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오도송(悟道頌)이다.
동파 거사는 사천성 출신으로 이름이 식(軾)이며 아버지는 소순(蘇洵), 동생은 소철(蘇轍) 이다.
세 사람이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어간다.
그의 작품으로는 「적벽부(赤壁賦)」가 가장 유명하다.
그의 여동생인 소소매(蘇小妹)라는 보살은 「관음예문」이라는 불교의 의식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남기기도 했다.
유불선(儒佛仙)을 두루 섭렵하고 문장에도 남다르게 뛰어났던 동파 거사가 하루는 여산의 동림 흥룡사에 계시는 당대의 고승 상총(常聰) 선사를 찾았다.
선사는 동파 거사에게 스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듣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다.
그는 무정설법을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만 막막하였다. 그래서 무정설법이라는 말만 생각하면서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신을 잃고 한참이나 길을 가다가 문득 큰 개울물이 쏟아지는 곳에 이르러 비로소 천지가 진동하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순간 무정설법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은 게송이 바로 이것이다.
설법 또는 법문이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말하면 진리, 이치, 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는 어떤 말씀이나 동작이나 또는 계기를 통해서 진리의 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설명하여 깨우치기 위해서 수많은 말을 한다.
그것을 기록한 것들이 경전이며 어록들이다.
그러나 소동파가 그 진리를 깨닫고 보니 결코 경전이나 어록만이 법문이나 설법이 아니라 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시장에서 상인들이 떠드는 소리, 차 소리 등등 모든 소리가 법문이 아닌 것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유정·무정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모든 행위도 일체가 법을 설하고 진리를 설하는 법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법문을 토해내고 표현하는 모든 존재는 그대로가 저절로 청정법신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 푸른 산색이 청정법신 부처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실로 소동파는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그와 같은 이치를 깨달았으며, 역사적으로도 그와 같이 무수한 도인들이 하나의 계기와 하나의 사건에서 깨달음의 눈을 떴던 것이다. 결코 어떤 말씀과 그 말씀을 기록한 팔만장경만이 법문은 아닌 것이다. 요컨대 언제나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와 같은 계기가 있게 되며, 또한 반드시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임을 증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