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목요일은 경찰서 예배의 날입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한 생명이라도 구원 하게 해 주세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로마서 13:8절 말씀)
1. 의미
로마서 13장 8절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빚을 지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에게 끝없이 갚아야 할 사랑의 의무를 강조합니다. 로마서 13:8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져야 할 ‘사랑의 빚’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사랑의 빚’은 단순한 경제적 빚이나 일시적인 호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영적 의무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모든 율법과 계명이 궁극적으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귀결됨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율법의 관계로서는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간음, 살인, 도둑질, 탐내지 말라 등 구체적 계명을 언급하며, 사랑이 율법을 완성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과 자비를 실천하는 행위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본질을 실천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영적·실천적 의미는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평생에 걸친 의무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친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원수나 어려운 사람에게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NIV 성경에서는 이를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라고 표현하며, 서로 사랑해야 할 지속적인 빚으로 번역됩니다. 로마서 13:8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모든 계명과 윤리적 의무는 사랑을 통해 완성되며,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의 빚을 평생 갚아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핵심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생 사랑을 흘러 보내야 할 곳이 어디인지요?
2.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셨고,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감람산의 기도에서 피처럼 흘렀고, 골고다의 언덕에서 못 박힌 손으로 펼쳐졌고, “다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의 돌무더기에서 건지셨고, 세리의 집에 들어가셨고, 병든 자의 몸에 손을 대셨고, 배신할 제자의 발을 씻기셨고,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고결한 관념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의 아들의 몸입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피 흘리는 구속의 사건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 낸 도덕의 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안에 피워 내시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권세를 향한 불신이 깊고, 법을 향한 냉소가 많으며,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점점 식어 가는 시대입니다. 자기 권리의 언어는 커졌지만, 자기 책임의 언어는 작아졌습니다. 분노는 빠르게 번지고, 존중은 더디게 자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절대화하고, 자신이 행한 상처는 쉽게 잊습니다.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자기 마음의 불의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모두가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의 희생은 피하려 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합니까? 교회는 세상 권세의 하수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세상 질서를 향한 무책임한 조롱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백성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에 이 땅의 책임을 감당하며,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먼저 이 말씀을 살아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사랑은 권위와 순종을 새롭게 합니다. 부모의 권위는 자녀를 억누르는 왕좌가 아니라 자녀를 축복하는 제단이어야 합니다. 자녀의 순종은 두려움의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배워 가는 존중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직분은 지배의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더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섬김을 맡은 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처럼 충성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성도는 상사를 우상화하지 않지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합니다. 성도는 부당함 앞에서 지혜롭게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게으름과 불성실을 신앙의 자유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시민으로서도 그렇습니다. 성도는 공동체의 질서를 귀히 여기고, 법을 존중하며, 약한 자가 보호받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적용의 중심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책임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묻습니다. “네 마음에는 사랑이 있느냐? 네 순종에는 믿음이 있느냐? 네 책임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있느냐? 네 정의에는 긍휼이 있느냐? 네 신앙에는 십자가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면 인간이 세운 모든 가면이 벗겨집니다. 무덤들이 입을 열고, 시간이 멈추고, 감추어진 동기가 드러나며, 인간의 자랑은 풀처럼 마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직함으로 서지 못합니다. 재산으로 서지 못합니다. 신앙의 경력으로 서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서게 됩니다. 그날은 모든 시간이 영원 앞에 서는 날이며, 인간의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날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들여다보였다는 사실이 계시되는 날입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주께서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이미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다.” 이 빚은 우리를 짓누르는 저주의 빚이 아닙니다. 이것은 은혜가 낳은 기쁨의 빚입니다. 우리가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행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마음이 지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제도 속에서 억울함을 겪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법은 멀고 현실은 차갑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조차 부담스럽게 들릴 만큼 마음이 메마른 분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십자가 아래로 부르십니다. “네 힘으로 사랑하라”가 아니라,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부르십니다. “네 의로 버티라”가 아니라, “내 은혜를 붙들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을 네가 구원하라”가 아니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으니 너는 내 안에서 신실하게 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힘이 없을 때,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할 힘이 없을 때,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책임을 감당할 힘이 없을 때,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순종하신 주님의 발걸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지나갑니다. 권세도 지나가고, 이름도 지나가고, 분노도 지나가고, 억울함의 밤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활의 아침은 어둠에게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유일한 길이시며, 모든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대답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유한한 시간은 영원의 빛을 받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실패는 은혜의 자리로 바뀝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죽음은 마지막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문 앞에 선 침묵이 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사랑은 작지만 헛되지 않고, 우리의 순종은 부족하지만 버려지지 않으며, 우리의 눈물은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물방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일어섭시다. 권세 앞에서 하나님을 잊지 맙시다. 질서 속에서 양심을 지킵시다. 의무 속에서 사랑을 잃지 맙시다. 이웃 앞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무례를 무례로 갚지 말며, 냉소를 냉소로 갚지 맙시다. 우리가 세상을 다 바꿀 수 없을지라도, 오늘 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제도를 완전하게 만들 수 없을지라도, 오늘 내 자리에서 정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상처를 단번에 치유할 수 없을지라도, 오늘 십자가 앞에서 미움의 칼을 내려놓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아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우리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자기중심성을 사랑으로 녹이시며, 우리의 지친 걸음을 다시 주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눈물 속에서도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흔들림 속에서도 은혜를 붙드십시오. 세상의 소리가 커질수록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릎 꿇으십시오. 그리고 사랑의 빚을 진 사람답게 살아가십시오. 이 빚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영혼을 부요하게 합니다. 이 빚은 우리를 묶어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의 자유 안으로 이끕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성도의 길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어 부활의 소망으로 흘러가는 하나님 나라의 숨결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그 사랑 안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굳은 마음이 녹고, 우리의 교만한 무릎이 꺾이며, 우리의 지친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을 붙들어, 세상 한복판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사랑을 증언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서게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사랑의 빚 실천하기
빚은 '의무', '갚아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7절에 나라에 대한 조세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랑의 빚에는 아무 빚도 져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사랑의 빚만큼은 끊임없이 져야 하는 의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빚을 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흘려보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세계관은 곧 종말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입니다. 이 때 우리가 깨어서 해야할 것이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떤 율법적 의무를 행하는 것이 아닌 사랑할 때 모든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곡된 사랑을 하기 쉽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강압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강압적이게 되기 쉽고,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원어는 '아하브'라는 단어로 '남에게 도움이 되다', '유익한 존재가 되다'라는 적극적인 실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 중심적이며,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말에서 자기 자신을 먼저 건강히 사랑하고, 이를 기반으로 남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그와 같이 남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과 같이 결단하여 적용해 봅시다.
1)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를 존중하며 살겠습니다.
2) 나는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3) 나는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사랑의 빚을 진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4) 나는 십자가에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와 섬김의 길을 걷겠습니다.
5) 나는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증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