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ㄴ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
이 넣었도다. (눅21:3) 찬송:213장 성경:대하21:~23장
예수님 당시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그네에게는 주인의 환대가 필요했습니다. 고아에게는 가족처럼
돌봐줄 어른이 필요했습니다. 과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는 책임과 의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여하셨습니다. 특히 3년마다 구
제를 목적으로 십일조를 거두어 성전에서 나누어 주게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장면을 목격하십니다.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모습입니다. 그들을 바라보시던 주님이 말씀하십
니다. “이 가나한 과부가 다른 모든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두 렙돈은 당시에 비둘
기 한 마리 값으로 성전에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가
장 많이 넣었다는 칭찬을 하시는 걸까요?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부자들은 풍
족한 중에서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드린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님은 과부
의 두 렙돈에서 무엇을 보신 것일까요?
첫째, 두 렙돈은 과부에세‘생명’이었습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하는 그에게 생
활비는 자심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 생명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헌금입니다.
둘째, 두 렙돈은 과부에게‘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계수하지 않고 계량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과부는 아무 계산 없이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를 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렙돈은 과부에게 ‘베풂’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도움을 받을 자는
과부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구제의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나누려고 드렸습니다. 받을자가 오히려 드리
는 자로 자기 책임을 다했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이미 강도의 소굴이 되었지만 과부의 두 렙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ㅡ 몸의 성전을 이루는 귀한 헌금이 되었습니다.
* 내 전부를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과부의 믿음과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내 전부를 드려 하나님
의 성전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영구목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