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종달새는 어디로 갔을까
임병식 rbs1144@daum.net
태어나서 보낸 유년시절을 다시 한 갑자 돌고 보니 변한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누런색 일색이던 초가집이 기와로 바뀌더니 지금은 그것도 헐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바뀐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형에 따라 형성된 자연그대로의 논틀밭틀도 모두 반듯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서 바둑판 형태로 바뀌고 그 곳에 세워진 허수아비도 넝마를 벗어 던지고 누가 입어도 흉보지 않을 성한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좋아진 건 아니다. 청정한 자연환경은 오염되어 커다란 걱정을 안기고 있고, 예전 유리알처럼 맑던 하늘은 기름때 낀 듯이 우중충한 때가 많다. 거기다 코로 들이키는 공기도 청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산업발전이 된 것은 좋은데 그것이 몰고 온 폐해는 너무나 심각하여 크나큰 걱정꺼리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서 내가 늘 그려보는 것이 있다. 물 맑고 공기 맑던 유년시절을 소환하여 회상하는 것이다. 나는 한때 어머니의 사랑을 그려보다가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하나 그려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들밥을 머리에 이고 나설 때 등에 업힌 아이가 그것을 떠받드는 광경을 생각했다.
그 광경은 상상만 하여도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수고하는 엄마를 돕겠다고 한사코 손을 뻗어 함지를 받드는 모습. 그렇지만 그것은 실은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느끼지만 하나도 도움은 안된다. 돕는 행위라면 마땅히 힘을 덜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리해 보았자 그 무게 중심은 그대로 온전히 어머니한테 쏠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효(孝)의 실천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떠올려 본 것이다.
그러한 착상은 하나의 작품 서양화로 완성되었다. 어느 화가에게 그 정황을 설명했더니 이야기를 듣던 그는 그림을 한 점 그려 주었다.
6.25전쟁이 끝날 즈음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떤 몽환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일렬로 철길이 뻗어있는데 바로 그 위의 공중에서 한 무리의 종달새가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거기다가 철길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간간이 인근의 밭고랑에서는 동이밴 보리가 상큼한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하고 학교를 오가노라면 어느 구간에서 불가피 철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되어서 그곳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면 철길은 아니고 양쪽으로 난 좁다란 길을 이용하는데 그렇다고 마냥 거기로만 걷지는 않았다. 더러 재미삼아서 철길에 올라서서 걷거나 철로 위를 몇 발자국씩 떼어 보기도 하였다.
당시 보면 아지랑이는 철길에서 많이 피어올랐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철이 열기를 많이 뿜어내서 그런지 모른다. 아무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마치 모닥불처럼 이글거리며 시야에 너울거렸다. 그런 날은 종달새가 창공에서 군무를 펼쳤다. 헬리콥터모양 제자리에 떠있기도 하고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조잘대며 노래를 불렀다.
"삐쭈루 삐쭈르 삐비 삐비 삐쭈르 ”
연이어서 목청을 돋우었다. 그 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그 정경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해서 나는 그때 목격한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로 다시는 어디서 그토록 환상적인 광경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것이 뇌리에 각인되어 한 번씩 유년의 기억을 떠올릴라치면 반드시 그 정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광경은 어디서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리랑이야 어디선들 여전히 피어오르겠지만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종달새는 자취를 감춰버려 만나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때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고 남구만선생이 옲었던 새인데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 많던 종달새는 어디로 종적을 감춰버린 것일까.
환경이 오염되니 노래 부를 생각이 없어져서 어느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비극적인 생각이지만 오염된 환경 탓에 적응을 못하고 일시에 전멸해 버린 것일까. 녀석들은 주로 풀벌레나 풀씨를 먹고 사는데 온 산천이 오염이 되다보니 먹이가 부족해져 생존이 어려워진 것일까.
추억을 떠올리면 포롱포롱 날개 짓 하면서 노래하던 종달새의 청아한 울음소리가 많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오염된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2023
첫댓글 그러고보니 종다리 구경한 지가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보리를 베노라면 보리밭 속에 숨겨진 종다리 집과 알록달록한 알들이 심심찮게 발견되었지요 알을 만지면 어미새가 가까이 날아와 야단법석이었지요 이젠 종달새도 귀한 새가 된 듯합니다
온 들을 새까맣게 뒤덮던 까마귀떼도 그리워지는군요
나는 종종 어렸을적에 본 종달새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철길위에 아지랑이가 피는데 그 위에서 종달새가 지저귀곤 했지요. 보리가 패기 시작하여 그 향기도 싱그러웠습니다.그뒤로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