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ㅡ kjm / 2022.9.8
12년이 지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요지경 세상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전혀 낯설지가 않다..!!
1. [전환기적 사고와 행동]
kjm_ 2010.8.11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가 물러가고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덕적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이 전환기를 맞이해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까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그것이 무기든 돈이든 아무런 제재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니편 내편 없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됐다. 이러한 이익 추구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발전해 가다가 마침내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감하기에 이른다. 이는 곧 국제 투기 자본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멈춘 것을 의미한다. 분명 그들은 또다른 활로를 찾고야 말 것이다. 그 길을 오바마에 묻고 오바마는 신냉전 시대를 열음으로써 이에 답하게 된다.
신냉전 시대의 도래는 이미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이른바 9.11사태로 말미암아 부시정권에 의해서 예고된 바 있다. 오일머니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장악을 거부하려는 아랍세력을 짓누르면서 탄생된 테러리스트의 개념은 오일피크의 예정된 시간 내에서만 유효하던 것으로, 새로운 대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이 신냉전 구도이며 이것은 오바마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개화된다.
신냉전 구도를 갖추기 위해 미국은 중국을 선택하게 되는데,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힘이 생겨서가 아니라 유럽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중국을 과대포장해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덮어두고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구도가 성립되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어느 편에는 서야만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양다리를 걸칠 수도 있고 교묘한 중립을 선언할 수도 있지만 그 어느쪽도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도 중국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습게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중국편 한국은 미국편이 이미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신냉전 시대의 서막을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북한과 남한이 치루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그나마 군사와 경제를 분리해서 처세할 수 있었지만 신냉전 시대에서는 그것마저 용인되지 않는다. 어느 한 쪽에 올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배타적 선언지 밖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판단이 옳다면 과연 신냉전 시대에 맞는 사고와 행동은 어떤 것일까. 과연 어떤 사고방식이 생존에 필요한 사고일까를 우리는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명박정권에서의 이대로라면 남북한은 양패구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뜻이 있고 의로운 사람이라면 현 이명박정권의 대북정책을 개탄해 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은 허수아비를 놓고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논리적으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한편으로 '의도확대의 오류'에도 해당된다.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미국의 입맛대로 놀아난다면 미래의 희망은 결코 없다. 또한 우리 지금 오바마 개인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착각 속에서 오바마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 중의 바보다. 오바마는 이미 개인 오바마가 아니라 미국 정부와 미국의 금융 즉 달러를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이미 '오일달러'라는 말에서 달러의 무차별적 공격을 견식한 바 있다. '오바마 달러'라고 도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신냉전 시대의 처세 방법을 우리의 지금 상황에 맞게 찾다보면 딱 한 가지 답이 나온다. 그 답은 한 마디로 '정중동'이다. 다시 말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침묵하고 또한 앞서 움직이지 말 것이며 앞에 서지 않는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머님 말씀도 여기에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는 말도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하자면, 허수아비 놀음에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ㅡ 2009.8.31 '문학소설' 책리뷰 (발췌.수정.요약)
"그래요. 난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으로 인간 개성을 제거하는 대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계를 제공하고, 그런 세상을 "개화된 세계"라 부른다.
개화된 신세계의 인간들은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적 '행동 조절'을 받는다.
행동 조절로 인해, 계급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계급의 차이로부터 사회적 불만과 혼란은 없다.
하층계급은 3D의 일을 맡고, 상층계급은 지적인 일을 한다.
그런 계급적 사회관이 현대에서라면 비인간적, 비윤리적이라 비난받겠지만, 개화된 신세계에서는 모두가 순응하고, 당연해 하고, 행복해 한다.
'불행'이란 개화된 신세계에선 허락되지 않는다. '행복만 느끼는 문명 사회'라는, 마약같은 정신의 세뇌로,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다.
언뜻 보기엔 평화로운 세상. 그러나 인간의 역동성, 능동성은 소멸되고, 주어진 조건과 계급에 수동적 인간만 남게 되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것이 하나의 새 질서를 이룬다.
3. [오쇼 라즈니쉬 '장자, 도를 말하다' (7장)]
kjm_ 2010.7.4 (발췌.요약)
ㅡ 욕망의 본질은, "미래로 달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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