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23편 1–6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1. 들어가는 말 — 부적을 믿는 사람
어느 집에 들어가 보니 현관문 위에 작은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무슨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부적입니다.”
“왜 붙여 놓으셨어요?”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성경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부적은 낡고 너덜너덜했습니다.
성경은 장식장 위에 놓여 있었고,
부적은 현관문 한가운데 붙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도 이렇지는 않은가?”
성경은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다닙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먼저 찾습니다.
사업이 어려우면 사람부터 찾습니다.
몸이 아프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세상적인 방법부터 찾습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걱정부터 합니다.
앞날이 불안하면 하나님의 약속보다 점집이나 운세, 사주 같은 것을 기웃거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도 믿어야지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적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부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 종이를 붙여 놓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종이 한 장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2. 다윗은 환경을 믿지 않고 목자를 믿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내 환경이 좋으니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으니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니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기에 믿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믿음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무너졌을 때입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통장에 돈이 있을 때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아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녀가 잘될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보다,
자녀 때문에 눈물 흘리면서도
“하나님, 제 자녀를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부적은 불안을 달래지만 하나님은 불안을 이기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부적을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두려울 때 무엇인가를 붙잡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붙잡지 말고 나를 붙잡아라.”
부적은 사람의 불안을 잠시 달래는 물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을 없애실 뿐만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에게도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입니까?
골짜기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4.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험'으로 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보험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내 생각대로 합니다.
내 계획대로 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려울 때만 사용하는 비상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나 필요하지 않을 때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5.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간 사이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래도 이것 하나는 있어야지.”
“하나님도 믿고, 이것도 믿어야지.”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가 됩니다.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6. 우리에게도 '현대의 부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이에 글자를 써서 붙이는 부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현대적인 부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부적입니다.
“돈만 있으면 괜찮아.”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이 부적입니다.
“저 사람만 있으면 괜찮아.”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가 부적입니다.
“자식만 잘되면 나는 괜찮아.”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부적입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걱정 없어.”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이 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험이 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집이 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이 부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들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까?
돈이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까?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자녀가 부모의 모든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습니까?
건강이 영원할 수 있습니까?
재산이 평생 보장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 붙잡아야 할 것은
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재산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7. 믿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실까'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까?”
그러나 믿음이 깊어지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욥의 믿음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분 자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셨는가?”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뿌리를 내립니다.
8.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잠잘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갑니다.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파도가 배에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 뒤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배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보다 폭풍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시는데 문제가 더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돈 걱정이 더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시는데 건강 문제가 더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알고 계시는데 앞날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폭풍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배 안에 누가 계시는가가 중요합니다.
9.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면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의지하고 있는가?”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자녀입니까?
건강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내 능력입니까?
아니면 정말 하나님입니까?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하는데 기도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가지고 있는데 성경보다 세상의 말을 더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만으로는 안 돼.”
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믿음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적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10. 결론 — 부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부적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적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적은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아십니다.
부적은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부터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돈보다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하나님,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 내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하나님,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이 부적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부적을 붙잡는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종이 한 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운세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점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편 23편의 마지막 고백처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내일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좋을 때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힘들 때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설교 후 결단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하나님보다 돈을 의지했고,
사람을 의지했고,
내 경험과 내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먼저 찾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눈앞의 환경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게 하시고,
문제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게 하시고,
폭풍보다 예수님을 크게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시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세상의 어떤 부적보다 못한 믿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붙잡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