게 있어서든 불쾌한 촉각임에 틀림없었다.
최주사는 고개를 돌려 저리로 달려가는 자전거의 뒷모양을 적의를 품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최주사에게 있어서 자전거라는 물건 그 자체부터가 불쾌한 것이었음에 틀림 없었다.
노인은 잠깐 그대로 그곳에 가 서서 입때까지 자전거로써 받은 온갖 불쾌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청계천 천변에서 달려가던 자전거가 떨어져 그 밑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를 일주일 동안 몸을 못 쓰게 만들어놓는다.
자전거를 피하려다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분지른 사람을 그는 알고있다.
그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한 대의 자전거가 능히 대여섯 살이나 그밖에 안 된 아이를 완전히 죽여놓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온갖 예를 일일이 들어 말할 수는 없었다.
최주사는 자기에게 그만한 권한이 있다면 이 세계에서 자전거라는 자전거를 하나 빼지 않고 말끔 몰수해버리는 법령을 발포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하면서 쓰디쓴 침을 퉤 뱉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의 ‘운명’은 최주사의 눈앞에다 건너편 ‘아현 공동묘지’를 갖다 놓았다.
“흥!”
하고 최주사는 최주사의 독특한 코웃음을 친다.
그것은 분명한 ‘코웃음’이요 결코 그냥 웃음이 아니었다.
노인은 이 아침에 온갖 보는 것 듣는 것이 자기에게 죽음을 재촉하는 듯싶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의 코웃음에는 이러한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최주사가 다음에 그 앞으로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경성형무소’의 우울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그는 또 한 번
“흥!”
하고 코웃음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로 말하면 다음엔 그가 지나는 채전에서 풍겨나는 비료의 악취까지가 딴 때 없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어준다.
四의 三
그 근처 두 군데 약방과 한 군데 술집을 들른 다음에 최주사의 걷는 길은 마포우편소 앞 전차 정류소에서 바른손 편으로 꺾어졌다.
볕은 있어도 바람은 좀더 쌀쌀하게 불었다.
바른손 편짝 높은 둑 위를 기동차가 달려갔다.
그러나 그것은 눈을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고 최주사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꽁꽁 언 땅 위를 허청허청 걸었다.
그는 지금 막 들러 나온 술집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약가방을 둘러메고 이제부터 ‘동막으루 해서 양화도를 들르려면 들러서 영등포로’ 휘돌아 들어가기가 싫었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그리고
“빌어먹을……”
하고 그러한 소리까지를 덧붙여 중얼거린 최주사다.
술집에서 막걸리 두 사발을 자시고 안주로는 그중에서 제일 탐스러워 보이는 사과 한 개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나 가우. 또 봅시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냉수가 한 모금 마시고 싶어 최주사는 다시 술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턱에 가 멈칫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술청 앞에 모여서 지껄대는 말 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그는 골라 들었던 것이다.
“……그 뭬 하는 노인이야?”
“약 팔러 다닌다네.”
“매일 저럭허구 다녀? 자식두 없나?”
“없게 그렇지. 돌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면이야 누가 그 고생살이를 하겠나?”
“그 불쌍하이…… 돈이나 있으면 몰라두 사람은 늙으면 죽는게 제일이야.”
여기까지 들었을 때 술 따르는 계집은 비로소 최주사가 문밖에 다시 와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영감 왜 들어오시지 않구 게가 서 계세요?”
이 말에 최주사 얘기를 하고 있던 두 사나이는 당황하게 문간 쪽을 보고 노인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외면을 하면서 안주를 한 점 집어 입에를 넣었다.
그러나 놀라기는 최주사도 매한가지였다.
무슨 옳지 않은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같이 최주사는 당황하게
“아니 뭐 ― 저 ―”
하고 뜻 모를 소리를 하고는 까닭 없이 머리를 끄떡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골목을 걸어 나왔던 것이다.
최주사는 마음이 서러웠다.
자기와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에게
“그 불쌍하이!”
“늙으면 죽는 게 제일이야…….”
하고 그러한 소리를 들은 것이 서러웠다.
자기 자신 그들의 한 말에 불복이라면 그는 그렇게까지 풀이 죽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금 신세가 어서 하루바삐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누가 일깨워주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면서도 그는 남의 앞에서 그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다느니보다도 퍽이나 두려워하였다.
자기 자신은 입버릇 모양으로
“이런 놈은 살 만큼 살기두 했으니 어서 죽어야지.”
라는 둥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레지…….”
하는 둥 하고 말을 해도 그런 말이 행여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올까 봐 겁하였다.
그러나 오늘 그는 그가 듣기를 가장 겁하던 말을 그예 듣고 말았다.
“그래 나는 정말 하루래두 바삐 죽어야 옳은가?…….”
노인은 제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모로도 세로도 끄덕이지 않았다.
그는 그 물음의 대답을 비록 자기 자신의 입으로써라도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자기가 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만 할 그러한 까닭은 조금도 없는 듯싶었다.
자기가 지금 이곳에 쓰러져 죽더라도 누구 하나 자기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니 끝없는 외로움이 그의 온몸에 에워싼다.
참말이지 하루바삐 죽는 게 제일인 듯만 싶었다.
“더 살면 무엇 하니? 더 살면 무엇 하니?”
혼자 중얼거리며 그대로 터덜터덜 걷다가 문득 발을 멈춘 최주사다.
길가에 아이놈 셋이 막대기를 들고 다 죽게 된 개 한 마리를 못살게 구는 것을 본 까닭이다.
四의 四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어쨌든 세 놈이 모두 열 살은 채 못되어 보이는 아이들이다.
한 놈이 막대기로 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순 조선 종자의 순하고 어수룩하게 생긴 그 개는 그 아이들의 포위에서 탈출하기는커녕 그 박해의 하나하나에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상실하고 있었다.
다만 거의 들릴까 말까 한 낮은 응얼거림이 이따금씩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쇠약으로 하여 반이나 감겨진 눈 속에 몽롱한 눈동자가 잔뜩 겁은 집어먹고 있었다.
또 한 아이가 맨손으로 그의 귀때기를 잡아당겼을 때 개는 그것에 저항할 힘도 없이 다만 또 한 번 그 낮은 웅얼거림이 그곳에 들렸고 그의 꼬리가 좀더 사타구니 속으로 꼬부라져 들어갔다.
그 꼬리를 또 한 놈이 막대기로 훑어 뽑으려고 하였다.
다른 때라도 최주사는 그냥 그 앞을 지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은 더욱 그러하였다.
“이놈들아! 그 무슨 장난이냐?”
하고 노인이 참다 참다 못한 듯이 소리쳤을 때 그것은 신경이 가늘고 또 예민한 아이라면 응당 그 순간 온몸에 일종 오한을 느끼기조차 하였을 그러한 증오로 가득 찬 부르짖음이었다.
세 아이는 질겁을 하듯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소리에 질겁을 한 것은 그 세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그 쇠약할 대로 쇠약한 개까지 노인의 부르짖음에서 자기에게 대한 좀더 혹독한 박해를 예감한 듯이 그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최주사는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 개가 좀더 측은해 견딜 수 없었던 까닭에 최주
사가 다음에
“이놈들아! 너희들은 그래 저게 불쌍해 뵈지두 않니? 응?…….”
이렇게 말하였을 때 ‘증오’가 그곳에 그대로 있었으면서도 그래도 개가 놀랐을 것을 염려해 그 소리는 한껏 작았다.
최주사는 그곳에 가 쭈그리고 앉아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나 노인의 따뜻한 어루만짐도 개에게는 세 아이의 잔혹한 학대나 매한가지 인 듯싶었다.
역시 몸을 쉴 새 없이 떨고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고, 그리고 몽롱한 두 눈에는 이제는 거의 아무런 감정의 ‘빛남’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최주사에게는 좀더 애달프게 느껴졌다.
그는 혀를 차면서 좀더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감은돌(玄石里)’ 어느 선술집에서 기르는 ‘검둥이’에 틀림없었다.
자기를 보면 컹컹 짖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하던 검둥이에 틀림없었다.
‘참 그동안 볼 수 없다 하였더니 이 꼴이 되었나?’
최주사는 고개를 들고 세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술집 개 아니냐?”
“네. 술집 개예요.”
하고 하나가 대답하니까
“병이 잔뜩 들어서 술집에서 내버렸에요.”
하고 또 하나가 설명 한다.
또 한 놈은 암말 않고 노인의 옆얼굴만 곁눈질하고 있었으나 셋이 모두 결코 그 앞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놈들은 내가 가면은 또다시 장난들이 하고 싶어 이러는 게로구나…….’
하고 최주사는 다시 한 번 세 놈을 노려보았으나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 듯싶었다.
그래도 최주사는 그 수밖에 없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 아이를 번갈아 보고
“이놈들 다시 이 개를 못살게 하면 안 된다. 그런 나쁜 짓 하면 하늘에서 벼락이 내린다.”
그리고 최주사는 다시 한 번 개에게로 눈을 준 다음에
“후유.”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차마 그대로 갈 수가 없는 듯이 자기자신 생각하였으나 그렇다고 그대로 갈 수밖에 아무것도 그곳에 없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최주사는
“이놈들 정녕 이 개를 건드리지 않으렷다.”
하고 또 한 번 개에게 눈을 주고 그리고 그 앞을 떠났다.
四의 五
그러나 최주사는 세 칸통을 채 못 가서 발을 멈추었다.
역시 궁금증이 생긴다.
자기가 그 앞을 떠나기를 기다려 다시 잔혹한 장난을 시작할 세 놈의 아이들이며 또 그 ‘원한’과 ‘고통’과 ‘쇠약’으로 하여 나오는 웅얼거림만을 들려줄 뿐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잃고 있는 불쌍한 개를 생각하였을 때 최주사의 고개는 저절로 뒤로 돌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벌써 또다시 장난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 놈이 막대기로 개의 말라빠진 옆구리를 찌르고 또 한 놈은 염치 좋게 가랑이를 벌리고 그 위에 가 올라탈 듯이 하고, 그리고 또 한 놈은 가만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최주사는 그 아이들에게 한없는 증오를 느끼면서 그때 마침 저 편에서 걸어 나오던 사십이 넘었을까 말까 한 아낙네가 부지중에 “에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엄청나게나 큰 소리로
“이놈들아.”
하고 외쳤다.
아이들은 질겁을 하고, 그리고 노인이 자기들 있는 편으로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싶은 기세를 보고 반대편으로로 달려갔다.
그러나 서너 칸통 떨어진 데까지 가서 그 애들은 약속한 듯이 걸음을 멈추고 이편을 보고 있었다.
천 번을 쫓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주사가 발길을 다시 돌릴 때 아이들은 또다시 저 불쌍한 개에게로 달려들 것이다.
그래도 최주사는 소리를 질렀다.
“그래 이놈들아! 너희들은 어린 맘에두 저 개가 불쌍하지 않느냐? 응? 그렇게 일러두 모르니!”
아이들은 형세를 보아서 다시 도망질칠 준비를 하면서도 그래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최주사는 그대로 잠깐 그곳에 가 서서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본다면 응당 말하였으리라.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소만은 하여튼 수염이 허옇게 난 이가 어린애들을 가지고 그 무슨 점잖지 않은 일이오?…….”
이렇게 ―.
까닭에 바로 지금 “에그” 하고 소리를 지르도록 놀란 아낙네는 역시 ‘모멸’이 가득한 웃음을 입가에 띠고 노인의 옆을 지날 때 그의 시뻘건 얼굴을 곁눈질하였다.
최주사는 자기의 옆을 지나간 아낙네가 개가 쓰러져 있는 옆을 지날 때 어떠한 의사 표시를 하나 하고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낙네는 그것에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은 듯싶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저 빌어먹을 개! 입때껏 죽지 않었네.”
하고 그러한 소리까지 하였다.
최주사는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자기의 기대가 어긋난 데서 가벼운 실망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낙네가 세 아이놈들 있는 데까지 가서 뭐라고 말을 하고 세 아이놈들이 또 번갈아가며 뭐라고 종알대고 그리고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최주사 편을 보았을 때 노인은 콧구멍이 벌렁거리도록 열화가 뻗쳤다.
“저 빌어먹을 개! 입때껏 죽지 않었네.”
하고 그런 인정머리 없는 말을 하는 여편네는 응당 아이들이 그런 몹쓸 장난을 하더라도 말리려 들지도 않을 게다.
아니 도리어 이 경우에 아이들을 선동시켜 개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
“흥! 빌어먹을 년! 저나 어서 죽지……”
자기 자신으로도 까닭 모르게 흥분이 된 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리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기가 이 경우에 그 개를 가지고 아무렇게도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주사는 그저 저편에들 석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노려보고 그리고 돌아서서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四의 六
최주사는 이번에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기로 하고 좀더 빠른 걸음걸이로 걸 어갔다.
뒤를 돌아다보면 응당 그의 눈에 다시 개에게로 와서 그 잔혹한 장난을 또 하고 있는 세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다.
최주사는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놈들이 다시는 그런 장난을 안 하리라는 것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에는 실감을 상반하지 않는 비애가 있었다.
만약 그렇게 오 분 이상을 최주사가 걸어갔다 하면 응당 이 노인은 개의 비참한 경우를 떠나 현재의 자기의 처지에까지 마음을 괴롭히기에 이르렀으리 라.
그러나 다행히 그가 삼 분이나 그밖에 안 걸었을 때 그곳에 그가 단골로 들르는 약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니 었다.
이날이 바로 그 약국 주인 생일이었다.
“영감 마침 잘 오셨습니다. 뭐 변변치는 않습니다마는 좀 들어오십쇼.”
하고 주인이 인사를 하자,
“아 영감 나오셨습니까?……”
“치우신데 어서 이리 좀 들어옵쇼.”
“그렇지 않어두 오늘 좀 영감이 나오실 듯하다구 아까 주인하구 내기두 했었죠.”
하고 모여 있던 동리 사람들이 최주사와 원래 안면이 있는 사이라 서로 다투어 말을 한다.
이러한 경우에까지 윤수경 이를 생각하고 공동묘지를 생각하고 술집에서 들은 얘기를 생각하고, 그리고 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생각해서야 참말이지 그것은 최주사의 망령이다.
최주사는 가방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어들며,
“어이구, 여러분이 모두 뫼시구…… 댁에 무슨 경사십니까?…… 네네 들어가죠…… 내가 발은 길군. 하여튼…… 헤헤헤.”
하고 웃고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술이 들어가면 역시 최주사는 마음이 유쾌하였다.
술 잘 자신다는 소문을 전부터 들었던 터라 제각기 번갈아가며 술을 권하고 안주를 권하였다.
그러나 술은 한 잔도 사양하지 않는 최주사가 안주만은 별로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을 주인은 좀 섭섭하게 여기는 모양이었으나 최주사는 원래가 깡술만 자시는 노인이다.
한 잔을 자시고 날 적마다 손등으로 입을 한 번 쭉 씻고 그리고 좌중의 어떠한 화제이든지 말참견을 하였다.
자기보다 십여 년 내지 삼십 년씩이나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최주사는 조금도 서투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야기가 삼사십 년 전으로 치올라가 ‘명성황후’가 화제에 올랐을 때에는 최주사는 가장 웅변이 되었다.
좌중의 몇몇 사람을 떼어놓고는 모두들 그 당시에는 세상에 태어날 꿈도 안 꾸었던 것이니까 그것은 당연하였다. 자기가 좌담의 중심이 된 김에 최주사는 아주 동경 유학담까지 시작해 그들을 놀래주었다.
이 노인의 신조어 ‘꾸다’는 알고 있는 그들도 그가 사십 년 전에 동경 유학생이었다는 것은 전연 뜻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경로를 밟아
“……내가 경무청에 십구 년, 경성감옥에 일 년, 노돌 슛사쓰가까리가 이 년…… 나중에는 하다못해 나무 시장 표사무까지 봤으니 말은 해 무얼 합니까?”
하고 얘기를 끝맺고 그리고,
“하하하하.”
하고 시원스럽게 한바탕을 웃어댔다.
그렇게 자기의 수다스러운 경력을 일종 자랑삼아 이야기한 최주사였으나 그것에서 자기가 적잖은 오해를 그들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노인이
“경무청에 십구 년, 경성감옥에 일 년……”
하고 말한 것을 옳게 해득하지 못하였다.
순검을 열아홉 해, 감옥 간수를 한 해 다녔다는 말도 같은데 어쩌면 무슨 일로 붙잡혀 들어가 있었다고도 하는 듯싶어 그들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그다지 친하지도 못한 노인에게 농담 비슷이라도 물어볼 일이 못 되므로 모두들 잠잠하였다.
四의 七
노인은 담배에 불을 붙여 들고 뻑뻑 빨더니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흐흥…….”
하고 웃는다.
“왜 웃으세요?”
누가 물었다.
“참 별일이 다 있었소. 순검이 그래두 행세라구 순검 다니는 걸 부러워하는 축이 많었죠. 나 순검 다녔을 때 얘기지만 가끔 순검을 팔어보기두 했습니다그려…… 하하하.”
“순검을 파시다니요?”
“순검 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었죠. 순검이라면 술집에 가서 술 한잔을 먹드래두 호기가 있었으니까…… 그래 돈들을 내고 삽니다.”
“아니 그럼 돈을 내구 순사 하나 얻어 한단 말씀이로군?”
“아니지…… 그런 게 아니라, 가령 내가 순검이죠? 노형이면 노형이 원 보름이라면 보름이라든지 한 달이면 한 달이라든지 그렇게 순검 노릇이 하고 싶다 하지요? 그럼 노형한테 내가 돈을 암만을 받구 원 보름이면 보름 한 달이면 한 달…… 그동안을 내 대신 순검을 다니두룩 합니다그려? 하하하하.”
“아니 어떻게 그렇게 영감 마음대루 파세요?”
“글쎄 그렇게 그때만 해두 어수룩한 시대죠, 말할 것두 없에요…… 나두 몇 번 팔어봤는데요? 하하하.”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는 역시 술이 취해 그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비스듬히 바람벽에 가 몸을 기댔다.
그리고 잠깐은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노인이 앉아서 조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저편 구석에 앉아 술을 잘 안 먹고 안주만 골고루 찾아먹던 젊은이가 젓가락을 그냥 손에 든 채 만주국 이야기를 꺼냈을 때 최주사는 귀가 번쩍 뜨이는 듯이 부리나케 몸을 고쳐 앉고 그의 독특한 시국담³⁴까지를 시험하다가 흐지부지 횡설수설이 되더니 이번엔 정말 모로 비스듬히 쓰러진다.
오 분 지났을 때 노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영감이 취하셨군.”
“사실 권하기두 엔간히 권했나.”
“어떻게 한잠 주무시구 가게 하지.”
이 사람 저 사람 말하였다.
그러나 주인이
“영감 잠깐 일어나십쇼, 웃간에서 한잠 주무십쇼.”
하고 노인이 어깨를 잡아 흔들었을 때 노인은
“네, 네.”
하고 눈을 뜨고 그리고 주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의 하는 말을 알아듣자 벌떡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원 내가 잠이 들었었나. 허허…… 물 한 그릇만 좀 줍쇼.”
그리고 냉수로 양치질을 하고 나서 모든 사람이 말리는 것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석 점 반이 넘었는데 이제부터 염창을 어떻게 가세요. 한잠 주무시구 문안으로 바로 들어가시죠.”
주인이 말해보았으나 막무가내하다.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뜰에 내려서 신발을 신고
“잘 놀다 갑니다. 여러분.”
하고 인사를 하고 그리고 노인은 허청허청 밖으로 걸어 나갔다.
*
한 시간 지나 최주사는 양화도 도선장에 와 있었다.
바람은 이 강가에서 훨씬 더 매몰스럽게 불고 있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도 서너 군데 약방을 들른 다음에 강가까지 나와 노인은 술이 차차 깨었다.
뱃사람들이
“영감옵쇼?”
“오늘은 좀 늦으셨습니다그려.”
“이제 차차 다니시기가 괴로우시겠습니다.”
하고 다투어 인사하였을 때 노인은 인사성 있게 웃음을 띠고 마주 인사말을 하였으나 그가 고개를 들어 강 건너편을 보았을 때 순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은 거두어졌다.
제방 위의 신작로를 등에 짐진 사나이가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에 보퉁이를 인 여인네가 역시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눈을 더 먼 곳까지 주었을 때 최주사는 서산에 걸린 해를 보았다.
겨울의 열 없는 태양은 노인에게 내일을 약속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서산을 넘어가려 하는 듯싶었다.
최주사는 담배를 빨 것도 잊고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
-끝-
2016년 6월 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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