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7. 10. 1. 일요일.
날씨가 무척이나 흐리다.
기온도 서늘하고.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오늘도 아침부터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뉴스도 보고 카페 여러 군데에서 남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았다.
어떤 문학카페에서 시를 읽었다.
등단시인 방에 오른 시가 무척이나 그랬다.
잘못 쓴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떴다.
등단시인이라며? 불과 200자도 안 되는 그 짧은 글에서 틀린 글자가 왜그리 많어?
인터넷으로 게시할 때 한번이라도 글 다듬었어?
아니면 핸드폰으로 글 쓸 때 전혀 안 다듬었어?
이런 것 남보고 읽으라고 올린 거여?
라는 질문이 숱하게 할 거 같았다.
일전 아내가 내 핸드폰을 바꿔주었다.
새 핸드폰을 무척이나 크다. 내가 그토록 작은 것을 원했는데도 매장이 무척이나 넓은 핸드폰 상점에서는 더 작은 기종을 찾지 못했다. 새 핸드폰은 나한테는 크다.
어제 자정 무렵에 대전 사는 누나한테서 책 받아서 읽었다는 멧세지를 받았다.
내가 답례 글을 써야 하는데 핸드폰으로 문장을 구성할 재간이 없었다. 두툼한 손가락은 자꾸만 엉뚱한 글자를 찍었다. 어색한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데 새 기종으로는 기능을 모르겠다. 글 다듬기가 정말로 힘이 들었다.
겨우 두어 번 전송하고는 이내 포기했다.
누나는 자꾸만 나한테 전송하는데 나는 아무 것도 전송할 수가 없었다.
틀린 글자, 어색한 문구로 전송하기 싫었기에.
나는 촌사람이다.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일할 때에는 나는 온 신경을 다 써서 농기구를 다룬다.
무거운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는 길섶의 풀을 깎으려면 정신차려야 했다. 회전속도가 무지하게 빠른 예초기의 칼날은 자칫하면 풀 속에 숨은 잔돌을 튕긴다. 잔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튕겨서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은 정강이나 무릎뼈를 후려쳐 갈겼다. 정강이 뼈가 부서질 만큼 통증이 자주 일어나기에 나는 잔 돌멩이가 숨어 있는지를 늘 조심해야 했다.
텃밭에서 잡초를 호미로 매려면, 낫으로 과일나무 밑의 잡초를 베어내려면 또 조심해야 했다.
풀속에 독사(율무기 등)가 숨어 있다가 내 손가락을 물을까 싶어서.
시골에서 농사 짓는 나한테는 모든 것이 늘 위험스러운 존재였다.
날카롭게 간 낫이 어긋나면 손가락으로 섬뜩 벨 수 있고, 묵직한 육철낫을 잘못 휘두르면 날이 어긋나서 무를뼈를 찍을 수도 있고, 날카로운 나뭇가시로찔릴 수 있기에 나는 모든 것을 늘 조심해야 했다.
촌사람인 나.
오늘은 서울 올라온 지가 열하루 째.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사이버 세상인 카페에 들어와서는 남의 글을 읽고 있다. 나는 문학하는 사람이 아니다. 농사 짓는 사람이기에 일기수준인 잡글이나 긁적거린다. 그런데도 나는 글 덜 틀리려고 늘 조심한다. 마치 시골에서 농사 짓을 때 농기구를 조심스럽게 다르듯이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겨 글 쓸 때에도 조심한다. 의심스럽다면 '띄어쓰기 사전'을 펼쳐보고 확인한다. 초안을 거듭 읽으면서 늘 고치려고 한다. 나같은 촌늙은이가 이럴진대 왜 등단시인이라면서 글자 얼마 안 되는 문장에서 오류가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2.
베란다에 나가서 화분 몇 개를 내려다 보았다.
외국식물 몇 종이 햇볕 안 드는 곳인데도 용케도 살아서 키를 더 높이고 있다.
이름 모를 작은 화초들, 키 작은 상록수들이다. 화초재배 기술로 많이도 죽였지만 더러는 용케도 지금껏 살아서 큰다. 알로에 베리는 무척이나 키우기가 쉬워서 저절로 번지고 있다. 알로에 베리. 베란다에는 예닐곱 개의 화분이 있고, 시골 안마당에도 화분 일곱 개쯤이 있다. 알로에는 아열대성 식물이라서 겨울철에는 냉해를 쉽게 입기에 늦가을이 오기 전에 서울로 모두 가져와야 한다. 베란다 공간은 자꾸만 좁아지는데.
올 봄 모란시장에서 천 원, 이천 원 주고 사 온 '파펠라루스'다육식물 두 종류가 제법 많이 컸다.
어떻게 증식시킬까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증식시켜서 무엇할 것인데? 하고 물어도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많이 증식시켜도 어떻게 관리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런 계획은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재배, 증식하는 방법이나 제대로 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최선을 다해서 식물 성장과정을 관찰하면서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서 실천하고 싶다. 키우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 속에서는 어떤 배움이 들어 있기에.
3.
앵두주를 또 걸러낸 뒤에 건더기를 조금 건져서 물컵에 담았다.
작은 냄비를 기울여서 끓인 물을 따랐다.
아내는 끓인 물에는 식재료가 10가지도 넘는다고 말했다. 양파껍질, 쪽파 실뿌리, 모과 말린 것, 대추 등이다. 이것은 숫제 한약재를 달인 폭은 된다. 이 물에 앵두 건더기를 넣고, 매실주를 조금 따라서 붓고, 미숫가루도 넣어서 작은 티스푼으로 저어서 떠 먹었다.
앵두 건더기는 입안에서 오물조물하면서 과피를 빨아먹고는 딱딱한 과피(씨)는 뱉었다.
열두어 가지의 맛이 마구 혼용되었기에 맛은 다양했다. 나는 이런 맛을 즐긴다. 한두 가지의 맛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맛이 서로 합쳐서 새로운 맛을 내는 음료수를 즐겨한다.
아마 내 삶도 그럴 게다. 복잡다난한 것들이 마구 섞이고, 용케도 견뎌내면서 지금껏 버티고 살아왔던 것처럼 내가 즐기는 음료수도 그렇다.
내가 시골에서 살 때에는 그랬다.
텃밭에서 나오는 많은 나무와 풀, 열매와 뿌리 등은 훌륭한 식재료가 되었다.
조금씩 주전자에 넣고는 물 끓이면 한약냄새가 났다. 열 종류의 재료를 넣었으니 그 맛은 영락없는 한약 달인 맛과 냄새였다. 쑥, 쑥부쟁이 잎, 씀바귀, 지칭개, 오갈피나무 껍질과 열매, 사철나무 열매, 잔대뿌리, 쇠무릎뿌리 등 도대체 못 먹고, 못 마시는 게 무엇이니? 할 정도였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것들을 숱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삶에서 건지는 글감도 그럴 게다.
아무 거나 다 글감이 되기에 늘 다다닥하고 자판기를 누른다. 다다닥한다고 해서 글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좋게 나아지도록 관심을 갖는다. 배우는 것이 늘 새롭고, 고맙기에.
오늘은 비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린다.
잠실 새마을시장으로 나가서 추석 차례상에 올린 제수물 등을 사야 하는데도 꼼지락거리가 싫은 것인가?
아내는 재래시장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나들이 옷을 갈아 입었다.
물건이 많으면 내가 거둘어 주려고 또 물었는데도 아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어요. 조금만 살 거예요. 조금만요'
그러면서 '박하지나 있나 보려고요'라고 덧붙였다.
박하지. 갯바다 갯돌 아래나 모래 속에서 숨어 사는 게다.
가을철 박하지 게장 맛에 입맛이 돌아왔는가? 요즘 자꾸만 박하지 게를 사려고 한다.
4.
기온이 뚝 떨어졌나 보다.
맨발이 시렵다. 추워지니까 마음까지도 우울해진다. 몸도 움추려들고.
나는 겨울태생인데도 햇볕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뜨거운 햇살과 밝은 햇볕을 좋아하는데도 오늘은 기분이 영 그렇다. 할 일이 없다는 게 무척이나 그렇다.
시골에 있다면 이렇게 서늘한 날씨라도 텃밭에서 정신없이 일을 할 게다. 물렁감도 따고, 무화과도 따고, 알밤도 털고, 붉게 익어가는 고추도 따고, 혹시 남아 있으려나? 방울토마토도 따고. 방울토마토는 끝물이라서 거둘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늙은 호박도 꼭지 비틀어 따고, 으름이 익었으면 따고... 딸 게 제법 있을 게다.
그런데 어쩌냐. 서울에 있으니...
2017. 10. 1.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