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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60회
진혜공(晉惠公)이 태복 곽언에게 누구를 차우(車右)로 삼을지 점을 치게 했더니, 다른 사람은 다 길하지 않고 오직 경정만 좋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러자 혜공이 말했다.
“경정은 秦의 도당인데, 어찌 그를 차우로 삼을 수 있겠는가?”
혜공은 가복도를 차우로 삼고 극보양을 어자(御者)로 삼아, 한원에서 秦軍을 대적하였다.
백리해가 망루에 올라 바라보니 晉軍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백리해가 진목공(秦穆公)에게 말했다.
“晉侯가 우리와 결사전을 하려고 하니, 주군께서는 저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목공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晉이 나를 배신한 것이 이미 너무 심했다. 천도(天道)가 없다면 모르지만, 하늘도 알고 있는 일이니, 반드시 우리가 이기리라!”
秦軍은 용문산(龍門山) 아래에 진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晉軍도 당도하여 포진을 끝냈다. 양군이 대치하여, 각기 중군에서 북을 울리자 돌격하였다. 도안이는 자신의 용맹만을 믿고 무게 백 근이 넘는 혼철창(渾鐵槍)을 손에 쥐고 秦軍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무찔러 秦軍을 쓰러뜨렸다.
도안이는 마침 백을을 만나 교전하였다. 두 장수는 50여 합쯤 싸우다가 폭발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 병거에서 내려 서로 붙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도안이가 말했다.
“우리 사생결단을 해보자! 남의 도움을 받는다면, 대장부가 아니다!”
백을이 말했다.
“내가 너를 맨손으로 사로잡아야 비로소 영웅이 될 것이다!”
백을은 병사들에게 분부했다.
“아무도 나서지 마라!”
두 장수는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싸우면서 秦軍의 진영 속으로 들어갔다. 진혜공은 도안이가 적진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급히 한간과 양요미를 불러 군사를 이끌고 좌측으로 돌격하게 하고, 자신은 가복도 등을 이끌고 우측으로 돌격하면서, 秦나라 중군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진목공은 晉軍이 양로로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 역시 양로로 나누어 대적하였다.
진혜공은 병거를 몰고 돌격하다가 공손 지와 마주쳤다. 혜공은 가복도로 하여금 공손 지와 맞서 싸우게 하였으나, 공손 지는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사이니, 어찌 가복도 따위가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에 혜공이 극보양에게 말했다.
“고삐를 잘 잡아라! 과인이 친히 싸움을 돕겠다!”
공손 지가 화극을 비껴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싸우고 싶은 놈은 한꺼번에 덤벼라!”
공손 지가 소리치자, 마치 우레가 천지를 진동하는 듯하였다. 국구 괵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병거 안에 엎드려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때 혜공의 병거를 끌던 소사는 아직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역시 공손 지의 고함소리에 놀라, 어자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다가 진흙탕 속에 빠져 버렸다. 극보양이 힘을 다해 채찍질을 했지만, 소사는 체격이 작고 힘이 약해 발버둥을 쳐도 진흙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막 위급한 순간에 마침 경정의 병거가 바로 앞을 지나갔다. 혜공이 소리쳤다.
“경정은 속히 와서 과인을 구하라!”
경정이 말했다.
“괵사는 어디 두고 저를 부르십니까?”
혜공이 또 다시 소리쳤다.
“경정은 속히 와서 과인을 병거에 태워라!”
경정이 말했다.
“주군은 소사를 타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까? 신은 다른 사람에게 주군을 구출하라 이르겠습니다.”
경정은 고삐를 잡아당겨 왼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극보양은 다른 병거를 찾았으나, 이미 秦軍에게 포위당하여 탈출할 길이 없었다.
한편, 한간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가다가 진목공의 중군과 마주쳤다. 한간은 서걸술과 교전하였는데, 30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 아석이 또 군사를 이끌고 당도하여, 양쪽에서 서걸술을 협공하였다. 마침내 서걸술은 두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고, 한간의 창에 찔려 병거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양요미가 크게 소리쳤다.
“패장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니, 협력하여 秦侯를 사로잡아라!”
한간은 서걸술을 내버려두고 군사를 휘몰아 목공을 사로잡으러 달려갔다. 목공은 탄식하며 말했다.
“오늘 내가 도리어 晉軍의 포로가 되는가! 천도(天道)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로 그때 서쪽에서 3백여 명의 용사들이 나타나 크게 소리쳤다.
“우리 은주(恩主)에게 손대지 말라!”
[‘은주’는 은혜를 입은 주인이라는 뜻이다.]
목공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3백여 명이 모두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하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발에는 짚신을 신고서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손에는 큰 칼을 들고 허리에는 활과 화살을 차고 있는데, 마치 혼세마왕(混世魔王) 수하의 귀병(鬼兵)들 같았다. 그들은 도처에서 晉軍을 마구 무찔러댔다.
[‘봉두난발’은 쑥대강이처럼 텁수룩하게 흐트러진 머리털이고, ‘혼세마왕’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왕이란 뜻이다.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108 두령 중 번서의 별호가 혼세마왕이다.]
한간과 양요미는 황급히 적을 맞아 싸웠다. 그때 또 한사람이 북쪽에서 병거를 몰고 나는 듯이 달려 왔는데, 바로 경정이었다. 경정이 큰소리로 외쳤다.
“싸움에 연연하지 말라! 주군이 용문산 아래 수렁 속에서 秦軍에게 포위되어 있으니, 속히 가서 구출하라!”
한간 등은 싸울 생각이 없어져 갑자기 나타난 용사들을 내버리고 晉侯를 구하기 위해 용문산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때는 이미 진혜공은 공손 지에게 사로잡히고, 가복도·괵사·극보양 등도 모두 포박되어 秦의 영채로 끌려간 뒤였다. 한간은 발을 구르며 말했다.
“秦侯를 사로잡아 주군과 바꿀 수 있었는데, 경정이 일을 그르쳤구나!”
양요미가 말했다.
“주군이 이미 사로잡혔으니, 우리가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양요미는 한간과 함께 무기를 버리고 秦軍에게 항복하여, 혜공과 함께 감금되었다.
한편, 3백여 명의 장사들은 진목공을 구출한 뒤 서걸술도 구했다. 秦軍은 승세를 타고 晉軍을 크게 무찔러, 용문산 아래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6백승 중에 살아 돌아간 자는 열에 두셋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진혜공이 사로잡혔다는 소문을 들은 경정은 秦軍의 포위를 뚫고 달아나다가, 상처를 입고 땅에 쓰러져 있는 아석을 발견하고 병거에 태워 晉나라로 돌아갔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원대전(韓原大戰)의 일을 읊었다.
龍門山下嘆輿屍 용문산 아래 병거와 시신을 한탄하노라.
只為昏君不報施 단지 혼군이 은혜를 갚지 않았기 때문이네.
善惡兩家分勝敗 善惡이 양국의 승패를 갈라놓았으니
明明天道豈無知 밝고 밝은 天道를 어찌 몰랐던가?
[제50회에, 진목공이 진헌공의 장녀 백희에게 청혼했을 때, 태사 소의 점괘가 ‘장사가 양을 찔렀으나 피가 나지 않고, 여인이 광주리를 이었으나 담긴 것이 없네. 서쪽 이웃이 꾸짖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네.’라고 했었는데, 바로 이 한원 대전을 예언한 것이다.]
진목공은 영채로 돌아와 백리해에게 말했다.
“과인이 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하마터면 晉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그때 3백 명의 장사들이 영채로 들어와 목공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하였다. 목공이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이기에, 과인을 위하여 그처럼 사력을 다했는가?”
장사들이 대답했다.
“주군께서는 예전에 준마(駿馬)를 잃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저희들이 바로 말을 잡아먹은 자들입니다.”
예전에 목공이 양산(梁山)으로 사냥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밤중에 준마 몇 필이 없어져, 관리들을 시켜 찾게 하였다. 관리들이 기산(岐山) 아래에 가보니, 시골사람 3백여 명이 모여서 말고기를 먹고 있었다. 관리들은 감히 그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고, 달려와서 목공에게 보고하였다.
“빨리 병사들을 보내면 모두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목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말은 이미 죽었는데, 또 그로 인하여 사람을 죽인다면, 백성들은 과인이 가축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천하게 여긴다 할 것이다.”
목공은 군중의 미주(美酒) 수십 동이를 내어 기산 아래의 시골사람들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다. 관리들은 술을 주면서 목공의 명을 전하였다.
“과군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고기를 먹고 나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한다.’ 그래서 이 미주를 그대들에게 하사하셨다.”
시골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은덕에 감사하였다. 그들은 술을 나눠 마시며 일제히 찬탄하였다.
“말을 훔친 것을 벌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우리들이 상할까 염려하시어, 이처럼 미주를 하사하시니, 주군의 크나큰 은덕을 무엇으로 갚겠는가!”
이때 목공이 晉을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 3백여 명은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움을 돕기 위해 한원으로 달려왔다가, 마침 목공이 포위된 것을 보고 일제히 용맹을 발휘하여 구출했던 것이다.
이는 참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種瓜得瓜 오이 심은 데 오이 나고
種豆得豆 콩 심은 데 콩 난다.
施薄報薄 엷은 은혜엔 엷은 보답
施厚報厚 두터운 은혜엔 두터운 보답.
有施無報 은혜를 입고도 보답 않는 자는
何異禽獸 금수(禽獸)와 다를 바가 있으랴.
목공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시골사람들도 은덕을 갚을 줄 아는 의리가 있거늘, 晉侯는 대체 어찌된 인간인가?”
목공은 장사들에게 물었다.
“그대들 중에 벼슬을 원하는 자가 있다면, 과인이 작록을 내리겠노라.”
장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들은 시골사람입니다. 다만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을 뿐, 벼슬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목공은 그들 각자에게 황금과 비단을 하사하였으나, 그들은 그것조차 받지 않고 돌아갔다. 목공은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후인이 시를 읊었다.
韓原山下兩交鋒 한원산 아래 양국이 교전할 제
晉甲重重困穆公 晉軍이 목공을 겹겹이 포위했다네.
當日若誅牧馬士 지난날 말 도둑을 죽였더라면
今朝焉得出樊籠 오늘 어찌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으랴.
목공이 장수들을 점검해 보니, 오직 백을 한 사람만 보이지 않았다. 군사들을 시켜 두루 수색하게 하였더니, 어떤 토굴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군사들이 달려가 보니, 백을과 도안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토굴 속으로 떨어졌는데 둘 다 기진맥진(氣盡脈盡)해서도 서로 붙잡은 채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군사들은 두 사람을 떼어내고 수레에 싣고서 영채로 돌아왔다. 목공이 백을에게 안부를 물었지만, 백을은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본 자가 있어, 목공에게 그 상황을 자세히 아뢰었다. 목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두 사람 다 대장부로다!”
목공이 좌우에 물었다.
“이 晉나라 장수의 성명을 아는 사람 있는가?”
공자 칩이 수레 안을 살펴보고서 아뢰었다.
“이 사람은 용사 도안이입니다. 신이 전에 晉나라의 두 공자 중이와 이오에게 조문 갔을 때, 도안이 역시 본국 대신의 명을 받들어 이오를 영접하러 왔었습니다. 그때 객사에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제55회에 말미에, 이극이 도안이와 양요미를 양나라로 보내 이오를 영접해 오게 하였다. 제56회에, 공자 칩은 목공의 명으로 책나라에 망명해 있던 중이와 양나라에 망명해 있던 이오를 차례로 찾아가 진헌공의 죽음에 대해 조문하고 그들의 사람됨을 알아보았다.]
목공이 말했다.
“이 사람을 우리 秦나라에 머물게 하여 기용할 수 있겠소?”
공자 칩이 말했다.
“탁자를 시해하고 이극을 죽인 자가 바로 이 자입니다. 오늘 하늘의 이치에 따라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목공은 명을 내려 도안이를 참수하게 하였다. 그리고 친히 비단전포를 벗어 백을을 덮어주고, 백리해로 하여금 온거(溫車)에 실어 秦나라로 돌아가 치료하게 하였다. 백을은 약을 복용하고 피를 몇 말이나 토하고서,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백을은 건숙의 아들 건병이다. 백리해의 아들은 맹명(백리시)이다. ‘온거’는 사람이 누워서 탈 수 있는 수레이다.]
목공은 전승을 거둔 후 영채를 뽑아 출발하면서, 사람을 보내 진혜공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군후가 과인을 피하려 하지 않아, 과인 역시 군후를 피할 수 없었소. 폐읍으로 돌아가 죄를 물을 것이오!”
혜공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목공은 공손 지로 하여금 병거 1백승을 거느리고 진혜공을 秦나라로 압송하게 하였다. 괵사·한간·양요미·가복도·극보양·곽언·극걸 등은 모두 머리를 풀어헤치고 때 묻은 얼굴로 들판을 걸어 노숙하면서 뒤를 따라 갔는데, 마치 상례에 가는 모습 같았다.
목공은 또 사람을 보내 晉나라 대부들을 위로하며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들 君臣이, 晉나라 곡식을 먹으려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과인이 그대들의 주군을 붙잡아두는 것은 晉나라의 곡식을 취하려는 것뿐이니, 심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어찌하여 군주가 없는 것을 근심하는가?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한간 등은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군후께서는 과군의 어리석음을 가련히 여기시어 관대하게 대해 주셨으니, 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황천후토(皇天后土)도 실로 군후의 말씀을 들었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받들지 않겠습니까!”
秦軍이 옹주(雍州) 경계에 이르렀을 때, 목공은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며 말했다.
“과인은 상제의 명을 받들어 晉의 내란을 평정하고 이오를 군위에 세웠으나, 이제 晉侯가 과인의 은덕을 배신하였으니 이는 상제께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소. 과인은 晉侯를 상제께 제물로 바쳐 은덕에 보답코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공자 칩이 말했다.
“주군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공손 지가 말했다.
“안 됩니다. 晉은 대국입니다. 우리가 晉나라 君臣을 포로로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백성들의 원한을 사고 있는데, 게다가 그들의 군주를 죽인다면 그 원한을 더할 뿐입니다. 晉이 秦에게 보복하게 되면, 秦이 晉에 보복한 것보다 심할 것입니다.”
공자 칩이 말했다.
“신의 의도는 晉侯를 그저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장차 공자 중이로 그를 대신하자는 것입니다. 무도한 자를 죽이고 유덕한 군주를 세워 주는 것이니, 晉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덕에 감복할 것입니다.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공손 지가 말했다.
“공자 중이는 어진 사람입니다. 父子 사이와 형제 사이는 한 칸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중이는 부친상을 기회로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동생의 죽음을 기회로 이익을 취하겠습니까? 만약 중이가 귀국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군위에 세워야 하는데, 그러면 이오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만약 중이가 귀국한다면 그 동생을 위하여 우리 秦나라를 원수로 여길 터인데, 주군께서는 지난날 이오에게 베푼 은덕을 버리고, 새로이 중이와 원수가 되려 하십니까? 신은 이오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추방할 것인가, 아니면 감금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복위시킬 것인가? 셋 중에 어느 쪽이 유리하겠소?”
공손 지가 말했다.
“감금해 두면 한 필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우리 秦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추방하면 필시 복귀하기 위해 음모를 꾸밀 것이니, 복위시켜 주는 것만 못합니다.”
목공이 말했다.
“애써 이룬 공을 헛되이 할 수는 없지 않소?”
공손 지가 대답했다.
“신의 의도는 그를 헛되이 복위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서의 다섯 성을 우리에게 바치게 하고 세자 어를 우리나라에 인질로 보내게 한 뒤에 그를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晉侯는 종신토록 우리 秦을 미워하지 못할 것이며, 훗날 그가 죽어 세자가 군위를 계승하게 되면 우리는 세자에게 은덕을 베풀어 대대로 우리 秦을 받들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의 이익이 더 크겠습니까?”
목공이 말했다.
“자상(子桑; 공손 지)은 몇 세대 다음까지 내다보고 계산하는구려.”
목공은 혜공을 영대산(靈臺山)의 이궁(離宮)에 안치하고, 1천 명의 군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목공이 혜공을 영대산으로 보내고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홀연 내시들이 상복을 입고 왔다. 목공은 부인에게 변고가 생겼나 보다고 생각하고 물어 보려고 했는데, 내시들이 부인 목희의 명을 전했다.
“하늘이 재앙을 내려 秦과 晉의 두 군후가 우호를 버리고 전쟁을 하여, 晉侯가 사로잡혔으니 그것은 곧 첩의 수치입니다. 만약 晉侯가 아침에 끌려 들어오면 첩도 아침에 죽을 것이고, 저녁에 끌려 들어오면 첩도 저녁에 죽을 것입니다. 지금 특별히 내시들에게 상복을 입혀 주군의 군대를 맞이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晉侯를 사면하신다면, 그것은 첩을 사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주군께서는 헤아려 주십시오!”
[목희는 신생의 동복 여동생이므로, 이오(혜공)의 이복 여동생이다.]
목공은 크게 놀라며 물었다.
“부인은 궁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내시가 아뢰었다.
“군부인께서는 晉侯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세자와 함께 상복을 입고 걸어서 궁을 나가 후원의 숭대(崇臺) 위에 초막을 짓고 거처하고 계십니다. 숭대 아래에는 땔나무 수십 층을 쌓고, 아침밥과 저녁밥을 가지고 오는 자들로 하여금 땔나무를 밟고 오르내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부하시기를, ‘晉侯가 입성하면 나는 숭대 위해서 자살할 것이다. 내 시신을 불태움으로써 형제의 정을 표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목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자상의 말을 듣고 晉侯를 죽이지 않았기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부인의 목숨을 잃을 뻔했구나!”
목공은 내시들에게 상복을 벗게 하고, 목희에게 가서 보고하게 하였다.
“과인이 조만간 晉侯를 귀국시킬 것이오.”
목희는 비로소 궁으로 돌아갔다. 내시가 목희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晉侯는 이익에 눈이 멀어 의리를 잊었으며, 우리 주군과의 약속도 어기고 군부인의 부탁도 저버렸습니다. 이제 화를 자초하여 감금당하는 수모를 당했는데, 군부인께서는 어찌 이렇게 애통해 하십니까?”
[제56회에, 목희는 혜공에게, 가군을 잘 보살펴주고 晉나라의 여러 공자들을 받아들이라고 부탁했는데, 혜공은 가군을 겁탈하고 공자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희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인자(仁者)는 비록 원한이 있더라도 부모형제를 잊지 않으며, 비록 노하더라도 예(禮)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약 晉侯가 秦나라에서 죽는다면, 나 역시 죄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내시들은 군부인의 현덕(賢德)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첫댓글 진목공이니까 목희"라고 했는가 보다.