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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는 되고, 메르켈은 안 되는 ‘단벌패션’의 정치학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마크 저커버그의 회색 티셔츠와 후디로 가득한 단출한 옷장.
54조원 자산가의 검소한 단벌패션이라는 상찬은 그가 여자였어도 적용됐을까?
(저커버그 페이스북 사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두 달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출근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옷장 사진이 큰 화제를 모았다.
‘복직 첫 날. 뭘 입지?’라는 간단한 글과 함께 똑같은 회색 반소매 티셔츠와 쥐색 후디로 가득한 옷장을 보여준 그에게 세계는 열광했다.
사진을 올린 지 이틀 만에 120만개의 ‘좋아요’가 답지하고, 7만1,2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인류공동체에의 헌신을 사명으로 하는 젊은 거부의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은 재산 99% 기부 선언을 배경막 삼아 빛을 발했다.
그런데 저커버그가 만약 여자였다면?
‘그녀’는 저커버그처럼 찬탄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단벌 패션’을 철학으로 내세울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보면 쉽게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언제나 쓰리버튼 재킷에 통 넓은 정장 바지를 입는 그녀의 일관된 스타일은 끊임없이 ‘패션 테러’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는 “메르켈은 자신의 특별한 비율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한다”며 “너무 긴 바지, 너무 타이트한 재킷, 끔찍한 컬러. 모든 게 다 틀렸어! 앞머리도 안 어울려!”라고 언론을 통해 비판했다(이듬해 “이번엔 괜찮네”라고 ‘칭찬’하기는 했지만).
메르켈의 색깔만 달라지는 똑같은 팬트수트 스타일을 풍자해 2012년 네덜란드의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색깔만 바뀌는 팬톤 메르켈 룩 차트를 만들어 ‘비극의 스펙터클’이라는 제목을 붙이기까지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재닛 옐런도 똑같은 재킷을 한 달 새 두 번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남성 권력자가 같은 옷을 입고 나오면 검소의 상징이지만,
여성 권력자가 같은 옷을 반복해 입는 것은 패션에 대한 테러.
저커버그는 되고 메르켈은 안 되는 ‘단벌 패션’. 이 이중잣대의 정치성을 삐딱하게 해부해 보자.
[“옷 고르는 데 시간 뺏기기 싫다”]
저커버그가 단벌 패션의 효시는 아니다.
검정 터틀넥 티셔츠에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스니커즈로 유명한 전설적 인물 스티브 잡스가 이미 있었고,
더 앞서는 아인슈타인의 회색 수트가 있다.
전기작가들은 “아인슈타인이 교복처럼 입던 회색 정장은 그의 둘째 부인이 입혀준 것이며, 훗날 그는 다양한 색깔의 스웨터 등을 즐겨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패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천재의 이미지는 이미 회색 수트 속에 박제돼 있다.
미국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도 기숙학교 시절 교복 재킷을 아직까지 매일 입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모두 남성인 이 걸출한 인물들이 유니폼 패션을 고수하는 이유는 ‘선택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다.
저커버그는 2014년 열린 타운홀미팅 Q&A 세션에서 ‘왜 회색 티셔츠만 입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내 삶을 간결하게 만들고 싶다.
공동체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최소의 의사결정만 하고 싶다”고 답했다.
회색과 푸른색 수트만 입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똑같은 질문에 “단순한 의사결정 행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결정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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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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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마음은 묻는다.
야후에는 결정할 일들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 걸까?
메이어가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보통사람처럼 옷을 입는 것은 남성에게는 친근감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검박함의 상징이지만,
왜 여성에게는 미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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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 이전에 단벌 패션을 추구해온 여성 뉴요커 마틸다 칼(맨 앞 가운데)이 '마틸다처럼 입기 데이'에서 활짝 웃고 있다.
마틸다 칼 페이스북 사진
여기 저커버그 이전에 과감하게 ‘단벌 패션’을 시도해 화제가 된 여성 용자(勇者)가 있으니,
이름 하여 마틸다 칼.
세계적 광고대행사 사치앤사치의 뉴욕사무소 아트 디렉터다.
4년 전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 열리는 중요한 회의에 뭘 입고 갈지 고민하다가 늦어버린 그녀는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고 분노 속에서 결심한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겠다!
똑같은 흰 블라우스와 검정 바지 15벌을 하루에 사버린 그녀는 가죽끈으로 목에 리본을 맨 차림새를 자신의 시그니처 룩으로 정하고, 3년간 실행에 옮겼다.
당연히 저커버그처럼 칭송 받지 못했다.
기인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냐, 종교적 신념이 있느냐 등등의 다채로운 질문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저커버그의 회색 티셔츠로 인해 ‘왜 성공한 남자들은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면서부터.
그녀는 지난해 패션지 하퍼스 바자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개인 유니폼 패션을 입고 다닌 지 2년 후에 나온 기사들이었다.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기로 한 내 결정을 남들로부터 승인 받는 데 남성의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글에서 “여성은 완벽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과도한 압력,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대의 산과 궁극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며 “사적 유니폼을 입기로 한 선택이 나를 생각의 낭비로부터 구원했다”고 단벌 패션을 칭송했다.
[중략]
지난해 4월 23일 열린 ‘마틸다 데이’는 패션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건 남녀 모두에게 그래야 하며,
그래도 패션은 자아의 표현으로 삶의 중요한 활력소라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남녀 모두에게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패셔니스타의 길을 가든,
단벌패션을 고수하든,
잣대는 동일하게.
패션은 그래서 정치고, 권력이다.
2년전 기사임
장담컨데 스티브잡스가 여자였다면 절대 스티브잡스룩이라는 용어는 생기지않았다고생각..
첫댓글 남자들은 참 편하게 살아서 좋겠네 성공해도 편하고 안 성공해도 편하고 세상의 속박과 억압에서 이렇게 자유로울수가ㅎ
남자들은 진짜 살기 편하겠어
참~ 웃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