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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벽
26: 15-30
15.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17.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18.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편을 위하여 널판 스물을 만들고
19.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찌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찌며
20. 성막 다른 편 곧 그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스물로 하고
21. 은받침 마흔을 이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22. 성막 뒤 곧 그 서편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23. 성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둘을 만들되
24.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겹 두께로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25. 그 여덟 널판에는 은받침이 열 여섯이니 이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26.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찌니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27.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며
28.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29.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30.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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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당히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언어로 주신 설계도를 해독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양과 규격을 알아내는 일이고, 그것에 숨겨두신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을 소개하는 책이고, 성막이나 성전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 자신과 그가 하실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시청각교재입니다. 오늘은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여름에 휴가 가서 사용하는 텐트는 몇 개의 기둥으로 쓰는 막대기와 그 위에 덮어 치는 가벼운 천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성막은 그렇게 약한 막대기 몇 개와 천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막의 벽은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네 겹의 천으로 지붕을 덮고 그것을 길게 하여 벽 쪽으로 길게 늘어뜨리긴 했지만 단지 천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법궤를 짜는 그 가시나무 판자로 벽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금으로 싸라고 하셨습니다. 그 판자들의 장은 10규빗,(4.5m) 광은 1.5규빗(70Cm)인데, 그런 판자 50개로 양 옆면과 뒷면을 촘촘히 세워서 벽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소는 언제나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으로 세워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양쪽 벽이 되는 남쪽 벽에 스무개, 북쪽 벽에도 스무개의 금으로 싼 판자가 필요했고, 서쪽에 위치하는 뒷면을 위해서 여섯 개, 그리고 그 뒷면의 양쪽 가에는 두 개를 겹으로, 정면에는 휘장을 칠 부분을 빼고 양쪽에 기둥처럼 세울 한 개씩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 두개, 뒤에 여덟 개, 양 옆에 스무개씩의 널판이 필요했으니까 합해서 50개입니다.
폭이 70센티짜리 판자 20개를 이어놓았으니 길이는 약 14미터가 되고, 뒤쪽은 70센티짜리 6개를 이어놓게 하셨으니 약 4.2미터가 되어서 약 60평방미터(20평) 정도의 기다란 방이 됩니다. 그리고 벽을 이루는 판자의 높이는 4.5미터니까 요즘 백화점 맨 아래층처럼 시원한 높이의 텐트였습니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씌운 이 판자들의 중간에 금 고리를 만들어 달게 하셨고, 가시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싼 긴 막대기를 만들어서 판자들에 달려 있는 금 고리에 주욱 꿰어서 판자들이 서로 버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겹의 덮개가 지붕과 양 옆의 벽을 다 덮고 땅에 닿도록 늘어뜨리게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이 성막의 대강의 모습입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날마다 여행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이 날마다 조립과 해체하는데 용이하도록 실용적이면서 튼튼하고 아름다운 구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구조와 모양이 그리스도의 어떤 면을 계시하고 있는지를 살필 순서입니다.
1. 벽을 이루는 50개의 판자들- 구원받은 교회 즉 그리스도인들
그 판자는 못나고 단단한 가시나무였고, 그것은 빛난 정금으로 싸야 하였습니다.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것은 이 판자들인데, 이 판자들 50개가 모아져서 성막 이라는 건물을 형성했듯이, 신약시대의 교회를 이루는 것은 개개인 성도들입니다. 그러니까 금박 판자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 판자를 레바논의 쭉쭉 뻗은 백향목으로 만들라고 하시지 않고 메마른 광야에서 자라서 향도 없고 마디와 상처만 많은 형편없는 쉬띰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속에 상처와 죄성을 품고 있으나 자기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감싸여서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빛난 지위를 얻은 성도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갑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예상치 못한 고통을 만나면서 우리 안에는 죄와 고통과 상처가 점점 많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용서하시고 당신의 은혜로 덮어서 새로운 신분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신분을 얻었습니다.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그에게 힘과 능력을 공급받으면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와 상처가 많은 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감싸임을 받아서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을 이루어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성막을 설치할 때는 언제나 정면이 동쪽을 향하게 해야 했는데, 그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동편은 해가 뜨는 쪽입니다. 말라기는 주님을 “의로우신 태양”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성막의 정문은 언제나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세우게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어둠의 끝에 떠오르실 의로우신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는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주목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주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12:1-2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도가 바라보고 사모하며 본받아 살 대상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세상이 아니라 오직 주님입니다. 베드로는 주님만 바라볼 때는 출렁이는 바닷물을 밟고 걸어갈 수가 있었지만 시선을 옮겨 바닷물을 바라보는 순간 더럭 겁이 나서 물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시험에 들고 실패하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방법은 성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집과 땅을 되팔아 부자 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맥 빠지지 말고 성경을 바라봅시다. 공부 잘해서 일류대학 간 아이들만 바라보지 말고 성경을 바라보고 사람의 행복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생각합시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말고, 성경을 바라보고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를 살펴봅시다. 이것이 신자가 신앙생활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쉬띰나무처럼 가시와 상처가 많고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 삼아주셨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을 살라고 교회를 이루게 해주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주님을 바라보고 성경말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너무나 무거운 은 받침 - 교회의 구원의 기초인 그리스도의 피 값.
이 정금으로 싼 판자들은 각 판자마다 아래쪽에는 뾰족한 두 개의 촉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이촉은 은으로 만든 받침에다가 꼽아 세워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9). 그러니까 판자 하나 마다 두 개의 촉을 만들어야 했고, 그 두촉은 각기 한 개씩의 은 받침에 꼽게 되어 있었습니다. 양편 벽을 이루는 판자가 40개였으니 그것의 받침은 80개인 셈입니다. 뒤편의 판자는 두 겹으로 한 부분을 포함해서 여덟 개이기 때문에 그 밑받침은 16개였습니다. (25, 36: 27-30) 앞면의 판자 두 개를 합하면 받침은 100개가 필요하였습니다.
성막의 벽면 판자들을 무거운 은받침위에 꽂아 세우도록 하신 것은, 건물을 견고하게 받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은 받침은 성전의 기초였던 것입니다.
은 받침 한 개의 무게는 각기 한 달란트(출38:27)였습니다. 오늘의 미터법으로 하면 약34Kg입니다. 96개의 은 받침을 합하면 약 3톤이 넘습니다. 왜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받침을 사용하게 하셨을까요? 물론 터를 다지지 않았고 바람이 많은 광야에 네 겹짜리 무거운 휘장으로 덮은 텐트를 세우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지만, 매우 중요한 계시가 여기에도 숨어 있습니다.
성막의 은 받침은 지나칠 만큼 아주 든든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살며, 함께 천국을 상속받게 된 그 기반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공짜도 아니고 누가 말을 잘 해서 얻은 것도 아니라 천하의 모든 생명을 다 합한 것보다 귀한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룬 것이기에 아주 든든하여서, 세상의 그 어떤 방해의 비바람도 넘어뜨릴 수 없고, 수천억명이 주님을 의지한다고 해도 그들 전부를 다 구원할 수 있고, 그들이 한번 받은 구원은 결코 잃을 수 없도록 안전하고 튼튼하다는 것을 밝히는 계시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텐트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3톤이 넘는 양의 은을 사용하게 하신 것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이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그 무한한 공로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죄 사함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엡1:7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였고,
벧전1:18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받침은 왜 은으로 만들어야 했을까요?
출 30장 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년 은 반 세겔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법이 제정됩니다. 물론 이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있을 때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여 각 사람마다 반 세겔씩을 내라고 하셨고, 그것을 속전이라고 하셨는데, 속전이란 생명 값이라는 말입니다. 그 속전을 받아서 회막 봉사에 쓰라(30:16)고 하셨습니다. 한 세겔은 11.4g으로, 반 세겔이면 5.7g 쯤 되는 작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내는 양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위해 주신 것에 비해 너무나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왜 그것을 내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던 날을 유월절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장자를 죽이시던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오히려 노예로 살던 애굽에서 해방을 받았고, 애굽사람들이 가져다주는 금은보화를 얻어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해방을 받아 고향 땅 가나안을 향하여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의 기적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구원을 주시고는 “너희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살려주고 해방을 준 생명 값을 내라”는 뜻으로 사람마다 속전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자가 죽는 재앙에서 살려주실 뿐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었던 노예에서도 단번에 해방시켜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개인마다 은 반 세겔씩을 생명 값으로 해마다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성막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이스라엘은 해마다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내서 성전을 수리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고, 주님과 제자들도 내신 기록이 있습니다(마17:24-29).
그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은은 생명 값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팔고 사는 값도 은이었는데, 요셉은 형제에게 은 20개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고, 예수님은 믿었던 제자 가롯 유다에게 은30에 팔려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 값으로 은을 내게 하시고, 그 은으로 성막의 기초를 만들게 하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는데 그 피 값은 온 세상 죄인들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할 속전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딤전2:6에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그리스도의 피 공로위에 서 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위험과 시험에도 견고하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 누구라도 자기 생명 값을 낼 능력은 없지만, 자기 능력에 따라 얼마라도 생명 값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구원받은 생명 값을 드리고 있습니까? 무엇으로 드리십니까? 당연히 드릴 십일조 했다고 생명 값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십일조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영수증이고, 내가 공짜로 생명을 얻었고 공짜로 영생을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드리는 생명 값은 별도로 해야 합니다. 생명 값을 다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스라엘이 낸 속전은 반 세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가르치는 시청각 교재였으며, 그리스도가 치르신 우리의 죄 값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 성막의 은 받침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지은 죄 값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그리스도께서 고귀하신 자신의 피로 우리 죄 값을 내고 우리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니, 우리는 이중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전6:20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당연한 우리의 감사와 헌신생활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3. 판자들의 고리를 꿰는 금 띠 -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띠
벽을 이루는 금박 판자는 무거운 은 받침위에 꼽혀 있어서 안전하였지만 하나님은 또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판자 하나마다 금 고리 한 개씩을 중간에 달도록 했고, 그 고리들 사이를 금으로 싼 막대기로 꿰어놓게 하신 것입니다. 그 띠는 양 옆으로 다섯씩, 뒤에도 다섯씩으로 하라고 하셨는데(26-27) 그 띠가 벽 전체를 서로 엮어 놓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 끼리를 연합시키는 사랑의 띠를 계시합니다.
이 판자들은 밑에는 은 받침위에 꼽혀 있어서 안전했고, 옆에는 금 고리가 달려 있어서 옆의 판자와 채로 꿰어져 있으므로 안전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연결되어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도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상에 빛과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는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서있는 존재이고, 다른 성도와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각각의 판자는 금 고리에 꿰어 져서 옆의 판자들과 연결하고 서로 지탱하면서 성전의 벽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금 같은 믿음과 사랑의 고리로 서로 연결하여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남과 담쌓고 사는 독불장군 신자는 참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과 연결 된 삶을 살아야 하거니와, 또한 다른 성도들과도 금 같이 변함 없는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기본기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막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내용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시청각 교재인데,
이 성막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벽을 이루는 판자는, 구원받은 자들의 내면에 있는 형편없는 인간성을 의미합니다. 금으로 싼 것은, 주님께서 피로 씻고 믿음을 주어 빛난 신분을 부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은 받침은, 주의 피로 우리 죄 값을 치루고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세워주셨음을 의미하고, 정금 띠는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인간들을 주님의 사랑의 띠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에 있는 상처 많고 천한 쉬띰나무는 금으로 싸서 보이지 않고 오직 광채가 찬란한 금판이 된 것처럼,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감싸여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우리의 지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끼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서로 하나가 되게 하셔서 지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결코 붕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엡 4:2-3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는 환경, 재능, 배경, 성격, 지식정도,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 같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요,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며,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의지하여 결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무슨 뜻인 줄 아시지요? 우리는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아 놓으신 거룩한 모임이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거룩한 가족이며,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 하나만 놓고 본다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할 수 있지만, 나도 그 사람도 주님이 당신의 생명을 바쳐 구원해서 당신의 가족을 삼으시고 교회라는 한 울타리 안에 모아 놓으신 사람입니다. 구속의 은 받침 위에 세우시고, 사랑의 띠로 엮어 놓으셔서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양보하면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진리와 사랑으로 세상을 비추는 주님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