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장장 42회에 걸친 이 시리즈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무던히 읽어주시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신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시리즈를 끝내고 이제 돌아보니 한마디로 세계문학은 일종의 향토문학(鄕土文學)이었던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문학전집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가의 고향이 무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특히 작가의 어릴 때의 이야기, 도회지에서보다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의 추억들이 세계문학을 키운 토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자면 문학을 통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그 지름길이라는 것도 새삼스럽게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이름 아름다운 세계적인 시인과 작가들은 어느 하늘 밑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누구나 한 번씩은 읽게되는 세계명작들은 그 무대가 그 어디였는지를 찾아가는 길이 참으로 즐거웠던 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시리즈는 [<신장개업> 대음악가의 발자취를 찾아서]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사진과 음악을 대폭 쇄신하여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고향을 찾아 ]
* 일리에 콩브레 마을

일리에 콩브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일리에는 실재하는 마을의 이름이었고, 콩브레는 허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콩브레는 <되찾은 시간>과 함께 생겨났습니다. 일리에가 콩브레가 되면서 일리에 콩브레라는 새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일리에 콩브레는 현실과 소설이 만나는 곳이고 잃어 버렸던 시간이 함께 사는 주소입니다.
일리에 콩브레에 가면 사람들이 소설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오가는 주민들이 모조리 작중 인물 같아 보입니다. 길거리의 건물 하나하나도 무슨 무대장치처럼 착각됩니다.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세워 놓은 세트 같기만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 마을이 주역입니다.
* 콩브레 마을, 생 자크 교회의 종탑이 보입니다

일리에 콩브레는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113km, 성당이 유명한 샤르트르에서 25km, 중세 때의 집들이 많이 남은 인구 3천 5백명의 이 조용한 마을은 밀밭 사이로 르와르 천(川)이 가느다랗게 휘어져 돌아가는 들판 가운데에 있습니다.
"멀리 철길에서 바라보면 교회 하나로 요약되는 마을, 양털 같은 회색 집들 위로 양떼를 모는 양치기 처녀 같은 교회의 콩브레"로 프루스트가 묘사했듯 마을의 중심 광장에 생 자크 교회의 종탑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이것이 소설에서 나오는 <생 탈레르 교회>입니다.
이 광장 가의 11번지가 프루스트의 아버지인 드리앙 프루스트의 생가(生家). 파리 변두리의 오퇴이유에서 태어난 프루스트는 어릴 때 방학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 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왔고 왕고모 집에서 지낸 그때의 추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편(全篇)을 이룹니다.
* 프루스트의 왕고모 집(기념관)

소설 속의 나(어린 프루스트)가 다니러 왔던 <콩브레 마을(실제 당시의 이름은 일리에)의 <레오니 고모(실제로는 왕고모 아미오 부인)>집은 교회 광장에서 1백m 남짓, 명의(名醫)이던 아버지를 기념하여 길 이름을 붙인 독퇴르 프루스트 가(街) 4번지입니다.
목조 2층 건물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 그려진 가구와 장식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소설의 삽화를 보는 듯합니다. 집 뒤에는 뜰이 있고 뒷문 앞에 키큰 마로니에가 한 그루, 그리고 잔디밭에 장미나무가 하나, 이 모두 소설 속에 살아 있는 나무들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무계단은 어린 프루스트에게 미움의 계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밤마다 "잘자라"라는 말과 함께 입맞춤을 해주기 전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소년은 어머니가 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밤 인사를 하고 곧 내려가 버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일리에 콩브레 가는 길

프루스트가 침실로 쓰던 2층 정원쪽 갓방에는 침대 머리에 소설에 등장하는 등불과 조르지 상드의 작품 <프랑스와 르 샹피>가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가 올라와 잠 못 자는 프루스트에게 읽어 주던 책입니다.
복도 건너 한길 쪽이 레오니 고모의 방. 탁자 위에 보리수 찻잔과 나란히 과자가 한 봉지. 마들렌 과자입니다. 쿠키의 일종인 이 마들렌 과자야말로 프루스트의 의식의 세계를 터뜨린 뇌관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레오니 고모의 방에 아침 인사를 가면 홍차나 보리수차에 담가주던 마들렌.
* 마들렌 과자
이 조그만 과자로부터 방대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개됩니다

이 과자의 향기와 맛의 기억이 <나>에게 콩브레 시절의 추억의 문을 열어줍니다. 저녁 식사 전에 심부름을 가던 교회 광장, 물건을 사러 다니던 한길, 스완네 집 정원의 꽃, 비본천(川)의 수련(水蓮)...이런 모든 것들이 마들렌 과자가 담긴 한 잔의 차에서 튀어나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모퉁이에 과자점이 하나 있습니다. 진열장에 <레오니 고모가 마들렌 과자를 사 가던 집>이라고 크게 써서 내걸었습니다. 프루스트가 먹던 마들렌을 이 집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의 맛을 통해 콩브레의 온 거리를 되생각해 내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독자들은 마들렌 한 조각으로 프루스트의 작품 세계를 되씹게 됩니다.
프루스트는 14세 때이던 1885년을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듬해 레오니 고모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20여 년 후 일리에 마을은 콩브레 마을로 재생되었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은 고모가 죽자 소설 속의 하녀 프랑스와즈(실명은 에르네스틴 갈루)가 1912년 고모부가 죽을 때까지 지키다가 그 후로 두 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1946년 레오니 고모의 손녀 제르멘이 도로 사들여 프루스트의 사설(私設) 기념관이 되었고, 1971년 정식 기념관으로 개관했습니다.
* 기념관 내부,레오니 왕고모의 침대(?)

손녀는 1977년 죽으면서 이 집을 프루스트 애호가 협회에 기증했습니다.
일리에 콩브레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이나 장소의 이름도 모두 작중(作中)의 이름으로 불리고 실명(實名)으로는 오히려 통하지 않습니다. 프루스트의 고모 아미오 부인은 <레오니 고모>이지 본명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 모퉁이는 네거리입니다. 왼쪽으로 꼬부라지면서 소설 속의 <스완네 집 쪽>이고 똑바로가 <게르망트 쪽>이 됩니다. <스완네 집 쪽>으로 빠져나가면 탕송빌 마을에 이르고 <게르망트 쪽>을 찾아가면 르와르 천(川)의 수원(水源)인 생테망에 닿습니다.
* 기념관 내부,어린 프루스트의 침대

<스완네 집 쪽>으로 가다가 르와르 천(川)-소설 속의 비본느 천-을 건너 마을을 막 빠져나가는 곳에 <프레 카틀랑>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공원>으로도 불리는 이 공원은 소설에서 스완네의 정원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프루스트의 고모네 개인 소유였습니다.
소년 프루스트는 이 정원의 나무 그늘을 자주 찾아와 책을 읽었고 사색을 했습니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묻었던 곳입니다. 한쪽 모퉁이에는 돌 의자가 하나 남아 <프루스트의 자리>로 전해집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정원

2헥타르나 되는 넓은 공원은 키 큰 산사나무들이 줄을 서서 긴 울타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 산사나무 울타리를 잊지 못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신선할 때는 이 나무의 향기가 좋다고 합니다. 5월에는 분홍색과 하얀색의 꽃이 핍니다.
* 정원 내부

여기서 3km쯤 더 나가면 외딴 곳에 나타나는 것이 탕송빌 성관(城館). <스완네 집>의 모델이었다는 커다란 저택입니다. 넓은 정원의 꽃밭이 아름답습니다. 한때는 이집트 왕이 살았다는 전설의 집인데 지금은 바루라는 건축가가 주인으로 있습니다.
일리에 콩브레 마을과 그 근교는 이렇게 도처에 프루스트의 추억이 깔리고 그래서 걸음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이 밟힙니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스와 모리악은 "태초에 2천의 주민을 가진 조그만 마을 일리에가 있었다. 그것이 마침내 수많은 독자의 정신적 고향인 콩브레가 되었다"고 썼습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끝맺고 죽은 곳은 파리 시내 아믈랭 가(街) 44번지. 개선문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입니다. 프루스태 때는 방을 세주는 집이었는데 40여 년 전부터 호텔이 되어 현재는 <위니옹 오텔 이트왈>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 1907~1919년까지 프루스트가 살았던 파리의 집

프루스트는 1919년 10월부터 3년 동안의 마지막 인생을 이 집의 컴컴한 방에서 천식병에 시달리면서 대작과 시름하여 죽기 며칠 전에 <끝>자를 썼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직후인 1919년 11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편인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에서가 콩쿠르 상을 수상함으로써 숨어 있던 그의 이름이 일약 세상에 나오는 집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와 모리악은 이 프루스트의 방을 방문한 인상을 <프루스트네 집 쪽으로>라는 글에 적으면서 "아믈랭 가(街)의 셋방은 음침하고 조그마했다. 벽난로는 새까맣고 침대에는 모포대신 외투가 걸쳐져 있었다. 방 안에는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무일물(無一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방이 지금은 호텔의 4층 34호실. 이 프루스트의 방은 눈여겨 보는 투숙객도 드물지만 일부러 찾아가 문을 열어 보았자 그 후로 두 번이나 고쳐져 감회를 달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탕 하는 소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마지막 낱말인 <탕(Temps,시간)>의 어음(語音)이 먼 과거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려 방 안에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 파리 <페르 라 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프루스트의 무덤

[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년)의 유일한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초시간적(超時間的) 인상주의의 수법으로 의식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소설 기법에 혁명을 가져온 금세기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의 하나입니다.
7편으로 나누어져 총 4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소설은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제7편 <되찾은 시간>까지 각 편마다 독립된 제목을 가지면서 전체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1909년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후 죽음 직전까지 손질을 계속하여 끝을 맺었습니다. 제1편이 1913년에 나온 이래 작가가 죽은 후인 1927년에 전편의 간행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그동안보내주신 세계명작의고향,잘읽었읍니다.
좋은음악도들을때마다마음이평온해졌고요~
감사합니다! 항상건강하시길빌며.
김성운 올림
와우!! 김회장이 이렇게 친히 방문을...하여튼 반갑네요.좋은 음악을
들을 때 마다 힐링이 되었다고 하니까 힘이 배가가 되네요. 앞으로 연
재할 [<신장개업>대음악가의 고향을 찾아]도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합
니다. 열과 성을 다해 글과 사진과 음악을 준비하여 여러분들을 모시겠
습니다. 김회장과 여러 애독자분들!! 모두에게 좋은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