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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9일(주일) 베드로전서 1:13~25 나그네 인생을 믿음으로 살려면?
오늘은 본문 베드로전서 1:13~25 말씀을 중심으로 ‘나그네 인생을 믿음으로 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받는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 진 편지인데요, 특히 그 시대에 로마의 혹독한 박해로 온 세상에 흩어져서 격렬한 박해를 당하고 있던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박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것 때문에 매를 맞고 위협을 당했으며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런 고난의 시기에도 성도들이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로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그 고난을 견뎌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선 박해를 받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의 삶’(17절)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벧전 2:11에서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하면서 ‘나그네 삶’을 강조합니다. 즉 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며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말합니다. 이용규 선교사는 내려놓음 365 묵상에서, 나그네의 삶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그네의 삶,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바른 신앙관이다. 나그네의 삶은 가진 것이 적을수록, 짐이 가벼울수록 좋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가볍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비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합니다. 최희준 가수의 ‘하숙생’에서 나그네에 대한 표현을 노래 가사로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1절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간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나그네길이요,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이므로 정일랑 두지 말고, 미련일랑 두지 말자’라고 합니다. 한 번 왔다가는 인생, 죽으면 그만이니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살자고 합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이되 하나님께부터 와서 이 땅에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사명을 다 하면 돌아갈 영원한 본향이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때로는 이 땅에서 믿음을 살기 때문에 ‘고난과 환난과 소외’를 당하기도 하지만, 돌아갈 본향인 천국을 향한 “믿음과 소망”(21절)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립니다. 넌센스 퀴즈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를 ‘눈 깜짝할 새’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눈 깜짝할 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곳에 영원히 머물 것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그네로 거류민으로 있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서의 나그네의 삶을 믿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들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13~17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산 소망이 있는 성도들이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때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13절).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가 많아 하나님의 유황불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고를 했을 때, 롯의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과 함께 죄 가운데, 타락 가운데 동화되어 영적으로 무디어져 있어서 종말의 메시지, 심판의 메시지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롯의 사위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영적으로 깨어나게 됩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는 자는 영적으로 둔감해져 점점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기도함으로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면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합니다(13절). 회심한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영원한 가치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허리를 동인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방해받지 않고 힘써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갑자기 여행을 떠나게 되어도 당황하지 않고 기꺼이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허리를 동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영적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그들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또한 깨어서 내가 구원받기 이전에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14절). 출애굽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거의 애굽을 그리워하여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박해가 두렵다고 십자가를 내려놓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 또한 힘든 나그네 삶에서 죄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절)고 합니다. 바로 ‘거룩’입니다. 16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재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마 26:41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늘 기도에 깨어 있되, 특히 고난과 시험의 시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다는 말은 교회에 등록하고 다닌지 오랜 세월이 되었다는 말이지, 열심히 오래 믿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기도 없이 교회 출입만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영적으로 깨어 있고 저절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욱 기도생활에 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나그네의 인생을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 지는 데, 새벽기도나오기도 쉽지 않고, 잠의 유혹이 많은 시기라 그 시간에 일어나 유튜브 실시간 예배드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도 요즘 너무 피곤해서 입 안에 뭐가 자꾸 나서 불편한데요. 이럴 때일 수록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서 새벽예배 참여에 열심을 내도록 하시고, 기도생활도 하루에 얼마 시간을 정해서 골방의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자기 전이나 일어날 때 기도하곤 했는데, 요즘 너무 게을러 졌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수정교회 성도들이 기도에 깨어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그네 인생을 승리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적용) 나는 지금 나에게 닥친 고난과 환란 가운데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까? 나는 지금 기도에 깨어 있어 죄를 물리치며, 문제를 기도로 돌파하려고 합니까?
2.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라((18~21절)
나그네 삶에, 특히 고난의 시기에는 믿음이 흔들리므로 구원의 확신을 늘 가져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위치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주변 세상에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도의 구원에 대해서 베드로는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요(18절), ‘오직 죄도 흠도 없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얻은 것’임을 재확인시켜 줍니다(19절). 그러면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께서 이런 확신을 주시는 데요. 우리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개인적으로 알려 주시는 데요. 로마서 5:5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신을 나타내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주셔야만 이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구하십시오. 계속 순종하면서 그 분을 찾으십시오. ‘분명한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심을 알 때까지, 그러면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참으로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 죄를 양털같이 희게 씻어주고,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돌이키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택하시고 마지막 때에 우리를 구원하고자 그를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의 헛된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이미 받은 구원에 감사하면서 ‘나의 믿음과 소망을 늘 하나님께 두어’(21절)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벧후1:10,11). ‘전도폭발’이라고 하는 전도 책자에 에 보면 전도자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훈련생)께서는 오늘밤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세요? .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바로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된 예수님께 나와서 거절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동기로 나왔습니다.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간절함으로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접하면’, ‘받아들이면’, ‘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적용) 나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의 확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내 죄가 깨끗해졌음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내가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날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3. 말씀을 붙고 살라(22~25절)
베드로는 계속해서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말씀을 붙들고 살라’고 권면합니다. 인생은 종종 바다에 항해하는 것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 행로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해의 여정이 항상 순조로운 항해만을 예측할 수 없듯이 인생행로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늘 불안함과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해 가이사랴에서 로마총독으로 부터 재판을 받던 중 로마시민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함으로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게 됩니다. 로마로 가는 중에 ‘유라굴라’아고 하는 무서운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난파의 위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음으로 위기 극복과 함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천사를 보내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유라굴로 속에서 바울을 승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와 격려와 함께 담대함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겠다.”(2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비록 하나님의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계속되는 폭풍우 속에서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20) 예레미야 선지자는 .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렘15:16)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에 대해서 이렇게 비교하면서 설명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24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합니다(25절). 또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않고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강조합니다(23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만들어 주십니다. 말씀은 믿음이 더 큰 믿음이 되도록 하십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듦으로 나그네 인생길에서 말씀이 만들어주시고 크게 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국가 지도자들의 타락을 일일이 하나님께 고하고 이대로 두어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주께서 심히 두려운 이방인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이에 하박국은 놀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범죄를 짐승만도 못한 이방인들에게 붙이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의 백성이 범죄하였으면 하나님의 손으로 치실 것이지 더러운 이방인들을 들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치시게 하시겠다 하나님의 속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항의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올지 파수대로 올라가 기다렸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을 원하는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 말씀 속에는 그의 백성들을 화평케 하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생활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울부짖으며 기도만할 줄 만 알았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날 몇일 밤을 새워 울부짖을 줄만 알았지 가만히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풍랑기를 겪고 계시든 그렇지 않으시든지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요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를 구별하고 그 말씀을 붙드셔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힘든 상황 속에서 주님은 꼭 그 때마다 합당한 말씀을 주셨고 저는 그것을 그 때마다 붙잡고 그 고난의 터널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적용) 나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기나 평소에도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에 소망을 두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내 소견대로, 내 지혜와 방법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론) 나그네 인생을 믿음으로 살려면?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존재가 아니고, 잠시 잠깐 이세상에 있다고 주님 부르실 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계신 천국 본향으로 갈 사람들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고난과 환난이 닥칠 때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신앙을 포기할 생각도 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사시길 바라고,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하셔서 꼭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