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평범한 속에서의 진실한 도리)
“中庸之道”란 말을 우리는 흔히 쓰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풍기는 의미는 일정하지가 않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풀이할 수 있는 막연한 내용의 말이다.
“그건 중용지도가 못되지.”
뭔가 좀 지나쳤다는 뜻이다.
어느 점이 어떻다고 지적은 할 수 없어도 어딘가 좀 반성할 점이 있다는 막연한 개평(槪評)이다.
듣는 사람도 가히 기분 나쁘지 않고, 말하는 사람도 그리 거북하지 않은, 적당히 듣고 적당히 쓸 수 있는 말이다.
“중용”이란 말은《논어》에도 나온다.
그러나《중용》이란 책이 「사서(四書)」중의 하나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그《중용》첫머리에 주자(朱子)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여「중용」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편벽되지 않은 것을「中」이라 말하고, 바뀌지 않은 것을「庸」이라 말한다.
「中」이란 것은 천하의 바른 길이요, 「庸」이란 것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
「中」은 중간이니 중심이니 하는 뜻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것이 중간이고, 어느 쪽에도 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것이 중심이다.
「庸」은 떳떳하다는 뜻이다. 떳떳하다는 말은 정당하다, 당연하다, 항상 그대로다 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중용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떳떳한 것이란 말이다.
또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꼭 정도에 맞는, 더 바랄 수 없는 그런 원리원칙이「중용」인 것이다.
지구가 항상 궤도를 돌고 있는 것도 그것이 중용지도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으로 우주여행을 무사히 끝마치려면
처음에서 끝까지 이 중용지도를 지키지 않으면 그만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일생을 사는 동안도
이 중용지도를 지키지 못하면 예기치 못한 불행과 마찰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용지도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위성이 궤도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듯이,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적당히 수정될 수 없는
원리 원칙은 궤도 수정이 불가능한 인공위성과도 같은 것이다.
《중용》첫머리에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의 중용이란 것은 군자로써 때에 맞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때에 맞게 한다는 것이 바로 원리 원칙에 입각한 궤도 수정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덮어놓고 좌우 양파의 중간에 서 있는 무사주의나 타협주의나 기회주의가 중용지도는 아니다.
팔 사람이 부르는 값과 살 사람이 주겠다는 값을 반으로 딱 잘라 흥정을 붙이는
거간꾼의 처사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말했다.
“천하의 국가도 다스릴 수 있고,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은 할 수 없다.”
그때그때에 맞는 처리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용기나 지조의 문제가 아니라,
성인(聖人)의 지혜가 없이는 안 된다는 말이다.
「中庸之道」, 즉 「중용의 길」은 가장 올바른 길이요, 오직 하나뿐인 길이다.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기 위한 지혜와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대중을 지도할 자격은 물론,
그 자신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갈 수가 없다.
-《고사 성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