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야 옳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눈빛 표정 말투 마음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듣는 것은 그저 음성이나 글씨로만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말은 더욱 그러합니다. 상대방의 마음 속 진심은 온 마음과 정신으로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잘 들어야 옳게 또 정확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진실과 진심이 빠지고 오해와 왜곡, 심지어 거짓을 말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을 두고 ‘말을 더듬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진심과 진실을 귀 기울여듣지 않고 그저 ‘금지조항’으로만 듣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다 누려도 된다는 큰 자유와 행복을 제쳐두고, 오직 생명나무 열매에 관한 말씀만 따로 떼어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창세 3,3)”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방법과 기회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교회법이나 계명 등을 대면서 ‘~하지 말라. 해서는 안 된다. 하면 안 된다’는 말과 생각에 갇혀 살곤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한없는 자비로 용서하시고 자유롭게 해주시는데 죄의 조항만 운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주시는 데 금지 조항에만 연연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가 일치하여 평화와 기쁨으로 살도록 이끄시는데 우리는 자기 안위를 위한 시비와 해석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 간에, 형제와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자비와 희생이 더 많았음에도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것이나 부담스러운 것으로 그것들을 귀 기울여 보고 눈여겨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성찰해야 할 부분은 ‘에파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을 잘 한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하느님, 가족, 형제들 앞에서 귀 기울여 듣고 눈여겨 볼 수 있을 만큼 내 눈과 귀, 생각과 마음이 열려 있는가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예수님처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와 구원을 위한 에파타 행위가 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 성령께서 우리를 열어주시고 비추어주시길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