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1970년 당시 전태일이 받은 월급은
대기업 직원 수준이었다!
1970년 전태일 월급 : 2만원~3만원
1970년 당시 대기업 직원(사원) 월급: 2만원
1970년 당시 은행원 월급: 3만원
1970년 당시 육군 병장 월급 : 780원
(근거 자료는 밑에 나옴)
전태일을 이용해 '박정희 시대'를 깍아내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죠.
"1970년 당시 전태일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디다 못해 박정희를 원망하며 자살했다"고...
과연 그런가?
저들이 전태일 월급 2만원을 거론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수긍하며
'박정희 참 나쁜 사람이군!'
'노동자를 너무 착취하도록 만들었어!'
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것은 시대를 혼동하는 판단착오 즉
과거의 일을 지금 기준(시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요즘 근로자들은 대략 80만원~3백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죠. 물론 6백만원 이상을 받는 근로자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전태일 월급 2만원을 생각하면
'박정희 정권 시대는 참 암울했던 시대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과 다른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1970년 당시 대기업 직원 월급이 2만원이었는데
이런 사실을 숨기고 전태일 월급 2만원만 거론하면
사람들이 판단 착오를 하는 것이죠.
그동안 좌익들과 반박정희 세력들이
얼마나 악질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음해했는지
여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1970년 당시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받은 월급은 아래와 같습니다.
미싱 보조:3천원~1만5천원
미싱사: 7천원~2만5천원
재단사: 1만5천원~3만원
당시 전태일은 미싱사, 재단사 등을 했으므로
그의 월급은 대략 '2만원'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당시 전태일은 22세의 국졸 근로자였는데
그는 대기업 직원 수준의 월급을 받았던 것이죠.
그리고 당시 전태일의 '장시간 근로'라는 문제도
그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설명이 됩니다.
1970년대 초반에 삼성전자에 근무했던
기업체 직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
그들은 회사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회사 초창기이고 할일이 많아서
요즘처럼 9시간 근무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백달러 정도였죠.
당시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는 상태였죠.
그 시절에는 나라도 가난했고, 회사도 가난했고
근로자들도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오직
부지런히 일하는 것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토요일 일요일 쉬면서 하루 8시간 일하며
유유자적 쉬면서 직장 생활을 한다면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는 그토록 가난했던 나라가
선진국이 될수 있을까?
여기서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 결론적으로
생각을 좀 해 보기로 합시다.
전태일은 왜 죽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친북좌익들의 의식화 작업 즉
좌익들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
소영웅주의에 빠져, 잘못 생각하여
죽었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지금 전태일은 저승에서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참고 자료
1970년 당시 우리나라 기업체 사원들의 월급.
연합뉴스
기사전송 2009-07-11 07:07
"1970년 당시 은행원 월급은 3만원"
책;대한민국 12비사
이수광 저, 129페이지
"1970년 당시에는 최고급 담배 '청자' 가격 150원, 대기업 사원 월급 2만원"
한국경제 신문
입력: 2012-02-13 17:51
"1962년 단행된 화폐개혁 이후 10년 단위별로 살펴보면 병장 기준으로 1970년 780원, 1980년 3900
원, 1990년 9400원, 2000년 1만8200원, 2010년 9만7500원으로 40년간 약 125배 올랐다."
조선일보
입력 : 2012.08.06 21:50
"1970년대 후반(78년쯤) 대기업 사원 월급이 10만원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이하 생략.
첫댓글 누구는 하면 진정성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는 종자들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
진정성은 양심의 문제이고 함부로 판단해서 말하는 거 자체가 예의가 아니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언급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금강석님의 소스는
어디서 나오나요
뭐하시는 분이세요?
알면 다치는건 아니죠
긴요한 소스 고맙습니다
70년국가직 9급공무원봉급이 7,600원 받은것 같습니다. 저의경우....
그때 나는 5000원 받았다 인쇄소 기술자 20000원이었다 중간 기술자 12000원 이만원이면 최고임금이다
어, 그때 육성회비300원
그때는 100원짜리 푸른색지폐가 엄청 고액권이었지요..
시내버스요금이 10원이었던것같구요.그 10원도 아낄려구 걸어다녔습니다 왠만한거리는
그당시 저의 부친께서 중앙 행정부처 과장이셨는데 봉급이 10,000~11,000정도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교조와 좌좀들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다 버려놨습니다. 좌좀들이 우리나라 현대사를 왜곡하여 사회를 썩게 만들었습니다.
70년대 야근은 보통이고 일요일이 어데 있슴니까?
너 나 없이 어려운 시절 이였지요!
90년대에도 짤릴가바 일요일에도 출근 경쟁 하며 살았습니다.
전태일은 소 영웅심리의 피해자 일뿐 그이상은 금물입니다
알려야합니다..
전순옥, 참 진정성 있던 삶이네 니 동생?
너 나 없이 어려운 시절 70년대 철야에 야근은 보통 90년대 일요일에도 출근 경쟁하며 버텨왔습니다.전태일은 소 영웅심리 선동의 피해자 일뿐 그이상은 금물
내 나이 지금 60이 다 되어가는데 그 당시 직장에서 5,500원 받았다 , 그런데 전태일 월급2~3만원 후라질 넘,,
민주팔이들 열사 좋아하네 언 놈이 이런 민주팔이를 열사라 부르나,,,,열받네
내 나이 64세, 72년 당시 갓 임관한 해병대 초급장교(소위)로
서해 고도 백령도에서 도서방어 소대장으로 근무할때 봉급이 12,000원이 었고
공수교육을 이수하고 받은 점프수당(생명수당)이 1,900원이 었지요.
전태일이 월급이 2만원이 었다면 고참 대위급 봉급 수준인데... 무었이 불만인지?
잘못된 사고로 좌경화로 의식화된 소 영웅심리에 희생된 우매한 근로자로 평가됩니다.
그당시 난 체신부 지불과에 근무했다 내월급 8500원 이였다 ............1
그러니까 무식한 전태일이가 일하기 싫어 분신 자살한거 맞고요 전태일 이용하는 무리들 맞고요 태일이 동상은 누가세워 주었나요? 근혜님은 뭐하러 가셔서 그런대접 받나요 ? 산업화 시대에 그보다 더못한 월급 받으며 이나라를 이만큼 세워 놓았는데 나빠요 민주통합당도 전태일 동생도,,, 전 산업화세대
분서갱유가 일어난 이유를 이제 아시겟습니까. 어줍잖은 지식으로 어줍잖은 논리를 내세우니 전부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지식으로 타인을 재단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놈들이 또 말은 번지르하게 참 잘하거든요. 왜 사람들이 사기꾼에게 속겠습니까. 그 번지르르한 말 때문 아닙니까.
개새끼들 모두소각 처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