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덕 칼럼] "다시 보는 김일성의 대남 비밀 교시"
한광덕 칼럼니스트
2024.09.09.
요즘 대한민국이 거의 공산화됐다는 심각한 걱정이 곳곳에서 들린다. 사회 각 부문에서 자유대한미국을 지지하는 세력보다는 반대하고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강하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이를 북한의 공작이라는 시각에서 보려 한다. 김일성이 생전에 내린 ‘비밀교시’에 따라 대남 적화 전술이 전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김일성이 내린 비밀 교시 중 주요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이 교시는 지난 76년 귀순한 김용규 씨가 작성한 자료 중 일부이다. 이 내용은 지난 2004년 ‘대일 대남공작 충격의 新진실’이란 제목의 책으로 일본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 사진 별첨합니다. ^^
김일성은 1968년 7월8일 노동당 3호 청사 부장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공개해야 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 공개해서는 안될 것과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전략 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곧 군사행동에서 작전 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적인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우리 당의 남조선의 민족자본가와 부농, 종교인들을 일시적인 전술적 동맹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누가 우리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겠는가?’고 지적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볼 때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이 이렇게 위태롭게 된 것도 바로 김일성의 이 같은 ‘전술적 동맹’이란 통일 전선 공작이 그대로 관철된 결과로 보인다.
김일성은 대남 정세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내용을 보자.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다.
6.25와 4.19가 그것인데, 6.25 때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 버렸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 지도하던 도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중 동원을 통한 혼란 조성, 그 후 결정적 공략의 시점을 모색하려는 구도가 읽힌다.
땅굴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는 비밀 교시도 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어전과 함께 직후 종심에 제2 전선을 형성하고 배후를 강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삽시에 종심으로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경보 여단은 배후를 강타하여 적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주나 동두천에 있는 미군 기지를 하나 포위하고 미군 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도 시도해 볼 필요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하당 공작이다. ▼통일전선 공작 ▼상층 공작 ▼노동계 침투 ▼국군 와해 공작 ▼법정옥중 투쟁 ▼문예 공작과 ▼교포-해외공작등이다.
각 분야별 김일성의 육성을 들어보자.
1. 상층 공작 : ‘지금 남조선에는 5.16으로 폭삭 망한 사람이 많다. 이들 모두가 박정희 정권에 이를 갈고 있다. 그중에는 정치인들도, 구 관료도,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도 많다. 김종태(1968년 검거된 북한의 대남 지하당 조직 통일혁명당의 주범)와 같이 우리하고 선이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우리 혁명가들이 대담하게 접근해서 좋은 대상을 물색해야 한다. 김종태와 같은 사람 서너 명만 잡게 되다면 남조선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조국 통일의 대사변을 맞이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1969년 12월 대남 담당 요원들과의 담화.)
2. 고시 공작 : ‘남조선에서는 고등고시에 합격되기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앞으로는 검열된 학생들 가운데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은 데모에 내몰지 말고 고시 준비를 시키도록 해야 한다. 열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된다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다. 그러니까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1973년 4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3. 종교 공작 : ‘남조선에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교회이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성경책 하나 옆에 끼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받을 수 있다. 신임을 얻은 후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다.’(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4. 지식인 공작 : ‘이제부터 남조선에 내려가서 지식인의 탈을 쓰고 박혀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 농민 열명 스무 명 포섭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영향력 행사할 수 있는 학생, 지식인 하나 잡는 것이 월척을 낚는 것이다. 남조선에는 흔한 것이 교수, 박사이다… 춥고 배고픈 박사들에게 프로젝트를 하나 따주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들을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다.’(1974년 4월 내 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5. 노동계 공작 : ‘학생 지식인들의 운동만 가지고는 안된다. 혁명 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야 한다. 노동자 속에 깊이 파고들어 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투쟁을 통해 부단히 단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얼마나 좋은 선동 자료인가? 이 사건을 계기로 전태일을 영웅으로 만들고 추모사업회도 가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1976년 4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담화)
6. 국군 와해 공작 : ‘1948년 여순 군인 폭동과 표무원-강태무 대대 의거 입북사건(1949년 5월 발생)은 좋은 경험이다. 괴뢰군의 와해 전취 공작에 항상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하층 장교들이다. 이들 중에는 직위 불만 자들이 많은 데 그 대부분이 非육사출신이며 또 육사출신가운데서도 경상도 출신에 밀리어 소외감을 갖고 있는 타 지역 출신장교들이 있다.’(1968년 1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7. 국군 와해 공작 : ‘윤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가 쑥밭이 되고 괴뢰 군부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흔들거리고 있다. 양심선언 한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다. 남조선 군대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병사들과 중하층 장교들을 포섭 쟁취하는 공작과 필요한 시기에 탈영 항명 하극상 양심선언 같은 각종 형태의 투쟁을 조직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을 전국적으로 벌여 군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군부 상층을 압박해야 한다.’(1990년 대남사업 담당 요원들과의 담화.)
8. 문예 공작 :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 작가 예술인들이 사실주의에 구애되지 않고 대담하게 혁명적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줘야 한다... 그리고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이 잘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지하당 조직들이 책임지고 팔아주고 대대적으로 뿌려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실망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돈 드는 거 아까워하지 말고 대담하게 일 벌여야 한다.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 투쟁에 동원할 수만 있다면 억만금이 들어도 해야 한다…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남조선 작가들에게 맡겨두면 안 된다. 장편 소설을 하나 쓸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우리 작가와 예술인들을 많이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책도 남조선에서 찍은 것처럼 출판사와 작가 이름을 붙여서 우리가 만들어서 남조선으로 보내줘야 한다.’ (1976년 8월 대남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9. 교포 공작 : ‘오죽했으면 고향을 등지고 이민을 갔겠나? 이민 교포 중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현 정권에 이를 갈고 있다. 이런 교포들을 잘 포섭해서 묶어 세우기만 한다면 강력한 혁명 역량으로 자랄 수 있다... 해외교포들 속에서 조직을 결성할 때도 북과 연계되지 않고 교포들 자체로 묶은 조직인 것처럼 명칭을 잘 위장해야 한다.’(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이 김일성의 대남 비밀 교시는 현시점에서 상당 부분 현실화된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상 현상과 갈등이 어디에서 연원 하는지 놀라게 된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긴 한숨이 나온다.
이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온 국민이 새롭게 경계의 큰 눈을 뜨고 공론화하여야 합니다. 국민과 육해공군 장병들이 합심하여 철저한 경계로 만반의 대비(철경만대)를 하여야겠다.
*  사진 첨부합니다. ^^
한광덕 칼럼니스트
* 글쓴이 한광덕
칼럼니스트는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군에서는 사단장
국방대학원장등을
역임했다. 육사 20기. 이후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3년 10월 역사를
왜곡하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4.3 위원회)의
보고서 채택에 항의에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제주 4.3은 북한
공산세력의 무장
폭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꾸준히 알려오고 있으며
현재시민단체제주 4·3 사건
재정립시민연대 고문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활동 중이다. 자신의 호를
따서 ‘인강 칼럼’이란
이름으로, 애국 원로로서
시국에 대한 진단을
전파하고 있다.
▶️ 편집자 註 : 필자의
중ㆍ고교 동기
동창생이자
베트남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
예비역해병중위
정충남이
파이낸스투데이에 실린
그의 칼럼 전문을
옮겨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