衣岩十境
춘천호반을 노래한 시집이다. 작가는 37명이나 된다. 춘천에 사시는 한시를 즐기시는 분들이 자기 고향이나 사시는 도시를 아끼고 사랑하고 풍광을 답사하시며 오늘의 춘천을 아름다운 언어로 그리며 다음 세대를 위해 보전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시들이다.
친구CK의 모친상에 조상을 갔는데 그 곳에는 k대 출신의 고교동창이 예닐곱 모여 있었다. 상주와 조문을 하고 좌정을 했는데, 얼굴이 자주 안 본 탓에 서먹한 친구가 둘인데, 한 친구는 이름이 충주출신 L로 생각나고, 한 친구는 이름은 잘 아는 데 얼굴을 너무 오래 조우치 않은 탓에 근황을 묻다보니 음성출신 N교수였다.
그날은 6시에 조문을 하자며 Y와 약속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 전철을 타고 삼성병원에 도착해 장례식장 안내판을 쳐다보니 상주 이름이 없다.
낭패다, 메시지 문자를 다시 보니 빈소가 서울대 병원이다. ㅅ짜만 대충보고 친구의 지위나 재력이 당연히 삼성병원일 것이라고 내 짐작을 했던 것이 화근이다.
왔던 지하철을 되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 창경궁 앞에 하차하여, 서울대장례식장에 들어가니 1시간이 더 지체이다. 내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 이상하다, 아마 화제 중에 한 대목에 들었을 것이다. 요즘 배우는 시조창과 카톡으로 최 고은 선생의 시를 내게 보내, 해석을 부탁한 Y가 그 해석을 N교수에 보여주면서 나의 한시 해석 수준 등등도 화재였던 모양인 듯한데!
근황을 묻는 인사를 마치자 한시를 꽤 잘 짓는 N친구는 대뜸 내게 청주8경이나 청주10경을 청주친구들이 지어서 노래함이 어떠냐는 제안이다. 내 주변에 P와 UN등 동기들이 한시를 짓는 것은 봤으나, 나는 자작 한시가 없고, 내게 이런 제안을 한시의 거목인 친구가 하니 너무 큰 산이다.
코흘리개 시절에, 조부님의 친구이신 문우 분들이 할아버지가 자리를 마련할 순번일 때, 문의계라는 시모임을 봄철에 우리 집 가묘 뒤, 토성 평탄한 잔디에 자리를 깔고 술과 제철 음식을 장만하시어 드시고 시흥으로 하루를 즐기시며, 두루마리 종이에 각자의 시를 큰 붓으로 쓰시며 시흥을 즐기는 모습을 본 기억은 있다. 그 모습을 내 기억하기에 ,이 종이를 어딘가!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마 그때도 청주10경을 노래한 것이 있나 봐야겠다. 답을 하며 난 한 번도 作詩를 해보지 않은 생초자라는 말을 했다.
다 다음 날 N교수는 내게 ‘의암십경’을 택배로 보냈다. 그전에 원주8경이라는 한상철 전 원주시장님과 김진성 씨 외 여러분의 창작시집인 144쪽 짜리 共著 시집과, 최근에 고교동기친구들과 걸어가며 쓴 해파랑 길 기행문 초안은 메일로 보냈다. 읽던 책을 끝내고 이 책을 펼쳐들었는데 이 책은 진도가 너무 더딘 것이 흠이다. 물론 내 한문 지식이 짧아서 시 한 수에 모르는 자가 가끔 섞이니 훈을 보다 해석보다 하면서 읽자니 더딘 것이다. 40년 내공으로 쌓은 높은 학식을 시조소리로 치면, 친구는 청중려 음을 내어 하늘 위 천상에서 노는데, 어찌 황종 대려 수준으로 지상에 기는 실력으로 언감생심 쳐다나 보겠는가?
다시 한 주일의 시간이 흐르니 그냥 정리를 해야 한다. 내일은 다른 책을 펼쳐 봐야 한다.
한시는 삭히는 숙성의 시간이 들어야 나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상촌 신흠선생이 춘천 홍료도 에서 유배생활을 하시였는가 보다. 유배는 힘들지만 상촌선생은 홍료도가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기고 사셨단다. 후일 복직하시어 조정의 상당 관으로 계시면서 임지로 떠나는 후배 춘천부사 최응구에게 지어준 시가 전한다.
送崔應久赴春川(송최응구부춘천)
내 일찍이 소양강 나그네가 되었기에 曾作昭陽江上客, 증작소양강상객
소양의 뛰어난 경관 알 수 있었지. 昭陽形勝却能知. 소양형승각능지
관아의 생활 그림 속과 같다면 官居如在畵圖裏, 관거여재화도리
순박한 민속은 도리어 태고 적 같다네. 民俗還同太古時. 민속환동태고시
복 받은 곳이라 오만한 관리 진정 숨을 만하고 福地眞堪藏傲吏, 복지진감장오리
동천이라 여기저기 영지가 자란다오. 洞天隨處長靈芝. 동천수처장령지
언젠가 당신 임기 다 하면 他年會待君瓜滿, 타년회대군과만
그 동부를 나에게 넘겨주기 바라네. 須替銅符與我持. 수체동부여아지.
다음 시는 의암호에 비친 산 그림자 衣岩倒影이라는 南相浩의 시다.
인어공주가 깨끗이 목욕하고
바위에 앉아 호수 거울에 비춰보네.
김은 산골 맑은 물에 비경을 감췄는데
그 누가 알랴 산의 본래 보습을.
人魚公主洗花鬘 인어공주세화만
岩上屈身照麗斑 암상굴신조여반
石谷淸湖藏秘色 석곡청호장비색
孰能知見本山顔 숙능지견본산안
유리다리에서 달그림자 밟기 琉橋踏月
남상호 시
만인이 지목하는 것 유리를 보듯 하니
매일 유리다리를 건너며 명심해야지.
한번 진실을 잃으면 모든 일은 끝장이라
항시 도로 나아가 위의를 지켜야지.
萬人指目若琉璃 만인지목약유리
每日過橋刻石碑 매일과교각석비
一失眞心皆末了 일실진심개말료
常時進道守威儀 항시진도수위의
춘천2경인 봉황대에서 조망을 노래한 백사 이항복 선생의 시와 남상호의 시를 소개한다. 봉황대는 춘천부의 서쪽 봉황여울에 위에 있으며 산 끝이 불쑥 나와 절벽이 높아, 형세가 누에머리같이 생겨, 강으로 들어와 있는데 위는 평탄하여 老栢과 장송이 가득하여 경치가 좋다. 소양강과 자양 강이 굽이쳐 큰 들을 지나 신연 강에서 합하여 문암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삼산을 마주하고 백로주(白鷺洲)가 있으니 중국의 명승지 항주의 봉황대와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봉황대라는 시는 너무 유명하여 당나라 시조에 우리나라 시조인 정경태선생이 羽調叱音으로 작곡하여 “昔人이 已乘 黃鶴去하니 此地에 空餘 黃鶴樓이로다 ”. 라는 시조인의 필수 곡으로 대상 부의 지정곡 노래가 있다.
봉황대를 오르며 登鳳凰臺
이항복(1556~1618)
대만 높고 이름은 헛되이 지었네.
사람들은 이름을 전하는데 봉황은 모르네.
순임금의 음악 지금은 끊겨
봉황은 언재 한 번 춤을 추려나.
臺峻名虛說 대준명허설
人傳鳥不知 인전조부지
簫韶今寂寞 소소금적막
何日一來儀 하일일래의
다음은 봉황대의 조망 鳳臺眺望이라는 남상호의 시다
호반의 튀어나온 봉황대
가없고 티끌도 없어 혜안이 열리네.
무슨 일로 누가 와서 먼 미래를 내다 볼 것인가
옛사람들 오동나무 심어놓고 그대 오길 기다리네.
湖邊突兀鳳凰臺 호변돌올봉황대
無際無埃大眼開 무제무애대안개
何事誰來看萬里 하사수래간만리
古人植樹等儂廻 고인식수등농회
친구가 춘천 강원지역에서 오래 근무하고 한시 작시방법을 강의하여 춘천과 원주의 한시 인들이 그에게 시를 짓는 법을 배운 모양이다. 原州 白雲漢詩會 김진성 외 여러분의 후기에 쓰여 있었다.
2020.01.05.
의암십경
남상호외 36인 공저 한시 집 319쪽
산책 간
첫댓글 류재훈님
서예하시는 줄만 알았더니
한문실력도 대단하십니다.
한시 해석이
한시보다 더 한수 위인거 같습니다.
ㅎㅎㅎ
한시 감상 잘 했습니다.
풍광이 그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정선생님
설명절 잘 쇄셨는지요?
금년도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시조방 나루터를 위해
큰 보시를 해주세요
청중려는 뜬 구름이요
황종,중려는 현실이니
밑이 더 중요하겠지요
@임촌답부 임촌담부님
설 명절 잘쇄셨습니까?
관심 격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