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결정에 따라 바뀐다!(욥23:8-10)
2024.6.23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인도에서 존경받는 기독교인 의사 중에 마리 버기스(Mary Verghese) 박사가 있다. 마리 버기스는 인도 남부의 코친 지방의 부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사도 도마가 세웠다는 교회의 신실한 신자였다. 그런데 그녀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인해서 두 다리와 얼굴의 일부를 잃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어린이들과 척추장애 환자들을 돕는 사역에 헌신했다. 그녀가 이런 고백을 했다( 「당신의 날개로 날으리라」,홍성사, 믿음의 글들5).
“저는 두 다리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제게 두 날개를 주셨습니다.
“나의 장애는 하나님의 형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사로서 가장 큰 자산이에요”
그녀는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그녀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이 당한 과거를 다시 해석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나(우리)를 극한 상처와 좌절의 구덩이 속에 빠뜨렸던 과거의 일들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과거는 바뀔 수 없을까? “바꿀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직전으로 돌아가서 그 일(또는 그 사람)을 선택하거나 그렇지 말하지 않을 텐데…….”라는 등의 상상도 해본다.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바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오늘 설교를 통해서 지나간 과거도 바뀔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해석(Interpretation)”이다. 잘 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이미 지나간 1년 전, 10년 전, 20년 전 또는 어린 시절과 같은 과거의 사실(팩트)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또한 바꿔야 한다.
마리 버기스 박사는 어린시절 자신에게 닥쳤던 교통사고와 그로인해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을 바꿨다. 그녀는 잃어버린 “두 다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두 날개”를 주시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그녀의 마음에는 미래는 새 희망과 삶에 대한 꿈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과거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미래는 현재의 결정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과거의 상처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자기 스스로를 자책한다면, 계속해서 마음이 아픈 삶을 살게 되고 말 것 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과거의 기억들(콤플렉스)에 지배받으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하고, 주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새롭고 풍성한 삶을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요10:10). 이러한 선택을 믿음(Faith)이라고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향한 끊임없는 선택’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핵심이다. 다 같이 믿음으로 복창해 주시기 바란다(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음으로 따라서…….).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뀐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언제 과거나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해석이 바뀔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나의 상황을 바라볼 때”이다. 내 눈(관점, 생각)이나 세상의 눈(사람들의 말, 세상적인 관점, 기복적인 생각, 재수, 팔자타령, 운명타령 등)으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내가 지난 온 길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순간에 그것들에 대한 해석이 바뀐다(“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그러므로 내 눈으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기를 힘써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관점을 바꿔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내 삶을 해석을 바꿔야할 이유는 단지 그렇게 해야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정도가 아니다. 그 자체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의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생각의 혈관이 뚫린다.
오늘 설교본문에 등장하는 욥(Job)이나 요셉, 다윗 같은 분들 이러한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조명했던 믿음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했고, 그들의 믿음의 선택은 곧 그들이 미래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늘 본문은 욥이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하는 중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장면들 중이 한 곳이다. 오늘 본문 욥기 23장 8-9절 말씀을 보면, 극한 고통 속에서의 욥의 심정을 알 수 있다.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이 말씀을 보면, 욥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전후좌우를 돌아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버렸고, 외면하시는 것같이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망이다. 우리들(본 설교자 포함)도 이러한 상황들을 만났었고, 어쩌면 지금도 지옥 같은 길(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을 걷고 있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실 수 있다.
그렇다면 욥은 어떻게 이 고통을 이겨내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그 이전 보다 훨씬 더 큰 은혜들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문제들을 해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분깃점이 오늘 본문 10절 말씀이다. 다 같이 우리(나)의 고백으로 생각하고 함께 읽어 보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0)
이 말씀을 보면, 욥은 자신에게 닥쳐왔고, 지금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상황들을 ‘정금으로 만드는 단련과정’으로 해석했다. 이 말씀에서 “단련하신 후에는”(베하나니)이라는 말의 원뜻은 ‘검사하다’, ‘입증하다’, ‘연단하다’이다. 다시 말하면 욥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그것을 허용하시는 이유를 자기 안에 있는 작은 불순물들까지도 다 태우고 정결케 하는 “연단”과 “입증”의 과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여기서 쓰인 “나오리라”(에체)는 ‘빛난다’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욥의 이 고백을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내 곁에 안계신 것도 아니고, 나를 떠나신 것도 아니다. 그분은 나의 갈 길을 다 알고 계시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신다. 다만 내 안에 작은 상처와 불신앙의 불순물들까지도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다 정결케 하시고, 이렇게 연단하신 후에는 마침내 나를 순금과 같이 빛나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욥의 태도와 믿음이 오늘 우리들(나)의 태도와 믿음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런저런 실수들도 하고 넘어질 수도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에 또는 지금도 극한 어려움과 상처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맞는 인생의 첫 타석부터 삼진아웃도 당하고, 심각한 실책을 범할 수도 있다. 사실 첫 타석부터 인생의 홈런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버틸 힘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버틸 이유가 많아질 뿐이다.
황새에게 잡혀 먹히려는 개구리가 끝까지 상대의 목을 잡고 놓지 않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 밑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이라는 문구가 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내가 먼저 나 자신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강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는 믿음의 해석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바꿔야 한다. 또한 미래는 지금 현재의 믿음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마리 버기스는 믿음 안에서 잃어버린 두 다리를 두 날개로 해석했고, 욥은 고난을 정금을 만드는 단련의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욥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조명하고, 나의 과거를 재해석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신 후에는 순금처럼 빛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