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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안개꽃
불면 꺼질 듯
꺼져서는 다시 피어날 듯
안개처럼 자욱이 서려있는
꽃.
하나로는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무엇이라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그런 막연한 안타까움으로 빛깔진
초련(初戀)의
꽃.
무데기로
무데기로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형상이 되어
설레는 느낌이 되어 다가오는 그것은
아,
우리 처음 만나던 날 가슴에 피어오르던
바로 그
꽃 !
▶작품감상 ------(사랑 또는 밝음과 어둠)-------------------------------
여러분은 이십대 젊은 시절부터 중년이나 노년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으로 어떤 분을 기억하시는지요? 모든 문학이, 특히 시가 정치와 사랑을 노래하지 않은 것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만큼 정치와 함께 사랑은 인류의 등불이자 문학의 테마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시단에서 사랑을 평생의 테마로 하고 있는 시인들이 특히 몇 분 계시지만, 그 중에 특이한 개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우리는 아마도 이수익 시인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인께선 어찌 생각하실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 시인이야말로 천부적인 사랑의 서정시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만큼 초기시부터 근작시집 {단순한 기쁨}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정감이 청순하면서도 싱싱하게 흘러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우울한 샹송]은 시인의 첫 시집 [우울한 샹송](1969)의 표제시이자 초기의 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야말로 청춘시절을 지배하는 낭만적 우울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시입니다. 제목부터가 이 시는 다소 이국풍이고 낭만적인 정감으로 물들어 있지요. 어떻게 보면 감상적이라고도 할, 젊은날의 비애와 열정을 애틋하게 드러내고 있는 데에 이 시의 한 매력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흔히 운위되듯이 감상성이란 모든 시에서 무조건 배척되어야 하고 나쁜 것으로 매도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이 지나쳐서 퇴폐적인 애상으로 함몰되어 버린다면 모르겠지만, 적당한 감상성은 때로 시를 풍윤하게 만들어 주는 낭만정신의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이 시는 대체로 오는 것과 가는 것,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둠이라는 대립적 이미지가 그 뼈대를 형성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른바 밝음과 어둠 또는 소멸과 생성이 변증법적인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러기에 이 시대는 애증의 드라마가 밑바탕에 깔려 있지요. 이 시의 모티프는 <우체국에 가면 /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처럼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갈망에서 비롯되고 있지요.
이 시에서 이별은 시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한 방법적 장치에 해당하지만 그것이 우체국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참신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체국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인가요? 그곳은 편지와 전신, 전보, 소포들을 통해서 끊어져 있던 사람들을 이어 주고, 헤어져 있는 사람들을 맺어 주는 만남의 가교이자 희망의 등대이기도 하지요. 그러기에 그곳은 그리움의 촉매이자 기다림의 표상이기도 할 겁니다. 어쩌면 그것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에서 <우편마차>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유치환의 시[행복]과도 관련될 겁니다.
그러기에 시 [우울한 샹송]에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 망설임과 설레임, 끓어오름과 두려움, 미련과 안타까움같이 모순되는 감정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마음 속에 그리움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겠지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와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라는 구절의 병치 속에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양면성 또는 모순성이 첨예하게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풀잎 되어 젖어 있는 /悲袁>를 간직하면서, 끝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사랑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 표출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이 시는 젊은날을 지배하던 사랑의 열정과 그 맹목의 순수함이 낭만적인 비애와 우울을 통해서 아름답게 형상화된 60년대 사랑시의 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젊은 날을 들끓게 하던 사랑의 열정과 그 순수한 갈망이 이 이 시인에게는 중년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어서 관심을 끄는데요. 시[안개꽃]이 그 한 예가 될겁니다. 이 시는 안개꽃을 첫 사랑의 꽃, 그리움의 꽃으로 노래하면서 젊은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첫사랑의 추억에 대한 애틋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먼저 첫 연에서는 안개꽃의 모습이 <불면 꺼질 듯 /꺼져서는 다시 피어날 듯 /안개처럼 자욱이 서려 있는 /꽃>으로 묘사되고 있지요.
둘째 연에서는 그것이 <안타까움으로 빛깔진 /初戀의 /꽃>으로 떠오르면서, 셋째 연에서는 <무데기로 /무데기로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形象이 되어 /설레는 느낌이 되어 다가오는 그것처럼 서로 어울림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꽃, 설레임과 애수의 꽃으로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안개꽃이 <아 /우리 처음 만나던 날 가슴에 피어오르던 /바로 그 /꽃>과 같이 회상의 꽃, 추억의 꽃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새삼 안타까운 그리움을 고조시키고 있는 거지요.
따라서 이 시는 안개꽃의 모습을 통해 첫사랑의 순결한 열정을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동시에 <홀로>와 <함께>로서 존재하는 삶의 본질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투시했다는 점에서 그 형상미가 돋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거칠고 사나워만 가는 현실, 혼탁해지는 삶 속에서 나이가 들어서도 이처럼 순수한 사랑의 열정과 소망을 간직하는 일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 과연 또 있을런지요. 이수익의 여러 사랑시편에서, 어두웠지만 아름답던 젊은날의 초상, 순수하기만 하던 첫사랑의 추억을 느끼는 사람이 어찌 저 한 사람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약력>---------------------------------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 영어과 졸업, 1963년 서울신문으로 데뷔, 현대문학상 등 수상, 현재 KBS 근무, 시집으로「우울한 샹송」,「단순한 기쁨」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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