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8] 강종원 (康種元) - 예시로 이끌어주신 뜻길 14. 양천교구 본부 헌당 1 1986년 말 꿈에 참부모님이 오셔서 ‘여기에 교회를 세우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기에 “예, 교회를 세우기 위해 터를 닦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꿈을 꾼 후로 날이 갈수록 사명감이 크게 느껴졌다. 식구들의 정성과 수고로 1987년 우수 교회 표창(협회장상)을 받기도 하였다. 2 1988년은 섭리적으로 중요한 때였고, 6천5백 쌍 축복이 있던 해였다. 본부교회에서 열린 하나님의 날 0시 집회에 참석하고 와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참부모님께서 예쁜 남자 아기를 흰 포대기에 감싸서 나에게 안겨주시며 “귀한 아이들이니 잘 키워라.”라고 하셨다.
3 아기를 안고 나오니 사방이 흰 눈으로 덮였고 한가운데로 고속도로 같은 얼음 길이 끝이 보이지 않게 곧게 뻗쳐 있는데 아기를 안고 걷자니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아 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참부모님을 믿는 마음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첫 발을 내디디니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가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달려가다가 잠을 깨었다. 4 교회는 좀 더 성장하여 70여 명이 예배를 보게 됐는데, 1989년 1월 김영휘 회장님이 갑자기 순회 오셔서 격려해 주시면서 교회로 사용할 건물을 매입할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식구들과 정성을 들이며 건물을 물색한 바 좋은 건물이 몇 군데 있어서 그 건물들에 대한 제반서류를 갖추어 참부모님을 뵙고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5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동안 식구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지난 7년간에 부모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셔서 역사해 주셨던 내용을 보고드렸다.
6 그리고 식구들의 정성을 보고드렸더니 기뻐하시며 그때 바로 양천에 친히 오시어 건물들을 다 둘러보시고 현재의 양천교구 본부(양천구 신정1동 1017-1, 대지 198평에 건평 지하 1층, 지상 4층, 총 건평 450평)를 결정해 주시는 큰 은사를 내려 주셨다.
7 식구들 모두 감격스러운 눈물로 감사를 드렸다. 참아버님께서는 “정성을 많이 들이고 고생을 더해서 교회를 발전시켜라.”라고 격려해 주셨다. 8 커다란 성전이 마련되니 희망도 부풀었으나 걱정도 많았다. 빨리 전도를 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사명이 앞에 있으니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10개월 성전에서 철야 기도로 정성을 모으면서 열심히 활동하여 200여 명의 식구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전도가 되기 시작했다. 9 은사 뒤에 오는 시련은 더 큰 은사를 위해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가정은 그 무렵 큰 시련을 겪었다. 나는 오랫동안 철야 기도를 하고 계속 활동을 하니 몸이 많이 쇠약해져 거동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고, 집에 떼강도가 들어와 식칼로 위협하여 가족 전체를 묶어놓고 물건을 훔쳐 갔다.
10 다행히 식구들은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오랫동안 불안해하였다. 목회 일선에 서다 보니 양친을 한 번도 모시지 못했는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노쇠하셨는데도 월세방에서 고생이 많으시기에 부득불 내가 모시기로 하었다. 11 그렇게 하여 함께 살기 시작했으나 모친은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부친은 10개월 만에 숙환으로 타계하여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1991년 1월 13일 마포교구장으로 발령을 받아 양천교역장으로 9년간 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떠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