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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깃국 / 양문규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잔바람에도 뚝뚝 살을 내려놓는 늙은 감나무 열락과 고통이 눈 속으로 젖어드는 늦은 저녁 아버지와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는다
세상 어떤 국이 얼룩진 자국 한 점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까 푸른 빛깔과 향기로 맑게 피어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국이 자잘한 행복으로 밥상에 오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자간의 사랑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어느 때라도 “시래깃국” 하고 부르면 일흔이 한참 넘은 아버지와 쉰을 갓 넘긴 아들이 아무런 통증 없이 공기 속을 빠져나온 햇살처럼 마주앉아 있으리라
세상은 시리고도 따뜻한 것이라고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함박눈을 밟고 겨울 들판을 휑하니 다녀와서 시래깃국 한 사발에 또다시 봄을 기다리는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시집<식량주의자>2010. 詩와에세이
양문규 시인
충북 영동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집으로 가는 길』『식량주의자』 논저『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등 현재 계간『시에』편집주간,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대표
[출처] 시래깃국 / 양문규|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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