歐陽修의 生而知之 聖人과 『中庸』 자성명(自誠明) 반대 견해
2026년 9월 12일
구양수(1007-1072)는 생이지지(生而知之) 성인을 부정하고 학이지지(學而知之) 성인을 믿었습니다. 북송 인종 연간(재위 1022-1063)에 『중용』 연구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불교와 도교의 지식을 참고하여 『중용』을 이해하였습니다. 구양수는 평실(平實)한 문풍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용』에 관하여 엉뚱한 견해를 반대하였습니다. 인종 가우(嘉祐) 2년(1057) 정월에는 예부 공거(貢擧)를 맡아 진사 시험을 담당하였고 이소(二蘇, 蘇軾, 蘇轍), 정호(程顥), 증공(曾鞏) 등을 합격시켰습니다.
구양수는 생이지지 성인 관점에서 『중용』 자성명(自誠明) 구절을 의심하고 반대하였습니다. 구양수가 진사 시험에서 이 문제를 출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유가(儒家)는 생이지지 성인 또는 불교의 돈오를 반대하는 견해가 정착되었습니다. 구양수의 견해는 개인에 머물지 않고 송나라 성리학 발전에 영향이 컸고 일종의 제약이 되었습니다. 북송의 이정(二程)과 남송의 주희 모두 생이지지 성인을 반대한 까닭에는 구양수가 제시한 결정에 있습니다.
구양수가 생이지지 성인과 『중용』 자성명(自誠明)을 반박하는 진사 시험 문제를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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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歐陽修, 1007-1072) 「진사 책문」(제3문) :
춘추전국시기에 예(禮)와 악(樂) 2경(經)이 사라진 뒤에 여러 유가의 주장을 모아 『예기(禮記)』가 편찬되었습니다. 『예기』에서 오직 「중용(中庸)」편이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자사는 성인 공자의 후손입니다. 자사가 공자의 학술을 계승한 것은 마땅히 진실이겠지만 「중용」에 실린 견해가 공자와 다른데 무슨 까닭입니까?
『논어』 「위정편」에 “나는 15살쯤에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였고 30대에 학술(道)이 세워지고 40대에 속지 않고 50대에 천명을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공자께서 15살에 학술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셨고 다시 15년 동안 배워서 학술이 세워졌고 학술(道)은 반드시 10년마다 한 단계씩 진보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공자가 성인이 되신 까닭은 반드시 배워서 한 단계씩 이르셨고 몇십 년(70대)이 지나서 학술이 완성(成)되셨습니다. 그러나 『중용』에서는 “성(誠)이 저절로 밝아지는 것(自誠明)이 본성(性)이고 학자가 공부하여 성(誠)을 밝혀가는 것(自明誠)이 교육(敎)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자성명(自誠明)은 처음부터 수양 공부가 필요 없는 생이지지(生而知之) 성인을 뜻하고 자명성(自明誠)은 배워서 차근차근 깨달은 학이지지(學而知之) 성인입니다.
공자가 학이지지한 성인이라면 공자는 반드시 배우셨는데 『중용』에서 “자성명(自誠明)”과 “배우지 않고도 성인이 된다”고 말한 견해에 어느 성인이 해당합니까? 요임금은 네 명 흉인(四凶 : 混沌、窮奇、檮杌、饕餮)을 임용하시면서 그들의 못된 성격을 따져서 생각하지 않으실 리가 없을 텐데 결국에는 검증에 오류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상서』 「고도모」에서 우임금은 “요임금(순임금)께서도 인재 등용을 어려워하셨습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순임금은 인재를 선발하는 일에서 반드시 현명한 사람에게 자문받은 뒤에 인재를 선발하여 임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중용』에서도 “순임금께서 자문을 잘 받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우임금은 인재를 선발하는 일에서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면 현명한 사람들의 건의를 받아 고맙다고 절하고 따르셨습니다. 그래서 「고도모」에서 “좋은 건의를 받으면 절하고 실행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탕임금은 인재 선발에 잘못이 있으면 나중에 잘못을 알고 반드시 고쳤습니다. 그래서 『상서』 「중훼지고」에서 “인재 선발에 잘못이 생기면 고치는데 꺼리지 않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공자께서도 잘못하셨으면 “다행히 내가 잘못하면 남들이 반드시 알려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용』에서 “처음부터 성(誠)을 타고난 성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중절(中節)하고 또는 따져서 생각하지 않아도 올바른 견해를 얻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임금은 따져서 생각하셨어도 항상 오류가 있었고 순임금과 우임금도 남들의 자문 조력을 받으셨고 탕임금과 공자도 항상 잘못을 저지르셨습니다. 여기 5명 성인은 모두 옛날 성인들 가운데 밝으신 분들이며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시고 깊이 생각하셨어도 부족하셨으니까 자성명과 생이지지 성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노력하지 않아도 중절하고 따져서 생각하지 않아도 올바른 견해를 얻는다”는 말에 과연 어느 성인이 해당하겠습니까? 다섯 분 성인도 해당하기에는 부족하다면 천지 창조 이래로 해당하는 성인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중용』은 거짓말(虛言)과 허황된 주장(高論)을 펼쳐서 사람들에게 무익한 주장을 하였습니까?
공자는 반드시 배워서 성인에 이르셨고 요임금도 따져 생각하는 데 오류가 있으셨고 순임금과 우임금도 반드시 남에게 자문을 받으셨고 탕임금과 공자는 수시로 잘못을 저지르셨습니다. 이 말뜻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는 데 게으르지 않아야 성인이 되는 데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용』에서 말한 자성명을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긴다면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다가 포기하도록 할 뿐이며 아무 쓸모 없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나는 『중용』이 전해온 이력에 오류가 있다고 의심합니다. 수험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歐陽修(1007-1072),『歐陽修集』,卷四十八,「問進士策三首」(제3문)︰
問:禮樂之書散亡,而雜出於諸儒之說,獨『中庸』出於子思。子思,聖人之後也。其所傳宜得其真,而其說有異乎聖人者,何也?
『論語』云:“吾十有五而志於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蓋孔子自年十五而學,學十五年而後有立,其道又須十年而一進。孔子之聖,必學而後至,久而後成。而『中庸』曰:“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教。”自誠明,生而知之也;自明誠,學而知之也。
若孔子者,可謂學而知之者,孔子必須學,則『中庸』所謂自誠而明、不學而知之者,誰可以當之歟?堯用四凶,其初非不思也,蓋思之不能無失耳,故曰“惟帝其難之”。舜之於事,必問於人而擇焉,故曰“舜好問”。禹之於事,己所不決,人有告之言,則拜而從之,故曰“禹拜昌言”。湯之有過,後知而必改,故曰“改過不吝”。孔子亦嘗有過,故曰“幸,苟有過,人必知之”。
而『中庸』曰“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夫堯之思慮常有失,舜、禹常待人之助,湯與孔子常有過。此五君子者,皆上古聖人之明者,其勉而思之猶有不及,則『中庸』之所謂“不勉而中、不思而得”者,誰可以當之歟?此五君子者不足當之,則自有天地已來,無其人矣,豈所謂虛言高論而無益者歟?
夫孔子必學而後至,堯之思慮或失,舜、禹必資於人,湯、孔不能無過,此皆勉人力行不怠,有益之言也。若『中庸』之誠明(自誠明)不可及,則怠人而中止,無用之空言也。故予疑其傳之謬也,吾子以為如何?
참고 자료 : 本覺內熏、無師自悟
『大乘起信論』,卷下:
真如熏習,義有二種,云何為二?一者自體相熏習、二者用熏習。自體相熏習者-從無始世來具無漏法,備有不思議業作境界之性,依此二義恆常熏習,以有力故,能令眾生厭生死苦、樂求涅槃,自信己身有真如法,發心修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