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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새 것과 재미
소 주 제: 절대 권위부제. 신앙. 절대성
날자 및 분류: 140221acts17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행17:16-21
전 하 는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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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17:16-21]행 17: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행 17:16절 이하에는 바울이 아덴에 도착해서 거기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서구 문명에 양대 산맥 중에 한 본거지이다, 이스라엘을 근거로 한 헤브라임과 그리스 아덴을 중신한 헬레니즘, 이 두 사상이야 말로 오늘날 전 세계를 사상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양대 산맥의 본산지다 그러나 여기 와서 사도바울이 아덴 사람들과 복음을 가지고 논쟁에 벌이기에 앞서서 성경이 아덴 사람들에게 지적하고 있는 이 한마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저들이 지식과 철학적으로 아무리 깊고 오묘한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것을 가지고 있고 진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저들의 생애는 이것하나로 표현된다,
그것은 행 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새것과 재미. 모든 기독교 신앙인을 제외한 모든 자연인들이 생애에 목표요 원리요. 추구하는 모든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새것과 재미 이 둘은 표현이 다르지만 내용상 아주 공통되는 것을 여러 가지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둘 다 권위를 무시하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새것이라는 말이나 재미라는 말은 아주 일치한다,
원래 새것이라는 말은 헌 것의 반대말이다, 그 말 속에는 지나간 것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 포함된다, 전통을 이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목표와 절대적인 가치 추구가 없다는 것이 된다, 또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모든 가치 척도에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가치의 최고되는 것의 일관성은 없다. 왜냐하면 진리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재미라는 것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그 재미가 어떤 이에게는 명예일 수가 있고 누구에게는 부일 수가 있고 누구에게는 자존심일 수도 있다,
1. 절대자의 권위 부제
디모데 서에 가면 이런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대하여 성경적인 지적이 나옵니다, 딤후 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 나온 것은 단 하나다 권위 부제 하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들이다, 권위가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 권위가 주어져야할 절대자에게 그 권위가 가있지 않고 상대적이고 유한한 우리가 그 권위를 붙잡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내 인생을 판단하고 내가 부딪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내가 기준이 되어 판단하는 실력밖에 가지지 못했을 때 권위 부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딤후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말은 한 마디로 자기가 주인 된 것이다,
권위자에 대한 순종과 감사가 없다, 쉽게는 부모를 거역하고 교만하고 남을 해방한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자기를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 그래서 돈을 사랑한다, 돈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배반하고 조급하며 자고 한다, 이런 모든 것은 절대권위가 없으면 사람이 스스로를 절제할 수 없다, 순종할 권위가 없는 한 사람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살 수밖에 없다, 조급하고 변덕스럽고 쾌락을 쫓는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다, 하나님을 모르고 생명 된 진리를 알지 못하면 사람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에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번져 있느냐하면 5년 전이나 10년 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즉 중. 고등 대학교 학생 중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가다가 빵을 1000원 어치 샀다, 200원짜리 풀 방을 5개 샀는데 아버지 아들에게 하나 주고 네 개는 아버지가 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아들에게 배부르지 라고. 물었더니 아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아들이 말하기를 내가 배부르면 4개먹은 놈은 배 터졌겠네.
그 농담이 가지는 깊은 반발을 아시겠는가,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런 농담은 안 했다. 우리 때는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문명이 발달하고 더 많이 배워도 절대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있다, 여러분 자식들에게 잘해 준 것 가지고 책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을 갔다, 아버지가 탕에 들어가더니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 그래서 아들도 풍덩 뛰어 들어갔더니 무지하게 뜨거웠다 그래서 아들이 탕에서 나와서 한 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 여러분은 진실을 꿰뚫어 보실 수 있어야 된다, 인간이란 어떤 짐승인지를 알아야 된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도 신앙인답게 살지 않고 여러분 자녀들도 올바르게 키우지 않고 있다, 불신자가 그렇게 키우는 것은 할 수 없이 그렇다고 치지만 신자가 자녀를 그렇게 밖에 못 키우고 여러분 삶을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데 대해서 여러분은 사실은 가슴 아파하셔야 된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들은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아덴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주의 깊게 보셔야 된다, 새로운 것과 재미를 위주로 살기 때문에 즉 절대권위가 없고 복종할 것이 없으면 책임을 가진 인생이 아니다, 요사이 우리주변에서 흔히 들리는 얘기는 버젓하게 남편이 있고 자식들이 있는 대도 30대 40대 여성들이 젊은 남자 애인들을 두고 살고 있는 것이 현대 가정주부들의 이야기이다, 남편들에게도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 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딸자식을 두고 있는 엄마는 자신의 딸이 그걸 모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고 느낌과 생명을 호흡하는 성장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머니의 뒤를 따른 것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절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과 재미로 살아가는 내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든 가치체계가 나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들 안에는 가정이나 자식이나 아웃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기 기분에 의해 그의 인생이 좌우되기 때문에 잠깐 보이는 것에 웃고 울다가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믿음을 소유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들은 눈앞에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잘 인내하며 견디어내야 한다, 히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절대적 신앙생활
우리에게 다섯 살 되는 딸이 있다 나는 이 딸을 보면서 가끔은 깜짝 깜짝 놀란다, 엄마가 하는 행동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화가 나면 방문을 꽝하고 닫고 나가는 것을 벌써 답습하고 있다, 어린 아이가 천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먼저 배운다,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자신이 그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남에게 핑계를 된다, 그러면서 인형을 때려주라든가 자기가 잘못해서 넘어졌으면서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고 자기를 넘어지게 한 그것에 시선을 돌리게 해서 자신아 나약하기 때문에 자기를 돕는 자. 자기의 편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욕심이 관찰될 때까지 울고 짜증을 내는 일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철저한 개인주의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아름다움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다 쫓겨나고 말았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인 면보다 상대적인 면을 추구하게 된다, 신앙과 생활은 남이야 어떠하든 흔들리지 말라고 성경은 경고하는데도 우리는 내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바보짓 하는 것 같고 미련하게 보이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식도 그런 신앙생활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21장에 가면 거기 성경에 유명했던 사람도 바로 그러한 오류에 빠졌던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예언이 나온다, 요 21:18 -2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고 그리고 그 가는 길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결국은 순교하는 길이 것이다. 라고 얘기 하셨는데 베드로가 제는요. 사도요한을 가르친다, 예수께서 제를 내가 재림 때가지 놔둔다한 들. 내가 너에게 시킨 일을 하고 안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데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취급하시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신앙을 할까 말까를 정하시겠는가, 권위적 차원에서도 여러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절대자의 명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복이다, 사도바울이 그가 하는 일에 대하여 그 일을 왜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을 한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사도바울은 사도직을 하지 않으면 얻어터질까봐 한다고 고백한다, 사도바울의 위대한 점은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화나면 무서워서 한다, 신앙이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권세 아래서 복종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다,
성경은 충성이라 그러고 순종이라고 그런다. 이 16절을 쓸 때 상황이 이때 고린도 교회와 사도바울 사이에 묘한 관계가 있었다, 고전 9:11-14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이 사도직을 수행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이 일을 하느라고 자기가 먹고사는 일은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이때 교인들이 주는 돈으로 여비도 쓰고 먹고 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이다 먹고 살려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사기치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그 마음에 처참했을까.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일을 한다. 안한다는 것으로는 절대 안 간다, 그가 세상에서 당하는 일 그걸로 상한 자존심이나 그걸로 무슨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걸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책임 있는 그의 인생을 절대 포기하거나 흔들린 적이 없다, 그는 그 두려움을 알며 또 그 복도 안다, 그것이 그의 신앙에 근거다,
빌 1:12-18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이 잡히자 이런 못된 사람들이 뭐로 괴롭히기를 하나님이 그의 일을 맡긴 사람이라면 왜 갖다 가두겠는가. 저건 아니니까 하나님이 가두었지 않았지 않는가, 우리가 진짜다 이런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을 편들었던 사람들이 그게 너무 마음의 상해서 이번에는 그것 때문에 분발해서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이 어떻게 진짜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을 단행했다, 바울이 그 모든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에 내가 오해를 받고 괄시를 받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것이 신앙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아덴에 시민이다, 그래서 그 길이 재미있지 않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 이 책임에 관한한 오늘날 우리들은 벗어나 있고 절대권위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는 상대적이고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가 편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가고 있다,
아프리카에 있는 수단에 있는 우독족은 13000명이 모두 탈출을 해서 에티오피아 난민촌으로 몇 년 전에 이동한 부족이다, 그 부족이 왜 수단에서 탈출을 했느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믿기 때문이었다, 이 수단에 이슬람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독교말살정책을 썼다, 50명씩 사막에 데리고 나가서 물과 먹을 것을 하나도 주지 않고 이틀에 한 번씩 이슬람정부의 차가 그곳에 갔다고 한다, 그곳에 방문을 해서 개종을 하는 사람은 데리고 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거기서 굶주리고 목말라서 죽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핍박을 피해서 그들이 에티오피아로 13000명이 도망을 친 것이다, 그들은 지금부터 50년 전에 두 여자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씨가 무럭무럭 자라서 13000명의 부족이 다 예수로 돌아왔는데 너무 핍박이 심해서 에티오피아 난민촌으로 도망을 했다, 한 줌의 양고기가 하루의 양식이었다. 그걸 가지고 하루를 연명했다 아이의 배가 영양실조로 배가 복수가 차고 부풀어 오르고 머리가 벗겨지고 상처가 치료할 수 없어서 그 상처가 난 곳에 구더기가 살고 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예수를 섬길 수 있다. 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쁘게 살았다, 그 복음이 씨앗을 뿌렸던 그 두선교사 할머니가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들에게 귀한 선물 계란 한 복스를 했다, 그들이 배급을 받았던 양식으로 닭에 모이를 주어서 난민촌에서 금보다 가장 귀중하다는 계란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선교사님께 주면서 그들을 부등께 안고 나 사랑하심을 불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50년 전에 그 두 선교사가 유일하게 아프리카 말로 가르쳐주었던 예수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함께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이 이 시간에 이런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된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편에 서는 자들을 세상과 사단 마귀들은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것을 기억하셔야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1000만 명의 신자가 육박해서 놀라는 것은 숫자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교회가 미치는 영향이 제로라는 것에 놀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덴에 시민과 다르다 하나님을 믿는 자요 하나님의 명령 앞에 목숨을 걸고 예! 라고 대답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소원이라고 선언한 사람들이다, 세상은 자기 가는 길로 간다, 거기는 권위도 없고 절대도 없고 진리도 없고 생명도 없다 상대적이다, 순간적이고 한 평생 자기 멋대로 사는 인생들의 집단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지고 있다, 우리가 물들어 있고 저들이 흘러가는데 우리가 함께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돌아서야 된다, 고린도후서5장으로 가서 오늘의 결론을 내리면 여러분의 삶을 사도바울의 고백과 일치하도록 노력하자
고후 5:9-15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사셔야 된다, 주를 두려워하시고 주를 기쁘시게 하시고 주를 위하여 살라 세상의 유혹과 저들이 쾌락과 시험에지지 마라 저들을 보고 우리의 선함과 진리 됨과 생명 됨을 동요 받지 말라 하나님 앞에 설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마땅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