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하면 좋아지는 것
서예는
개인의 인격 수양,
예술적 재능의 개발,
문화교양의 개발,
침착성과 인내심,
의지의 단련 강화(집중력),
심신의 건강(치매예방),
심미안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서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동양의 전통 예술이다.
실용적 목적과 함께 예술적 목적을 겸하고 있는 서예는
독특한 풍격과 무한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서예를 익힘으로써 심신의 수양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개인이 지닌 예술성을 발현시킬수도 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기때문에 우울증까지 치료된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오늘날 웰빙시대에도 맞는 복합성격을 지닌
친근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뇌를 젊게 하는 습관 9가지에 서예가 들어있다,
세밀한 손동작이 필요한 서예를 함으로써
뇌의 노화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서예를 人書俱老(인서구로)라 했다.
茶에도 찻잎의 나이에 따라 그 맛의 깊이가 달라지듯
글씨 또한 사람과 함께 늙어가며 노련해 진다는 뜻이지만
세월따라 사람과 서예가 같이 무르익는다는 뜻도 될것 같다.
서예에 뜻을 두어거나 서예를 시작한 분들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쉬지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 할수 있을 것이다.
서예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아래의 몇 가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만족할만한 결실을 볼수있을 것이다.
첫째, 항상 서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서예 전시회를 관람한다든지, 서예 강좌를 수강한다든지,
서예가가 실제로 글씨 쓰는 모습을 관찰한다든지 해야 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명산대천이나 명승고적을 유람하면서
비석에 새겨진 필적을 감상하고
유명한 서예가가 쓴 간판과 편액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둘째, 항상 훌륭한 서예가나 기초가 비교적 잘 닦여진 동호인과
기예에 대해 상호 절차탁마하여 서예를 공부하면서 체득한 바를 교환하고,
훌륭한 서예가의 뛰어난 작품을 임서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임서를 하다보면, 서예에 대한 흥미는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흥미의 깊은 정도와 목적의 상이함은
왕왕 서예 공부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예컨대 뜻을 세움이 굳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초기의 흥미가 적어지면,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서예 공부의 성패는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나가는 데 달려있다
서예공부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서실에서 지도자의 지도를 통해 정확한 붓의 사용법을
직접 배우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경우에는 휼륭한 서예가의 글씨를 체본으로
임서를 반복해서 꾸준히 하고 동호인들과 서예의 기법을 공유하고
서로 나누는것도 글씨를 익히고 서예의 향상에
좋은 방법이 될수있을 뿐만 아니라 동호인들 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친목도모는 물론 경쟁을 통해 흥미를 계속 유발시킬수 있는
계기도 될수있기 때문이다.
서예(書藝)란 문자를 중심으로 종이와 붓, 먹 등을 이용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을 말한다.
문자가 존재하는 모든 지역에서 발전하였으나,
보통 '서예"라고 말하면 한자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붓글씨 예술을 가리키는 경우이다,
중국에서는 書法,
일본에서는 書道,
우리나라에서는 書藝라 호칭한다.
한자는 고조선때 전해 졌으나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는
한사군을 통해 漢대의 문화가 유입 되면서 부터다.
우리나라 서예의 역사는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기는 어렵고 대략 2000년 이상으로 여겨진다.
현전하는 글씨의 유적은 금석(金石)·목판전적(木版典籍)·
법첩(法帖)·진적(眞蹟) 등으로 구분되는데,
진적은 본인이 직접 쓴 친필이므로 가장 귀중하다.
중국에는 3,000년 전의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을 비롯하여
춘추전국시대 및 한(漢)·진(晉) 이래의 진적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당·송 이후 종이에 쓴 문자도 남아 있어서 당시의 필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까지의 진적은 10여 점에 불과하고
조선시대의 것도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전쟁과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남아 있는 작품들도 대체로 편지와 같은 소품들이고 큰 글씨는 매우 드물다.
고려 이전까지는 금석문에서 그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기까지만 하여도 상당한 수의
비갈(碑碣)과 금문(金文)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는 비문 외에도 많은 묘지(墓誌)가 남아 있어
풍부한 자료를 전하여 준다. 조선시대는 전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고,
또 글씨들을 모은 법첩이 다수 전하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예라는 독자적인 명칭이 사용된 계기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에서 실시하는 미술전람회가
처음 열려 글씨 부문이 다른 미술품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을 때 붙여졌다.
그 이전에는 일본인들이 부르는 대로 ‘서도(書道)’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서예라 하면 한글 서예와 한자 서예로 분류한다,
한글서예는 보통 궁체, 판본체, 민체로 구분 하는데
(宮體)는 궁중에서 궁녀들이 주로 쓰던 서체로
조선 말기에 발달 하였으며 정서와 흘림의 두서체가 있다 ,
판본체(版本體)는 古體라고도 하며 목판에 새긴 서체를 뜻하지만
보통 서예에서 한글 판본체는 훈민정음에 쓰여진 한글서체를 말한다,
민체(民體)는 민가에서 서민들이 자유롭게 쓴 모든 글씨체를 말하며
막 썼다고 막체라고도 한다.
한자서예는 篆書(전서), 隸書(예서), 楷書(해서),
行書(행서), 草書(초서)로 구분하며
이를 흔히 서예 5체라 한다.
篆書저는 전국시대 각 나라별로 사용된 문자이며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었다,
통일되기 이전 문자를 대전, 통일된 이후 문자를 소전이라 하며
현재 서예로 쓰고있는 문자는 소전이다.
隸書는 전서에 예속된 문자라는 뜻이며
복잡한 전서를 쉽고 간단하게 만든 글자로 漢시대에 완성되어
쓰여졌으며 발견된 비석으로 구분하여
조전비, 사신비, 예기비, 을영비, 장천비등
10여개 안팍의 서체가 있었던 것으로 알수있다.
楷書, 行書, 草書는 후한 말기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며
행서는 동진의 왕휘지와 그의 아들에 의해 꽃을 피웠다.
해서는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지는 북위체를 시작으로
唐의 구양순 안진경, 우세남, 저수량등에 의해
오늘의 해서체로 완성 되었다.
초서는 전국시대및 漢대에도 속사를 위한 서체가 있어
정체와 구별 되었다 한다.
변천과정에 따라 章草(장초), 今草(금초), 狂草(광초)로 나누어 진다.
오늘날 서예에서 쓰여지는 초서는
왕휘지와 그의 아들 왕헌지 부자에 의해
표준이 된 금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