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시절 전기밥솥을 사와서 처음 밥을 할 때
밥을 짓겠다는 밥솥의 여자 음성은 젊었지만
'맛있는 취사'는 비문이라고 한마디했다
밭솥 회사에서도 이 문장을 두고 전략 회의를 했겠지
그래도 뭔가 전략적이라 그대로 두었겠지
그 밥솥도 이제 바꿀 때가 되어서 전원을 뽑으려다가
정든 목소리 한번 더 들으려 쌀을 씻고
물을 재고 마지막으로 버튼을 누른다 밥을 안친다
그녀의 마음에 끼니를 들어앉히고 기다린다
추가 돌아가고 김이 솟아오르고
아궁이 앞에서 곤로 앞에서 그리고 쿠쿠 앞에서
쿠-쿠 하고 웃던 그녀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전기밥솥의 밥이 맛이 없다고
늙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그럼 밥솥을 바꾸자 했다
전략기획팀에서 매년 조금씩 기능을 업그레이드해서
매장에는 다양한 새 제품이 반짝거리지만
별수없이 또 전기밥솥에 여자의 목소리를 넣어야 했겠지
그러면 젊은 여자는가득 참았던 증기를
길게 배출하는 세월을 살겠지
쿠쿠가 맛잇는 백미를 완성하였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웃으며 말하겠지
그 목소리도 낡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