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인들이 기피한 색 - 파랑
그리스, 로마에서 선호되었던 색은 빨강, 검정, 노랑, 흰색이었고 로마에서는 더욱 청색을 기피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청색을 어둡고 미개하며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인식하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청색 의상은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제국 초기에는 장례의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청색 비하 현상으로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은 추하다는 취급을 당하거나, 여성의 경우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청색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청색은 궁정이나 귀족들에게 외면당한 낮은 계층의 색이었고 이런 현상은 12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청색 사용의 예외적인 경우는 동양에서 유래한 모자이크 제작에 밝은 청색이 등장한 경우입니다.
이는 후일 비잔틴 예술과 초기 기독교 예술로 이어졌고 청색은 모자이크에서 물을 표현하거나
바탕색, 혹은 빛을 표현하는 색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교회출입을 금지당한 불우한 파랑
중세 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결정했던 기독교에서도 고대의 기본 3색인 검정, 흰색, 빨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12세기 전반기 청색 스테인드글라스가 등장할 때 까지 교회의 예배의식에서
청색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초기 교회의 수많은 문서에서도 파란색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성직자, 신학자의 의상에서도 요란한 색은 금지하고
흰색의 절대성(순수, 부활, 영광, 세례, 영생 등)을 강조하는 정도였지만 여전히 청색 의상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2세기에 들어 색에 관한 전례학자들의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는데 흰색은 순결함, 검은색은 금욕, 회개, 비탄을,
빨간색은 그리스도의 흘린 피와 순교, 희생, 열정과 신적인 사랑을 의미하게 됩니다.
물론 녹색이나 보라, 회색이나 노란색에 관한 의견들도 있었지만 청색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색과 빛의 신학적 논쟁
한편 12세기까지 중세 신학에서는 “빛은 표현할 수 없는 시계(視界)” 로서 그 자체를 신의 현현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자들 사이에서 빛과 색의 관계에 관한 상반된 입장으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즉, 색과 빛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색 또한 신성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교회 내 색의
확산은 악과 어둠을 몰아내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는 색을 옹호하는 견해와 색은 신이 창조한 물질에 불과하여
신성을 찾아 볼 수 없고, 인간이 신에게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부도덕한 것이기에 교회에서 배척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의 영향은 신학적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색에 관한 의미를 규정짓는 것은 실생활에서 색의 역할을 결정짓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교회 입성에 성공한 파랑
색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중세의 고위 성직자 중 쉬제(Suger, 1081~1151)는 그가 원장을 맡았던
생 드니 수도원의 부속 교회를 색에 많은 비중을 두어 재건축했습니다. 이 건축에서는 신을 찬양하기 위한
회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고급 천, 금은 세공품등이 풍부한 색채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 청색은 신성한 천상의 빛, 모든 창조물을 비추는 빛으로 등장하였고
이 때부터 수세기 동안 서양미술사에서 금색과 청색은 유사어로 통하게 됩니다. 색 중에서도 특히 청색에 관한 개념은
쉬제의 저술 [봉헌에 대하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쉬제에 따르면, 보석 중에서 사파이어가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며
청색은 곧 사파이어의 빛을 의미하는 것이고, 청색은 교회를 가득 채우는 신성한 신의 색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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