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세대(구석기 사대)
조몬시대(4500,BC ∼ 기원전 2세기) , 일본 최초의 고대 농경 문화의 시기
야오이 시대((靑銅器와 鐵器- 금속문화 시기)
고훈시대 (주로 한반도를 통한 대륙문화-한자와 불교가 전래됨)
아스카 시대(중국육조(六朝)문화의 영향이 짙은 불교문화 시작)
나라(奈郞)시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백제, 당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덴표(天平) 문화 형성.
헤이안 시대(8세기 말경부터 12세기 말경까지)
한국사의 남북국시대 중엽에서 고려시대 중엽과 겹치는 시기. 헤이안 중기에 들어서 히라가나•가타카나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겐지 이야기》,《침초자》로 대표되는 모노가타리 문학(物語文学) 등이 융성하였고,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화되기 시작했다.
가마쿠라 (鎌倉)시대(12세기 무렵부터 14세기 무렵까지)
헤이안시대의 귀족층이 쇠퇴되어가고, 무사와 승려가 사회의 지배층 및 문화의 담당층으로 대두되는 시기, 바쿠후[幕府]라는 무가정권이 정권을 찬탈하고 새로운 지배체제로 가마쿠라에 본거지를 설치했다. 정차적으로 천황은 무력하게 되고, 경제적으로는 봉건정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종교 분야에서는 뛰어난 고승들이 출현하여 불교가 폭넓은 계층의 지지를 받으면서 찬란한 가마쿠라 '불교' 문화가 꽃피었다. 그러나 몽골로 부터의 두차례 침략을 막느라 재정이 악화되고 덴노가 반란을 일으킨 데다 사무라이(영주-다이묘)들의 파벌싸움이 빈벌하게 잇따라 1333년 바쿠후는 오다 노부가에 의해 무너지고 이후 100년간 혼란의 전국시대가 시작한다.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 또는 쇼쿠호 시대(織豊時代)
15-16세기, 한국사로 치면 대략 조선왕조 초기 ~ 중기와 겹친다. 고대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의 난세에 비유하여 전국의 세상(戦国の世,せんごくのよ)이라고 표현하는, 1세기에 달한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의 시대가 드디어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는 통일의 기반이 잡혀갔다. 그러던 중 1582년, 오다가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죽자 그의 가신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로 와서 배신자들을 격파하고 오다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 후, 오사카 성(大坂城)을 쌓고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 데 이바지 하였다. 내부의 혼란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에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전쟁을 시작하였으나 패배-세력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사망. 이후 도코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시작한다.
에도시대(1603년부터 1867년까지, 도쿠가와 막부 시대)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은 다시금 정치적 혼란에 접어들었는데 이때 천하의 패권을 장악한 승리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스스로 쇼군의 직위에 취임하고 교토가 아닌 에도(江戸옛 도쿄)에 막부를 열면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세 번째이자 최후의 막부 시대가 시작했다. 사무라이들의 전성기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전국시대부터 개항전 일본의 근세까지 이어졌다.
초기 태평시에는 교통·상공업의 발전과 시정인(市井人)의 대두, 화폐 경제의 성립, 다수의 도시 출현 등 상품경제가 크게 발달, 호황을 누리며 가부키, 우키요에, 기모노, 다도와 같은 일본식 (카세이)문화가 융성해졌다. 그러나 농민의 궁핍화와 거듭되는 재해는 농민폭동을 빈발하게 하여 바쿠한 체제는 내부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차 일어난 에도의 화재 특히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 에도를 수복하기 위해 과다한 지출을 하므로, 재정이 악화되었다.
기독교 금지를 위시하여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 말기에는, 구미제국이 일본에 문호개방을 강요하였고, 막부는 미국과 미일화친조약을 시작으로 유럽 여러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채결하게 된다.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1868년, 에도 성이 메이지 정부군에 함락되자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265년의 막부시대에 종지부를 내리고 정권은 천황에게 넘어 갔다.
*카세이(化政) 문화 -> 화려하지 않으나 도시서민의 생활에 뿌리를 둔 에도 쵸닌을 중심으로 한 문화
연이은 개혁에 따른 통제와 실패로 인해 퇴폐와 무기력한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여, 억압된 본능을 풍자와 익살의 문예로 발산시키며 애욕과 웃음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음.
*중국의 삼국지 만큼 유명한 인물 3명, 일본 전국시대 말엽 '전국 3영걸'이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들 3인의 각각 다른 리더쉽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울지않는 새’ 는
다혈질이고 결단력 강한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라겠다
꾀가 많은 히데요시: 새를 요래조래 어떻게든 울게 만들어야 한다
인내심 많고 신중한 이에야스: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대 일본어로는 이렇게 표기한다.
鳴かぬなら 殺してしまえ ほととぎす(울지 않으면 죽여버릴 터이니 두견새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鳴かぬなら 鳴かせてみせよう ほととぎす(울지 않으면 울려 보이마 두견새야)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鳴かぬなら 鳴くまで待とう ほととぎす(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마 두견새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또 이들 3인의 전국 패권장악의 과정을 <떡 만들기>에 비유한 시가도 있다.
오다는 찧고
도요토미는 반죽했고
도쿠가와는 힘안들이고 앉아서 먹었다.
메이지 시대(1868년, 연호-천황의 재위기간으로 시대구분하는 기준이 시작)
황권이 복원되고 절대적인 권한을 갖게된 명치덴노는 明治維新-めいじ いしん 으로 도코가와, 바쿠후의 막번 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 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 근대화의 광범위한 변혁을 하며 공식 수도를 도쿄로 개칭(천황의 성은 고쿄)했다. 구미제국의 새로운 학문•기술•음식 등이 전래되었고, 서양식 문명개화가 시작되었다.종교면에서는 신도와 불교를 분리시켰으며, 이로 인해 불교탄압 등의 과격한 움직임도 일어났다.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정책을 편 시절.
다이쇼 연간(1912년 ~ 1926년)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대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귀중한 유산을 마련한 시절이다.
쇼와 연간(1926년 ~ 1989년)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일어나고 사회는 불안해지며 군국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중일전쟁 이후 중국을 지원하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진주만을 공습,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역습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 당했다, 패전 후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점령하에, 일본 헌법이 제정되었고, 천황은 국정관여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석유파동 이후 일본의 경제는 안정성장기로 들어섰고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대에 눈부시게 성장하여 건국 이후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흥청망청, 엔고와 무역흑자를 배경으로 부동산, 주식 등 투기열이 과열되었다. 그러나 곧 '버블경제(Bubble Economy)’의 후유증은 비참한 결과로 다가왔다.
헤이세이 연간(1989년 ~ present)
거품경제가 소멸하고 불경기가 시작됐다. 금리인상-> 소비위축 -> 생산감소 -> 실업률증가 -> 소득감소 -> 물가하락, 갑자기 터져버린 버블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10년 정도가 걸렸고,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한다. 90년대말, 국민의 근면성과 기업들의 자구책이 결실을 보아 경기가 잠시 회복하는 듯했으나 오일 쇼크,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다시 후퇴했다, 게다가 2011년에는 사상 초유의 천재지변까지 겪으면서 무역수지 적자까지 이어지며 장기적 경기침체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아베노믹스란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경제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경기 부양책을 뜻한다. 엔화약세는 수출과 내수경기를 활성화하는 일부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급증한 일본 정부의 국가부채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진단이 있다. 정부 내각은 외교적으로 대미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 전후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한반도에 대한 과거의 식민지 침략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사과가 촉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첫댓글 https://m.youtube.com/watch?v=I6ptqekj5L4
일본의 태동과 한국으로 부터의 도래인 역사, 유흥주는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