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레지오와 마음읽기
좋은 인품(메라비언 법칙)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202309 바라보기
지금처럼 SNS의 발달로 문자 위주의 소통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인 1967년, 미국 UCLA대학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 교수는 동료들과 두 종류의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호의적인 ‘자기’, ‘고마워요’, 비호의적인 ‘하지 마’, ‘최악이야’, 중립적인 ‘아마도’, ‘진짜?’ 등 세 가지 느낌의 단어를 목소리 톤을 달리해 들려주고, 그 단어에 대한 감정을 유추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단어만 듣는 것보다 특정한 목소리 톤을 사용했을 때 더 정확하게 상대의 감정을 유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번째 실험은 중립적인 단어인 ‘아마도(maybe)’를 앞선 세 느낌의 톤으로 들려준 것과, 이 단어를 여러 감정이 표현된 얼굴 사진을 함께 보여준 뒤 감정을 유추하게 하여 비교하였다. 이 실험의 결과, 사람들은 목소리 톤만 듣는 것보다 얼굴 사진을 보았을 때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잘 유추해 냈다고 한다.
메라비언은 이 실험의 결과로 감정을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의 내용은 7%, 그 말을 하는 목소리 톤은 38%, 표정은 55%의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1971년에 저서 ‘Silent Messages’에 발표하였다. 이후 이는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 즉 말의 내용보다는 비언어적 요소인 목소리, 음색, 표정 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으로 요약되어 ‘메라비언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아가 이 법칙은 마케팅,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보다는 용모나 제스처, 목소리 훈련 등에 많은 공을 들이는 현상이 나오게 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메라비언이 주장한 결론과는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소통에서는 언어적 요인과 비언어적 요인 모두가 중요해
메라비언은 모든 소통 상황에서 비언어적 요소, 즉 목소리 톤이나 표정 등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말의 내용과 태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의 내용인 메시지와 목소리, 표정 등이 다를 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말의 내용이 아닌 다른 부분을 믿게 되는데, 그때 가장 먼저 표정을, 그다음으로 목소리 톤을, 마지막으로 말의 내용을 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잘한다”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말이 진심으로 잘한다는 뜻인지, 잘못하는 것을 놀리는 뜻인지를 그 당시 비언어적 요소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어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7%의 언어적 내용보다 93%의 비언어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라비언의 실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언어의 의미는 비언어적인 요인에 따라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니, 소통에서는 언어적 요인과 비언어적 요인 모두가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칸트가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한 것처럼 형식과 내용은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신인 B자매는 친한 직장 동료가 권면하여 세례를 받으면서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고자 퇴직 후 봉사를 결심하였다. 그러다 성당에서 전례 봉사로 자주 본 침착하고 온화한 자매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그녀가 레지오 단장이라는 걸 알고, 퇴직 전이었지만 그녀의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였다. 그 후 기도도 많이 하게 되고 본당 신자로서의 소속감이 생겨서 좋기는 했으나,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멘토로 여겼던 쁘레시디움 단장이 가끔 교리와 다른 내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레지오 운영도 규율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단장님은 아주 열심히 피정과 교육에 참여하는 분이라 처음 의문이 생겼을 때,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고통이나 부유함에 전생(前生)을 운운하고, 레지오만이 성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단체라는 등의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레지오 운영을 규율이 아니라 선례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교본대로 하지 않는 일이 잦으니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런 단장의 모습은 성모님의 군사답지 않았고, 급기야 제가 눈먼 목자를 따라가는 양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단원 생활을 쉬고 있는데 그것이 매우 아쉽고 속상합니다.”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교본 468쪽 참고)이다. 이를 위해 평신도인 레지오 단원은 ‘복음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말과 행동으로 그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과 책임을 부여받았다’(교본 314쪽). 이를 위하여 단원들은 옷차림이나 말씨도 검소하고 단순 소박해야 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겸손과 사랑, 그리고 성실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교본 474쪽).
여기에 교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교리는 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으로, ‘우리가 걷는 신앙의 길을 비추는 빛’(교본 312쪽)과 같고, 빛이 있어야 오류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한다. 레지오 교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가톨릭 교리를 포괄적이고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더없이 좋은 교리서이기 때문이다.(교본 302쪽 참고)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 공부를 철저히 해야
그렇다면 단원들이 교본에 있는 사도직의 정신과 내용을 바르게 터득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쁘레시디움이 스승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교본 301쪽 참고). 즉 영적 독서와 훈화, 그리고 교본 연구 등의 시간을 제대로 꾸준히 활용함으로써 단원들이 교본을 올바르게 습득하게 도와줄 수 있다. 만약 쁘레시디움에서 그 역할을 소홀히 하여 단원이 교본을 잘 알지 못하고 활동한다면, 그것은 ‘군인이 총 쏘는 법을 모르고 전장에 나가는 모습’이 되어 아주 위험해진다.(월간 레지오 마리애 8월호 훈화 참조)
교본이 어려운가? 그렇다면 여러 번 읽도록 하자. ‘어떻게 하면 학식을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우선 한 권의 책을 읽으시오. 그리고 읽거나 들은 것은 잘 이해하도록 힘쓰시오. 혹시 의문이 생기거든 확실히 알 때까지 노력하시오.”(교본 302쪽)라고 했으니 교본이야말로 단원들이 공부해야 하는 한 권이 아닐까? 그리고 교본 이해를 바탕으로 뉴먼 추기경의 다음 말씀을 기억하여 활동하자. “좋은 인품은 우리를 감화시키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녹이며, 상냥한 모습은 우리를 가라앉히고, 실천적인 행동은 우리도 함께 따라나서게 만든다.”(교본 371쪽) 그리하면 다디단 열매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영원한 진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바친 노고에 대하여 보상을 받는 것이다.’ (교본 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