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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이다.
일요일 마다 가던 단골 피시방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목욕탕 가는 길에 손가락이 근질거려 들어 왔다.
피시방 알바생들은 훈남 위주로 뽑나 보다.
역시 인상이 좋다.
촌스런 아지매가 들어와서 글을 쓴다고 하니 의아한가 보다.
"다음카페에 글을 쓰려고 하는데 좀 맞추어 주세요." 했다.
"글 쓰실 줄은 아세요?" 한다.
박완서 작가님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질 않던가.
컴퓨터 수리공을 불렀더니 할머니가 컴도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
자꾸만 의심하는 투로 물었단다.
나도 그렇게 보였으리라.
이 아지매가 수다상 작가인 줄 누가 아랴.ㅎㅎ
수다가 봇물이다.
설 연휴 동안 눈치껏 수다상을 차렸기에 덜 밀렸다.
그래도 천지삐까리다.
티브이에서도 느낄 점이 다복솔이다.
제일 감동적이었던 건 북한에서 온 관현악단의 연주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장면들이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삼지연예술단'이다.
조금은 경직된 듯 보였지만 음악은 하나였다.
지휘자도 물찬 제비같았고 관현악단장 현송월의 노래도 압권이었다.
북한 사상이 담긴 노래들을 할 줄 알았다.
정치색은 느끼질 못할만큼 남한 노래들만 했다.
이선희의 '제이에게'를 어찌나 간드러지게 잘 부르던지 놀랐다.
최진희의 미로. 왁스의 노래. 설운도의 차차차 등 생각도 못한
노래들을 몽돌처럼 불렀다.
시종 웃는 얼굴로 감정을 고봉으로 실었다.
무대복도 화려했다.
남한에서만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입는지 원래 그런지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한 시간 동안 같은 동포임을 절감했다.
통일에 대해서 낮달이었는데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다.
가수 서현이가 출연하여 깜짝 놀랐다.
원래는 남북한이 함께 어우러지는 코너는 없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어쨌거나 북한 가수랑 서현이랑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니 콧등이 시큰거렸다.
참 좋은 공연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옹골차게 했다.
다음 날엔 친정행이 정해져 있다.
남매도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어 혼자 고향으로 갔다.
혼자가는 일이 오히려 편하고 좋다.
기차역으로 갔다.
아직도 기차는 낭만으로 여겨져 설렌다.
대구역에 도착했다.
카페에 들어가서 비싼 커피 한 잔을 샀다.
헤즐넛이다.
따끈하게 감싸안고 기차를 타러 갔다.
다들 추워 작은 부스 안에 옹기종기 들어 가 있다.
고향가는 얼굴이라 한껏 부풀어 있다.
어떤 짝꿍이 옆에 앉을까 늘 설렌다.
생각보다 한산하여 혼자 앉았다.
창 밖을 보며 고향으로 달린다.
나목들이 조곤조곤 수다를 떤다.
박수근의 아내 사랑이 떠오른다.
곧 봄이 옴을 알리는 희망가를 싣고 달린다.
고향역에 도착하니 이호우 시인의 시가 기다린다.
'매화꽃 핀 마을은 모두가 고향같다.'
친정에 들어가는 버스를 놓칠세라 마구마구 달렸다.
누가 부른다.
"아지매요. 어디 가능교?" 하길래 지인인가 싶어 돌아보았다.
모르는 남자가 나를 왜 부를까 싶어 물었다.
"아지매 가는 곳으로 태워다 주려고요." 이런다.
"아저씨가 왜 나를 태워주는데요. 웃기네요.
전 버스타고 갈낍니더." 하니 버스정류소에 있던 사람들이 아는
남자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하니 이상한 남자라고 수근거린다.
어떤 아지매가 내게 말한다.
"아이구 아지매 탔으면 큰 일 날뻔 했습니더. 이상한 남자맞죠?"하길래
탈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아지매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 용암아지매 둘쨋딸 아니가?
내 신촌 아지매다. 친정 오나?" 하신다.
그러고보니 안면이 있다.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났던 동네 아지매다.
이런저런 사연이 푸지다.
마을버스가 온다. 아지매 차비까지 내니 고맙단다.
"아이구 니는 여전하네. 몇 살이고?" 하여 56세라고 했다.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나. 그래도 곱네. 너그 엄마도 얼마나
인정스럽고 곱노? 엄마 닮아서 그런갑다." 하며 수십 년 밀린
수다꽃을 피운다.
아지매와 수다꽃을 피우는 사이 친정 마을이다.
마음이 급하여 달려가니 엄마가 대문을 연다.
"아이구 우리 숙이 일찍 오네. 퍼뜩 들어오너래이." 하신다.
친척들이 모두 떠나고 엄마와 오빠 밖에 없다.
오붓하니 더 좋다.
엄마는 나만 보면 부엌으로 먼저 들어 가신다.
"숙아.뭐 좀 주꼬? 소머리 곰탕 꼬와 놓았는데 그것부터 한 그릇
묵어라." 하신다.
가마솥에 가서 곰탕부터 한 그릇 떠 오신다.
게눈 감추듯 하니 흐뭇한 표정이다.
수다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십 호 되는 동네 이야기를 모두 듣다 보니 이내 점심 때다.
조기와 전 종류를 데워 밥을 먹으려는데 홍어까지 내놓는다.
"아이구 엄마. 세련이네.요즘은 홍어도 설에 먹나? 목포에
딱 한 번 갔을 때 실패했는데 오늘은 꼭 성공해야지."하며
홍어 먹기를 시도했다.
콤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엄마와 오빠는 초간장에 찍어 잘 드신다.
나도 몇 점 먹고 엄마표 나물과 비벼 달게 먹었다.
엄마와 난 닮은 점이 푸지다.
초긍정적인데다 호기심의 여왕. 식탐계의 빌게이츠다.
엄마와 막상막하다.
점심을 먹는데 오빠가 혼자 용암온천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오빠.나도 가면 안 되나? 기차타고 오면서 보니 용암온천이 보여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했다.
"그렇나. 그라믄 얼른 점심 먹고 엄마하고 가자." 했다.
엄마도 좋아하신다.
얼른 준비하여 오빠 트럭에 뚱뚱한 몸매를 비집고 탔다.
오빠는 마늘밭에 물을 준 후 운문사 가는 쪽으로 차를 몬다.
오랜만에 중학교 때 동창들이 살던 동네를 스쳐 갔다.
만감이 교차한다.
마을을 지날 때 마다 친구들이 떠오른다.
나와 자취를 했던 예쁜 친구 동네도 엄마가 가르쳐 준다.
나를 좋아했던 머슴아 동네도 보인다.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지낼까.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면서 바깥 경치를 본다.
엄마는 총기가 별이다.
83세인데 얼마나 유머가 풍부하고 박학다식한지 모른다.
눈도 밝아 지나가는 것 마다 아나운서처럼 생중계를 하신다.
"아이구 울엄마 참 눈 밝네. 눈이 9할이라고 하는데 엄마 눈이
밝아 너무 좋다. 나도 엄마를 닮아 아직도 안경 안 끼고 책 읽으면
다들 부러워한다. 엄마 고맙대이." 했다.
"벌써 눈이 어두우면 되나? 엄마는 잘 보인다.
00아지매는 눈도 어두운데다 까막눈이라 얼마나 답답하겠노?" 이러신다.
엄마가 83세인데도 뭐든 호기심을 가지고 천년만년 사실 것 처럼 말씀하셔서
딸로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슈퍼하느라 설날엔 친정에 못 오는 언니에게 전화도 했다.
엄마와 용암온천 가는 길이라고 부러워 한다.
언니가 엄마한테 효녀딸과 재미있게 놀라고 말하니 엄마가 웃는다.
가난해도 제일 살가운 딸이라고 언니는 효녀라고 추켜 세운다.
용암온천에 도착했다.
차 세울 곳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엄마의 유머기는 어김없이 발동한다.
"아이구. 차 공장보다 더 차가 많네." 하셔서 웃었다.
온천 주변도 구경할만 하다.
처음 가 보는 곳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오층에 온천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들어가니 앉을 자리 조차 없을 정도다.
간신히 비집고 앉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엄마와 목욕탕에 와 본 지가 언제던가.
딸 낳고 산후우울증에 걸려 친정에 왔을 때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시원하게 사우나라도 하면 나을까 싶어 밀양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셨다.
우울증의 포로가 되어 사우나가 즐거울리 만무하다.
엄마는 한숨을 몰아쉬시며 얼른 목욕탕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 후 처음이니 30년 만이다.
지금은 가난해도 행복해서 온 온천행이라 즐겁기만 하다.
엄마가 미끄러질세라 붙잡고 다녔다.
몸 구석구석 파스를 붙이고 계셔서 마음이 아프다.
이젠 내가 엄마를 씻어 드렸더니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다리 아픈 엄마는 몇 군데 사우나실에만 모시고 간 후 혼자
돌아 다녔다.
이슬사우나. 석류사우나 등 여러 군데나 있어서 물 만난 고기가 되어
휘젓고 다녔다.
명상음악도 켜놓았다.
옥 사우나엔 중국 황제가 즐겼다고 적혀 있다.
옥은 가지고 가지 말고 중국 황제처럼 사우나만 즐기고 가라는
글이 재미있다.
온천수라서인지 매끌매끌하니 저절로 힐링이 된다.
사우나마다 다 들어갔다고 생각한 찰나 바람이 쌩쌩부는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나가는 곳이 어딜까 하고 몸을 감싸쥐고 빼꼼히 나가봤다.
세상에나.. 노천탕이다.
말로만 듣던 노천탕을 만나다니 꿈만 같다.
제일 꼭대기 층이라 누가 훔쳐 볼 사람도 없다.
말간 하늘과 산. 논.밭이 쳐다 볼 뿐이다.
호기심쟁이가 그냥 있을 수 있으랴.
나도 추위를 떨치기 위해 후다닥 달려 가서 퐁당 들어갔다.
미끄러지듯 몸을 담그니 온천수가 엄마처럼 감싸 준다.
얼굴엔 찬 바람이 스치지만 마냥 따뜻하고 좋다.
하늘 아래 노천탕에서 밥알이 동동 뜬 듯 소복하게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웃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 마디씩 하여 화기애애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들인 듯 하다.
어떤 여자가 말한다.
"아이구 돼지선녀들이네." 하여 박장대소했다.
동화 속의 선녀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천탕 속의 여자들은 뚱보들이 많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용기있는 여자가 그런 말을 하여 밉기는 커녕 즐거움을 선사하여
고마웠다.
현대판 돼지선녀들은 나뭇꾼들을 피해 심신의 피로를 푼다.
다시 현실 속의 선녀가 되어 밉상 나뭇꾼들을 위해 헌신하리라.
생각할수록 웃긴다.
도심 속의 돼지선녀들을 떠올리니..
온탕.냉탕을 번갈아가면서 하라고 적혀 있다.
모범생답게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냉탕에도 들어갔다.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온천의 모든 것을 만끽했다.
실컷 즐기고 오니 엄마가 이젠 나가잔다.
오빠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뚱뚱하여 옷을 입기도 힘들어하셨다.
내가 닦아 드리고 입혀 드렸다.
옆에 있으면 매일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30년 만에
처음이라니 기가 막힌다.
종일 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니 오빠가 기다린다.
어묵을 사 준다.
한 개씩 먹고 트럭을 타고 친정으로 왔다.
엄마는 바지런히 사랑보따리를 챙긴다.
떡국 떡. 손서가 사 온 한우 두 넙띠기. 올케 언니가 삶아 온 돼지고기.
엄마가 직접 담근 매실액 한 병. 은빛떡,직접 키운 무 4개. 비닐로 덮어 놓았던
움파 한 웅큼 등.
보따리를 챙겨 놓은 후 또 저녁까지 먹으란다.
배가 불러 진하게 우려 낸 곰탕만 한 그릇 먹었다.
약단술로 친정 음식을 갈무리했다.
오빠가 볼 일이 있어 기차 시간보다 일찍 태워 주겠단다.
오빠는 어김없이 신사임당 한 장을 주며 맛있는 것 사 먹으란다.
몇 년 전 부터 오빠가 달라졌다.
그 전엔 참 어색하기만 했다.
오빠를 제일 많이 닮아 학창시절 나를 보면 오빠 동생인줄 알았다.
제일 잘 살 줄 알았던 여동생이 가난하니 마음이 아픈가 보다.
온천비에 먹을거리까지 사 준 것도 모자라 돈까지 주니
아버지같다.
오빠한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니 그런 말 말라고 했다.
오빠가 떠난 후 상동역으로 들어 왔다.
기차 떠날 시간이 한 시간도 더 남았다.
무거운 가방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추억 속을 배회했다.
내가 다녔던 남녀공학 중학교 앞에도 갔다.
꽃시절이다. 인기가 너울춤을 추었던 곳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이호우 시도 한 번 더 읊조리고 역전 도서관에서
책 구경도 했다.
이해인 수녀님의 '꽃삽'이 있어 읽었다.
한 번 읽었는데도 느낄 점이 다복솔이다.
부산행이 먼저 떠나고 나니 역 안에 혼자 밖에 없다.
여자 역장이라 편하다.
'불후의 명곡'이 보고 싶으니 채널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친절하게도 바꾸어 주어 즐겁게 감상했다.
기차는 고향과 울엄마와 오빠는 남겨 두고 사랑만큼은
고봉으로 싣고 대구역을 향해 달렸다.
첫댓글 설날 사랑을
고봉으로
듬뿍 담았네
오빠야랑
친정 엄마랑
온천에서 노골노골
묵은 찌꺼기 다 날려뿔었네
이 보다 더 좋은 순간
어디 있으랴
덕지덕지
파스 붙여도 좋으리
오래오래
엄마랑 온천 하고 싶다네
전 선배님 어머님의 묵은 김치가 자꾸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